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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들의 피와 땀으로 지켜온, 조선학교에 가다<방문기> 재일 조선학교 차별반대 12차 방문단 (2019. 6. 5 ~ 9)
임정우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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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2  21: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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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우 / 전북지역 대학생겨레하나 회장

 

금강산가극단 공연 관람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금강산 가극단 첫 공연의 밤을 여기 도쿄에서 올리게 된 것을 단원들도 마음속으로부터 기쁘게 생각합니다. 조선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바라는 온 겨레의 간절한 염원에 금강산 가극단의 뜨거운 마음을 합쳐 오늘의 공연을 보내드리렵니다.” 

금강산 가극단의 공연을 시작하는 첫 마디의 설렘과 함께 우리의 방문 일정이 시작되었다. 우리 방문단은 도쿄에 있는 조선학교를 방문하고 고교무상화 적용을 위한 금요행동에 참가하기 위해 6월 5일부터 6월 9일까지 5일간 도쿄를 방문했다.  

   
▲ 도쿄에서 열린 2019 금강산 가극단 공연의 한 장면. [사진-임정우]

‘아리랑의 봄’으로 시작된 공연은 우리 민족의 춤 선과 악기의 선율들로 가득 찼다. 처음 들어보는 노래들이었지만 어깨가 절로 들썩였다. 2시간가량의 공연이 끝나니 마음이 후끈해지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마침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조선학교 무용 소조 학생들을 만났다. 도쿄조선고급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학생들은 자신들도 훗날 무용가가 되어 금강산 가극단에 오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며칠 후 학교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공연장을 나왔다. 

   
▲ 해방 후 조선학교의 초기 모습 (사진출처 :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조선학교(여기서 조선은 분단되기 전의 조선을 말한다, 우리학교라고도 부른다)는 1945년 해방 이후 재일동포들이 우리글, 우리말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든 국어강습소부터 시작되었다. 

해방 당시 일본에 있던 동포는 200만이었지만, 생활기반이 없거나 일본의 부당한 귀국정책 등으로 인해 약 60만으로 줄었다. 그렇게 남은 동포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빼앗긴 우리말과 역사를 자식들에게 되찾아 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학교가 일본 전국에 세워졌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조선학교를 폐쇄하고 학생들을 일본학교에 편입시키는 등 탄압을 계속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동포들이 다치거나 경찰에 끌려갔고 학생이 총에 맞아 죽는 사건도 발생했다. 하지만 동포들은 굴하지 않고 이에 대항하여 다시 조선학교를 세웠다.
 
일본정부는 조선학교를 교육과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일본학생들이 사용하는 정기통학권을 살 수도, 일본 공식 체육대회에 출전할 수도 없었다. 저고리를 입은 학생들을 향한 습격사건까지 일어나기도 하였다. 

현재까지도 일본 우익집단들은 조선학교의 운영을 방해하고 있으며 아베 정부 또한 고교무상화(일본 모든 고등학교의 수업료 면제/지원제도) 정책에서 오직 우리학교만을 배제하면서 차별과 억압을 계속하고 있다.  

해방 직후에는 조선학교가 전국적으로 500여 개소가 세워졌지만 4.24 교육투쟁과 폐쇄령 등을 거치고 일본 정부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현재는 유,초,중,고,대를 합하여 64개교가 운영되고 있다.

   
▲ 조선학교 차별반대 금요행동에 참가하기 위해 도쿄를 방문한 12차 방문단. [사진-임정우]

이렇게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동포들에게 힘을 더하고 일본 정부의 차별에 반대하기 위해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에서 주최하는 ‘조선학교 차별반대 고교무상화 적용을 위한 12차 금요행동 참가단’이 조선학교를 방문하였다. 

이번 12차 방문단에는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전교조, 전북겨레하나, 615남측위, 518민족통일학교 등 여러 단체의 회원들이 함께 참가했다. 

   
▲ 12차 방문단을 위해 환영무대를 준비한 도쿄조선제1초중급학교 학생들. [사진-임정우]

도쿄조선제1초중급학교 방문

방문단은 첫 일정으로 도쿄조선제1초중급학교에 방문했다. 도쿄에 가장 먼저 조선학교가 세워졌던 자리에 제1초중급학교가 자리잡고 있었다. 

학생들은 횃불과 깃발을 이용한 체조를 선보이며 방문단을 환영했다. 이어 중급부 학생들은 거대한 한반도기를 들고 우리민족이 다시 하나가 되기를 염원하는 공연을 보여주었다. 

환영식이 끝나고 학교에 들어서자 흥미로운 것들이 많이 보였다. 위생실, 갱의실 등 남측과는 다른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년간 생활목표, 분단결의문 등을 통해 우리말과 문화를 생활화하려는 활동들도 눈에 띄었다. 

   
▲ 도쿄조선제1초중급학교의 악기소조 중급부생들의 공연. [사진-임정우]

교실을 둘러보고 중급반의 무용소조와 악기소조, 그리고 학생들의 합창을 감상했다. 북에서 직접 공수했다는 악기들은 남측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소해금과 가야금을 중심으로 장구 장단에 맞춰 아름다운 선율을 뽐냈다. 

