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경 / 농부

 

살구나무를 찾아서 살구나무 동산을 만들고 있다. 올해는 살구나무 마을을 만들려고 한다. 올해 우리 마을에는 많은 살구나무들이 새로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인데, 나는 그것이 북측 회령 백살구나무이기를 바래서, 그것을 구하려 안타깝게 뛰어다니고 있다.
사라진 살구나무를 찾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살구나무를 잃어버렸듯이 아주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무엇을 위하여 그 많은 것들을 놓아버린 것일까? 여기 연재할 글들은 살구나무처럼 우리가 잃은 것들, 잊은 것들, 두고 온 것들에 대한 진지한 호명이다. / 필자

 

▲ 6월의 살구밭. [사진제공-주미경]

오동나무 심는 뜻은

6월도 허리가 꺾이니 곧 하지다. 태양의 위세는 막바지로 접어들지만 지구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달아오를 참이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오디가 익어 담장아래 떨어지고 있다. 입안을 온통 까맣게 물들이며 훑어먹을 아이들도 없고, 돈이 되어주는 열매도 아닌지라 그예 속절없이 떨어져 땅바닥만 까맣게 물들이고 있다.

30~40년 전만 해도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 사람들의 생계를 이어준 것이 누에치기와 담배농사였다 하니, 누에와 담배는 사라졌어도 누에먹이로 돌보던 뽕나무는 남아 이 고장에 흔한 것이 뽕나무다. 그래서 밑동 굵은 오래된 뽕나무를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일부러 심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새로 싹을 틔우고 돌보지 않아도 쑥쑥 자라난다.

예로부터 우리 사람들은 마을을 이루면 마을숲을 만들고 집을 정하면 주변에 나무를 심었다. 당산나무로 대표되는 마을숲은 마을의 전통과 문화가 생산되는 공간이자 마을사람들의 기억이 누적되는 장소이다. 그에 비하여 집 주변에 심는 나무들은 사람들의 생활적이며 실용적인 요구들을 반영한다.

이를테면, 옛사람들은 아들을 낳으면 소나무나 잣나무를 심고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었다. 오동나무는 딸과 함께 자라 출가할 때 베어져 농짝이나 반닫이로 짜여졌고, 소나무나 잣나무는 아들과 함께 늙어 그의 관으로 짜여졌다. 한 사람과 인연맺은 나무는 그 사람의 출생과 성장을 함께 하고 결국 그의 운명과 함께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이것은 옛사람들에게 있어 나무를 심은 일이 한 아이의 출생을 축하하는 일임과 동시에 그 집에서의 인연과 삶의 마감을 준비하는 일이기도 했음을 의미한다. 시작과 함께 마감을 내다보는 옛사람들의 사고와 삶의 방식에서는, 내일은 없다는 듯이 오늘을 누리며 사는 현대 사람들의 사고체계에는 도저히 잡히지 않는 긴 호흡이 느껴진다. 그것은 또한 한 장소에 뿌리내리고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알게 한다. 거기는, 평생을 떠나기 위해 임시로 머무르는 장소를 사는 현대 사람들의 생활방식에서는 도저히 감지되지 않는 긴 이야기가 깃든 장소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농사지을 땅을 찾아 헤매 다닐 때에 폐허만 남은 어느 마을에서 보았던 커다란 오동나무들이 생각난다. 산자락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그대로 고삭은 집들은 풀덤불 속에 묻혔는데 군데군데 오동나무들만이 두 아름이 넘는 거목으로 자라 그 커다란 잎들로 햇빛 한점 들이지 않는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다 떠나고 그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오동나무 농짝이 아니라 가구점에 진열된 여덟 자 장을 지고 시집을 갔을까? 서까래가 내려앉아 고삭은 지붕에 드리워진 오동나무 그늘이 거대한 슬픔처럼 느껴진 것은 버려진 마을과 주인 잃은 오동나무의 운명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상념을 불러온 때문이리라.

