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9주기 제20차 산내학살사건위령제가 27일 오후 1시부터 사건 현장인 산내 골령골에서 개최되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제69주기 제20차 산내학살사건위령제 참석자들이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사건이 발생한 지 69년이 지났으나, 위령제가 진행되는 동안 유가족들은 희생당한 이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적셨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제69주기 제20차 산내학살사건위령제가 27일 오후 1시부터 사건 현장인 산내 골령골(대전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대)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위령제를 앞두고 산내 골령골에 정의와 연대의 손길이 이어졌다.

위령제를 일주일을 앞두고 지난 19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이홍정)에서는 산내 골령골에 ‘역사 정의의 나무’를 심었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을 형상화한 가묘 뒤편에 단풍나무 한 그루를 심고, 표지석에 “국가폭력으로 희생되신 산내 학살의 영령들을 추념하며 ‘역사정의의 나무’를 심어 연대의 뜻을 밝힙니다”고 적었다. 이때 심은 표지석 제막이 위령제 날에 맞춰 거행되었다.

▲ 제69주기 제20차 산내학살사건위령제에는 산내유족회 회원뿐 아니라 전국의 다른 지역 유족회 회원과 대전 시민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사)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문양자 회장이 위령제에서 유족인사를 하고 있다. 문양자 회장 뒤로는 얼마 전 새롭게 선출된 임원들이 함께 서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또한 산내 민간인 학살 사건의 현장지휘 책임자였던 심용현 전 성신학원 이사장의 과거 행적과 관련해 성신학원 이사장이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사과한 소식이 위령제 참석자들에게도 전해졌다. 

유족 대표 인사에 나선 문양자 (사)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이하 산내유족회) 회장은 “지난주 산내 민간인 학살 사건의 현장 지휘 책임자였던 심용현 전 성신학원 이사장의 과거 행적과 관련해 성신학원 이사장이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공식 사과를 했다”며, “비록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전직 이사장의 과거의 만행에 대해 용기 있는 사과와 결단을 내린 성신학원 황상익 이사장께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문양자 회장은 이어 “우리 유족들은 지금도 골령골의 어둡고 차가운 땅속에 부모의 유골을 묻어두고 있다”면서 “유골 한 조각이라도 가슴에 모셔놓고 죽는 게 우리 유족의 바람”이라며, 유해 발굴과 진상규명을 위해 ‘과거사법’ 개정을 촉구했다.

▲ 송승문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위령제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송승문 회장과 함께 제주4.3희생자유족회대전위원회 회원 40여명도 산내 위령제에 참석했다. 제주도민 300여명은 4.3사건 당시 군법회의를 통해 7년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로 이감되어 수감 중에 학살당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한국전쟁 당시 영국의 ‘데일리 워커(Daily Worker)’의 특파원으로 한국에 파견되었던 ‘알랜 위닝턴(Alan Winnington)’ 기자의 부인인 에스더 씨도 위령제에 참석해 추도사를 했다. 추도사를 마친 후 에스더 씨는 위닝턴 기자가 한국전쟁 당시 산내 골령골의 참상을 목격한 후 팜플렛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이번 위령제는 특별한 손님도 산내 골령골을 찾았다. 한국전쟁 당시 영국의 ‘데일리 워커(Daily Worker)’의 특파원으로 한국에 파견되었던 ‘알랜 위닝턴(Alan Winnington)’ 기자의 부인이 위령제에 참석했다. 69년 만에 남편을 대신에 산내 학살 사건의 현장을 찾은 것이다. 

위닝턴은 산내 학살 사건 직후 사건 현장을 찾아 관련 기사를 국외로 전파한 최초의 기자다. 그는 산내 학살 사건 현장을 취재해 ‘한국의 미국 벨젠 수용소(U.S. Belsen In Korea)’라는 제목의 기사를 데일리 워커 1950년 8월 9일자 1면에 타전을 했고, 그해 9월에는 16쪽짜리 특별 팜플렛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I saw the truth in korea)>를 내보냈다. 

위닝턴 기자의 부인 에스더(Esther) 씨는 “그(위닝턴)는 한국전쟁에서 본 고통과 비참함으로 인해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야만 했었다”며, “가장 소름 끼치는 장면은 한국정부에 의해 학살된 수천 명의 지식인들이 대전 근처의 낭월 지역에 흙으로 대충 덮여있었던 광경을 목격했을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세상에 공개한 그의 노력과 희생이 너무나도 늦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지만, 전쟁을 일으킨 자들로부터 희생당한 수많은 분들의 후손들에 의해 인정받게 되어서 그의 희생이 헛되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위닝턴은 이런 기사 등을 이유로 여권을 압수당해 영국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독일로 망명해 살다가 1983년 사망했다.

