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입김 (6)-서울의 혈거인(穴居人)


인간이하의 너구리 생활
=「방공호」속에 어둠과 습기만이 휩싸이고=
당국은 숫자조차 모르는 실정

○.... 여우나 너구리의 구멍 같은 굴집 속에서 목숨만 간신히 이어가는 원시인 아닌 현대의 혈거인(穴居人)들이 서울 한복판에 살고 있다. 서대문구 송월동 중앙관상대의 남쪽 비탈에 가로 뚫린 이 굴집에는 「주택번호 제14호(住宅番號第一四號)」 이와 같은 딱지만 붙어있다. 지난번 국세 조사 때 붙인 것이라 한다.

○.... 이 굴집의 구조는 방과 부엌 창고를 구별할 필요도 없고 어둠과 습기만이 한결같다. 그나마 제대로 된 굴집이 아니라 왜정 때 마련된 「방공호」속에 바람과 비를 피하려 이곳에 머물게 된 인간이하의 생활을 하는 이들도 인구조사(人口調査)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한국적인 비극이 아닐 수 없다.

○.... 면적은 길이 4「미터」 폭 1「미터」가량이며, 높이 1「미터」40「센티」 굴 문을 들여 다 보고 「실례합니다.」하고 허리를 굽혀 한발자국 들어서면 기계, 궤짝, 쭈그러진 양재기 요강 등 너절한 살림도구가 있고 몇 발자국 더듬어 서면 솥뚜껑이 보이고 그 안으로 잠자리, 자리때기가 깔린 곳이 그들의 침실인 것이다. 일곱 식구가 편안히 쉴 수 있는 넉넉한 넓이는 못된다. 이 굴속에서 연명하는 이들은 어떤 생활방도가 있고 이런 곳에서 견딜 수 있는 생리는 어떤 것인지 궁금할 지경이다.   

○.... 하루 죽 두 끼로 견딜 재주가 없는 이들은 가난뿐만 아니다. 무서운 병마에 신음하는 무직자들-김윤식(金允植=30)씨는 「척추 카리에스(결핵성척추염)」에 오랫동안 신음해왔다고 한다. 이웃 주민들의 온정으로 겨울 오늘까지 목숨을 이어왔다고 하면서 김씨는 「하루빨리 죽는 거이 소원입니다」 이 얼마나 등골이 싸늘한 대답이란 말인가!  

○.... 이와 같은 굴집에서 목숨을 이어가는 처참한 군상들은 송월동을 비롯하여 신당동 장충동 노량진동에 산재하여 있고 당국에서는 그 자세한 숫자조차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 = 굴집 앞에서 저녁 죽을 쑤는 할머니와 그의 가족들)

▲ 사회의 입김 (6)-서울의 혈거인(穴居人)[민족일보 이미지]

<민족일보> 1961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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