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아산시 탕정면 용정리 농협 뒤편 야산(염치읍 백암리 49-2일대)에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지 유해발굴이 시작됐다. 5월 10일 오전 11시 개토제가 진행됐다. 맨 위 천막 아래 부분이 유해발굴 예정지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개토제에 참석해 유해 발굴지를 찾은 유족들이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며 울부짖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아이고.. 어머니... 아버지....”

충남 아산시 탕정면 용정리 농협 뒤편 야산(염치읍 백암리 49-2일대)에서 백발 노인들의 통곡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몇몇 노인들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연신 닦아 냈다. 

그곳은 한국전쟁 때인 1950년 9월부터 1.4후퇴 때까지 군경에 의해 인민군 점령 시기 부역한 혐의를 받은 민간인들이 끌려와 총살당한 곳이다. 그곳에서 희생된 이들은 탕정면에서 90여 명, 염치면 등에서도 수십 명 등 100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은 탕정면과 염치읍의 경계에 있다.

아산시는 지난해(배방읍 설화산)에 이어 올해도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지에 대한 유해발굴에 들어갔다. 올해 발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아산시가 예산을 배정했다. 올해 배정한 예산은 1억 2천만 원이고, 유해발굴은 5월 9일 시작해 한 달가량 진행된다. 유해발굴은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하 공동조사단)’이 실시한다.

▲ 충남 아산시 탕정면 용정리 농협 뒤편 야산(염치읍 백암리 49-2일대)에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지 유해발굴이 시작됐다. 5월 10일 오전 11시 개토제가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개토제에 참석한 유족들이 절을 올리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5월 10일 오전 11시, 유해발굴 현장에서 개토제가 진행됐다. 

이날 개토제에서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 아산유족회 김장호 회장은 “전쟁 시기에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은 보호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역 혐의라는 누명을 씌워서 이 자리에서 약 100여명이 학살되었다”며, “저희 유족들은 무서운 철퇴 같은 연좌제가 가슴을 누르고, 가는 곳마다 연좌제가 쫓아 다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곳에서 유해가 발굴되면 유해를 이보다 좋은 편안한 곳으로 모실 것”이라며, “모든 아픔과 고난을 내려놓겠다”고 덧붙였다. 

김장호 회장의 부친도 1950년 10월 7일 회의 참석차 탕정면사무소에 갔다가 경찰에 연행되어 10월 9일 당시 지서 뒷산인 이곳에서 총살되었다.

▲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 아산유족회 김장호 회장이 개토제에서 잔을 올리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개토제에 참석한 이상설(1937년생) 씨가 일가족 4명이 희생된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젖먹이 여동생, 할아버지까지 총살당하고 자신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이상설(1937년생) 씨의 사연이 전해지자 분위기는 더욱 엄숙해졌다. 

이상설 씨의 아버지는 1950년 10월 15일에 야산 건너편에서 총살을 당했고, 10월 31일에는 어머니가 젖먹이 어린 여동생을 끌어안은 채 총살당했다. 다음날인 11월 1일에는 자신의 집으로 2명의 청년이 찾아와 자신과 할아버지를 끌어가려고 했으나, 본인만 집 뒤로 피신해 학살을 모면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그날 끌려가 바로 총살당했다. 

이상설 씨는 “어머니, 할아버지, 어머니가 안고 있던 여동생이 총살당한 현장에 와 있다”며, “이 한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겠냐”며 울부짖었다. 그러면서 “이런 슬픈 역사가 다시 되풀이돼서는 안 되겠다”고 덧붙였다.

오세현 아산시장은 추도사를 보내와 “민간인 학살은 국가의 공권력에 의한 인권 학살사건”이라며, “국가는 사과해야 하고, 원한 맺힌 유가족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유가족의 아픔을 치유해 진정한 화해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며, “이번 유해발굴을 통해 조금이나마 유가족들의 슬픔을 덜어드리기를 기원하며 앞으로 정부 차원의 지원과 입법 활동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아산시가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오세현 시장의 추도사는 유병훈 부시장이 대독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관계자는 “전국에는 150개가 넘는 유해 매장지가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며, “이번 유해발굴조사를 통해서 국회와 정치권, 대통령에게 촉구해 올해 연말 내에는 과거사 법이 통과되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계기를 만들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또한 “정부가, 정치권, 국회가 과거사법 입법 관련해서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 진실 규명과 명예회복이 될 때까지 유해발굴 사업을 지속하겠다”고 덧붙였다.

▲ 아산시의회 홍성표 의원, 전국유족회 김복영 회장, 아산시 유병훈 부시장, 박선주 발굴단장, 아산유족회 김장호 회장이 본격적인 발굴에 앞서 시삽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박선주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장이 유해발굴 예정지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펜스 안쪽 줄을 친 부분이 유해발굴 예정지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한국전쟁유족회, 민족문제연구소, 4.9통일평화재단 등은 지난 2014년 2월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을 구성에 유해발굴에 나섰다. 공동조사단은 2014년부터 진주, 대전, 홍성 등 매년 1차례씩 유해발굴을 진행해 왔다. 올해는 지난 3월 충북 보은 유해발굴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에 발굴하는 곳은 지난해 발굴이 진행된 배방읍 설화산과 직선거리로 불과 6.6km에 불과하다. 지난해 설화산 발굴 결과, 최소 208명의 유해와 비녀, 귀이개, 단추 등 551점의 유품이 출토되었다. 특히 희생자 중 어른의 경우 80%가 여성이고, 아이도 58명으로 추정되었다.

아산시에는 2곳을 포함해 염치읍 대동리 새지기(황골), 산양1리(남산말) 방공호, 선장면 군덕리 쇠판이골, 신창면 일대, 배방읍 남리, 배방산(성재산 현 신도리코 자리), 수철리 폐금광 등 8곳에서 민간인학살이 자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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