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경 / 농부

 

살구나무를 찾아서 살구나무 동산을 만들고 있다. 올해는 살구나무 마을을 만들려고 한다. 올해 우리 마을에는 많은 살구나무들이 새로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인데, 나는 그것이 북측 회령 백살구나무이기를 바래서, 그것을 구하려 안타깝게 뛰어다니고 있다.

사라진 살구나무를 찾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살구나무를 잃어버렸듯이 아주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무엇을 위하여 그 많은 것들을 놓아버린 것일까? 여기 연재할 글들은 살구나무처럼 우리가 잃은 것들, 잊은 것들, 두고 온 것들에 대한 진지한 호명이다. / 필자

 

▲ 회령 오산덕의 백살구나무. [통일뉴스 자료사진]

봄이 빛의 속도로 오고있다. 며칠 동안 손바닥이 미어지도록 벗겨놓은 뽕나무 뿌리껍질에 벌들이 붕붕거리며 날아들고, 논도랑마다 개구리 울음이 악마구리 끓듯 소란하다. 그러니 벌써 경칩이다.  왔나 싶으면 가는 것이 봄이다. 어리버리한 농부이지만, 그것도 5년차에 접어드니 봄이 눈깜짝할 새에 가버린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다. 지난 겨울에 비하면 이번 겨울은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추운 것도 잠깐이고 눈도 푼푼하게 구경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가물고 벌레가 창궐할 것이라고 걱정들을 한다. 올해 봄은 이래저래 걱정으로 시작되나 보다.

백(白)살구, 백(百)살구

올봄 나에게는 큰 걱정이 있다. 우리 마을은 올해 마을 전체에 백살구나무를 심어 남쪽의 ‘백살구 마을’을 만들려는 사업계획을 갖고있다. 바로 그 사업에 꼭 있어야 할 ‘회령 백살구나무’를 구할 수 있게 되겠는지 아직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주 북미정상회담이 무사히 끝나면 빠르게 추진될 수 있으리라 예견하였는데, 일은 기대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회담의 결과가 더욱 안타깝고, 우리 민족끼리의 일인데도 거기에 기대어야 하는 현실이 뼈아프고 기가 막히다.

회령 백살구나무를 알게 된 것은 토종 살구나무들을 공부하면서부터이다. 약으로 쓰려는 살구씨앗이 상업적으로 개량된 살구들에서는 매우 부실하다는 것을 알고 토종 나무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중 회령 백살구나무가 훌륭한 나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회령은 함경북도 두만강변에 자리잡은 우리나라 최북단의 시이다. 회령은 예로부터 ‘회령3미’로 이름났는데, 백살구의 아름다움을 일컫는 ‘행미’와, 유명한 회령자기를 만드는 흙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토미’, 그리고 백살구 고장 여성의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녀미’가 그것이다. 일제시기 거의 찍어져 나가 사라질 뻔했던 백살구나무가 해방과 함께 살아났다 하니, 해방이 아니었더라면 유명한 회령3미가 회령1미로 쪼그라들 뻔한 셈이다. 북은 그 때 살아남은 20여 그루의 백살구나무를 보호하고 대량으로 증식하여 지금은 회령의 산과 들 곳곳에 백살구 화원이 펼쳐져 있다 한다. 천연기념물 439호로 지정된 백살구나무는 꽃이 희어서 백살구요, 속살이 희어서 백살구이며, 먹으면 백년장수를 할 수 있다 해서 백살구라 한다니, 특별한 이름에 담겨있는 그 고장 사람들의 특별한 애착과 사랑이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가 하필이면 살구나무를 심어 살구마을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살구나무가 갖고 있는 상징을 되살리고 그 유용함을 되찾고자 함이다. 살구나무는 고향의 나무이고, 매우 유용한 나무임에도, 사라져가고 있는 나무이다. 그래서 살구나무를 자원으로 살구마을을 꾸리는 일은, 비단 경제적인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우리 고향마을의 풍경을 재현하고, 건강한 삶을 가꾸어간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살구나무 중에서도 구태여 백살구나무를 심으려는 것은, 그 나무가 우리의 토착종 중에서 단연 손꼽을 수 있는 좋은 나무이고, 우리 마을의 자연조건에 잘 맞을 것이라 분석되기 때문이며, 나아가 남쪽에 심어진 북쪽의 백살구나무는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통일에의 염원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징이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살구나무는 고향의 나무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없는 밤을 꽃 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는 초당마다 정이 더욱 익으리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이호우의 유명한 시조 「살구꽃 핀 마을」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가 보아도 마음을 흐뭇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시다. 제목도 그렇지만 이 시가 자아내는 우리네 고향의 정취를 이렇게 소박하고 정감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살구나무다. 이 시가 그토록 숱한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것은, 시가 펼쳐놓는 풍경과 마음이 우리들의 지나간 경험과 일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살구나무는 고향의 나무이다. 노래에도 나오듯이 ‘고향의 봄’ 하면 ‘살구꽃’을 떠올릴 정도로,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은 고향의 이미지는 마을마다 집집마다 살구꽃이 환하게 피어난 아늑한 풍경이다. 또한 본격적인 무더위로 접어드는 초여름부터 고운 빛깔로 익어가는 살구의 새콤달콤한 맛은, 듣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이고, 대뜸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대표적인 고향의 맛 중 하나이다.