무용소조의 공연에서도 아이들의 미소와 아름다운 몸짓을 보면서 남측 방문단은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통일을 염원하는 아이들의 합창을 들을 때는 감동이 넘쳐나 방문단 모두 눈가가 촉촉해졌다. 

   
▲ 꽃다발로 방문단을 맞이해주는 도쿄조선제3초급 학생들. [사진-임정우]

도쿄조선중고급학교 방문
 
다음 날 방문단은 도쿄조선중고급학교를 방문했다. 교문을 지나자 도쿄조선중고교와 같은 건물을 사용하는 도쿄조선제3초급학교 학생들이 손을 흔들며 방문단을 반겼다. 어린 학생들이 직접 손으로 만든 환영 목걸이를 목에 걸어주며 방문단을 안내했다. 

교내에는 방문단을 환영한다는 미술작품들이 계단과 복도 곳곳에 걸려있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우리말을 배우고 큰소리로 서로 먼저 발표하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 도쿄조선중고급학교의 고급부 영어 수업 모습. [사진-임정우]

초급학교를 지나 도쿄중고교로 들어가자 예쁜 저고리와 치마를 입은 여학생들과 건장한 남학생들이 ‘안녕하십니까?’ 하며 인사를 건넸다. 국어, 일어, 영어, 수학 등 여러 과목의 수업을 직접 참관하며 어떻게 교육을 받는지 볼 수 있었다. 

남쪽 고등학교에서도 그렇듯이 수업시간에 꾸벅 꾸벅 졸고 있는 친구들도 더러 있어 웃음이 나기도 했다. 국어 시간에는 문제도 풀어보고 대답도 하며 함께 수업을 받아 보았다. 

1시간 정도 교실을 둘러보고 나오며, 일본 우익단체들은 어떻게 조선학교를 북측의 스파이를 양성하는 곳이라는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과 재잘대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다면 그들의 생각도 변하리라 생각했다.

   
▲ 책 ‘꽃송이’에 실린 본인의 작품 ‘통일은 어디까지 왔는가요’를 낭독중인 최혜림 학생작가. [사진-임정우]

도쿄조고에서 마련해준 비빔밥을 점심으로 먹고, 책 *‘꽃송이’의 작가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꽃송이는 조선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글을 엮은 책으로 아이들의 민족에 대한 사랑과 통일에 대한 염원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금년 4월 24일에 발간되었다.) 
 
도쿄조선중고급학교에는 총 11명의 학생 작가들의 글이 꽃송이에 실렸다. 고급부 2학년 최혜림 학생이 ‘통일은 어디까지 왔는가요’라는 작품을 대표로 낭독했다. 

최혜림 학생은 작년 남과 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날 때에 할머니와 함께 손 맞잡고 기뻐했던 당시의 감회를 글로 담아냈다. 

담담한 말투로 글을 읽던 혜림 학생은 ‘아무리 역풍이 강해도 굴하지 않는 강한 조선 민족의 의지를 이어받았으니 끝까지 통일을 위해 힘쓰자’며 울먹였다. 낭송을 듣던 방문단도 눈물을 훔쳤다.

   
▲ 조선대학교 교수로부터 조선학교의 역사와 현재의 문제에 대해 강의를 듣고 있는 방문단. [사진-임정우]

니시도꾜조선제1초중급학교 방문
 
방문단은 도쿄의 서쪽에 위치한 니시도꾜조선제1초중급학교에 방문했다. 니시도쿄제1초교 근처에는 조선대학교와 금강산가극단 연습장과 숙소가 자리하고 있다. 직접 안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근처에서 학교를 바라보며 다음에 꼭 가보리라 다짐하며 제1초교로 향했다. 

니시도쿄제1초교에서는 조선대학교 교수님으로부터 조선학교의 역사와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일본사회가 조선학교를 왜 탄압하려 하는지, 어떻게 탄압받아 왔는지를 들으며 답답하고 안타까워 심경이 복잡해졌다. 

   
▲ 니시도쿄제1초중급학교의 악기소조 중급부생들의 환영공연. [사진-임정우]

이후에는 무용소조, 악기소조의 공연과 남학생의 독창이 이어졌다. 북의 개량 악기인 소해금과 피아노 줄을 때려 연주하는 양금 등으로 이루어진 악기소조, 색동저고리와 방울소리가 어우러진 민족무용과 조개껍데기 부딪히는 소리와 무용이 아름답게 결합된 조개춤, 남학생의 아침이슬 독창은 방문단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한껏 자신감 넘치는 몸짓과 표정으로 공연하던 아이들은 정작 내려올 때는 부끄러워하며 총총총 무대를 내려오곤 했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난 뒤에는 학교 선생님들과 어머니회, 조선청년동맹 일꾼들과 어울려 불고기 환영만찬을 열었다. 함께 노래도 부르고 어우러지며 우리는 하나임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같이 부르며 꼭 통일된 조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 일본 문부과학성 앞에서 조선학교차별반대를 위한 금요집회에 참가한 방문단. [사진-임정우]

문부과학성 앞에서 열린 금요집회와 평화행진

조선학교 차별을 규탄하기 위해 문무과학성 앞에서 열리는 금요집회에 참가한 날은 비가 내렸다. 집회에는 우리를 비롯하여 도쿄조선중고와 조선대학교 학생들, 어머니회 등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학생들은 매주 차례대로 돌아가며 금요집회에 참여한다고 했다. 

