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혼자로도 부족함이 없어서 남들과 나눌 필요가 없는 사람은 짐승이거나 신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주문진
 - 나해철

 아아 거기 푸른 물 곁에
 사람들이 모여 산다.
 맑고 깨끗한 풍광 속에
 모두 가난하고 가난하여
 욕되지 않다
 살고 죽는 빈손이
 한줌 동해물처럼 말갛게 들여다보여
 흰 조약돌 같다.


 오늘 새벽에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입주민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주민들을 상대로 흉기를 무차별적으로 휘둘러 5명이 숨지고 5명은 중경상을 입었다고 한다.

 기사를 읽으며 몸이 떨렸다. 아, 어떡하나? 어쩌다 인간이 이 지경까지 왔나? 기사의 댓글들을 읽으니 한결 같이 그런 정신병자에게 무슨 인권이 있느냐며 영원히 격리해야 한다거나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나는 오래 전에 읽은 홍명희 소설가의 ‘임꺽정’을 떠올려 보았다. 청석골에 온갖 하자 있는 인간들, 도둑 거지 부랑자들이 하나하나 모여든다. 그들은 대두령 임꺽정을 중심으로 새로운 가족이 되어 평화로운 마을을 가꿔간다.

 임꺽정의 의형제 중에 쇠도리깨를 잘 쓰는 곽오주란 인물이 나온다. 그는 술에 취해서 배고파 우는 자기 아이를 내동댕이쳐 죽게 만든 트라우마가 있다. 이때의 충격으로 그는 우는 아이만 보면 쇠도리깨로 무자비하게 때려죽이는 괴물이 된다. 현대 의학으로 진단해 보면 그는 분명 싸이코패스일 것이다.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지 못해 윤리, 도덕의식을 결여한 인간 군상들이 무리 지어 살아갈 때 어떤 세상이 될까?

 20여 년 전 우연히 문학 공부를 하러 갔다가 강사에게서 임꺽정을 꼭 읽어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금서였던 임꺽정이 막 해금되었을 때였다.

 교직에 있을 때여서 집에서 읽고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에 읽었다. 3일 만에 10권을 다 읽었다. 다 읽고 나서는 감격에 겨워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좋았다. 이 땅에 태어나 이 땅에서 살아간다는 게.

 파우스트, 죄와 벌, 변신, 이방인, 아큐정전...... . 그 동안 내게 큰 감동을 준 소설들은 모조리 외국 작가들이 쓴 것들이었는데, 우리나라 작가가 이런 대작을 썼다니!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며 홍명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소설 ‘임꺽정’을 통해 우리 민족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도둑들도 함께 모여 사니 잘살아가지 않습니까? 우리 희망을 잃지 맙시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마을엔 온갖 정신병자, 장애인, 지적장애인들이 함께 모여 살았다. 그들도 당당한 마을의 일원이었다. 함께 일도 하고 함께 놀았다.

 소시오패스, 싸이코패스들도 공동체 사회가 그들을 따뜻하게 품어준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폭력적인 존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속엔 아름다운 마을 ‘주문진’이 있을 것이다. 

 ‘아아 거기 푸른 물 곁에/사람들이 모여 산다./맑고 깨끗한 풍광 속에/모두 가난하고 가난하여/욕되지 않다/살고 죽는 빈손이/한줌 동해물처럼 말갛게 들여다보여/흰 조약돌 같다.’

 요즘 개를 기르는 사람들이 부쩍 는 것 같다. 그들의 깊은 마음속엔 개와 사람들이 오순도순 살아가던 공동체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있을 것이다.

 TV를 켜니 ‘아마존의 눈물’을 방영하고 있다. 금광 때문에 원시부족들이 사라져간다고 한다. 부족의 추장이 담담히 말한다. ‘우리가 죽어가는 것은 인류가 사라져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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