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 정치학 박사(북한정치 전공) · 『수령국가』 저자 ·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북은 올해 1월 1일 신년사에 이어 1월 23일에는 신년사 관철을 위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정당, 단체 연합회의’를 개최하였는데, 여기서 4개항의 <전체 조선민족에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했고, 그 중 4항이 “전민족적 합의에 기초한 평화적인 통일방안을 마련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나가자!”였다.
  
그래서 이 글은 그 화답의 의미도 있지만, 그런 북의 호소가 아니더라도 한반도에서의 통일문제는 시급한 문제이다. 비정상성의 분단 70여년이라는 그 세월과, 또 그런 상황을 극복해야 될 (역사적) 소임이 촛불정부(촛불정부임을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에게는 분명히 있어서 그렇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평화’ 프레임에만 갇혀 통일의 ‘통’자도 꺼내지 못한다.
  
그런 만큼, 이 글은 문재인 정부가 다시 궤도지표를 재설정해내기 위한 그런 강제의 역할과 촛불민심의 통일열망을 재구축하기 위한 시론성격으로 구성되었음을 미리 밝혀두고자 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는 정부, 시민사회, 해외가 함께하는 통일방안 합의에 작은 촉매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필자 주
 
 글 싣는 순서는 아래와 같다.

제1부: 분단 그 너머  
제2부: 왜 한반도식 통일여야 하는가?(독일식 통일은 절대 불가능하다.)  
제3부: 역대정부의 통일방안에 대한 비판적 접근
제4부: 북의 연방제에 대한 옳은 이해
제5부: 자주적 민주정부와 연방연합제 통일정부의 상관성 
제6부: 6.15공동선언 2항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 
제7부: 연방연합제 통일방안에 대한 이론적 고찰 
제8부: 연방연합제 통일방안에 대한 실천적 방안모색 

 

  수많은 대북전문가들과 언론들이 이번 제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에 대한 관전평을 쏟아낸다. 당혹스러운 정부당국도 열심히 그 원인을 분석해낸다.  필자도 평소 이 주제에 대해 많은 글들을 섰고, 분석해왔음으로 이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꾹 눌러 참는다. 

  이유가 다른데 있지는 않다. 쓸 내용과 분석이 부족하다라기보다는 다른 요인 때문이다. 그 수많은 글들과 같이 본인 글 또한 정확한 이해를 방해할까 싶어서 그렇다. 다시 말해 분석이 모자라기보다는 정론직필이 모자라고,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음에도 미국의 눈치만 보려하는 문재인 정부와 당리당략으로만 이해하려는 천박한 정당인식이 그 문제여서 그렇다.  

  마찬가지로 치자면 시민사회단체도 예외이지 못하다. 자신의 장기인 ‘실천’을 통해 정세를 돌파할 생각은 않고, 평론가들처럼 ‘분석’만 해대고 관심만 가진다. 해서 전문가랍시고 어쭙잖은 또 다른 분석을 내놓기보다는, 대신 명확한 입장 하나만 밝히면서 그 실천을 호소하고자 한다. 그것이 더 나을듯해서 그렇다. 

  예의 그 한반도 문제는 ‘비핵화 → 평화 → 통일’이라는 단계로의 인식문법과 이행으로는 절대 잘 풀려지지 않는다. 그 반대, 통일이 평화와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그런 선순환 구조에 입각한 ‘통일↔평화와 비핵화’의 논리구조에 천착해야만 문제가 풀려질 수가 있다. 

  이는 현상에 의한 본질구조가 제대로 풀어지지 않을 때는 본질에 의한 본질구조를 더 정면으로 접근해 그 현상문제를 풀어가는 그런 철학적 상상력(중심 고리를 확 장악하는 방식)과 똑같은 발상이니, 지금과 같이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잘 풀려지지 않을 때는 그 비핵화가 도달하고자 하는 종착지 평화(→통일)의 관점에서 역발상해내고, 이를 실천적으로 풀어나가려는 지혜가 필요해서 그렇다.  

