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이자 사회운동가인 문동환 목사가 9일 오후 5시 50분 영면했다. 향년 98세. 유족으로는 부인 문혜림과 아들 창근·태근, 딸 영혜·영미 등이 있다. 고인의 형은 고 문익환 목사이고 배우 문성근씨가 조카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 장례식장 11호실에 마련됐고, 11일 입관예배, 12일 서울 수유리 한신대학원 채플실에서 장례예배를 거쳐 12일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일제시기인 1921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출생해 명동학교와 은진중학교를 다녔다. 명동학교는 형인 문익환과 윤동주, 나운규 등이 공부했고, 용정 은진중학교는 안병무, 강원용 등이 수학했다.

문동환 목사는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명동의 얼’이 대단히 중요해요. 명동 정신이 우리 삶을 좌우하는 터전을 마련해 일생을 갔어요.”라고 말한 바 있다. [관련기사 보기]

▲ 2002년 형인 문익환 목사와 함께 나고 자란 명동촌을 박용길 장로 등 가족들과 함께 찾았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일제시기 일본에 유학해 신학을 공부했고, 1951년 미국 유학을 떠나 박사학위를 받고 1961년 모교인 한신대 교수가 돼 귀국했다. 그러나 암울한 조국의 현실에 저항하며 1975년 안병무 교수와 더불처 첫 해직교수가 됐고,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감옥에 갇히는 등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결국 미국 망명을 택했다가 역시 망명 중인 김대중과 인연을 맺었고, 이후 평민당 부총재를 맡기도 했다. 또한 미국인 부인 문혜림(페이문)을 만났다.

말년에는 미국에서 장기 거주하기도 했으며, 4년전 『예수냐 바울이냐』를 출간했다.

고인은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민족의 앞날에 대해 “앞으로도 험산준령을 넘을 겁니다. 거기에 불평하지 말고 껴안고 의미를 물으며 대결해 나가면 이 민족이 인류사에 기여할 수 있을 거예요. 큰 꿈을 갖고 도전을 성실하게 겪어나가면 새날이 올 겁니다.”라고 말했다.

“태어나는 새날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종합으로 남쪽은 개인이 피어나면서 동시에 공동체가 되고 북쪽은 공동체를 강조하면서 개인이 묵살되지 않고, 그런 새 내일을 지향해 나가야 합니다.”(통일뉴스, 200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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