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경 / 농부

 

살구나무를 찾아서 살구나무 동산을 만들고 있다. 올해는 살구나무 마을을 만들려고 한다. 올해 우리 마을에는 많은 살구나무들이 새로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인데, 나는 그것이 북측 회령 백살구나무이기를 바래서, 그것을 구하려 안타깝게 뛰어다니고 있다.
사라진 살구나무를 찾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살구나무를 잃어버렸듯이 아주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무엇을 위하여 그 많은 것들을 놓아버린 것일까? 여기 연재할 글들은 살구나무처럼 우리가 잃은 것들, 잊은 것들, 두고 온 것들에 대한 진지한 호명이다. / 필자

 

▲ 밭을 매는 송 할머니.  [사진제공-주미경]


풀을 매면서 첫 번째 생각

그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풀을 매고 있었다. 일본의 수출규제사태로 사람들의 마음에 불이 붙었다. 벌써 한 달이 넘게 밭고랑에 엎드려 풀을 매고 있는 내 마음에도 그 불이 달렸다. 괭이로 쑥뿌리를 캐내고 낫으로 바랭이를 베어내고, 언제나처럼 홀로 하는 풀매기이지만 마음이 다르니 괭이질 낫질도 여느 때완 다르다. 오랜만에 사람들과 함께임을 느낀다. 이것은 매우 근사한 느낌이다.

사람들은 우리 경제의 일본의존도가 이렇게도 높다는 사실에 놀란다. 사람들은 해방 70년이 넘은 지금도 친일과 반일의 구도와 면면이 식민지 시기 40년과 동일하다는 것에 또 한번 놀라고, 나는 마침내 올 것이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가 통일로 가는 노정에 나타난 첫 번째 장애물이다. 아마도 이것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역사도 인물도 청산되지 않았고, 죄도 지은대로 가지 않는다는 것을 100년이 넘도록 체험해왔지만, 누천년을 이어온 민족의 도덕률은 때가 되면 기필코 고개를 든다. 누가 뭐라 하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어디에 속해있는지 알고, 자신의 이해관계가 어디에서 갈리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양물에 쩔은 사람들이 냉소하는 고루한 민족감정도 아니며, 미래지향이라는 궤변으로 자신들의 정체를 은폐해온 친일의 후예들이 떠드는 과거집착도 아니다. 

그 도덕률은, 어려움 앞에서는 뭉치고 우리모두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나갈 수 있다는 유전자에 새겨진 의지요, 한 장소에서 하나의 집단으로 수천 년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기본적인 존재방식이다. 그것은 낮은 데로 흐르는 물과 같아서 막으면 오히려 넘치는 것이다. 풀을 매면서 했던 첫 번째 생각이다. 