  즉, 비핵화 다음 평화, 그 다음 통일이라고 하는 그런 단계별 접근법 대신, 비핵화의 종착지가 평화이고, 그 평화의 최종종착지가 통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라면 그 최종 목적지인 통일의 관점에서 비핵화와 평화의 문제를 천착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어렵지도 않다. 통일의 이행과정에 비핵화와 평화의 문제를 맞물리게 하고, 그렇게 선순환 시키면서 비핵화와 평화 문제도 해결해나가자는 뜻이다. 만약 이 근원적 역발상이 정말 어렵다면 그 전 단계 ‘비핵화가 평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평화가 비핵화를 만든다’는 정도의 패러다임 전환만큼은 꼭 구현해내자.  

  이 전제하에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원인을 간략하게, 핵심적인 관전평만 하나 남겨놓으면 다음과 같다. 동시적으로 이는 이후 북핵 문제가 순항해야 하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 핵심 관전 포인트가 결국에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포기될 의사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는 사실만큼은 보다 더 분명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항상 이 관점에서 북미관계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오류가 절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바로미터는 1차 정상회담, 4개항 합의와 그 전문 내용에 힌트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조미관계수립이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호상 신뢰 구축이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성명한다.”

  논리구조로 보면 ‘선(先)신뢰 → 평화·번영 → 한반도 비핵화’라는 그런 인과관계 이행로드맵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즉, 북미관계에 있어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평화도, 한반도 비핵화도 나아갈 수 없다는 그런 논리이자 인식구조이다. 그래서 그 신뢰의 징표도 70여 년간 적대관계가 유지되어온 상황에서는 단계별 동시적이며 등가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이렇듯 앞으로의 비핵화 진전 여부 또한 이 관점에서 읽어 들어가면 절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게 될 것이다. ‘신뢰관계에 의해 평화가 오고, 그 평화에 의해 추동되는 비핵화.’ 
 
1. 서론: 북 체제 멸망(론)은 그 실체가 있는가? 

  너무나도 바빠야 할 2차 북미정상회담 준비기간 그 시기에도 미국의 지독병은 비켜가지 못하였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2월 21일(현지시간) <폭스 비즈니스 네트워크>와의 인터뷰에서 북 비핵화와 관련하여 "나는 1989년에 동독 국경을 순찰하는 젊은 군인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 장벽이 무너진 날에는 아무도 그 벽이 무너지리라고 예상하지 않았다"며 이같이 말하며 "아무도 북한이 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는 여기에서도 세계가 그런 날을 갖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은연중 북 체제 붕괴와 흡수통합의 희망을 얘기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미국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띈 국가 대부분은 거의 지독한 하나의 병을 갖고 있다. 마르크스 표현대로 은유한다면 “북한체제라는 유령은 언젠가는 반드시 멸망하게 되어 있다.”

  외교적으로는 불간섭, 비(非)전복 운운하지만, 뒤에서는 틈만 나면 북 체제 멸망(론)을 거론하고 신봉한다. 그것도 북 체제인지, 북 정권인지, 북 사회 그 자체인지 불명확하면서 말이다. 

  또한, 자본주의체제 우월이라는 그 희망적 사고와 기대는 사멸되지 않는다. 오히려 틈만 나면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배회한다. 넓고 깊다 못해 ‘무대뽀’다. 

  그 멸망함의 수준과 형태가 뭔지는 누구도 모르나, 어쨌든 북은 망해야만 된다는 강요적 지배가 온 세계를 유령처럼 떠돈다. 틈만 나면 부활의 기회를 갖고, 그렇게 북 체제 멸망이라는 희망적 사고가 북이 (경제적으로든 정치적이든) 조금만 어려워도 에스컬레이드 되어 증폭되는 그런 고장 난 시계이다.(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근거도 없다. 그냥 어려우니 그렇게 멸망할 거란다. 사회주의체제는 무조건 잘못된 체제이니 뭘 조금만 해도 개혁·개방되어 체제전환이 이뤄날 것으로 소동되고, 소련이 그러했고, 심지어 중국도 그러는 중이니 북도 언젠가는 반드시 그렇게 될 거란다. 

  참으로 변하지 않는 희망적 사고의 패러독스(paradox)이다. 

  단 한 번도 이제까지 자신들의 그러한 희망과 기대가 맞아 떨어진 적이 없거늘 희한하게도 해방이후 단 한 번도 지금까지 이 기대와 희망은 멈춰지지 않았고, 반대로 북은 해방이후 단 한 번도 정권의 위기와 체제위기를 겪지 않았다. 누가 더 진실의 편에 서 있는가? 그 물음 하에 본 주제글로 넘어가고자 한다.      