살구나무는 그 원산지가 우리나라라는 학설이 나올 정도로 방방곡곡에 가장 흔한 나무 중의 하나였다. 살구나무는 남북으로 긴 우리나라 지형에서 북방한계선과 남방한계선을 갖지 않고 모든 위도 상에서 재배가 가능한 몇 안되는 과실나무 중 하나이다. 살구나무가 대표적인 고향의 나무로 된 것도 바로 온 나라를 통틀어 어느 지역에서나 자라는 나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마을을 이룬 어디에나 그 고장의 풍토에 맞는 토종 살구나무들이 자라났다.

그래서 살구는 대추, 복숭아, 자두, 밤과 함께 5과라 하여, 우리들이 전통적으로 먹어온 가장 대표적인 과일의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했던 것이다. 그런데 다른 과일들은 여전히 제 계절을 어기지 않고 우리 먹거리의 중요한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살구만은 언제부터인지 찾아보기 힘든 과일이 되었다. 고향의 나무를 잃어버리는 것은 고향을 잃어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 살구 열매. [사진 출처-픽사베이]

살구나무는 유용한 나무

모든 과실나무들은 열매로서 그 진가를 보여준다. 과실나무들은 각각 나름대로의 쓰임새를 갖고 있지만, 살구만큼 사람들에게 유용한 열매를 선사하는 나무는 드물다. 살구나무와 사꾸라나무는 같은 장미과에 속하는 나무로서 꽃이 피어나는 봄날에는 비슷한 풍광을 보여주지만, 열매를 맺는 시기가 되면 비로소 비교자체가 불가능한 차이를 드러낸다. 사꾸라나무는 아이들 주전부리감으로도 성차지 않는 버찌라는 보잘것없는 열매를 너저분하게 떨굴 뿐이지만, 살구는 고운 황적색 빛깔의 보석같은 열매를 풍성하게 매단다.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린 옛 민화에 오막살이와 함께 으레 살구꽃이 등장하듯이, 살구는 소박하게 살아온 서민들과 함께 한 나무다. 봄에는 화사한 꽃으로 마을에 환한 풍경을 지어주고, 농사일이 한창인 여름에는 먹음직스러운 열매를 풍성하게 매달아주는 고마운 나무였으며, 부지깽이도 뛴다는 농번기에 과도하게 쌓인 피로를 풀어주고 떨어진 체력을 보강해주는 명약과도 같은 나무였다.

7,000년 전 신석기 초기의 유적에서 탄화된 살구씨가 발견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살구가 그토록 오랫동안 사람과 동행한 것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나는 강한 적응력과 그 유용함 때문이다. 살구는 사람과 함께한 오랜 역사로 인해 그에 얽힌 이야기도 많고 그 유용함도 잘 알려져 있다. 중국의 옛 문헌 ‘신선전’에 실린 의사 ‘동봉’의 이야기는 살구의 유용함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이야기이다.

동봉은 여산에 있으면서 환자를 치료하였는데 치료비를 받지 않았다. 중환자가 나으면 살구나무 5그루를 심게 하고 경환자가 나으면 1그루씩 심게 하였다. 몇 년 뒤에 10만여 그루의 살구나무가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많은 새와 짐승이 살구나무 밑으로 모여드니 풀이 나지 않고 밭을 간 것 같았다.