풀을 매면서 두 번째 생각

두 번째에선 잠시 일손을 멈췄다. ‘이것이 만약 쌀이라면?’ 사람들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못사오면 저기서 사오면 되고 필요한 건 오직 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보면 반도체 첨단소재만큼이나 세계적으로 독점되어 있는 것이 식량이다. 과일이니 기호품이니 먹을 것을 수출하는 나라들은 많지만 식량이 되어줄 주곡류를 수출하는 나라는 몇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것들은 농식픔복합체인 몇 개 다국적기업에 장악되어 있기까지 하다. 또 게다가 식량문제를 야기할 주요 요인이라 예상하는 기후변화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식량자급률이 25%이하로 떨어지면서 그것이 가져올 재앙을 우려하는 식자들은 식량이 무기화될 미래에 대한 경고를 빠뜨리지 않지만, 그것은 미래에 일어날 일이 아니다. 식량은 이미 무기다. 그것은 과거부터 줄곧 무기였고 부족이 예측되는 미래에는 더욱 노골화될 것이다. 자급률이 25%도 못 되는 나라라면 그 나라는 국제곡물시장에서 고객이 아니라 봉이다. 작은 면적에 5천만이 넘는 인구를 가진 나라에서 식량자급에 대해 이토록 무관심한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수출규제사태를 대하는 사람들의 의견들은 매우 진취적이다. “이 참에 국산화하자”가 대세이다. 소수의 현실론자들은 그렇게 뚝딱 되는 일이 아니라고들 한다. 아마도 맞는 말일 게다. 하물며 식량을 자급하는 일은 반도체 소재를 국산화하는 일과는 차원이 다르다. 반도체 소재를 개발하는 것은 일정한 손해를 감수하면 되는 일이지만 식량은 굶주림을 견뎌야 하는 일이 된다. 반도체 소재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면 되는 일이겠지만 식량은 도로와 아파트개발로 농지의 절대면적이 사라진 상황에서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었을지 모른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해왔지만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온 21세기적 변화가 마침내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우리가 익히 경험해왔던 세계의 질서와는 다른 새로운 질서를 향한 거대한 움직임이 촌구석에서 밭고랑을 매고 있는 나에게까지도 확연하게 감지된다. 심각한 것은 우리가 힘과 힘이 맞부딪히는 그 변화의 가장 첨예한 경계에 위치해있다는 사실이다. 그곳은 태풍의 가장자리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변화는 혼돈과 고통을 동반한다. 태풍의 가장자리에 옴짝 못하고 붙들려있는 우리에게 혼돈과 고통이 결코 피해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감한다. 우리에게 있어 혼돈이 가중되는 것은 우리가 극단적으로 수동적이라는 데서 생겨나고, 가야 할 길을 모르는 혼돈은 고통을 또한 가중시킬 것이다. 

이쪽 편에 엉거주춤 서서 저쪽 편에도 끊임없이 손짓을 해야 하는 처지가 구조화 되어버린 우리에게 태풍의 가장자리라는 위치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주동적으로 자기 위치를 유리하게 바꿀 의지도 능력도 우리는 축적해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가망 없이 여겨지는 이 시골에서 가끔씩 우리가 어느 과거의 모퉁이에 두고 온 힘을 본다.

송 할머니의 힘은?

팔순이 훌쩍 넘은 송 할머니는 매일같이 허리를 반으로 접고 풀을 맸다. 해가 막 건너편 서산을 넘고 골짜기에서는 수증기가 자욱이 피어 오른다. 하루의 마지막 빛이 아직 어린 율무잎에 부딪혀 반짝거리는 밭에서 홀로 허리를 접은 할머니의 모습이 정물처럼 박힌 풍경이 처연하고도 아름다워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할머니는 매해 봄이면 율무를 심는다. 내가 여기 오기 전에는 고추를 심었다고 한다. 나이 들고 몸도 성치 않아 손이 많이 가는 고추농사가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율무를 심기 시작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몸 반쪽을 못쓰는 할아버지와 병든 아들을 돌보면서 율무농사를 짓는다. 집 앞이라고는 해도 500평 남짓한 밭을 거두는 것은 팔순 넘은 노인에게는 너무나 벅찬 일이다. 할머니로 하여금 끊임없이 힘든 일에 몸을 바치게 하는 동력은 무얼까?

고 할아버지의 힘은?

마을 노인회 회장인 고 할아버지는 낼모레면 팔순이다. 단연 마을의 터주나 다름없는 고 할아버지는 짓는 농사도 엄청나다. 논 30마지기에 사과밭 2천평, 그리고 소 열댓 마리를 먹이는 것이 기본이고, 거기에 갖가지 잡곡과 채소 사료작물까지,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는 마을 밭농사는 거의 그의 손에서 지어진다. 평생 고된 노동으로 허리가 완전히 굽어버린 할머니를 차 옆자리에 태우고 다니며 그 숱한 농사를 두 노인네가 맞들고 다 해제낀다.