풍수지리적 비보로, 토착신앙의 모체로, 자연재해의 방패로, 과학과 사상과 문화의 절묘한 조화를 내포하며 조성되었던 마을숲과, 수백 년 마을의 역사를 증명하며 동제, 당산제의 주인공으로 마을을 지켜온 당산나무들은, 이미 일제식민지 시기에 수많이 훼손되고 새마을 운동의 광풍이 거의 모조리 쓸어갔다. 사람 떠난 자리에 홀로 남은 저 나무들이 아직도 푸르른 것은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림인가.

▲ 봄에 심은 대추나무. [사진제공-주미경]

옛사람들의 나무심기는?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은 「한정록」에서, “거처할 곳이 정해졌으면 모름지기 그 근방의 야산을 호미로 두루 파보아서 그 토질에 따라 재목으로 쓸 나무와 과일나무를 심고 가꾸어서 재물이나 소용에 닿는 자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썼다. 옛사람들은 그렇게 집 주변에 나무를 심어 기둥과 서까래와 가구의 목재를 얻었고, 제사에 쓸 과일을 장만했으며, 치료를 위한 약재를 갈무리하고, 아이들의 궁금한 입을 달래기도 했다.

주택에서 왼편에 흐르는 물이 없고, 오른 편에는 기다란 길이 없고, 앞쪽에는 연못이 없고 뒤쪽에는 구릉이 없을 경우에는, 동쪽에는 복숭아나무와 버드나무를 심고, 남쪽에는 매화나무와 대추나무를 심고, 서쪽에는 치자나무와 느릅나무를 심고, 북쪽에는 사과나무와 살구나무를 심는다.

서유구가 기록한 「임원경제지」의 「상택지」에 쓰여있는 말이다. 어떤 학자가 이 글을 풀이하기를, “매화나무와 대추나무는 양광을 좋아하기 때문에 남쪽에 심어야 하고, 살구나무와 사과나무는 서늘한 기운을 좋아하기 때문에 북쪽이 적당하고, 복숭아나무와 버드나무는 아침 서늘할 때 받는 햇빛을 좋아하고 또 나무줄기가 가늘고 엉성하여 그늘이 많지 않으므로 동쪽이 적합하다. 이와는 정반대로 치자나무와 느릅나무는 그늘이 많이 져서 서쪽으로부터 비치는 강한 광선을 막아주기 때문에 서쪽에 심는 것이 적당하다.”고 하였다.

어찌 그뿐이랴. 서유구의 짧은 글은 택지의 입지조건과 나무의 종류와 심는 방위를 다 담고있는데, 이들 속에는 틀림없이 필연적인 용도와 상호 보완하고 가라앉히는 유기적 상관관계가 내포되어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옛사람들은 집을 가꾸고 나무심는 일에도 정연한 이유와 논리를 갖고 있었으니, 그것은 이 땅의 생태와 자연자원의 쓰임새에 대한 깊이 있는 앎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누천년을 이 땅에서 삶을 영위하며 축적하고 전해온 그들의 방대한 지식과 지혜는 계승되지 않았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유구한 세월 간직하고 생활을 영위하는데 쓰여졌던 정연한 이유와 논리들은 찾을 길이 없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 봄에 심은 황벽나무. [사진제공-주미경]

요새 사람들의 나무심기는?

시골 사람들은 매해 봄마다 나무를 몇 그루씩 심는다. 특별한 나무를 어렵사리 구하여 심기도 하고, 여기저기 점찍어 놓고 벼르던 나무를 캐다 심기도 하지만, 대개는 묘목시장이나 장날 전을 펼친 묘목상에서 구매하여 심는다.

사람들은 나무를 꽃을 보려고도 심고, 열매를 먹자고도 심고, 울타리가 되라고도 심는다. 옛사람들의 깊이 있는 지식과 지혜는 전수받지 못했어도, 이 집과 저 집, 이 밭과 저 밭의 경계표시용으로 모서리에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오랜 관행을 이어받은 것이겠는데, 시대의 변천에 따라 나무의 용도도 심는 나무의 종류도 뜬금없는 변화를 거듭해왔다.