이때에 살구가 많이 익으니 창고를 짓고 말하기를, 살구를 사고자 하는 사람은 곡식 1그릇을 놓고 살구 1그릇을 가져가도록 하라고 하였다. 간혹 곡식을 적게 놓고 살구를 많이 가져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때 3-4마리의 호랑이들이 소리를 내면서 쫓아왔다. 사람이 크게 놀라 급히 살구를 가지고 달렸지만 살구가 기울어져 흘리면 호랑이가 환수해갔다. 집에 와서 살구를 헤아리니 부족하게 낸 곡식의 양과 일치하였다. 그리고 간혹 살구를 훔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호랑이가 집에까지 쫓아와서 물었으므로 거의 죽게 되었다. 이때 집안사람이 살구를 훔친 것을 알고 살구를 돌려주며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하였더니 살구를 훔친 사람이 즉시 살아났다.

이러한 일이 있고 난 후에 살구를 사려는 사람은 스스로 양을 정확하게 하여 감히 기만하지를 못하였다. 동봉이 매년 살구를 팔아 얻은 곡식으로 빈궁한 사람을 구휼하고 여행객에 나누어주니 1년에 3천 곡이나 되었으나 오히려 남아있는 것이 매우 많았다.

사람들은 이 숲을 ‘의사 동봉신선의 살구나무숲(행림 杏林)’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가 이렇게 살구나무를 심게 한 이유는 살구가 구황식품으로 가난한 백성을 살리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의원을 ‘행림’이라고 칭하는 연유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진정한 의술을 펴는 의원을 역시 ‘행림’이라 하고, 한의대 축제의 대부분을 ‘행림제’ 라 이름 지은 것도, 한의사협회의 예전 상징이 살구꽃 모양이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살구나무는 미인의 나무, 장수의 나무

우리나라에서도 살구는 오랜 옛날부터 익히 먹어온 대표적인 과실이다. 1477년 편찬된 「의방유취」에는 ‘음식으로 오래 사는 방법’이 적혀 있는데, 여기에 살구와 살구씨가 중요한 소재로 소개된다. 1433년의 「향약집성방」과 1613년의 「동의보감」에도 살구와 살구씨의 효능과 먹는 방법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동쪽으로 뻗은 가지에서 살구 다섯 알을 따내 씨를 발라 동쪽에서 흐르는 물을 길어 담가두었다가, 이른 새벽에 이를 잘 씹어 먹으면 오장의 잡물을 씻어내고 육부의 풍을 모두 몰아내며 눈을 밝게 할 수 있다.

이시진이 쓴 「본초강목」에는 위와 같이 살구씨를 이용한 치료방법이 2백여 가지나 쓰여 있다. 동양권에서는 이렇게 일찍부터 살구씨를 ‘행인’이라 하여 약재로 널리 써왔고, 이러한 역사자료들은 우리 선조들이 살구와 살구씨를 일찍부터 건강과 장수에 널리 이용했음을 보여준다.

백살구의 고장에 여인들의 아름다움이 함께 있듯이, 예로부터 ‘큰 살구나무가 있는 집에는 반드시 미인이 있다’는 말이 전해진다. 또한 세계적인 장수마을로 유명한 훈자, 피지, 라다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살구’다. 암환자가 없고 평균수명이 120세라는 훈자, 그 놀라운 건강장수 비결의 핵심에 살구가 있다는 것은 이미 여러 학자들의 연구논문과 살구성분 분석에 의해 밝혀져 있다.

〈 과일들의 성분비교표:100g당 〉

 

수분(g)

단백질(g)

지방(g)

당질(g)

섬유소(g)

무기질(g)

Ca(mg)

Na(mg)

P(mg)

Fe(mg)

산도

(지수)

살구

82.2

1.7

2.8

10

1.7

1.6

65

12

130

2.7

90.4

88.9

0.8

0.3

9.3

0.3

0.4

14

4

12

0.2

14.3

89.1

0.3

0.2

9.4

0.7

12.3

2

9

11

0.3

 

82.2

0.6

0.1

15.7

1.0

0.4

10

 

26

0.1

 