그런 할아버지가 재작년에 큰 수술로 여러 달 일을 못했다. 간이 상해 반절을 잘라낸 것이다. 수술날짜를 받아놓고 할머니는 새로 담근 고추장 한 통을 들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 할머니는 간을 잘라내도 사람이 살 수 있는지를 나에게 물었고, 할아버지가 드러누우면 저 많은 농사일을 다 누가 하느냐며 까맣게 타는 속을 내놓고 한숨을 쉬었다. 병상에서 본 할아버지의 얼굴은 꺼멓고 초췌했지만 퇴원하고 움직일 만하기가 무섭게 다시 농사일에 몸을 푹 잠궈버렸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할머니도 예외로 될 수 없다. 할머니는 작년에 고관절이 부서져 병원신세를 여러 달 졌다. 부상 덕분에 오랜 시간 일에서 놓여난 할머니는 밭고랑 같던 얼굴주름이 펴지고 피부까지 뽀얘졌으니, 할머니 평생에 아마도 처음 맛보는 휴식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퇴원하고 보행기에 의존하던 것도 잠깐, 스스로 움직일 만하니 곧바로 할아버지의 전철을 밟아갔다. 두 노인이 연달아 병원신세를 크게 지고도 그들이 짓는 농사는 줄어들지 않았다.

두 노인네는 내가 찾아가면 무척 반가워하신다. 호밀종자를 부탁하러 찾아간 나를 앉혀놓고 수박을 잘라주며 한 이야기들이 목에 걸렸다. “80년 초까지도 우린 즘심을 못 먹었어. 즘심이 어딨어, 하루 두끼면 고작이지. 그럭허구 일했어. 시방은 좋아졌지. 즘심도 꼬박 먹으니께.” 그렇게 좋아진 지금에 와서도 할아버지로 하여금 고되고 힘든 농사일을 쉼없이 계속하게 하는 힘은 무얼까?

그것이 설령 쌀일지라도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일이다. 마을 노인들에게 있어 농사는 기본적인 존재증명이다. 봄이 오면 씨앗을 뿌린다는 것은 평생을 두고 해온 당연지사이고, 논밭을 비우고 방치한다는 것은 일종의 자기부정이다. 비록 자식들 만큼은 농사일 면하게 하려고 품들여 가르쳤지만 그들에게 있어 농사는 밥숟가락을 놓을 때까지 계속되는 업이다. 그들은 자기 개인이 아니라 식구들을 위하여 일했고, 자기 마을을, 자기 고장을 위하여 일했으며, 그것이 곧 나라를 위한 일로 된다고 여겼다.

나라 잃은 치욕을 경험했던 세대, 굶주림을 일상으로 견디었던 세대, 지금 우리 사회의 중추를 이룬 세대의 부모들이다. 그들은 그러한 도덕률에서 살았다. 세태가 변하여 자신들이 기른 자식들의 손에 의해 그 도덕률이 하나하나 전복되어 나하나 잘 살면 그만인 세상이 도래하는 것을 뜬 눈으로 지켜보아 왔지만, 해가 뜨면 노구를 일으켜 밭으로 나가는 힘은 자신의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이어져온 도덕률이다. 그 도덕률에선 ‘홀로’가 아니라 ‘함께’였고,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모두’였다.

고통을 견디는 힘은 집단 속에서 생겨난다.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힘도 집단 속에서 자라난다. 그것이 우리의 부모세대들이 지녔던 도덕률이다. 그것이 그리 멀지 않은 어느 과거의 모퉁이에 두고 온 우리의 힘이다. 

통일로 가는 여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일본의 노골적인 경제공격은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통일로 가는 노정에 확실하게 들어섰음을 반증해준다. 우리의 통일을 가장 두려워하고 가장 바라지 않는 것이 일본이니까. 일본은 언제까지라도 우리가 그들 손아귀에 잡혀있기를 원하니까. 

통일로 가는 길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누구도 모른다. 70년 분단을 청산하는 엄청난 변화가 아무 고통 없이 오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그것이 설령 반도체 소재가 아니라 쌀일지라도, 우리에게 1백년 한을 남긴 일본때문에라도 우리는 통일로 가는 길을 멈출 수 없다. 우리에게 다시 힘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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