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일 / 전 한신대학교 교수

 

두 길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왕청은 연길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서 버스로 가면 약 두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베트남 하노이는 평양에서 4000여 키로 기차로 65시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왕청에 있는 다홍왜란 곳에는 할아버지가 1935년 2월에 소위 ‘다홍왜 회의’ 참가차 갔었다. 베트남의 하노이에는 그의 손자가 2019년 2월에 소위 ‘2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간 곳이다.

두 회담은 여러 가지로 다른 점도 있지만 같은 점도 있다. 다홍왜 회의는 중국 공산당 만주성당 파견원 위증민을 비롯하여 왕윤성, 주수동, 조아범, 왕덕태, 종자운 등 거물급 동만당 특위 간부 20여명이 대거 참석한 역사적인 회의로서, 일컬어 ‘다홍왜 회의’라고 한다.

‘2차 북미정상회담’ 역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는, 그리고 3000여명 외신기자들이 취재하는, 역사적 회의로서 일컬어 ‘하노이 회담’이라고 한다.

두 회담이 다른 점부터 보자. 다홍왜 회의 당시 할아버지의 회담 대상은 중국공산당이었고, 중국 역시 일본의 침략을 받고 있을 당시였다. 반면에 미국은 지금 초강대국가로 세계를 주름 잡는 나라이다. 손자 때는 할아버지 때와는 달리 독립국가로 유엔에 가입돼 대등한 자격으로 미국을 만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점은 모두 ‘담판’이다.

1934년 말-1935년 초까지 할아버지는 장질부사에 걸려 병석에 앓고 있었다. 그러나 손자는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60여 시간의 기차 여행을 견딜 정도이다. 다홍왜 회의는 민생단 문제가 주 안건이었고, 하노이 회담은 핵문제가 주 안건이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열이 40도나 오르내리는 몸 상태로 그것도 걸어서 왜 다홍왜에 꼭 갔어야 했는가? 건강 상태도 문제이지만 4중대 정치지도원 등이 분위기도 심상치 않으니 가지 말라고 극구 붙잡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회의가 올가미일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우려란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중국 공산당이 현장에서 민생단 혐의로 체포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민생단 사건이란 일본이 만주에 거주하는 조선 사람들의 민생과 복지를 돌본다고 1930년대 초에 일본이 만든 위장 단체이다. 심지어는 오족협화니 간도 땅 찾아 준다는 등 귀에 솔깃한 말만 다 골라 일본이 만든 가짜 단체가 민생단이다. 국내의 이광수와 최남선 같은 지식인마저 이 말에 솔깃해 친일행각을 시작하게 할 정도이었다.

당연히 중국 공산당은 조선 사람들을 일본의 앞잡이같이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중공당원이 조선 공산당원을 무려 5000여명 이상 잡아 죽인 사건이 민생단 사건이다. 이때에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과 이찬 등도 중공당에 의해 희생당했다.

이 사건은 오늘의 중국과 북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투시경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중공당은 김일성 주석이 김정부 갑부로부터 돈을 받아 군복을 지어 입힌 것을 두고 민생단 혐의를 씌었다. 이 지경에 다홍왜 회의에 간다는 것은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과 같을 정도로 위험천만이었다.

이때의 심경을 할아버지는 “나는 좌경의 포위 속에서 전체를 향해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할 것이다. 논쟁은 나를 단죄하는 성토장으로 되고, 회의장은 나를 매장해버리는 재판장으로도 변할 수 있다. ‘민생단’이라고 하면서 나를 정치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매장해 버리려는 극단한 시도도 있을 우려가 없이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주변의 전우들은 한결같이 우려하면서 사색이 되어 다홍왜로 가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길을 떠났다”, “이 길은 죽든지 살든지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다. 내가 만일 다홍왜로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멸을 가져 올 뿐이다. ... 대결은 피할 수 없고 흑백은 반드시 갈라져야 한다.” 무모한 대결인가 혹은 만용인가.

84년이 지난 즈음 그 할아버지의 손자 역시 “대결은 피할 수 없고 흑백은 반드시 달라져야한다”는 심경으로 하노이로 떠났다.

무모한 대결이 아니고 만용이 아닌 것이, 할아버지에게는 전략이 있었고 담론이 있었다. 그것은 같이 대동한 전우들로 회의장 자체를 감싸 버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중공당이 전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회의장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회의장을 무장 포위했으니, 오히려 중공당 자체가 독안의 쥐가 되고 말았다. 고 이창기는 이를 두고 북한 ‘선군정치’의 시작이라고 한다.

