사회의 입김 (8)

「구두닦이」의 보금자리

 

천막(天幕)속 등불 밑에서 배워

=하루 번돈중에서 150환씩 모아 살아가고=

열심히 일하면 훌륭히 되겠지

 

○.... 새 양복에다 새구두를 겹쳐 신고 자가용차에 올라 중학교문전에까지 뻥뻥거리며 타고가는 호사하는 학생이 있고 온 종일 구두닦이에 고달픈 다리를 이끌고 뚫어진 천막(이것이 잠자리자 교실이 되는)을 찾아가는 소년들이 있다 그 천막도 서울의 중심지가 아니고 정릉(貞陵)산골짜기 동네 이름도 번지도 없는 산꼭대기에 어수선히 둘러놓은 천막집이다.

○.... 그래도 문 앞에는 또렷한 글씨로 대한연장아 직업보도소 근로소년대(大韓年長兒職業輔導所勤勞少年隊)라고 씌어져 있다. 컴컴한 방속에서 톱과 망치를 들고 구두닦이 통을 만드는 박봉춘(朴奉春=十七)이라는 소년 「이제 종로3가 조흥은행지점 앞에서 한눈파는 동안에 구두닦이 통을 어느 놈이 훔쳐가 오늘은 일하려도 못가고 새로 구두닦이 통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 「우리 선생님요! 연세대학생이구요. 이름은 이원호. 우리하고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같이 일어나서 학교에 갑니다. 항상 우리들과 재미있게 놀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지만 글을 가르칠 때는 제일 무서운 얼굴을 합니다. 딱딱하고 캐어묻고 어제 배워준 것을 오늘 대답 못하면 매질도 할 듯이 책망하지요.」

○.... 공부하는 시간은 밤 일곱 시부터 두 시간, 천막속의 넓이는 십五「미터」 평방가량이고 전등도 없이 두개의 석유등 아래서 二십五명의 구두 닦는 어린이들이 주로 상식 문제 외 수학을 배운다고!

「그 날 그 날 번 돈 중에서 150환씩 모아 쌀을 사고 반찬을 사서 교대로 밥을 지어먹으며 석유도 사고 구공탄도 사서 추운 때면 난로도 피우기 때문에 방이 춥지가 않습니다.」

○.... 이렇게 생활하는 이들은 「그까짓 옷은 잘 입어 무얼해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배우면 나중에 부잣집 아이들보다도 더 훌륭하게 될 수도 있지요」 장차 정치가가 되겠다는 이 소년의 의지는 굳센 것이었다. 제일 기쁜 때는 구두 닦기에서 돈을 많이 번 날, 슬픈 때는 백 환도 못 벌어 밥값도 못내는 날이라고!

(사진 = 정릉산 꼭대기에 마련되어 있는 구두닦이 소년의 집)

▲ 사회의 입김 (8) [민족일보 이미지]

<민족일보> 1961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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