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7일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다. 사진은 친교만찬 모습. 김정은 위원장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북측 통역, 김영철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 폼페이오 국무장관, 미측 통역. 트럼프 대통령.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미 협상의 ‘촉진자’ 역할을 자임한 우리 정부의 비핵화 관련 구상의 큰틀이 정부 고위관계자들을 통해 대체로 공개됐다. 특히 17일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우리 정부의 좀더 구체적인 고민까지 일부 확인됐다. [관련기사 보기]

한반도 비핵화 ‘최종 상태’와 ‘운영적 정의’

집을 그릴 때 목수들은 기초부터 그리고, 일반인들은 지붕부터 그린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비핵화 순서는 통상, 동결-단계별 비핵화 로드맵-최종 비핵화 상태 도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입장에서는 최종 비핵화에 대한 북한과의 타결, 이른바 ‘빅 딜’(big deal) 없는 어떤 합의도 미국 정치지형상 환영받지 못할 것임을 의식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입장에서는 지난해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포함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좀더 명시적으로 두 번째 합의문에 담고자 할 것이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10일 폭스뉴스에 출연해 “북한이 돌아가서 그들의 입장을 다시 생각해보고, 대통령과 ‘빅 딜’을 논의하기 위해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감을 표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7일 이를 ‘최종 상태’(end state)로 표현했고,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소위 지표, 인덱스화 하느냐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비핵화의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 있어서 비핵화에 대한 ‘운영적인 정의’(operational definition)에 대해서 우리가 한번 좀 고민을 해봐야 될 때가 됐다”는 것이며, “어떤 상태가 돼야만 북한의 핵 활동이 사실상 중단한 것으로 볼 것이냐, 또는 어떤 시설이 어떻게 해체되어야만 북한이 핵 능력을 보유하지 않았다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정의(definition)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것은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고 지난 30년간 비핵화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한 번도 시도가 된 적이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문자 그대로의 완전한 비핵화는 기존 핵무기의 완전 폐기 내지는 해외 반출, 관련 종사자들의 재배치 등을 포함해 실제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어떤 상태가 돼야만 북한의 핵 활동이 사실상 중단한 것으로 볼 것이냐, 또는 어떤 시설이 어떻게 해체되어야만 북한이 핵 능력을 보유하지 않았다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운영적 정의’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를 수 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운영적 정의’에 합당한 북한의 비핵화를 자신의 재선 임기 내에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야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도 북핵문제 해결의 적임자로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호소할 뚜렷한 명분이 생길 수 있다.

‘운영적 정의’에 북한의 ‘경수로-인공위성’ 권리 포함될까?

▲ 하노이 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친근감을 과시했지만 합의문 서명에는 이르지 못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문제는 이같은 비핵화의 ‘운영적 정의’에 북미가 합의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고, 또다른 문제는 북한이 생각하는 최종 상태에 대한 운영적 정의에 ‘평화적 핵이용권’과 ‘우주 개발권’이 포함될 것이라는 점이다. 쉽게 표현해 보통국가들이 누리는 국제적 감시하의 경수로 운영과 인공위성 발사·운영 권리를 북한도 보장받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2005년 베이징 6자회담에서 9.19공동성명이 채택될 당시에도 북한의 경수로 권한이 막판까지 쟁점으로 떠올랐고 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핵에네르기의 평화적리용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천명하였다. 기타 참가국들은 이에 대한 존중을 표시하고 적절한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토의하기로 합의하였다”라는 문구로 봉합됐다. 어쨌든 북측의 경수로 요구가 합의문에 담긴 것.

그러나 2005년과 2019년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북한은 2017년 6차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상태다. 또한 그 사이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이용한 핵물질이 대폭 늘어났을 것이고, 지금도 증가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당 제7기 제3차전원회의, 이른바 4월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결정서를 통해 ‘2018년 4월 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시험발사를 중지할것’이라고 천명했지만 핵물질 생산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이 손에 쥔 이 압박카드로 평화적 핵이용권과 우주개발권, 즉 경수로와 인공위성 운영권을 9.19공동성명 당시보다 보다 온전한 형태로 확보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핵무력 몸집을 불려온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보다 완전한 ‘운영적 정의’를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의 핵무기 탑재 전략자산으로부터의 위협을 근원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조치들을 요구하고 나설 수 있기 때문. 미국 항공모함이나 전략폭격기 등의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상태를 포함하는 ‘불가침 조약’과 같은 요구를 내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촉진자, ‘연속적인 조기 수확’과 ‘굿 이너프 딜’ 제안

▲ 트럼프 대통령은 2월 28일 북미정상회담 결렬 직후 JW메리어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배석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비핵화의 최종 상태와 이에 대한 ‘운영적 정의’에 대한 합의가 목표에 대한 합의라고 한다면 과정에 대한 합의는 이른바 ‘로드맵’을 둘러싼 협상과 합의를 뜻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7일 “운영적 정의에 대해서 합의가 이루어질 경우 이것을 어떠한 순서로 정해나갈 것이냐, 일종의 로드맵 같은 개념이다. 이것을 정하는 문제도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사실은 비핵화 전 과정에 대해서 합의하는 것과 거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도전”이라는 것.