이 빠진 호랑이 앞에 어떤 동물들이 두려워하랴. 총대로 상대를 먼저 제압해라. 이것이 선군정치의 모범이다.

손자는 핵으로 기선을 잡고 하노이로 갔다. 그러나 그 핵은 결코 상대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고 억울한 누명으로 올가미 씌우지 말라는 경고이다. 할아버지도 총구로 상대를 협박이나 위협하지 않았다. 회의장을 에워 싸 놓고 담론으로 상대방을 설득하였다.

그에게는 특유한 담론이 있었다. 그 담론은 해학이고 웃음이고 여유였다. 중공당의 종자운은 악랄하게 민생단 혐의를 뒤집어씌우려 동만에 있는 조선사람들 80-90%가 민생단이라고 보고하였다. 민생단 씨종자들을 뿌리째 뽑아 씨를 말리려 했다.

종자운은 1980년대 청문회에 나와 “모르고 한 짓”이라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종자운과 동장영 등은 우리 역사에서 잊어서는 안 될 인물들이다. 우리는 지금 친일파 청산에만 열을 올리고 있지만 같은 시기에 중국 공산당이 우리 애국자들을 처형한 민생단 사건과 함께 그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할아버지는 일제와의 싸움보다 중공당과 극단적 좌경들과의 싸움이 더 힘들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러면 할아버지의 구체적인 담론은 무엇인가? 그 담론을 아는 것은 하노이에서 그의 손자가 회담에 임하는 데 귀감이 될 수 있다.

할아버지는 중공당의 논리를 자가당착에 빠뜨리게 만들었다. 입이 열 개라고 할 말이 없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동만에서 활동하는 조선혁명가들의 대부분이 민생단이라면 이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나와 기타 조선동지들도 다 민생단으로 된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당신들은 지금 민생단과 마주 앉아 회의를 하는가? 우리가 민생단이라면 무엇 때문에 감옥에 가두거나 죽이지 않고 여기다 불러다 놓고 정치를 상론하는가?”

종자운이 김일성 일행을 두고 민생단이라고 하자 민생단과 앉아 회의 하는 자체가 웃음거리가 아닌가 하고 자기모순에 빠지게 했다. 종자운의 논리대로 살아있는 우리들이 모두 민생단이라면 혁명을 위해 이미 죽은 사람들도 민생단이란 말인데. ‘민생단’이란 말 자체가 제 살자고 한 것인데, 목숨 걸고 죽은 사람들도 제 살자고 민생단이 되었다는 말이냐고 했다. 죽음을 수단으로 삼자는 존재가 어디 있는가?

이미 죽은 조선 혁명가들을 도매로 민생단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생명의 안전과 복지를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민생단이라면 이미 목숨 바친 사람들도 민생단이었다는 말이냐고 역습을 하자 회의장 분위기는 급전되고 말았다.

위증민 등 중공당 지도부는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어안이 벙벙해져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과학적 논리로 거침없이 담론을 폈다.

“다 알다시피 어떤 물질이든지 본래의 구성요소와 다른 요소가 80-90% 이상을 차지하게 되면 그 물질은 다른 물질로 변하게 된다. 이것은 과학이다. 동만에 사는 조선사람들의 78%가 민생단이라는 것은 노인들과 아녀자들을 제외한 조선족 청장년들 전부가 민생단이라는 말과 같은 데, 그렇다면 동만에서는 민생단이 혁명을 하고 있으며 민생단이 자기 상전을 반대하는 혈전을 벌리고 있단 말인가.”

할아버지의 손자 역시 할아버지의 담론을 하노이에서 펼칠 것이라고 믿는다.

만약에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존재한다면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선언을 하자는 데 왜 그 자체를 머뭇거리고 반대하는가? 자가 당착이 아닌가?

선 비핵화라 하지만 왜 당신들은 다른 나라에서 비핵화를 하자말자 그 나라를 곧바로 궤멸시켰는가?

비핵화하면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 하지만, 핵을 가지지 않고 경제대국이 과연 될 수 있는가? 오늘날 모든 경제는 핵과 우주산업에서 나오는 부산물에 불과하지 않는가? 그래서 가장 믿지 말아야 할 말이 비핵화=경제대국 공식이 아닌가.

그러나 할아버지 때와 다른 한 가지 변수, 남에 문재인 정부가 있다는 이 한 가지 사실만 믿고 회의장에 임하시라. 통일이 되는 순간 그것은 결코 변수가 아니고 상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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