복숭아

89.4

0.6

0.1

8.9

0.5

0.5

3

2

13

0.3

3.4

사과

87.9

0.4

0.5

10.4

0.6

0.2

3

2

4

0.2

7.9

포도

81.5

0.5

0.1

17.1

0.3

0.5

5

7

14

0.3

14

위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다른 과일에 비해 많은 함량을 가진 단백질에는 세포구성에 꼭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월등하게 높은 지방질은 올레인산, 리놀산, 리놀렌산 등의 유익한 불포화지방산이며, 이것들은 많은 함량을 가진 레몬산, 비타민 A, C, E와 특히 비타민 B군들과 함께 피 속 콜레스테롤 함량을 낮추어 피를 맑게 하고 모세혈관 순환을 좋게 하여 피부를 맑고 환하게 만들어줄 뿐 아니라, 동맥경화증을 예방 치료하는 데서도 뚜렷한 효과를 보인다. 또한 칼슘, 철, 인 등 월등하게 풍부한 각종 무기질은 뼈를 튼튼하게 하고 빈혈을 예방 치료하여 젊음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살구의 진가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이 풍부한 각종 유기산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많이 포함된 레몬산은 칼슘의 흡수를 좋게 하여 뼈의 노화나 골다공증을 예방하며, 젖산과 같은 피로물질을 배출하고 몸 안의 독성물질을 제거하여 산성으로 기울어진 체액을 약알칼리성으로 변화시켜 늙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한다.

결국 살구는 풍부한 유기산과 아미노산, 비타민과 무기질의 조화로운 성분들과 이 성분들의 이상적인 비율로, 우리 몸을 보호하고 활력을 높여주며, 인체의 노화를 막아주는 으뜸가는 과일이라 할 수 있다.

살구나무는 해독제, 항암제

15세기 편찬된 「의방유취」에는 말라리아를 ‘살구씨’로 치료한다는 비방이 나오는데, 이처럼 살구와 살구씨는 특별한 해독작용을 갖고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콜레라, 티푸스 등 전염병을 치료하는 데 쓰였거니와, 현대적 실험에서도 살구엑기스에 의해 대장균, 황색포도상구균, 장티프스균, 콜레라균 등이 평균 5분 이내로 완벽하게 살균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살구가 스트론튬89를 체외로 배설시켜 방사능 피해도 막아준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게다가 최근에 와서 밝혀지는 살구의 특별한 효능은 바로 항암효과이다. 살구의 항암효과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논문들이 발표되었고 세계적으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살구과육에 풍부하게 포함된 베타카로틴의 항암효과가 일찌감치 학계의 주목을 받았을 뿐 아니라, 최근에 와서는 살구씨에 함유된 아미그달린의 항암작용이 특별한 주목을 받고있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아미그달린’ 성분을 ‘레이어트릴’ 또는 ‘비타민B17’이라 명명하여 항암치료에 사용하고 있으며, 이 분야의 연구와 임상이 가장 실효성 있게 진행된 곳이 바로 북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유명한 다큐멘터리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에드워드 그리핀은 그의 저서 「암없는 세상」(또는 암세포 저격수 비타민B17)에서, 북의 만년제약에서 살구씨에서 추출한 아미그달린(비타민 B17) 성분을 이용하여 항암 정맥주사용 치료제를 개발했다고 쓰고 있다.

‘살구나무가 많은 마을에는 염병이 못 들어온다.’, ‘살구는 세 가지 독, 음식의 독, 물의 독, 혈액의 독을 막아준다.’거나, ‘큰 살구나무가 있는 집에는 반드시 미인이 있다.’, ‘살구열매가 많이 달리는 해에는 병충해가 없어 풍년이 든다’는 등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살구에 대한 이와 같은 이야기들은 모두 현대적 연구실험에 의해 과학적 사실로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살구라는 낱말의 유래가 ‘개를 죽인다’는 ‘살구 殺狗’일까? 농업사학자인 김종덕 선생은 그것은 서로 상극인 살구와 개고기에 관한 옛 비방을 잘못 이해하여 생겨난 오류라고 한다. 그는, 살구는 「 ᄉᆞᆯ고 」에서 나온 순수한 우리말로 ‘ᄉᆞᆯ고→살고→살구’로 변해왔음을 집필한 논문에 밝혀놓고 있다. 이렇게 살구는 말의 유래마저도 ‘죽고’가 아니라 ‘살고’이니, 살구는 그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귀한 열매가 아니겠나.

작년에 심은 살구나무의 눈이 조금씩 부풀어오른다. 겨우내 가지치기를 하고 부엽토와 표고목톱밥을 깔아주며 정성을 바친 그 나무들에도 물이 오르기 시작했나 보다. 아직 가지뿐인 어린 나무를 바라보면서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는 앞날을 그려보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사람을 즐겁게 만든다. 올해 우리 마을에 백살구나무들을 심을 수 있게 될까? 오늘도 머리 속은 회령 백살구나무에 대한 생각으로 빈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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