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 신도인 최인국 씨가 6일 월북했습니다. 최 씨는 남측에서 외무부장관을 지낸 최덕신 씨와 북측에서 천도교청우당 위원장을 지낸 류미영 씨의 아들입니다. 북측 웹사이트 <우리 민족끼리>는 “류미영 전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아들 최인국 선생이 공화국에 영주하기 위하여 6일 평양에 도착했다”고 7일 보도했습니다. 

우리 정부도 최 씨의 월북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최인국 씨는 ‘최덕신-류미영’ 부모가 ‘월북을 통한 영주’를 택했듯이 그 전철을 밟게 된 셈입니다. 무슨 일이든 목적과 이유가 궁금합니다.

최 씨는 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한 6일 “평양의 애국열사릉에는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이모할머니 이렇게 다섯 분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면서 “저는 우리 가문이 대대로 안겨 사는 품, 고마운 조국을 따르는 길이 곧 돌아가신 부모님들의 유언을 지켜드리는 길이고 그것이 자식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이기에 늦게나마 공화국에 영주할 결심을 내리게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아울러 “부모님들의 간곡한 유지대로 조국통일위업 실현에 저의 남은 여생을 다 바치려고 한다”고 방북 목적도 알렸습니다.

그렇다면 최 씨의 방북 목적은 △선친들의 유해가 묻혀있는 곳으로 가는 것 △부모님의 유지를 받들어 통일사업을 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최 씨의 부친 최덕신은 남측에서 박정희 정권 때 외무장관을 역임했으며 이후 천도교 교령도 지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갈등 등으로 인해 1976년 부인과 함께 미국에 이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최덕신-류미영’ 부부는 1986년 월북을 선택했으며, 이후 최덕신은 북측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등으로 활동했습니다.

류미영은 1989년 남편이 사망하자 뒤를 이어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을 지냈으며, 2016년 11월 숨지기 전까지 북한 최고인민회의 13기 대의원,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공동의장, 6.15 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명예공동위원장, 단군민족통일협의회 회장을 지냈습니다.

‘최덕신-류미영’ 부부는 임시정부 주요 인사였던 독립운동가 최동오와 유동열의 아들과 수양딸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즉 최인국 씨의 할아버지인 최동오는 임시정부 법무부장과 임시의정원 법사위원장으로 일했으며, 수양 외할아버지 유동열은 임시정부가 창설한 광복군 참모총장으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서울을 점령한 북측은 ‘최동오-유동렬’을 북으로 데려가기 위한 이른바 ‘모시기 공작’ 대상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특히 최동오는 일제시대 때 화성의숙의 숙장으로 김일성 주석의 교장선생님이었으며, 북측에서 재북평화통일촉진회 간부로 장관급 대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최인국 씨는 월북 전 송범두 현 천도교 교령을 만나 “내가 여기(한국)서 살기도 힘들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고 토로했다고 합니다. 이에 송 교령은 최 씨가 어머니 류미영 씨가 2016년 세상을 뜬 뒤 비워놓았던 북한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자리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다고 합니다. 송 교령의 예측대로라면, 최 씨는 ‘부친-모친’의 대를 이어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을 하면서 통일사업을 하게 됩니다.

예전 같으면 최인국 씨의 가문과 내력에서 볼 때 그의 ‘입북’과 ‘영주’를 두고 북측이 떠들썩할 법한데 비교적 조용합니다. 평소와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6.15선언 이전 같았으면 체제 우월성 차원에서라도 대대적으로 선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북측은 이번 최 씨의 6일 입북 사실을 대남 매체인 <우리 민족끼리>에만 7일 게재하고 이날 밤늦게까지 <조선중앙통신>이나 <노동신문>, <조선중앙방송> 등의 공식매체에는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최 씨의 입북 소식을 남측에는 알리되 북측에는 아직 알리지 않는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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