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가족 강영철 아버지 추모식’이 29일 오후 7시 빈소가 차려진 여의도성모병원 행사장에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1990년 4월 4일 대붕전선 노동자 강민호는 입사한 지 7일 만에 폐선들을 정리하는 연신기에 휘말려 비명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가족들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신대 경영학과를 다닌 장남이 번듯한 직장대신 노동자가 되어 사망하였다는 소식에 놀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후로 30여년을 강민호 열사를 대신하여 민주화와 노동해방 투쟁을 벌여온 부친 강영철 씨가 87세의 일기로 지난 28일 사망하였다.

4월 28일은 세계산업재해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이었다. 이날 마석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지난해 12월에 사망한 태안화력 김용균 님을 기리는 추모비 설치행사가 열렸다.

또한 한신대를 졸업하고 노동운동을 하기위해 대붕전선에 입사했다가 산재로 죽음을 맞이했던 강민호 열사의 부친 강영철 씨가 우연의 일치로 이날 사망한 것이다.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원들을 비롯하여 많은 진보시민단체들의 회원들은 스스로가 ‘아버지’라 부르며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 추모식에 참가한 참배객들.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29일, 오후 7시 빈소가 차려진 여의도성모병원 행사장에서는 ‘시대의 아픔과 고난을 품어 안고 살아온 삶, 민주가족 강영철 아버지 추모식’이 열렸다.

유가협 장두영 사무국장의 사회로 열린 이날 추모식에서 첫 추모사를 맡아 앞에 선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장남수 회장은 30여 년간의 고인과의 인연을 소개하고, 준비한 추모사를 낭독하였다.

“... 이제 아버지가 민호 데리고 우리 곁에 자주 놀러 오세요. 그리고 민호 어머니 걱정은 크게 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가 늘 곁에 있겠습니다. 우리 함께 맛난 것도 많이 먹고 좋은 것도 많이 보면서 지낼 겁니다. 약속드릴게요. 늘 함께 할 겁니다...”

이어 강민호·박태순추모사업회 이정상 회장은 “30년 동안 만나지 못한 아들 민호를 만나게 되셨으니 얼마나 좋으시겠습니까?”라고 말한 뒤, 복받치는 설움을 다 참지 못한 듯 “행복하세요. 감사했습니다. 아버님 사랑합니다”라고 목을 메웠다.

이어진 추모사에서 추모연대 박인기 공동의장은 “아버님은 강하지만 부드러운 분이셨습니다. 아버님은 강민호 열사의 삶과 아버님의 삶을 동시에 살다 가신 분이셨습니다. 이력에 나오는 대로 ‘국가보안법 철폐투쟁과 반전평화투쟁’ 그리고 ‘노동해방과 비정규직 철폐투쟁’ 등은 강민호 열사의 투쟁을 벌이신 것이며,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 투쟁과 의문사 진상규명 등 과거사법 제정투쟁, 그리고 산업재해대책마련 투쟁’ 등은 본인의 투쟁이었습니다”라고 고인의 삶을 평가하였다.

마지막 추도사로 2019년 28회 민족민주열사범국민추모제 한충목 상임공동추모위원장은 본인이 1990년대 범국민추모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당시 아버님은 조용히 뒤로 와 손을 잡아 주시면서 수고한다고 말씀해 주시는 고마운 아버님이셨다”고 회고한 뒤 “늘 민호의 모습으로 살아가시고자 했습니다. 매 순간순간 자식 민호를 떠올리면서 행동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함께한 유가협 회원들에게 “건강하십시오. 지금 남북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좋아지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나서서 어머님 아버님들을 모시고 백두산이고 금강산을 찾아 좋은 구경시켜드릴 때까지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게 사십시오. 올해 못하면 내년이라도 꼭 남과 북이 함께 부모님들을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추모공연은 ‘투사의 아들’을 부른 노동가수 박준 씨가 맡아 주어 고인의 가시는 길에 함께 하였으며, 이어 참배객 모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상주 강민성 씨는 유가족 발언을 통해 “아버지는 강직한 분이셨습니다. 자녀들 앞에 평생 눈물을 보이신 적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30여년 전 형님의 사망소식을 듣고 눈물을 보이셨죠”하면서 “아버님은 형님이 가시고 나신 뒤 형님의 삶을 사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런 힘들 삶을 30여년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유가협 동지분들이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우리 형제들이 아버지의 빈자리를 얼마나 메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남아계신 어머니가 힘들지 않게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모든 순서를 마친 참배객들은 고인의 영정 앞에 헌화를 하면서 추모식 행사를 마무리했다.

발인은 30일 오전 5시 30분에 진행된다. 화장은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서 치르며 동대문 유가협 사무실 한울삶을 방문한 뒤 영원한 휴식을 취할 군산 성산공원으로 떠날 예정이다.

▲ 헌화.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강영철 씨의 삶

1933년 10월 29일 전북 군산에서 출생

1962년 12월 30일 김혜수 여사와 혼인

1990년 4월 4일 장남 강민호 열사 사망

이후 민족민주열사명예회복 투쟁,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제정 투쟁, 국가보안법철폐 투쟁, 산업재해대책마련 투쟁, 반전평화 투쟁, 양심수석방및수배해제 투쟁, 과거청산법제정 투쟁, 용산미군지기평택이전반대 투쟁, 비정규직철폐 투쟁 등 한국사회모순의 해결을 위한 투쟁에 헌신함.

2019년 4월 28일 향년 87세로 영면.

(수정-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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