2. 독일식 통일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교훈화하여야 하는가? 

  단도직입적으로 우리가 독일통일의 경험과 교훈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국제사회의 지지확보를 통한 관계 개선 ▲평화적 통일 ▲교류협력 활성화를 통한 관계개선, 이 3가지 때문이다. 
 
  그렇게 그것까지는 좋은데, 그런데 문제는 위 3가지의 경험과 교훈을 수용함에 있어 한반도의 통일문제가 본질적으로 흡수통합으로 바로 연결된다는데 있다. 그 어디에도 흡수통합이라는 경험과 교훈은 없는데도 말이다. 즉, 3가지 경험과 교훈을 벤치마킹( bench marking)해야 한다는 것과 ‘독일식 통일’이 주는 함의가 흡수통합이라는 완전 다른 180° 결과수용인데도 전혀 문제의식을 안가진다는 말이다.  

  수용방식으로는 참 위험하다. 진작 수용해야 될 3가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 없고, 오직 독일통일의 결과 ‘흡수통합’에만 더 주목해서 그것만을 결론적으로 인식하려는 그런 착시인식 때문이다. 제아무리 백번 양보하여 보더라도 독일통일의 경험과 교훈 위 3가지 중에서 ‘흡수통합’과는 하등 연관이 없거늘, 그렇다면 우리가 더 주목해야 되는 것은 ‘독일식 통일’의 경험과 교훈을 그 결과로써 존재하는 그 잘못된 ‘흡수통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행방법으로 존재했던 ‘평화적 통일·국제사회의 지지·교류협력 활성화’에 더 관심 갖고 주목해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독일식 통일=흡수통합’이라는 인식구조는 매우 위험하고도, 잘못된 것이니 그것이 곧 우리의 통일방식과 바로 등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 사실을 명확히 전제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 첫째에는, 사전적 개념으로도 ‘독일통일’ 하면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서독으로의 흡수통합’을 일컫고, 그 결과에는 ‘통일후유증을 심각하게 유발시킨 것’으로 정의할 수가 있어서 그렇다. 즉, 예상하지 못한 흡수통합의 결과가 통일방식의 교과서가 될 수 없음이다. 

  구체적으로는 동독 재건과 동독 실업자의 생계지원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재원이 소요된 경제적 후유증과, 동독 주민들이 서독체제 적응과정에서 겪게 된 어려움과 갈등에서 비롯된 사회적·심리적 후유증 등이 그것이다. 이른바 1등 국민, 2등 국민 논쟁이 그것이다. 

  독일식 흡수통합이 왜 우리 모델이 될 수가 없는지 그 이유 다음으로는, ‘우리식; 한반도식’ 통일의 상대인 북의 입장이 너무나도 명백하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 

  “도이췰란드(독일)의 통일은 철두철미 일방이 타방의 사상과 제도를 집어삼킨 흡수통일”이라며 “그것이 도이췰란드에서는 통할 수 있어도 우리에게는 절대 통할 수 없다”고 밝히고, 이어 “(독일의 경험을 살려 통일시대를 열겠다는 주장은) 군대와 인민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며 천추에 용납 못할 정치적 도발”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로동신문>, 2014.4.3.)

  그 셋째에는, 독일국민들 스스로가 평가한 독일통일에 대한 입장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있어서 그렇다. 

  <시사저널> 2000년 6월 29일자는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 밑에서 동서독 협상의 막후 주역으로 활약했던 인물인 에곤 바가 독일의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와 가진 대담기사를 실었는데, 여기서 그는 “한국이 독일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독일처럼 통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 10년 동안은 연방 체제를 유지하고 그 다음 10년은 교류를 깊게 하며, 한 세대에 걸쳐 접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렇듯 ‘독일식 통일’은 ▲국제사회의 지지확보를 통한 관계 개선 ▲평화적 통일 ▲교류협력 활성화를 통한 관계개선, 이 3가지 이행과정은 대단히 모범적으로 교훈화해야 하지만, 그 결과로서 존재하는 ‘흡수통합’은 분명 권장할만한 통일방식이 아니다.   