최근에 사람들은 대개 유행을 따라가며 나무를 심는다. 나무에도 유행이 있냐고? TV와 신문, 인터넷의 건강관련 요리관련 프로그램들이 일제히 주요재료로 다루고, 요리 전문가, 영양전문가들이 이걸 먹으면 만병이 사라지고 젊어지고 아름다워진다고 이구동성으로 떠들어대고, 특집다큐가 등장하고, 대형 묘목상의 매장에 묘목이 무더기로 쌓여 고객을 기다리면, 그것이 바로 유행하는 나무다. 유행이란 기획되는 것이다.

꽃을 볼 뿐 별로 먹거리로 취하지 않던 매실나무들이 매실효소의 선전에 힘입어 전국을 휩쓸고, 블루베리가 흙까지 수입해가며 농장과 뜰을 점령하더니, 얼마 되지도 않아 더 좋다는 아로니아로 갈아타고, 올해부턴 체리나무가 그 자리에 들어서고 있나 보다. 블루베리 아로니아를 빠짐없이 심었던 마을집 마당들에 체리나무가 둘씩 셋씩 자리잡기 시작했다. 봄에 가보았던 옥천 나무시장 묘목상들마다 암수한몸이라는 일본산 일세다래가 눈에 띄게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보아 그것도 곧 대열에 합류하지 않겠나 싶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그 유행하는 나무들이 대부분 일본이나 유럽 등 서구에서 육종교배된 임자 있는 물건들이라는 점이다. 임자 있는 물건이라는 것은 로열티를 지불해야하는 물건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면 제주에서 재배되는 감귤의 약 94%가 일본품종이다. 블루베리 아로니아 체리는 대부분 유럽, 미국, 호주산 품종이다. 그러니 유행하는 나무란 대체로 외국기업들을 돈벌게 해주는 나무들이다. 운때가 맞으면 재배농가들도 돈을 번다. 하지만 농가들이 버는 돈이 얼마나 될까? 많이 쳐주어야 0.1%나 될까?

지난 10년간 우리가 해외에 지불한 종자 관련 로열티만 1,500억원. 지금까지는 장미와 파프리카 등 일부 품종만 로열티를 냈지만, 2012년부터는 모든 품종에 대해 로열티를 내야 한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지난 2002년 국제식물 신품종 보호동맹(UPOV), 유포프에 가입했는데 10년 유예기간이 올해로 끝나서 내년부터는 감귤이나 딸기, 체리, 블루베리 등 그 동안 로열티를 내지 않던 작물들도 로열티를 물어야 한다.

7년 전인 2011년의 KBS뉴스 내용이다. 국내 종자회사들이 외국회사에 모조리 인수합병되고 종자전쟁이라는 말이 회자된 지도 꽤 시간이 흘렀지만 나무묘목까지 그에 해당된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2012년부터 7년간 우리가 지불한 로열티는 얼마나 될까? 그 액수가 막대하리라는 것과 그것이 우리 호주머니에서 나갔다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꼭 숫자가 필요한 건 아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봄에 심은 마가목. [사진제공-주미경]

사라진 것은?

종자에다 나무까지, 나는 이런 일들이 이 땅에서 이토록 쉽게 아무 저항없이 일어난 바탕에는 민족의식과 민족주의의 실종이 자리잡고있다고 여긴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대다수 사람들은 위기의식을 가졌고, 함께 살 길을 모색했으며, 어떤 지식인도 우리 것에 대한 애착을 버리라고 쉽게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가 공전의 베스트셀러로 사람들의 머리 속을 말끔히 세척하고,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민족’이라는 이름을 떼어내는 것으로 정체성을 세탁하고, 박노자라는 서양학자가 진보라는 간판아래 우리의 민족의식과 민족주의를 국수주의 쇼비니즘으로 조롱하고 공격하기를 개시한 이래, 그에 편승한 거의 모든 학자 지식인 언론인들의 종횡무진한 활약에 의해 민족의식과 민족주의의 거대한 무덤이 만들어졌다. 물론 그에게 아낌없이 지면을 제공한 신문과 잡지의 편집방침이 크게 공헌했음을 절대 빠뜨려서는 안되겠다.

