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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정류장은 조소앙활동터입니다”버스 안에서 만나는 독립운동가-‘민주공화국’ 원칙 세운 조소앙 선생
박준영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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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28  13: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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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 주권자전국회의 홍보팀장

 

막내 입학식에서 계단을 헛디딘 바람에 3월 내내 오른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다. 출퇴근길, 깁스 덕분에 버스로 운송수단을 갈아타야 했고 종점 근처에 사는 행운 덕분에 언제나 앉아서 출퇴근을 할 수 있었다.

   
▲ '삼선교·한성대입구·조소앙활동터'라고 적힌 버스 정류소. [사진-박준영]

어느 출근 날 아침, 151번 맨 뒤쪽에 앉아 편안히 졸고 있는데 문득 ‘다음 정류장은 삼선교·한성대입구·조소앙활동터입니다’라는 방송이 뒤에 꽂힌다.

‘조소앙?’

매일매일 듣는 이름이 되었다. 다음 역인 ‘여운형활동터’와 겹쳐 ‘조소앙’ 그 이름이 궁금했다.

위키백과는 조소앙 선생을 이렇게 소개한다.

“조소앙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교육자이다.… 1919년 2월 1일 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하였고, 곧바로 일본 도쿄로 건너가 유학생들을 지도하여 2·8독립선언을 작성하도록 지도하였다.”

조소앙 선생은 김구, 신익희 선생과 함께 상해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우리가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이며,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인 ‘민주공화국’ 정신을 최초로 명시한 대한민국임시헌장 마련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민주공화국’ 정신은 조소앙 선생의 삼균주의를 뿌리로 하고 있다. 정치의 균권, 경제의 균산, 교육의 균학을 의미하는 삼균주의는 정치·경제·교육의 평등을 기반으로 개인·민족·국가의 평등을 강조한 사상이다.

   
▲ 조소앙 선생

조소앙 선생은 당신이 큰 역할을 담당했던 대한민국임시헌장에서 밝힌 “최후의 일인까지 투쟁할 지어다”에 따라 일제강점에서 해방정국으로 이어지는 민족의 격랑기에서 ‘독립과 민주공화국 수립’을 위한 행동을 멈추지 않았던 분이다.

그 추운 겨울, 1700만의 우리가 촛불을 들고 외쳤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가장 먼저 선언한 이가 바로 조소앙 선생이다. 100년 전, 지금의 우리가 외치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이 땅에 뿌리내린 선구자가 바로 조소앙 선생이다.

그런데 민족의 어른으로 존경받아야 할 조소앙 선생을 나는 왜 몰랐을까? 나의 무식함에 부끄러워하며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답이 나온다. 물론 나의 역사무지도 원인이겠지만 조소앙 선생의 애국적 삶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댄 일부 몰지각한 후대들의 편견 때문이었다.

조소앙 선생의 삶에도 ‘빨갱이’라는 이념 잣대를 들이댔던 그들. 북한에서 서거했다는 이유만으로 선생을 역사의 음지에 묶어두었던 그들의 폭력에 낯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제라도 다행이다. 3·1운동 100년을 맞아, 지난 역사가 음지에 가두려 했던 민주주의의 어른, 조소앙 선생이 양지로 나와 우리 생활 속에서 살아 숨 쉴 수 있게 되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이제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외출 길 버스 안에서, 서울 곳곳에서 살고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 이야기를 소곤소곤 나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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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1)
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19-03-30 08:32:02
좋은 하루 되시길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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