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은이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이 19일 '북한의 도시:변화와 교류' 국제학술회의에서 북한 돈주의 역할이 개인주택이나 아파트 개발을 넘어 직접 내수 겨냥 품목을 생산하는 쪽으로 방향을 이동하고 있다고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북한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이른바 '돈주'들이 개인주택이나 아파트 개발을 넘어 가동률이 저조한 공장기업소를 빌려 직접 내수를 겨냥한 품목을 생산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이 결과 내수 진작과 내화 유통이 활성화되고 지역별 산업분업화가 촉진되어, 특정사업의 집중이 이루어지고 있는 평성, 순천 등 도시의 외연이 넓어지는가 하면 돈주의 영향력 아래 공장기업소의 당 비서보다는 지배인의 권한이, 중앙보다는 지방의 권한이 확대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돈주들의 제조업 개입은 국영기업들의 통·폐합 등 구조조정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같은 현상은 대북제재로 인해 북한 경제가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는 일반적 평가와도 다른 흐름이고 북한 경제와 시장의 변화에 대한 색다른 시각이어서 주목된다.

정은이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은 19일 서울시 종로 삼청동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정산홀에서 열린 '북한의 도시:변화와 교류' 주제의 국제학술회의에서 '도시개발과 북한의 부동산 시장:공장 기업소를 중심으로' 주제의 발표를 통해 최근 북한내에서 국내 제조품 점유율이 높아진데 착안해 돈주의 역할 변화와 도시 개발 및 부동산 시장 변화 추이 등을 분석, 발표했다.

정은이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지금 북한에서는 국내 제조품 점유율이 높아져서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 등을 통해 식료품 생산 품목이 늘어나고 품목마다 종류도 많아졌다. 

평양 주변에 500여개에 달하는 종합시장, 공설시장 외에도 김정은 시대 이후에는 광복상업거리중심, 대성백화점 등 유통망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고려카드와 나래카드 등 외화카드 외에도 전성카드 등 내화를 결재수단으로 사용하는 상점도 늘어나고 있다.

정 부연구위원은 이를 토대로 "내수를 겨냥해서 새로운 가치를 생산·창출하는 경제주체가 탄생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생산에 직접 참여하는 이 주체가 바로 '돈의 주인' 즉 '돈주'라고 했다.

최근 북한 국내 생산의 주체로 부상하고 있는 '돈주'의 기원에 대해서는 1950년대 말 재일 조선인 북송교포들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일본의 친척로부터 받은 외화와 일제 상품을 북한 국내 시장에서 쌀 등 생필품과 가치있게 교환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더불어 중국 연고자와 화교 등이 금 장사, 돈(외화) 장사, 생필품 등 보따리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했으며,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 무역규제가 완화되는 분위기를 틈타 일본 중고자동차와 전자제품 등 상품을 대량 공급하는 무역업자가 나타나면서 '돈주'의 구성도 다채로워졌다.

이후 2000년대 북한 당국의 종합시장 정책 흐름속에 상품을 독점판매하는 '왕 도매상'인 물주가 대규모 자금 축적과정에 모습을 드러내고 화폐교환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2010년 이후에는 관료들이 여기에 가세해 부동산 시장, 석유장사, 물류·운송업, 석탄·수산 등 이권사업에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돈주의 규모도 커지고 성격도 달라졌다.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가 도입된 2012년 이후에는 신발과 의복 등 봉제사업과 시멘트, 철강 등 건설자재 생산 등 공장운영 일선에 직접 나선 제조 기업가들이 경제활동 전면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즉, '돈주'는 1959년 재일조선인 귀국자와 1980년대 중국 화교 및 중국 연고자, 1990년대 무역업자, 2000년대 물주, 2010년 관료, 2013년 기업가(제조업자)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

▲ 북한의 돈주들이 더 높은 이윤을 찾아 공장기업소를 빌려 시장수요가 있는 제품의 직접 생산에 나서면서 내수 진작과 내화 유통이 활성화되는 등의 파급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들이 최근 제조업에 직접 뛰어 들고 있는 것은 이미 북한의 소비시장에서 단순 판매를 통해서는 아무리 많아도 이윤이 30%를 넘지 못하는데 비해 값싼 노동력과 토지 및 건물 임대료 덕분에 뭔가 새로 만들어서 판매를 하면 최소 2배에서 최대 5배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자금력으로 독점적인 진입장벽을 구축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한 돈주의 경우, 지난 2013년 평안남도 강서구의 강철제조회사에 40만 달러 규모로 철강 생산를 위한 초기 설비투자를 한 뒤  약 2년만에 투자금을 회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소개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 공장가동률이 30% 이하로 저하된 공장이 많았는데, 이들 돈주들은 아직 가동률이 올라오지 않은 공장, 그중에서도 전기 이용과 노동력 활용이 용이한 국가 소유 공장기업소를 선호한다고 한다.

이들 이들 시설 전체를 기관 등으로부터 구입해 명의를 변경하거나 부분적으로 렌트한 후 전문경영인을 고용하는 방법으로 생산에 개입하는데, 이 과정에 분쟁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예를들어 특급기업소인 강서구의 뜨락또르(트랙터)공장에는 100명 이상의 돈주가 들어가서는 신발공장, 국수제조공장 등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같은 현상은 김정은 시대에 접어든 2012년 이후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 실시를 전후한 시기에 활발하게 나타났다.

이 시기에 공장지배인은 생산품목과 수량, 판로, 처분권 등 재량권도 확대되었지만 동시에 배급이 무너진 상황에서 종업원들에 대한 배분 등 책임도 높아졌다.

돈주들이 진출한 공장기업소에서 주로 생산하는 제품은 시장수요가 있는 옷, 신발, 약품, 식품, 화장품 등 소비품과 시멘트, 건자재 등이다.

의복은 평성, 신발은 신의주·순천·강선·원산, 화장품은 평양·신의주, 식품은 평양, 약품은 순천 등으로 집중되어 주민들에게도 이미 일반화된 인식으로 자리잡았을 정도로 특정산업의 지역 집중화가 특징이다.

이로 인해 소모성이 강한 비 내구재 중심의 일상 소비재 생산이 늘어나는데, 해당 지역 수요에 맞는 제품을 제조하는 등 지역화가 진행되어 해당지역의 건물과 토지, 노동력을 활용하면서 도시 외곽의 공장 및 입지 활용도 늘어나게 된다.

특히 이같은 현상이 접경지역이 아니라 내륙지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돈주들의 투자로 인해 나타난 이같은 결과는 당 비서에 대한 기업소 지배인의 권한 강화, 중앙에 대한 지방의 권한 강화로 이어지고 있고 국영기업의 통폐합을 압박하고 있다.

정 부연구위원은 대학구내까지 선박 및 부품관련 산업단지가 들어서고 있는 함경북도 청진, 도시 외곽으로 주유소와 마트, 주차장, 세창장이 확대되고 있는 평안북도 순천, 올해 2월 선광, 제련정, 제강 공정을 통합한 국영 황해제철소 등의 사진을 이런 상황의 실증으로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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