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태환 (전 통일연구원 원장/미국 이스턴 켄터키 대 명예교수)

 

하노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은 김정은 위원장의 체면을 말이 아니게 손상시켰고 현재 그 신호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북한이 받은 상처, 2차 정상회담에 대한 실망, 좌절감,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촉진자’ 혹은 ‘가교 역할’에 대한 불만이 여러 북한매체를 통해 전달되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은 그 불만들을 실질적 행동으로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2018년 9월 14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개소 이후 190일 만인 3월 22일 북측은 갑자기 일방적 통보를 하고 철수했다. 개소 이후 6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 하에 북측이 ‘상부의 지시에 따라’ 전원철수 하는 이유도 밝히지 않아 그 배경이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외무성 최선희 부상이 평양기자회견(3.15)에서 문재인 정부를 공식적으로 비판했다. 그가 ‘워싱턴의 동맹’이며 “남조선은 중재자가 아니고 플레이어”(player)라고 말했다.  이 말의 참뜻은 문 정부가 중재자 혹은 가교 역할은 그만 두고 플레이어, 즉 미국 편보다 북한 편에 서서 당사자 역할을 주문한 것이다. 

북측 <메아리>는 3월 22일 노골적으로 문 정부를 비판했다. “중재자, 촉진자가 아닌 당사자 역할을 해야 한다”며 “미국에 대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할 말은 하는 당사자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 속에 북한의 의도가 담겨있다. 문 정부의 역할과 관련하여 보다 적극적 역할을 해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관계의 길을 뚫어달라는 당사자 역할을 기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북한의 불만도 무시 못 할 정도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철수 결정(3.22)을 하는데 큰 몫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북측이 요구하는 당사자가 아닌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할 일이 현실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하노이 2차 북미정상 회담의 장밋빛 전망만 기대했던 문재인 정부가 협상 결렬 이후 촉진자 역할이나 가교 역할을 뛰어넘어 보다 당사자로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역할을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현재 북한이 가지고 있는 문 정부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임이 틀림없다.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미국이 남북협력사업에 간섭하고 있다는 것이 북한의 인식이다. 지금까지 문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관계 개선에 성공했지만 이제부터는 문 정부는 북한 편에 서서 당사자로서 역할을 해 달라는 북한의 요구는 만만치 않다. 이러한 북한의 일련의 행동들은 북미관계가 개선되어야 남북관계도 지속적으로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문 정부에 던진 것이다. 따라서 현 북미관계는 남북관계 발전을 어둡게 하고 있다.

향후 북미 간 협상이 진척이 없으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개도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개 시점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일정과 맞물려 있다. 트럼프 입장에서 본다면 내년도 재선을 위해 늦어도 금년 가을까지 북한과의 핵 타결을 해야 선거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면 남북관계도 청신호가 오게 될 것이다. 

그러면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특히 ‘비핵화-평화체제’와 관련하여 향후 어떤 역할이 바람직한가를 제안하고자 한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의 요인을 분석해 보면 북미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각자의 해법을 놓고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 정상회담 협상에서 ‘노딜’ (no deal)로 끝나 결국 정상회담은 결렬(breakdown)되어 유감스럽다. 그러나 북미 최고지도자간 대화와 협상의지가 강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6.12 북미공동선언문 4개항을 이행하려는 의지가 강력하기 때문에 향후 새로운 비핵-평화 로드맵에 합의하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실현될 것으로 확신하면서 아래 새로운 융합접근(Fusion Approach)을 제안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2차에 걸친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나타난 북미 협상의 핵심 장애물은 북미 간에 합의된 ‘비핵화-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로드맵이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합의된 비핵화 로드맵이 없으니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향후 트럼프 미 대통령이 언제 갑자기 그의 정치적 이해타산을 따져서 대북 정책전환을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러므로 먼저 북미 간 상호 신뢰구축이 급선무이다. 신뢰가 없는 데 미국의 영변 외 +a ‘빅딜’ 제안을 현실적으로 북한이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도 역지사지 입장에서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북미 양측의 전략가들이 각자 시각에서 주장해온 바와 같이 미국의 “일괄타결식 방안”과 북한의 “단계적,. 동시 행동 방안”이 상호 배타적인 개념으로 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필자의 주장은 두 개념의 융합(fusion)을 주장하여 두 개념이 상호배타 적인 개념이 아닌 상호보완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필자는 두 개념을 융합하는 새로운 개념으로, 퓨전 접근(Fusion Approach)을 통해 두 개념을 융합하여 상호보완적이라는 인식을 공유함으로서 한반도 비핵화-평화 문제를 풀어나가는 새로운 제안을 하고 싶다.

이 두 개념을 새로운 융합접근 방식으로 접목하면, 현재 미국의"일괄타결식" 방안을 향후에 합의하게 될 한반도 비핵화 로드맵에 담고, 실행할 때는 "북한의 단계적,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이행하는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실행 로드맵을 만들게 되면 두 개념은 상호 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역할은 무엇인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전까지 문재인 정부의 “가교 역할”을 계기로 북미정상회담이 2차례 개최된 것은 그 공로를 높이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는 ‘촉진자’ 혹은 ‘가교 역할’에서 완전하게 탈피하여 이제부터 한국정부가 한반도 문제 해결의 ‘당사자’로서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즉, 문재인 정부의 새 역할은 문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평화제제 구축 로드맵을 만들어 남북미 3국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톱다운(top down) 방식으로 3국 정상이 로드맵에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융합방식의 포괄적 로드맵 속에 일괄 타결방식과 단계적 이행 로드맵이 공존하게 되어 북미가 주장하는 두 방식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융합접근 방식으로 만든 실행 로드맵은 북미 양국이 고집하는 비핵화 접근 방식이 상호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기능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북미 양측은 문재인 정부의 새 역할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3국 정상회담을 통해 입구론과 출구론을 포함한 로드맵에 합의한다면 한반도에서 비핵-평화시대가 가까 운 장래에 도래할 것으로 확신한다.

 

 

한국외국어대 학사, 미국 Clark 대학원 석사, 미국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 국제관계학 박사. 전 미국 Eastern Kentucky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 전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교수; 전 통일연구원 원장. 현재 미국 이스턴켄터키대 명예교수, 한반도미래 전략 연구원 이사장, 한반도중립화통일협의회 이사장, 통일전략연구협의회(LA) 회장 등, 글로벌평화재단이 수여하는 혁신학술연구분야 평화상 수상(2012). 31권의 저서, 공저 및 편저; 칼럼, 시론, 학술논문 등 250편 이상 출판; 주요저서: 『국제정치 속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구상』 공저: 『한반도 평화체제 의 모색』 등; 영문책 Editor/Co-editor: One Korea: Visions of Korean Unification (Routledge, 2017); North Korea and Security Cooperation in Northeast Asia (Ashgate, 2014); Peace-Regime Building on the Korean Peninsula and Northeast Asian Security Cooperation (Ashgate, 2010)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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