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다 (예수)


 오늘, 그 푸른 말똥이 그립다
 - 서정춘

 나는 아버지가 이끄는 말구루마 앞자리에 쭈굴쳐 타고 앉아 아버지만큼 젊은 조랑말이 말꼬리를 쳐들고 내놓은 푸른 말똥에서 확 풍겨오는 볏집 삭은 냄새가 좀 좋았다고 말똥이 춥고 배고픈 나에게는 따뜻한 풀빵 같았다고 1951년 하필이면 어린 나의 생일날 일기장에 침 발린 연필 글씨로 씌어 있었다

 오늘, 그 푸른 말똥이 그립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는 정미소에서 일하셨다. 왕겨 한 가마니를 지게에 지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셨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오실 때 확 풍겨오던 땀에 전 아버지의 무명 저고리 냄새, 그 냄새를 맡으며 뒤척이던 나는 안심하며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밤늦게 전동차를 타면 막노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탔다. 그들은 입으로 크게 숨을 쉬었다. 그때마다 술 냄새, 안주 냄새가 뒤섞인 악취가 진동했다. 나는 그들의 입을 피해 간신히 얕은 숨을 쉬며 버텼다.

 그러다 빈민단체서 일하게 되었다. 강제 철거에 맞서 밤이 새도록 회원들과 술을 마시며 토론을 했다. 많은 회원들이 막노동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입에서 전동차 안에서 맡았던 악취가 풍겨 나왔다. 하지만 이제는 악취가 아니었다. 향그러운 동지의 냄새였다.

 발 냄새에 대한 깊은 추억도 있다. 교직에 있을 때 전교조 전신인 교사협의회 활동을 할 때였다. 모 복지관에서 수련회를 한 적이 있다. 강당에서 깊은 밤까지 분임 토론을 하다 제대로 씻지도 않고 새벽에 잠이 들었다. 발 냄새들이 서로 뒤섞이며 허공으로 피어올랐다.

 동지의 냄새, 참 좋았다. 우리는 하나로 엮여졌다. 독립 운동가, 사회 운동가, 혁명가들이 엄혹한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 냄새가 아니었을까?  

 영화 ‘기생충’에서 부자 가족들은 반지하방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냄새를 기차게 맡는다. 그들은 사람 사는 냄새를 견디지 못한다. 부인이 어떤 냄새냐고 묻자 남자가 대답한다. ‘지하철 타는 사람들의 냄새가 있어...... .’   

 서정춘 시인은 ‘오늘, 그 푸른 말똥이 그립다’고 중얼거린다.

 ‘나는 아버지가 이끄는 말구루마 앞자리에 쭈굴쳐 타고 앉아 아버지만큼 젊은 조랑말이 말꼬리를 쳐들고 내놓은 푸른 말똥에서 확 풍겨오는 볏집 삭은 냄새가 좀 좋았다고 말똥이 춥고 배고픈 나에게는 따뜻한 풀빵 같았다고 1951년 하필이면 어린 나의 생일날 일기장에 침 발린 연필 글씨로 씌어 있었다//오늘, 그 푸른 말똥이 그립다’

 나도 어릴 적 길을 가다 맡았던 말똥 냄새들을 기억한다. 말똥은 우리 집에서 어쩌다 만들어 먹는 ‘개떡’ 같았다. 모양도 냄새도.

 모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말한다. ‘인도에 다녀왔는데요. 거기서 제대로 씻지도 않고 생활하다 보니 이가 생겼어요. 그런데 이가 아주 귀엽더라고요. 서로 잡아주며 신나게 놀았어요.’

 이 때 아이들은 짙은 서로의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냄새. 예수가 말한 천국의 냄새. 예수는 말했다. 천국은 사람이 죽은 다음에 가는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곳이라고. 파리와 모기가 득시글거리는 바로 이 곳이라고. 이 천국의 비밀을 발견하라고. 

 한 원로 문학 평론가가 오래 전에 말했다. ‘앞으로 인간은 두 종(種)으로 나눠질 거예요. 부자들은 자신들의 유전자를 조작해 다른 종으로 변신할 거예요. 머리도 엄청 좋고, 질병에도 걸리지 않는 몸을 만들어 낼 거예요.’

 그들은 온갖 악취를 다 제거할 것이다. 그들은 사람 사는 냄새를 다 없애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천국’은 어디일까?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