▲ 원불교 대전충남교구에서 산내학살사건 희생영가 합동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천주교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산내학살 희생자를 위한 위령기도를 올렸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각계의 위로와 연대의 손길이 이어졌다. 원불교 대전충남교구와 천주교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특별위령제를 올렸고, 대전작가회의는 회원들의 이를 모아 ‘국가공권력에 의한 민간인학살 추모 전국문인시화전’을 진행하기도 했다. 

다양한 추모공연들도 펼쳐졌다. Fcd 무용단 서윤신 씨는 위령제에 앞서 진혼무를 췄고, 마당극단 ‘좋다’도 추모극을 선보였다. 조병주 씨는 ‘서시’를 노래했고, 산내유족회 신순란 회원의 손녀 진은설 씨는 신순란 씨의 시에 곡을 붙인 ‘어머님의 눈물’을 부르며 추모의 마음을 보탰다. 

▲ 대전작가회의에서는 위령제에서 <국가공권력에 의한 민간인학살 추모 전국문인시화전>을 펼쳤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바리톤 조병주 씨가 ‘서시’를 부르며 추모의 마음을 보탰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산내유족회 신순란 회원의 손녀 진은설 씨가 할머니 신순란 씨의 손을 잡고 ‘어머님의 눈물’을 부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뼈들은 삭고 부서져/함께 뿌린 피처럼/뼈들도 뒤엉켜/작은 상자 안에 갇혀있네
뼈까지 찢어 놓은 골령골/갈래 갈래 흩어지는/피로 만든 흙이여/뼈들이여/묻어야할지 꺼내야할지... 

매년 위령제에서 참가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유족들의 시낭송도 어김없이 진행됐다. 신순란 씨는 ‘님 잠드신 곳’이란 제목의 시를 통해 골령골의 상처를 노래했다. 전숙자 씨도 ‘학살 그리고 육십구년 세월’이란 제목의 시를 통해 학살의 책임을 물었다.

▲ 산내유족회 전숙자(왼쪽), 신순란(오른쪽) 회원은 올해도 어김없이 추도시를 써서 낭송을 했다. 이들이 시를 낭송하는 동안 곳곳에서 참가자들이 눈물을 적시는 모습이 보였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마당극단 ‘좋다’는 산내 학살 사건의 내용을 담아 추모극을 펼쳤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허태정 대전광역시장은 추도사를 보내와 “최근에 들어서야 집단희생의 진상이 일부 밝혀지고 있으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사안의 중요성을 인식해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이는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대전산내사건유족회원 여러분들의 헌신적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허 시장은 또한 “비록 시간과 노력이 들더라도 모든 진상이 철저히 밝혀져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가 회복되길 진심으로 바란다”며, “대전시도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허 시장의 추도사는 박영순 정무부시장이 대독했다.

▲ 위령제에 참석해 추도사를 하고 있는 황인호 대전광역시 동구청장. 황 청장은 내년까지 일부 유해 매장지에 대한 수용과 유해 발굴을 약속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황인호 대전광역시 동구청장도 추도사에 나서 “올해 7월부터 내년까지 우선 유해가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곳 11필지를 선정해 43억원을 들여 수용할 계획”이라며, “내년 이맘때는 수용된 지역에서 유해발굴비를 마련해서 유해 발굴과 더불어서 70주기에는 유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을 써드릴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대식 대전민중의힘 상임대표는 “우리는 학살되셨던 민중의 아들딸이며 한 형제이고 우리 자신이 민중”이라며,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피눈물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사회 대개혁의 전진을 멈출 수 없다”고 밝혔다.

이날 위령제에는 대전뿐 아니라 제주도와 여수, 순천 등 각지에서 올라온 유족들과 대전시민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 박영순 대전광역시 정무부시장이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헌화를 마친 후 한 유족이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산내 학살 사건은 한국전쟁 당시 군인과 경찰에 의해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을 비롯해 민간인 7천여 명이 불법적으로 학살당한 사건으로, 당시 대전형무소에는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 관계자를 비롯해 정치범 2천명 정도가 수감되어 있었다. 학살은 1950년 6월 28일 시작되어 20여 일간 집중되었고, 9.28 수복 이후에도 부역혐의자라는 이유로 수많은 민간인들이 산내 골령골로 끌려와 학살당했다.

한편, 그간 유족들이 조속한 처리를 원했던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 재개를 위한 법안 개정안’이 지난 2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하지만, 26일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측 의원들이 이 법안에 대해 안건조정을 신청해 표결이 무산됐다. 이에 따라 법안은 안건조정위회로 회부되어 최장 90일간 긴 조정 기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인 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도의 취지는 깡그리 무시한 자한당의 편법 활용”이라며 “국회 논의조차 하지 못하도록 막아 나선 자들이 의결을 막기 위한 몽니 도구로 마련된 제도가 아니다”며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향해 규탄의 말을 남겼다.

▲ 위령제가 끝난 후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심은 ‘역사 정의의 나무’의 표지석 제막이 진행되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심은 ‘역사 정의의 나무’의 양쪽으로 유족들이 꽃을 심으며 진실의 꽃이 피기를 기원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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