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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집단주의에서 길을 찾다<'북맹탈출 평양이야기' 독후감 수상작⑤> 정영현 금속노조 경남지부 조합원
정영현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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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21  09: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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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지난 15일 '알아야 통일이다' 『북맹탈출 평양이야기』 독후감 공모전 시상식을 진행했다. 

지난 3월부터 5월 31일까지 3개월간 민주노총 조합원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김이경 작가의 『북맹탈출 평양이야기』에 대한 독후감 공모전을 진행한 결과에 대한 시상이었다.

공모전 수상작으로는 대상에 '그것이 알고 싶다-최홍락(공공운수노조 서울교통공사) 조합원', '나는 대다수에 속하는 심각한 '북맹'이었다-김나림 학생', 우수상에 '북의 집단주의에서 길을 찾다-정영현(금속노조 경남지부) 조합원', '북한은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김이정 학생', 장려상에는 '배움-유현숙(세종충남지역) 조합원'과 '남북 교류, 개인적인 것부터 시작-전형인 학생', '북맹탈출 평양이야기를 읽고-윤지영 학생'이 각각 선정되었다.

수상작들을 <통일뉴스>가 연재한다.

연재 순서는 아래와 같다. 
  
'남북 교류, 개인적인 것부터 시작'-전형인 학생(장려상)
'북맹탈출 평양이야기를 읽고'-윤지영 학생(장려상)
'배움'-유현숙 세종충남지역 조합원(장려상)
'북한은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김이정 학생(우수상)
'북의 집단주의에서 길을 찾다'-정영현 금속노조 경남지부 조합원(우수상)
'나는 대다수에 속하는 심각한 '북맹'이었다'-김나림 학생(대상)
'그것이 알고 싶다'-최홍락 공공운수노조 서울교통공사 조합원(대상) 
/ 편집자 주

 

정영현 (금속노조 경남지부 조합원)

 

북의 집단주의에서 길을 찾다.

 

묘향산 버섯캐는 아저씨를 보며 배달 노동자들을 떠올리다

   
▲ 정영현 금속노조 경남지부 조합원 [사진제공-정영현]

80년도에 태어난 나는 북한에 대해 불타는 적개심도, 그렇다고 무한한 애정도 있지 않았다. 자연스레 선배들이 이야기하는 “예전에 뿔달린 사람인 줄 알았는데 보니까 아니더라”라는 말은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북한 사람도 우리와 같은 사람인데 뿔이 웬말?”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북맹탈출 평양이야기’를 접할 때만 하더라도 ‘사람사는 세상’이 뭐가 다르겠냐라는 자만심 (?)이 있었다. 그곳도 사람이 살기에 아름다운 미담사례도 있을거고, 그곳도 사람이 살기 때문에 흉악한 범죄도 있을거고, ‘먹고 살기위해’매일 매일 비명을 지르는 몸뚱이를 안고 살 아가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북맹’이라기보다 ‘뭐가 다르겠냐’라는 생각으로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문제는 ‘뿔 여전히 달려있는 것 같았다. 북한이 아니라 우리에게 달려 있었다’. 

반세기가 넘게 갈라져 있는 동안 우리는 그들과 달라지고 있었다. 책을 통해 본 달라진 것을 느낀 것은 남한 사회는 개인의 발전을 위해 경쟁하고, 또 경쟁에 놓인 이들을 뛰어 넘어야 개인이 잘살 수 있는 사회라면 북한 사회는 집단의 경쟁을 통해 궁극적으로 집단의 발전을 가져오고, 그 발전의 혜택을 각 개인이 보는 사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책 속에 소개되었던 ‘묘향산 돌버섯 따는 아저씨 이야기’가 나의 느낌을 더욱 확고히 했다. 버섯따는 아저씨는 ‘조선요리 100선’을 준비하는 다큐에서 돌버섯 캐는 모습을 촬영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 이유는 ‘시청자들이 자신이 때로는 목숨을 걸고 돌버섯을 캐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파 먹지 못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는 ‘달인’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떡볶이 하나를 만들더라도 새벽부터 준비작업을 거쳐 수 시간 혹은 수 일간의 노력을 통해 제공되는 음식을 ‘달인의 음식’이라고 극찬하며 줄을 서서 먹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극한직업’을 통해서도 노동자들의 노고가 얼마나 많이 들어갔는지에 따라 그 식품이나 물품에 대한 믿음을 높이기도 한다.
 
그런데 북의 버섯캐는 아저씨는 ‘자기가 힘든 것을 보면 사람들이 마음 아파 먹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 너무도 당연하게 노동자들의 수고를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플랫폼노동자 중 하나인 배달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은 비가오나 눈이오나 빠른 시간에 음식을 배달하기 위해 오토바이에 몸을 맡긴다. 새까만 아스팔트 위를 종횡무진 다니고, 음식을 배달하지만 막상 음식을 배달받는 우리들은 ‘배달비 인상’에 격분하고, 때로는 ‘늦은 배달시간’에 격분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오토바이 헬멧을 벗어놓고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할 때 공감을 하면서 혹은 하는 척을 하면서 우리의 일상을 이어간다. 