이들은 민족의식과 민족주의를 낙후한 전체주의의 온상으로 타매하면서 가끔씩은 민족주의가 밥먹여주냐고 묻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말하고 싶어진다. 나는 민족주의가 진정으로 밥먹여주는 것이라 생각하니까.

▲ 인도의 님나무. [사진제공-주미경]

인도, 그리고 님나무

인도에 ‘님나무’라는 나무가 있다. 인도인들에게 님나무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약제와 생물농약으로 이용되어온 유용한 나무다. 전통적인 아유르베다 의학에 관한 기록에는 님나무를 사용하여 여러 가지 질병과 증상들을 치료하는 방법이 약 100여 가지가 서술되어 있고, 이 방법은 거의 전부가 지금까지 사용되어 오고 있다한다. 님나무는 인도인들에게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신성한 나무로 불리며, 그들은 어디에나 님나무를 심고 가꾸고 사용하면서 님나무에 관한 지식을 계승 발전시켜왔다.

사건은 1985년 이래로 미국과 일본기업들이 님나무에서 추출한 천연화합물 용액과 추출방법에 대해 12개가 넘는 미국특허를 획득하면서 시작된다. 4개의 특허를 가진 미국 그레이스사는 인도에 공장을 세우고 님나무를 원료로 한 제품을 생산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특허보유를 근거로 님나무의 주요성분은 미국기업의 사적 소유물이 되어 그토록 오랫동안 이어져온 인도인들의 님나무 사용이 불법으로 간주될 판이었다.

인도농민들과 관련단체들은 그것을 구경만 하고있지 않았다. 그들은 1995년 유럽특허청에 이의신청을 제기해 약 10년간의 오랜 법적 분쟁을 거쳐 2005년 마침내 특허를 무효화시키는 승리를 거두었다. 이것은 생물자원과 관련된 국제분쟁에서 반드시 거론되는 매우 유명한 사건이다.

님나무 사건이 세계적으로 매우 커다란 의의를 갖는 사건이었던 것은, 그것이 서구와 비서구의 대결, 제3세계 민중과 패권국가가 뒤를 떠받치는 거대다국적기업 간의 대결, 저개발국가의 토착지식에 대한 권리와 WTO체제의 지적재산권 간의 대결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이 대결에서의 승리는 비단 인도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를 통하여, 자기들의 자연자원에 기대어 살아온 모든 민중들의 토착지식과 가치에 대한 권리를 유지 보존할 근거를 제공하였다.

인도, 그리고 반다나 시바

이 대결에서 다국적기업에 대항하는 탁월한 사상적 기초와 과학적 논리를 제공한 사람들 중에 ‘반다나 시바’가 있다. 그는 WTO체제의 지적재산권협약과 다국적기업들의 제3세계 생물자원에 대한 사유화 시도를 ‘생물해적질’이라 명명한다. 그는 ‘생명특허’가 허용되는 것을 ‘콜럼버스의 귀환’이라 말하며, 콜럼버스의 시대와 다름없는 전 세계에 대한 식민화계획이 특허와 지적재산권을 통해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그 때로부터 500년이 흘렀으나 다른 사람의 재산을 해적질하여 자신의 재산으로 만드는 그들의 행위는 형태를 달리하며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그 대상은 영토와 노동력에서 식물과 동물 심지어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들의 세포와 성분, 유전자에 대한 ‘식민화’로 확장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예는 거대제약회사들이 독점적으로 생산판매하는 의약품들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식물로부터 분리되어 현대의학에 널리 쓰이고있는 120종의 화합물 가운데 75%는 제3세계 토착지식체계 내에서 이미 그 효용이 알려진 것들이라 한다. 12종 미만만이 간단한 화학적 조작에 의해 합성되었을 뿐, 나머지는 식물로부터 직접 추출하여 정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토착지식을 이용하면 식물의 의학적 용도를 밝혀내는 능력이 400% 이상 향상된다는 보고도 있다고 한다.

