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써 이른바 ‘5.24조치’가 실시된지 9년이 된다. 이 조치의 내용은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전면 불허, 남북교역 중단,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제외한 우리 국민의 방북 불허, 대북 신규투자 불허, 영유아 취약계층을 제외한 대북지원의 원칙적 보류 등 5가지 내용으로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남북교류가 전면 중단되었다.

당시 남북경협 기업은 개성공단을 제외하고도 1,146개나 되는 기업이 있었다. 88년 노태우 정부의 7.7선언 이후 남한의 기업들은 남북교류협력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고, 평양, 해주, 나선, 신의주, 남포 등 북한 지역 곳곳에서 비교적 많은 남한 기업들이 교역, 위탁가공, 직접투자 등의 방식으로 발전하며 활발히 경제협력을 추진해 왔던 것이다. 그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남과 북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고 개성공단이 탄생했다.

5.24조치는 오히려 남한경제에 더 큰 타격

이른바 5.24조치는 당시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경제적 제재조치를 취해 압박하겠다는 의도였으나, 결과적으로는 남한 기업과 경제에 온 피해가 더 막심했다. 조치 실시 후 3년차였던 2013년 현대경제연구원 홍순직 박사의 ‘5.24 조치로 인한 남북한 경제적 피해 추정’이라는 정청래 의원 국정감사 정책자료집에는 직접 피해만 15조8천억에 이르고, 간접효과는 생산유발, 부가가치유발, 고용유발효과 등 약 40조에 이른다고 파악했다.

그나마 개성공단이 잠시 중단된 때의 조사이니, 개성공단이 전면 중단(2016년 2월 중단)되어 있는 지금의 남한 경제의 피해액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다.(개성공단기업 비대위는 2017년 자체 자료에서 기업의 직접 피해액만 1조 5천억으로 집계했다.) 반면 북한은 남북위탁가공 및 교역 등이 대부분이었던 피해를 대부분 중국으로 대체하여 2조3천억 정도의 피해로 추정된다.

남한 경협기업들을 힘들게 한 것은 천문학적 피해액 뿐만 아니라 끝이 없는 희망 고문이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런 우리 정부의 통보식 조치에 의해 기업들은 자신의 설비나 원자재, 완제품 등의 자산을 회수할 시간조차 없이 철수해야 했다. 정부는 기다리는 말만 반복했고, 다음 달이면 되겠지, 내년이면 되겠지, 정부가 바뀌면 되겠지…하며 지나온 시간이 9년이 되었고, 기업인들의 마음은 점점 실낱 같은 희망에서 절망으로, 절망에서 분노로 바뀌어 갔다.

기업인들은 공황장애, 분노조절장애 등 심각한 정신적 피해 속에서 살아왔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 ‘남북경협기업 비대위’를 결성하여 정부에 생존권 보장을 호소하고 남북경협 재개를 위해 투쟁했다. 그러던 중 故 유동호 비대위원장은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대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 작년 3월 따뜻한 봄을 맞이하지 못한 채 고인이 되셨다.

5.24조치로 인해 피해를 입었던 1,146개의 기업 중 그나마 문재인 정부 들어서 95개 기업만이 피해지원이라는 일부 보상을 받았을 뿐이다. 경제적 보상조차 받지 못한 나머지 기업들에게 돌아온 것은 이젠 분노와 슬픔을 넘어 무력감, 패배감 뿐이다. 더욱이 가슴 아픈 일은, 이들은 많은 국민들로부터 존재감조차 없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남북경협을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정도만 알고 있을 뿐, 천 여개의 남북경협기업은 존재조차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남북경협이 우리 경제의 신성장동력이 될 거라는 믿음과 남북 평화통일의 전도사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열정과 청춘을 쏟아 부었던 남북경제협력의 개척자들. 그들의 십 수년 또는 수십년의 세월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당한 듯한 절망감에 휩싸여 있다.

5.24조치는 남한의 경협기업들에게 너무나 큰 경제적, 정신적 피해를 주었다. 더 나아가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는 5.24조치에서 예외로 두었던 남북경협 최후의 보루였던 개성공단마저 폐쇄시켰고,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5.24 이후 남북경협 기업인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되풀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나마 개성공단 기업들은 중단과 동시에 정부로부터 일부 지원을 받기는 했으나, 하루아침에 사업장을 잃은 기업인들의 마음이야 매 한가지 일 것이다.

5.24조치는 사문화된 행정조치

다시 한번 되짚어 보자면, 5.24조치는 당시 통일부 장관에 의해 발표되고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내놓은, 일방적으로 발효된 일종의 행정처분이였다. 국회의 동의도 없이(그 적법성 여부를 별론으로 하고,) 당시의 정부가 취한 행정조치였던 것이다.