반세기가 넘는 분단의 시간동안 지금은 누구 머리에 뿔이 나 있는 것일까? 자신의 고통을 보고 사람들이 못 먹는 것을 걱정하는 아저씨와 이것이 아저씨뿐만이 아니라 다른 북한의 주민들도 그렇게 이해할 것이라고 촬영을 못하는 것을 전달하는 안내원.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더 들어가는 음식과 방송에 열광하며, 이를 즐기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남한사회의 모습. 뿔은 북한이 아니라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북의 집단주의에서 복수노조 시대를 점검하다 

5년 전쯤 어느 노동조합 간부가 투쟁을 왜 하냐고 질문을 했고, 아무도 답변을 하지 않자 이 간부는 ‘개인이 행복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라 했다. 당시에는 이 답변이 상당히 맞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임금을 올리고 우리의 복지를 지켜내고, 그리고 이 사회에 우리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 모두 우리 개인의 행복을 위해 싸우는 것이기에 ‘힘차게 싸워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북한의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도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맞았다. 하지만 그 목적이 개인의 행복이 아니라 집단의 발전에 있었다. 그리고 집단을 발전시키며 개인의 발전도 함께 담보하며 것이라 했다. 

어찌보면 같은 말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결정의 순간’에서는 다르게 작용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되었다. 

요즘은 정권과 자본의 입맛에 맞는 복수노조 시대가 되어 신규사업장이 생겨나도 곧이어 복수노조가 생긴다. 복수노조가 생기면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사귀처럼 수많은 이들이 어용이라 부를 수 있는 노동조합으로 넘어간다. 넘어가는 노동자들을 보면 ‘나 혼자 일하고 있어서...’, ‘애가 아프잖아...’갖가지 잡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다들 ‘미안하다’라고 한다. 

이것이었다.

개인의 행복을 위해 싸우는 것은 개인의 행복이 위협받기 시작하면 선택을 해야 한다. ‘끝까지 투쟁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쟁취할 것이냐’, ‘순응하고 조용히 살 것이냐’. 이 두가지 길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신규사업장이나 노동조합이 굳건이 서 있지 못하는 사 업장에서는 집단을 통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다보다 각자도생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잘되기보다 각자도생을 배워왔다. 학교에서는 끊임없이 싸우라 한다. 사회로 진출해도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대중매체는 하루종일 비싼 상품을 내보이며 마치 이를 구입하지 못하면 사회에서 도태되는 것처럼 매도한다. 기본권인 주거권리마저 ‘브랜드아파트’가 아니면 마치 사회적 낙오자인 것인양 광고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남한의 사람들이 개인의 행복을 찾아가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힘 있는 자 아래서 조용히 사는 것이 가장 빠르고, 원만한 길이다.

선택의 갈림길은 북에서도 있었다.

책에서도 나와 있듯이 1990년대 이후 동구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북한 경제가 엄청난 어려움에 직면하면서 북에서도 먹고사는 문제가 터져나왔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3년간 연이은 가뭄과 홍수로 온 나라는 물에 잠기고 광산도 물에 잠겼다. 당시 미국은 개혁개방을 하지 않으면 무너뜨리겠다는 노골적인 고립 압살과 동시에 핵전쟁 음모를 벌였다. 북은 개혁개방 과 미국에 순종하기보다 ‘개혁개방을 하라는 것은 자주와 사회주의를 포기하라는 것이며 국 제자본에게 경제를 통째로 넘겨 결국 빵도 변변히 먹을 수 없게 된다는 것과 다를바 없다’고 판단했다. 북의 사람들이 선택한 것이 ‘사회주의’이고, ‘선군의 길’이었다.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도 다 같은 사람인데, 왜 이렇게 다르게 선택했을까. 바로 우리에게 는 없는 집단주의가 빛을 낸 결정이었다. 우리는 개인의 행복이 우선되었다면 북은 집단을 우선하고 집단을 통해 개인의 행복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단의 행복은 사회주의에 있다고 본 것이 북한 사람들의 판단이었다.

북의 고난의 행군이후 20여년이 흘렀다. 북의 선택이 맞다고 확신하지는 못하겠지만(북을 한번도 가보지 않았고 북한 사람과 이야기조차 못해봤기에...) 최소한 이 책을 통해서 본 북 한, 그리고 최근 언론매체를 통해서 접한 북한을 보면 이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구나라는 것을 느껴본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여전히 노동자들의 해고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자본의 탄압에 노동자들은 신음하고 있다. 개인의 행복을 쫓아가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개인들에게 행복하냐고 물어보면 10에 8은 행복하지 않다고 대답한다.

어렴풋이 느껴진다. 개인의 행복을 쫓아 세상을 바꿀 것인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개인의 행복을 실현할 것인가. 답은 나왔다.

나는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 더 생각해야 겠다. 내가 몸담고 있는 집단이 발전할 수 있는 사업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집단의 발전을 위한 사업이 전체 우리 동지들에게 어떤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하고 결정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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