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찬 (하나누리 동북아연구원장)

 

2019년 1월에 방문한 북중러 접경지역인 중국 훈춘시 방천은 도로 확장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중국 영토의 끝자락에 설치된 조망탑 주변에는 유람선을 탈 수 있는 선착장도 새롭게 조성되어 있었다. 앞으로 물류 비행장도 만들 계획이다. 이런 다양한 사업이 가능한 이유는 우선 훈춘이 2012년에 ‘중국훈춘국제합작시범구’로 지정되었으며, 두만강지역개발합작 프로젝트가 중국의 ‘일대일로 지역관광 일체화 사업’에 편입된 것을 계기로 두만강삼각주국제관광합작구 (이하, 두만강관광합작구)가 가동되었기 때문이다.

▲ 필자 직접 촬영 (2019.1.10.) / 설명 : 북중러 접경지역 방천(두만강 유역)에 설치된 유람선 부두. 겨울에는 강물이 얼어 운행이 중단됨.

훈춘시 방천(防川)은 4A급 풍경구로, 두만강 하구의 동해 출구로부터 15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이다. 방천은 2015년에 북중러 3국이 합의한 두만강관광합작구(图们江三角洲国际旅游合作区)의 중심 지역이다. 현재 두만강관광합작구에서는 ‘1구 3국 공동관리 모델’을 탐구하면서 ‘72시간 비자면제’를 추진하고 있다. 즉 접경지역의 세 나라가 공동 관광구역을 설정하고 공동으로 개발 및 관리하는 모델을 실험하는 것이다. 현재 북중 관광이 진행되고 있으며, 중국은 향후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정도만 설명해도 두만강관광합작구의 개요를 이해하는 데는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두만강관광합작구에는 그 이상의 깊은 역사적 이력이 숨겨 있다.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동해 출구를 잃은 중국의 동북 3성

‘베이징조약’은 제2차 아편 전쟁의 결과로, 1860년 10월 18일에 청나라가 영국, 프랑스, 러시아 제국과 개별적으로 체결한 3개 조약을 지칭한다. 그 중에서 1860년 11월 청나라가 러시아와 체결한 조약은 청국과 영·프랑스 간의 강화를 러시아가 알선한 이유로 러시아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청나라는 아이훈 조약(1858년)으로 러시아 제국에 헤이룽 강(黑龍江) 이북지역을 넘겨준데 이어 베이징조약으로 우수리스크 지방(연해주와 남부 하바롭스크 지방)을 할양하였다. 이로 인해 중국은 동해 출구를 잃게 되었다.

그런데 이후 중국의 동해 출구 확보와 관련하여 상황이 조금 더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우선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중국에 속했던 연해지역의 약 40만 평방미터가 러시아에 넘어가면서 동해 출구권을 상실했다는 것은 이미 언급했다. 그런데 1886년 중국과 러시아가 동해 연안의 마지막 구역을 측량할 때, 다행히도 두만강 동해 출구로부터 46킬로미터 지점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경계비를 옮겼으며, 두만강을 따라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다. 측량 후 맺은 ‘중러 훈춘동계조약’(中俄珲春东界约)은, 경계비가 두만강 입구까지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으며, 중국 선박은 출입이 가능하고, 러시아는 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였다. 조약 체결 후, 중국 측 강가에 거주하던 방천촌의 촌민은 출해권을 획득하여,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거나 염전을 일구거나, 상업활동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훈춘에서 동해 각국으로 가는 뱃길을 개통하여 광범위하게 대러, 대일, 대북 무역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때는 북중러 접경지역에서 자유왕래가 가능했다.

1992년 중국은 러시아와 다시 동해 출해권을 두고 협상을 벌여 두만강을 통해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권리를 회복했다. 그러나 현재 하류에 있는 북·러 두만강 철도가 7m로 너무 낮고, 두만강 바닥에 침전물이 쌓이면서 300톤 이하의 작은 배만 통과할 수 있다. 게다가 러시아측에서 계절성 고깃배의 출해 통행만 허용하고 상업적 운항은 허용하지 않아 중국측 동해 출해구는 사실상 막혀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들이 중국 동북3성에게 러시아의 자루비누항이나 북한의 나진항을 통한 동해 출구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해 준다. 중국의 이러한 욕구가 오늘날 두만강관광합작구로 이어지게 되었다.