그 뒤로 9년이 지난 지금 평화번영을 바라는 국민의 바람을 안고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고, 온 국민의 지지와 환영 속에 지난 해 2018년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4.27 판문점 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을 합의했다.

두 정상이 합의한 선언들은 5.24조치를 이미 무력화, 사문화하였다. 판문점 선언에서는 남과 북은 각계각층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을 활성화 하기로 하였고(1조 4항),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위해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가며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을 취해나가기로(1조 6항)하였다. 또한, 평양선언에서는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실질적 대책들을 강구해나가기로(2조)하였다. 이러한 선언의 내용들은 5.24조치를 존치한 채로 진행될 수 없는 일들임은 자명하다.

위험천만한 남북관계의 긴 터널 속에서 제재라는 미명 하에, 되려 남한 경제와 남북경협 기업인들에게 생채기를 내었던 5.24조치는 평화번영의 새로운 남북관계를 정립하려는 현 정부에서는 이미 실효(失效)된 행정조치일 뿐이다.

‘5.24 패싱’, 전면적 협력사업으로 나아가야

이제는 이른바 5.24조치를 패싱하고 새로운 한반도 시대의 요구에 맞게 양대 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새로운 시대의 핵심 키워드는 평화, 번영이다.

먼저, 평화를 위한 우리의 실질적 조치는 금강산 관광을 위시한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전면 재개하는 것이다.

지난 시기 한반도 평화는 제재와 대립 속에서는 이루어낼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제재와 대립은 오히려 한반도를 전쟁과 화염의 위험천만한 상황으로 만드는 것을 목도했다. 우리는 대화와 타협, 교류와 협력만이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다.

한반도의 평화문제에서 남과 북은 핵심 당사자이고 이를 풀어야 할 당사자도 다름 아닌 남과 북이다. 지난 노태우 정부 시기 남과 북이 합의한 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는 “…쌍방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적시되어 있다. 즉, 남북의 관계는 여타 외국과의 관계처럼 해석할 수 없고, 남북 문제는 민족 내부의 문제임을 서로 인정한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핵심 당사자는 남과 북이며, 어렵사리 지켜낸 한반도 평화무드를 유지하고 관리하려는 노력을 선제적으로 펼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우리의 선제적 조치는 남북교류협력을 전면 재개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남한을 제외한 다른 많은 나라에서는 북한을 자유롭게 왕래하고 있다.)

다음으로 번영을 위한 우리의 실질적 조치는 개성공단을 포함한 남북교역 및 경협을 전면 재개하는 것이다.

번영은 공리공영(公利共榮)을 기본으로 하는 개념이다. 헌데 남북경협을 얘기할 때 일각에서는 파블로프의 실험처럼 대북 퍼주기를 떠올리곤 했었다. 그 단어 자체를 동의하지도 않지만, 오히려 남북경협은 막혀있는 남한 경제에 혈을 뚫어주는 중요한 출구가 될 것임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이 사실을 방증이라도 하듯이 최근 벌어졌던 남북경협 관련 세미나들에는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기업인들을 중심으로 구름관중이 몰려들었다.

개성공단을 포함한 전면적인 남북경제협력은 우리 남한 기업과 경제를 살리는 활로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많은 국가의 기업들이 북한 비즈니스를 선점하려 들고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이미 많은 기업들에서 대북사업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놓고 있는 것도 다 알려진 비밀이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더 지체할 필요가 없는 이유이다. 지금이라도 개성공단 재개를 중심으로 남북경협을 전면 재개하는 조치를 반드시 내려야 한다.

미국, UN 등 국제사회의 제재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과제는, 우리 정부가 재개하고자 선제적으로 조치하는 진정성을 보여준다면, 북한도 이에 응할 것이고, 그 속에서 더욱 창의적인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최근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승인은 환영할 일이다. 다만, 현 국면에서 개성공단 재개를 위한 방안을 함께 논의해 보자는 제안을 북측에 해본다면 어떨까 싶다. 남북경제협력협회도 이를 위한 다양한 실천적 방안들을 연구하고, 준비 중에 있다.

결론적으로 이제는 이미 사문화된 5.24조치를 영구 폐기하고, 평화번영의 시대적 요구에 맞게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을 포함한 남북 간의 협력사업을 전면 재개하는 등의 평화번영의 조치로 확고히 전환하여야 한다. 그러한 진정성 있는 조치가 내려질 때, 북한 역시 우리 정부의 결심에 응해 올 것이며, 평화번영의 새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국민 여러분이 5.24조치로 인해 극심한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경협 개척자들의 평화번영을 향한 발자취들을 잊지 말아 주시길 바라며, 앞으로 우리 민족과 경제가 살 길은 남북교류협력 전면 재개에 있음을 알아주셔서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을 포함한 남북교류협력 전면 재개”에 힘을 보태주시길 당부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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