특히 “우선은 북으로 하여금 포괄적 목표 달성을 위한 로드맵에 합의토록 견인을 해내고 그러한 바탕 위에서 스몰 딜(small deal)을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로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느냐, 비핵화의 의미 있는 진전을 위해서는 한두 번의 연속적인 조기수확(early harvest)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혀 주목된다.

로드맵에 합의하고, 그 로드맵에 근거해 한두 번의 연속적인 ‘조기 수확’을 거두어 이 신뢰를 바탕으로 최종 목표에 도달하자는 구상이다. 우리 정부가 촉진자로서 ‘스몰 딜’이 아닌 ‘굿 이너프 딜’, ‘충분히 괜찮은 거래’로, 그것도 ‘조기 수확’을 거두자는 새로운 개념들을 제안한 것이다.

이 고위관계자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와 유엔 핵심 제재 결의의 사실상의 해제라는 문제와 관련해서 양측이 북한 핵 프로그램에서 영변 핵시설이 차지하는 비중, 의미에 대한 합의라든지, 또 거기에 상응한 조치가 무엇이냐에 대한 이해가 일치되지 않아서 해결이 되지는 않았다”면서도 “큰 해결 방식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가 있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하노이에 이어 3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북미 정상 간에 ‘굿 이너프 딜’의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인 셈이다. 최종 상태에 대한 운영적 정의에 합의하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로드맵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큰틀의 합의, 즉 빅 딜을 이루고, 굿 이너프 딜로 연속적 조기 수확을 거두는 사실상 '일괄 타결 단계적 동시행동'을 제시한 것이다.

‘유예·동결’ 기초공사와 ‘빈손’ 북한의 궤도이탈 방지

▲ 문재인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 결렬 당일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면서중재자 역할을 요청받았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를 위해 현재의 핵 문제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현 상황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동결시키는 조치는 필수적이다. 현재는 북한이 스스로 핵·미사일 시험을 유예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전부다. 따라서 북한이 더 이상 핵물질 생산이나 미사일 개발을 진척시키지 않겠다는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 우선적인 숙제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5일 “하노이에서 여러 계기에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했고 핵실험이나 미사일 시험을 재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며 “그게 김 위원장의 말이다. 우리는 그가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0일 “제1차 북미정상회담부터 지난달 말 제2차 북미정상회담까지 북한이 6개가량의 핵무기를 제조했다는 게 정보기관의 판단”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문제는 북한이 핵·미사일 시험 유예(모라토리엄)를 유지하는 것과 의 핵·미사일 시설을 동결하는 조치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치다. 이미 정경두 국방장관과 패트릭 샤나한 미국 국방장관 대행은 지난 2일 전화통화를 갖고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을 종료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한편,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직후인 4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면서 “우리가 중재안을 마련하기 전에 보다 더 급선무는 미국과 북한 모두 대화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어렵게 여기까지 왔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라고 경계심을 보였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17일 하노이 회담에 대해 “우리가 볼 때는 미국은 대체로 실보다는 득이 많았던 것으로 보여진다”며 “합의가 무산(no deal)된 것으로서 미국이 국내 정치적으로 부담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었지 않겠느냐 이렇게 평가한다”면서 오히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당황스럽지 않았겠느냐”며 “우선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는 많은 기대를 하고 60시간 이상 기차 여행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빈손으로 귀국한 것에 대한 많은 국내적인 정치적인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이렇게 추정을 해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15일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미국의 요구에 굴복할 생각이 없으며 그러한 협상에 관여할 뜻이 없다”며 “귀국길에 우리 국무위원장이 ‘이번과 같은 기차여행을 또 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라고 말했다”고 부정적 기류를 전했다.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서해 위성발사장 복구 움직임 등이 연이어 보도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8일 기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 그러나 내가 (미사일 발사)실험을 본다면 매우 실망스러울 것이다”라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어쨌든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에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관계는 좋다”고 말했고, 최선희 부상은 “두 최고지도자 간 개인적 관계는 여전히 좋고 궁합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훌륭하다”고 말했다. 결국 북미 최고지도자 간의 신뢰가 이어지고 있어 북미간 세기의 담판은 계속될 동력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구상대로 비핵화의 최종 상태와 ‘운영적 정의’, 그리고 로드맵과 동결에 합의하는 빅딜을 성사시키고, 이에 근거한 ‘충분히 괜찮은 합의’로 ‘연속적 조기 수확’을 낼 수 있다면 북미 간의 세기적인 담판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결렬 직후 기내에서 전화로 요청한 중재자 역할을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을 잇달아 만나 이같은 구상을 현실화시켜 낼 촉진자로서의 역할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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