‘두만강삼각주국제관광합작구’를 추진하기까지의 주요 과정들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자 접경지역 땅값 상승 소식은 물론 다양한 소식들이 전해졌다. 그 중의 하나가 2018년 5월,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즈가 전한 두만강유역개발계획 (TRADP) 재가동 촉구 기사였다. 두만강유역개발계획을 통해 북한의 개방과 경제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사 마지막을 보면, 중국의 본심은 국제물류 발전에 있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가 2012년 11월에 발표한 ‘중국의 북극해 야망’이란 종합 보고서에서는 “북극해 항로가 본격화되면 중국은 나진항을 북극해 항로의 허브로 삼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강태호 외, 2014: 32).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즈가 전한 두만강유역개발계획은 1991년 유엔개발계획(UNDP)이 추진한 것으로 두만강관광합작구로 이어지는 과정이 상당히 길고 복잡하다. 이를 연도별로 간략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1991년, 유엔개발계획(UNDP)이 두만강유역개발계획(TRADP) 추진. 이는 최초의 동북아 경제협력 프로젝트이자 소지역협력. 한국, 북한, 중국, 몽골, 러시아 등 5개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협력 프로젝트.
* 1991년 12월, 북한 나진선봉특구 지정.
* 1992년, 중국은 훈춘변경경제합작구 지정. 훈춘은 변경경제합작구, 수출가공구, 호시무역구 등 3개구가 지정된 유일한 도시, 러시아 및 북한과의 통상구도 보유.
* 2005년, 후진타오 당시 주석이 두만강유역개발계획(TRADP)을 광역두만강개발 계획 (GTI)으로 격상. GTI는 북한의 나진・선봉과 중국의 동북3성, 러시아 연해주 일부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대상.
* 2009년, 북한 GTI 탈퇴. 참여국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로 추진 중단.
* 2010년, ‘중국두만강지역합작개발계획요강’ 전면 실시. ‘요강’에 따르면, 훈춘은 대외 개방 창구. 수출가공, 경외자원개발, 국제물류구매, 다국관광 등 각종 대외합작형식이 일체화된 특수경제기능구로 건설하고 두만강지역합작개발의 교두보로 발전.
* 2012년 4월, ‘중국두만강지역(훈춘)국제합작시범구’ 지정, 90㎢ 공간에 국제산업합작구, 변경무역합작구, 중-북훈춘경제합작구와 중-러훈춘경제합작구 등의 기능구 포함. 이후 중국의 ‘일대일로 지역관광 일체화 사업’에 편입됨.
* 2015년, 북중러 3국이 두만강삼각주국제관광합작구 추진 합의.
* 2016년 6월 18일, 길림성 관광국은 <두만강삼각주(중-러-북) 국제관광합작구 총체계획 (2016-2025)>를 수립하고 3국 전문가 평가 진행 및 통과.
* 2018년 5월, 북한이 GTI 베이징 사무국에 인력 파견.