▲ 반다나 시바와 그의 책. [사진제공-주미경]

반다나 시바는 누구인가?

반다나 시바는 그들이 가진 생물자원탐사와 생명특허와 지적재산권이라는 첨단무기에 대항하여, 오랜 세월 민중들 속에서 계승되어온 생물자원에 대한 토착지식의 가치와 권리를 강력하게 옹호한다. 그는 학자이자 저술가이며, 직접 운동에 투신하는 조직가이며 활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스스로를 생태운동가이자 유기적지식인으로서, 산업경제에서의 ‘성장’이란 것이 사실은 자연과 사람들로부터의 ‘약탈’임을 폭로하는 일에 참여하며, 거대기업에 도전해 자신들의 운명을 바꾼 우리 시대의 가장 용기 있고 창조적인 사람들과 함께 일해온 사람이라 소개한다. 사람들은 그를 ‘생태주의자’라고도 하고 ‘페미니스트’라고도 하며 합쳐서 ‘에코페미니스트’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다르게 읽는다. 그는 본질적으로 진정한 민족주의자이며 반자본주의자이다. 그가 지키고자 하는 생태는 서구와 서구거대기업들의 약탈에 위험스럽게 노출되어있는 자기 땅의 생태이고, 그가 연민과 연대의식을 갖는 여성들은 그저 여성이 아니라 서구와 서구거대기업들의 침탈에 가장 가혹하게 수탈당하는 위치에 처해있는 자기 땅의 여성들이다.

그의 글 곳곳에서 묻어나는 자기 땅과 문화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 서구거대기업과 금융자본에 맞서 싸우는 민중들에 대한 굳건한 연대의식이 보여주는 것은, 그가 힌두문화라는 단일문화권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비슈누의 딸이라는 사실과, 200년에 가까운 영국제국주의 식민지배라는 암흑의 시대를 경험한 인도인의 후손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잘 알고 있으며, 자신들의 정의가 무엇인지, 자신의 이익과 자신의 운명이 어디에 속해있는가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내가 그를 민족주의자로 읽는 것은 별다른 게 아니다. 내가 그의 사상과 관점에 쉽게 공감하는 것은 식민지배라는 공통의 역사를 가진 땅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그와 나의 사고의 바탕에 민족의식라는 공통분모가 자리잡고 있음을 말해준다.

▲ 봄에 심은 들쭉나무. [사진제공-주미경]

민족주의를 이해하기 위하여

민족주의가 무엇인지 학문적으로는 다 알지 못한다. 하지만 민족의식이란 한 사회의 구성원인 사람의 정체성의 기초이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존재방식이다. 민족적 자부심과 긍지는 사회구성원들의 개별적 자존감이 자라나는 토양이다. 그래서 민족의식의 부정과 민족허무주의가 창궐하는 곳에서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것은 지독한 자가당착이 되고 마는 것이다.

민족주의를 전체주의로 읽는 것은 유럽에 지나치게 심취해 이 땅마저 유럽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민족주의를 차별주의로 대우하는 것은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혼동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그것은 모두 하나같이 사람의 존재방식에 대한 통찰의 부족에서 생겨난다. 그래서 민족을 멸시하고 민족주의를 백안시하는 견해에 사람들은 딱히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해도 마음 깊이에서부터 부자연스러움과 저항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물론 민족주의는 개인주의와는 인연이 없다. 민족주의는 집단주의이며 공동체주의이다. 농업을 근간으로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는 것을 미덕으로 하여 살아온 우리 문화권에 있어 민족주의가 몸에 잘 맞는 옷처럼 자연스러운 것은 그것이 집단주의, 공동체주의와 통해있기 때문이다.