비를 맞으며 우리가 왜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느냐고 외치는 조선학교 학생들을 보며 계속해서 눈물을 닦아야 했다. 지난 역사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아직도 우리 민족에게 부당한 탄압을 계속하는 일본에게 분이 났다. 그 피해를 죄 없는 아이들이 받고 있다는 사실이 비통했다. 

방문단을 대표해서 발언에 나선 방용승 전북겨레하나 대표는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말문을 연 후 “이번 방문을 통해 일본 땅에서 조선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어려운 것인지 생생하게 알게 되었다. 어려운 조건에서 목숨 걸고 우리학교를 지켜온 동포들과 사랑과 헌신으로 우리 아이들을 가르쳐온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인사를 올렸다. 

이어서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100년을 돌아볼 때 그 누가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의 역사를 열어주지 않았다. 오로지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투쟁을 통해서 승리의 길을 열어왔다. 조선학교의 존재가 바로 그 증거다.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새로운 100년은 평화와 번영 통일의 새 시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날을 위해 남북해외 8천만 겨레가 손잡고 함께 나가자”며 호소했다. 

마지막으로 “돌아가더라도 여러분을 잊지 않겠다. 조선학교의 의로운 싸움을 남녘의 동포들에게 널리 알리겠다. 여러분의 싸움을 지지하는 사람을 더 많이 모아서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다.

   
▲ 일본 공무원들에게 조선학교차별문제에 대해 항의하는 방문단. [사진-임정우]

이날 방문단은 일본 정부 관계자들과 공청회를 가졌다. 방문단을 대표해서 전교조 노년환 부위원장이 항의서한을 일본 당국에 전달하였다. 서한에는 ‘일본정부는 재일조선인 탄압을 중단하고 조선학교에도 고교무상화제도를 즉각 적용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전교조 전경원 참교육연구소장과 박인숙 변호사가 조선학교 차별의 부당성에 대해 논리적이고 예리한 항의 발언을 하였다. 
 
문부과학성, 외무성에서 네 명의 공무원이 나왔으나 1시간의 대화 끝에 돌아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변명뿐이었다. 자신들의 역사적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정부 아래서 교육받아온 공무원들은 우리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차별은 아니다’, ‘이미 결정된 것이다’는 공허한 말만 되풀이했다. 눈에 띄는 결실을 얻지는 못했지만 어머니회는 ‘남측에서 온 동포들이 차별의 부당함을 전달한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고 했다.

   
▲ 도쿄의 긴자거리에서 한(조선)반도와 일본에 비핵, 평화 확립을 위한 행진을 하는 방문단. [사진-임정우]

집회 후 한반도와 일본의 비핵, 평화를 위해 거리를 행진했다. 남쪽의 K-pop과 ‘바위처럼’, ‘아침이슬’,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등의 노래를 부르며 일본의 밤거리를 걸었다. 남측의 방문단과 재일동포뿐만 아니라 일본의 여러 시민단체들이 함께 나와 한(조선)반도와 일본의 평화를 외쳤다. 행진 내내 비가 내렸지만 우리의 평화에 대한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 4.24 투쟁의 당사자로 해설해주신 선생님과 전북겨레하나 참가단이 아오야마묘지의 무명전사묘에서 결의를 다지는 모습. [사진-임정우]

아오야마묘지 참배
 
방문단은 마지막 일정으로 아오야마묘지의 ‘무명전사묘’에 방문했다. 무명전사묘에는 일제시기 일본에서 반전운동, 노동운동 등에 참여하다가 체포 구금되어 옥사 또는 학살된 애국자들, 그리고 해방 후 4.24투쟁 때 희생된 김태일 학생을 비롯해 조선인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희생된 분들의 유골이 합장되어 있다. 

묘지에 참배하고 민족의 정체성과 우리학교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다 희생된 분들의 뜻을 기렸다. 그리고 8천만 겨레가 하나 되는 평화통일을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일본정부는 지금까지도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본 땅에는 아직도 역사의 증인인 동포들과 우리학교가 있다. 그들은 사회적 편견과 제도적 차별에 맞서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 땅에서 우리말, 우리글을 쓰고 우리의 역사를 배워나가는 것. 그것은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할 두 나라의 역사와 남과 북의 아픈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길과 이어진다. 하루빨리 남과 북 해외동포 모두가 손 맞잡고 백두에서 한라까지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는 그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염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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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19-06-13 09:41:13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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