  문제점은 또 있다. 동독을 주권국가로 인정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하는 그런 문제인데, 결론은 브란트 정부를 포함한 그 어떤 서독정부도 동독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흡수통합과도 분명 연관관계가 있음이다. 

  이를 한반도 상황과 연관시켜보면 서독의 동방정책; 화해·협력의 결과로 포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의 서독의 ‘힘의 우위‘ ’정책이라는 점에서 대한민국도 과연 지금까지의 화해·협력정책이 평화번영정책으로 잘 포장되어 그런 측면에서 서독의 그 예의 ‘잘못된’ 힘의 우위정책 그 연장선상에 있지는 않았는지 심각하게 성찰해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그 결과로서 존재하는 북 체제전환과 더 나아가서는 흡수통합을 그 전제로 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매우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그래놓고 보면 보다 분명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그 어느 국가가 통일을 원한다면서 평화적 방식이 아닌, 전쟁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으며, 그 어느 국가가 국제사회의 지지를 외면할 수 있으며, 그 어느 국가가 그 대상국가와 교류협력 없이 대립과 갈등으로 자신들의 분단문제를 극복할 수 있겠는가? 
  
  해서 위 독일통일의 경험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평화적 통일, 교류협력 활성화, 국제사회의 지지이고, 이는 분단국가라면 반드시 그런 이행과정을 거쳐 통일로 진입해야하는 그런 이행방법론이다. 동시에 ‘독일식 통일’ 경험이 소중하기는 하지만, 그것과 우리가 착시하고 혼동해서는 안 되는 것은 이른바 모든 통합은 곧 흡수통합이라는 결과밖에 없는 걸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각이 독일의 통일경험 수용을 거부하는 것도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하기 위해 우선은, 대비를 정확하게 해야 하겠다. 통일이행 경로와 통일방식, 그 통일 이후의 상은 전혀 다른 차원의 대비법이고, 비교이기에 이를 바로잡아 내어야만 한다. 이른바 방법론과 본질을 동등의 위치에서 비교하는 것은 그 비교설정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과, 따라서 성립될 수 없는 모순적 대비법임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두 국가; 한반도와 독일이 분단되는 그 과정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그 극복방식과 결론도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착목하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그 첫째가 분단의 과정과 관련되어 있는데, 이는 아시다시피 독일의 분단은 전쟁 패전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응징성격이 강하다. 반면, 북한은 전쟁을 일으킨 전쟁국가도, 패전을 책임져야할 패전국도 아니었다. 즉, 전쟁을 일으킨 국가와 전쟁의 피해국가, 패전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국가와 패전과는 하등 상관없는 그런 국가가 어찌 똑같은 통일의 방식을 갖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당시 상항에 대한 간략한 해설: 제1차 세계대전 뒤 베르사유 체제가 등장했지만, 그 결과는 패전국 독일을 유럽에서 지정학적으로 더 강력하게 만든 역설이 발생하였다. 유일 승전국 미국은 자신이 주도한 국제연맹을 의회에서 비토하고, 다시 아메리카대륙으로 철수했고, 러시아는 볼셰비키혁명으로 자발적으로 국제체제에서 철수했다. 

영국은 힘이 빠진데다, 유럽대륙에 대한 ‘영예로운 고립’ 정책을 고수했다. 제1차 세계대전 뒤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세워진 동유럽 소국들은 독일을 견제할 힘이 없었다. 유럽에서 독일을 견제할 유일한 세력은 허약한 프랑스뿐이었다. 그래서 결과는 나치 독일의 탄생이었다. 

그 토대 위에서 또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즉, 통일독일은 국제사회의 승인이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남과 북의 통일은 그러한 절차(국제사회의 승인)는 필요 없고, 오히려 민족의 통합과 통일을 가로막은 외세의 입김과 간섭을 극복하는 계기로 작용되어져야만 한다. 

  그 둘째에는, 체제의 내구성에 있어 동독과 북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동독은 비자발적이면서도 비자립적 사회주의체제였다. 반면 북은 자발적이면서도 자주·자립·자강의 사회주의체제이다. 