민족의식이란 별스런 것이 아니다. 요란하고 어려운 설명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자기를 낳은 땅에 대한 가없는 애착이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겹겹이 멀어져가는 산능선과 고요히 흐르는 강,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모든 풍경들에 대한 유정한 마음이며, 한 하늘을 이고 살아가는 고단한 사람들에 대한 다함 없는 연민과 애정이다. 그래서 진정한 민족주의자는 민중의 친구가 될 수밖에 없으며,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지구를 점령한 시대에 민중의 친구인 민족주의자는 필연적으로 반자본주의의 대열에 서게 된다.

개인의 이익은 공동체에 귀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공동체의 이익은 구성원인 개개인에게 반드시 돌아간다. 님나무 사건은 개인의 이익을 다투는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님나무에 대한 토착지식을 가진 인도라는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다투는 사건이었다.

이익을 나눠 갖는 식으로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끝내 무효화시키고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지켜낸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지켜내면서 동시에 전세계 민중들의 이익까지 지켜낸 셈이다. 거기에는 물론 우리도 포함된다. 진정한 민족주의는 그렇게 국제주의와도 통하게 되는 것이다.

인도인들에게 있어 그런 힘을 만들어낸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인도인들이 자기들의 전통을 소중히 여기고 생활에서 계속 사용하며 지켜오지 않았더라면 그런 승리가 가능했을까? 우리에게는 인도의 님나무와 같은 나무가 없을까? 동의보감과 같은 전통의서들을 보면 너무나 많은 우리의 님나무들을 발견할 수 있다. 님나무 사건이 우리에게서 일어난다면 우리는 우리의 님나무를 지켜낼 수 있을까?  40년에 걸친 식민지배와 70년에 달하는 ‘경이로운 주권의 양도’가 지속되고있는 이 땅에서 우리의 님나무를 지켜낼 힘은 무엇으로부터 올까?

▲ 봄에 심은 호두나무와 풍산개 동무. [사진제공-주미경]

내가 심은 나무들

지난 봄에 마을사람들은 마당에 체리나무를 심고, 마을 곳곳에는 살구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나도 농장에 여러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가래나무와 황벽나무, 마가목과 호두나무, 그리고 대추나무와 들쭉나무들이다. 나는 우리 살구농장을 살구나무를 주인공으로 하여 여러 종류의 나무와 관목, 나물들이 어우러지는 복합농장으로 꾸리려고 하는데, 그 모든 것들을 토착 종들로 구해 들여 토착 종들의 터전으로 만들 참이다.

복합농장을 꾸리려 하는 것은 숲을 닮은 농장환경을 조성해 농약이나 화학비료 없이 온전한 살구들을 얻기 위함이고, 토착 종들을 구해 들이는 것은 사라져가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에서다.

가래나무 네 그루와 황벽나무 두 그루는 병충해 방제역할을 기대해 심었고, 대추나무 하나, 호두나무 둘은 열매를 먹어보자고 심었다. 네 그루 마가목은 약제로 쓰려고 심었고, 들쭉나무는 군데군데 작은 관목림을 조성해보려고 심었다.

가래나무 하나가 눈도 틔우지 못하고 죽었다. 들쭉나무 하나는 죽을 듯이 말라가다 얼마 전에야 가까스로 되살아났다. 나머지 나무들은 여린 가지를 내고 팔랑거리는 연초록 잎사귀들을 제법 달았다. 내가 꾸리려는 농장이 의도한 대로 제 모습을 갖추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내 시도가 성공할지도 알 수 없고, 성공인지 실패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때가 언제일지도 사실상 모른다.

조급해한다고 빨라지지 않고, 느긋하다 해서 늘어지지 않는 것이 농사다. ‘때가 있다’거나 ‘때를 알아야 한다’는 말의 진짜 의미를 농사에 입문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나 보다. 농사가 다 그렇지만 나무를 심는 일은 보다 더 긴 호흡을 필요로 한다. 태어난 아이를 위해 오동나무를 심듯이, 나무를 심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다.

다음 세대를 위해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은 좋은 느낌을 불러온다. 그러고 보면 인도의 님나무에서 우리 살구나무까지의 거리가 그리 먼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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