두만강삼각주국제관광합작구 1구 3국 공동개발 공동관리 모델의 핵심 내용

앞에서 제시한 과정들을 보면 어떤 맥락에서 두만강관광합작구가 탄생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정리하면, 중국은 유엔개발계획(UNDP)이 1991년에 추진한 두만강유역개발계획 (TRADP)을 출발점으로 하여 내부적으로도 이에 부응하여 지구지정 및 개발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북핵 문제라는 지정학적 이유로 사업이 추진되지 않게 되자, 2010년부터 중국이 훈춘을 배경으로 각종 개발계획을 수립 및 진행하기 시작했으며, 이와 더불어 주도적으로 인접국인 러시아와 북한을 우선 대상자로 하여 공통의 이익을 공유할 수 있어 합의 도출이 용이한 국제 관광을 출발점으로 삼아 두만강관광합작구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목적은 관광사업 그 자체가 아니라 자루비누항과 라선항을 통한 동해 출구 확보 및 국제 물류 시스템 구축이었다. 두만강관광합작구를 낳은 결정적인 사안은 2010년의 ‘요강’에 따른 2012년 ‘중국두만강지역 (훈춘)국제합작시범구’ 지정 및 시진핑 정부가 추진한 일대일로 사업과의 연동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두만강관광합작구는 기본적으로 북중러가 함께 공동구역을 정하고 공동으로 개발하고 공동으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모델의 핵심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북중러 접경지역에 “무국경”의 새로운 공간 탄생. 국경을 따지지 않고 세 나라가 관광이라는 자원을 공유해 이익을 얻으려는 것.
* 공간 범위는 중국 연길-훈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하산구, 북한 라선특구-라진항이라는 3대 중심도시. 보다 구체적으로 두만강 하류가 중심축이 되어, 훈춘 방천, 북한의 두만강동, 러시아 하산진으로, 약 100㎢의 국제관광합작구가 형성됨.
* 각국이 10㎢의 토지를 개발건설구역으로 제공하고, 3국이 공동으로 관광레저오락 시설을 건설하여 ‘1구 3국’ 공동관리 모델 탐색.
* 구역 진입시 무비자, 나올 때 무관세. 72시간 무비자.

두만강삼각주국제관광합작구 실험의 의미

두만강 지역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아온 곳이다. 본고에서 살펴본 두만강관광합작구 ‘1구 3국 공동관리’ 실험이 갖는 의미는, 지난 30년 동안 각종 개발계획으로 논의되던 소지역협력 프로젝트가 국제관광 이라는 사업으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본고에서 더 주목하는 지점은, 중앙정부의 허가 아래 각 지방정부와 민간부문이 주도적으로 국경을 초월해 공동의 구역(commons)을 지정하고, 이익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소지역협력의 발전전략을 수립 및 추진했다는 점이다. 서구처럼 국가수준의 협력과 통합을 이룰 정도까지 성숙하지 못한 동북아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소지역협력은 역내 행위자들에게 매우 소중한 학습경험이 될 것이다(전형권, 2006). 이러한 구심력이 자리를 잡아가게 되면 향후, 보다 많은 지방정부가 협력할 수 있는 동북아 상생발전의 미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동북아 상생발전의 미래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고민할 지점이 있다. 유엔개발계획이 추진한 두만강유역개발계획(TRADP)을 시작으로, 그동안 각 국 정부가 추진해 온 계획들은 사실 ‘평화체제’에 대한 고민이 없는 개발 중심의 계획들이었다. 그러다보니 현실에서 각국 간의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갈등으로 인해 각종 계획들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그 결과 동북아에는 유럽연합(EU), 아세안(ASEAN),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견줄 만한 역내 구심점이 아직까지 형성되지 못했다. 각국이 이익을 공유하며 공존할 수 있는 동북아 평화체제 없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 양상이 전개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북핵문제 해결이 가장 중요하지만, 이 외에도 중국의 동진, 러시아의 남진에 따른 동해를 둘러싼 일본과의 충돌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할 중요한 변수다. 대륙 세력이 영향력을 동해까지 확대하게 되자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확대 등으로 대응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지정학적 대결에 따른 분할구도가 각국의 역사 문제,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분쟁 양상과 중첩될 경우 동해는 복합적인 갈등의 바다로 남을 수밖에 없다.”(강태호 외, 2014: 35). 따라서 경제발전과 더불어 동북아 평화체제에 대한 고민이 함께 진행되어야만 한다.

[하나누리 동북아연구원 특강]

주제 : “정책으로 본 북측 경제개발 현황과 전망”
강사 : 최문 교수 (중국 연변대학 경제학원 교수/ 연변대학 동북아경제연구소 소장)
일시 : 2019년 3월 29일 금요일 19시 30분
장소 : 카페바인 필동 (서울시 중구 퇴계로36가길 97, 희년평화빌딩 지하1층)
주최 : 하나누리 동북아연구원
등록 : http://bitly.kr/LLU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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