  차이는 또 있다. 동독은 소련의 위성국가로서의 사회주의국가체제였다. 그래서 소련의 입김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 북은 소련의 위성국가도 아니며, 그러니 소련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나타날 수 있는 지표는 위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발생되는 차이의 총합만큼이나 크다. 체제내구성 문제가 그 정점이다. 동독은 이념적 측면에서나, 경제 자립적 측면에서나, 정치·군사적 자강의 측면에서나 북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북은 자신들의 지도자가 창시한 주체사상을 사회주의체제의 지도이념으로 명확히 하고 있으며, 자강력 제일주의를 그 근간으로 하는 자립적 민족경제론을 굳건히 세웠고, 핵무력을 근간으로  하는 자강의 군사강국에서도 동독을 압도한다. 즉,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셋째에는, 천문학적인 통일비용(분단비용)을 대한민국 정부가 감당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 알다시피 독일의 경제력과 대한민국의 경제력에는 큰 차이가 있다. 기억과 경험도 서독으로의 독일통일 당시 독일경제가 휘청거렸으며, 그로인한 ‘2등 국민’론이 대두되어 동서독간의 갈등이 극심했다. 

  실제 서독은 동독을 흡수하면서 그 재건비용이 약 1조 마르크로 예상했으나, 결과는 2조 마르크 수준인 한화 1,000조원을 상회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었다. 

3. 그래서 우리식; 한반도식 통일이 필요하다

  “위 2”에서의 분석을 토대로 우리식; 한반도식 통일을 얘기하려면 적어도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조합은 가능할 듯하다.   
    
  (1)첫째는 통일의 본령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는 분단의 과정이 독일과는 다르니, 그 극복방안도 달라야 하는 이유에서 출발한다. 

  (2)둘째는 전범국도 패전국도 아니니,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는 자주적 통일의 방식이어야 한다.

  (3)셋째는 분단 70여년의 역사와 그 국가성으로 볼 때 남과 북의 통일은 두 체제가 공존하는 방식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위 3가지 결론을 위해 우리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을 소환해보자. 아니, 재해석해 내어보자. 

   어떻게? 사회주의보다 자유민주주의가 낫다는 시각, 최소 30배 이상의 경제적 우위라는 사실 때문에 그로 인해 당연히 대한민국 중심의 흡수통합이 가능할 것이라는 그런 막연한 상상력 대신, 즉 ‘흡수통합을 어떻게 하면 이뤄낼 수 있을까?’ 그런 것을 고민하고 방법을 찾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현실의 두 체제를 인정하고, 그 두 체제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그런, ‘두 체제가 공존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내는 그런데 주력해야 하는 것으로 말이다.

  아시다시피 그 근거도 보다 확실하다. ‘<연재> 연방연합 통일방안에 대한 소고 (1)’의 <분단 그 너머>에서 이미 밝혔듯이 남과 북은 이미 다른 그 역사와 체제의 길을 걷고 있는 그 상황이고, 그런 상황 하에서 특정 국가체제로의 이념과 제도로의 흡수통합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이미 핵보유 국가이면서 전략국가이고, 수령 중심의 사회주의체제이자 사회주의 강성국가를 그 국가목표로 정하고 있는 그런 국가(북)가 절대 사회주의체제를 포기할리 만무하며, 비록 기형적이나(재벌 중심적인 자본주의체제) 세계 10위 내외의 경제대국이 된 그런 국가(남)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포기하기란 상상 그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우리에겐 우리의 통일 길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이는 우리가 독일의 통일경험에서 축적된 그 교류협력 활성화와 국제사회 지지, 평화적 통일은 적극 수용하되, 그것과는 달리 우리 한반도가 처해진 환경, 분단과정, 두 국가: 남과 북의 체제안정성 등 그런 것들을 고려해볼 때 ‘잘못된’ 독일통일의 최종종착지였던 서독으로의 흡수통합이 아닌, 하나의 민족 아래 하나의 국가가 공존하는 그런 연방연합 통일방식의 유일성과 현실성에 주목해야 한다. 

  이른바, 1민족 1국가 2체제 2정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런 통일방안을 연구, 분석하고 체계화하여 국민적 동의를 얻어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는 부경대 기초교양교육원 외래교수로 출강한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자문위원/6.15부산본부 자문위원/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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