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7년  7월 북한을 방문한 호찌민 베트남 주석과 김일성 주석이 만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다. 특히,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트남을 국빈 방문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55년 전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갔던 길을 김 위원장이 밟게 되는 것.

북한과 베트남은 1950년 1월 31일 수교를 맺으면서 69년째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베트남은 중국과 러시아에 이어 북한과 세 번째로 수교를 맺고 사회주의 형제국이 됐다. 북한에게 베트남은 12번째 수교국이다.

북한과 베트남은 “전통적 우호관계”를 표방해왔다. 1950년 외교 관계를 수립한 뒤, 1957년 7월 호찌민 주석이 북한을 방문했고, 1958년 11월, 1964년 11월 김일성 주석이 베트남을 방문했다.

북한과 베트남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으로 끈끈한 연을 맺었다. 1951년 당시 북베트남은 국제민주여성연맹 조사단 일원으로 례티귀 대표를 파견했다. 례티귀 대표는 신의주, 평양, 남포, 강서 등을 방문해 한국전쟁과 관련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호앙 꾸옥 비엣 북베트남 민족통일전선 전국위원회 부주석이 방북, 전투를 독려했다. 항프랑스 전쟁시기 영웅인 딘 눕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승전소식에 고무됐다고 할 정도였다. 1952년 북베트남은 한국전쟁을 ‘항전’이라고 표현하며 ‘조선전쟁 기념대회’를 열어 형제국임을 과시했다.

1958년 호찌민 주석은 김일성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우리가 사회주의 건설에서 조선 형제들과 경쟁을 하자는 것을 제의한다. 경쟁은 베트남 인민과 조선 인민의 단결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베트남과의 관계를 혁명적 의리, 동지적 우의, 국제주의의 발현 등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베트남전쟁 당시에는 북한 공군이 참전했다. 1964년 1월 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중앙방송을 통해, 김 주석은 ‘민족해방의 혁명적 기치를 높이 들자’라는 노작을 발표했다. “단순히 (베트남) 자신의 독립과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만이 아니라 전체 사회주의 진영의 안정과 아시아와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 그들의 투쟁을 적극 지원하는 것은 숭고한 국제주의적 의리로, 의무이다”

그리고 1965년 3월 공화국 정부성명, 4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확대회의, 5월 최고인민회의 3기 4차 회의에서 베트남전 참전 의사를 밝혔고, 1966년 9월 북한 최광 총참모장과 북베트남 반 티안 둥 참모총장은 북한군 파병 합의문에 서명했다.

결과, 북한은 북베트남 당 중앙위원회와 국방부가 들어갈 갱도 건설을 위한 공병부대를 파견하고 전투기 10개로 구성된 미그 17중대 1차 파견, 1967년 초까지 2차 파병, 1967년 말까지 3차 파병했다. 게다가 북한은 2천여 명의 베트남 대학생의 유학을 지원하기도 했다.

▲ 베트남 박장성에 있는 베트남 참전 북한군 묘역. 14명이 전사했으며, 2002년 송환, 현재 평양 조선인민군 영웅열사묘에 안장되어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파병된 공군은 87명으로, 조명록이 구성했다. 이들은 미군기 26대를 격추했으며, 파병군 중 14명이 전사했다. 전사자들은 베트남 정부로부터 ‘베트남전공제1급메달’(영웅메달)을 받았으며, 박장성 북한열사묘지에 묻혔다. 그러다 2002년 9월 김양점 인민무력부 부부장 방문 시 송환돼, 현재 평양 조선인민군 영웅열사묘에 안장되어 있다.

‘혈맹’이던 북한과 베트남 관계는 1978년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으로, 상호 대사를 소환하는 등 일시적으로 악화됐다. 그리고 1992년 한국과 베트남 수교로 관계가 경색됐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베트남이 북한으로부터 북한산 유고급 잠수함 2척을 구입하고 북한산 스커드-C형 미사일을 도입해 관계는 회복됐다. 1994년 도안 쿠에 국방장관과 최광 총참모장의 상호 방문으로 시작된 군사분야 고위급 인사교류는 2015년까지 이어졌다.

정치.외교관계도 복원됐다. 2001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베트남 방문, 2002년 쩐 득 르엉 국가주석의 방북으로 우호 협력을 과시했다.

2004년 베트남 정부가 대규모 탈북자를 한국에 송환하자, 북한이 대사를 소환하고 공개비난하는 등 관계는 급랭했다가, 2005년 베트남 정부가 북한에 쌀을 지원하고, 베트남 외교차관이 방북하는 등 관계는 회복됐다.

그리고 2007년 10월 농 득 마잉 베트남공산당 서기장이 방북했는데, 이는 1957년 호찌민 주석의 방북 이후 50년 만의 당 서기장 방북이었다.

2014년 북한과 베트남은 무기개발기술교환협력에 서명하면서, 관계가 상승하는 듯했지만, 2016년 4차 북핵실험을 계기로, 양국 간 국방교류와 군사교류가 중단되는 등 관계는 다시 악화됐다.

게다가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벌어진 김정남 추정인물 암살사건에 베트남 여성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자, 양국 관계는 최악 상태에 이르렀다.

▲ 지난 14일 북한을 방문 중인 팜 빈 민 베트남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이 북한 리용호 외무상과 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우리민족끼리]

하지만 북한과 베트남 관계는 다시 복원됐다. 2018년 9월 쩐 타잉 먼 베트남 조국전선위원장이 북한 공화국 창건일 행사에 참석하고, 그해 11월 1~8일 장춘실 조선민주여성동맹 위원장, 11월 29일부터 12월 2일까지 리용호 외무상이 각각 베트남을 방문하면서 인사교류가 재개됐다.

그리고 오는 27-28일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지난 12일 팜 빈 민 베트남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이 방북했다. 리수용 당 국제담당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 등을 만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빈’으로 베트남을 방문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북한과 베트남의 교역은 2012년 1천 5백만 달러, 2013년 1천240만 달러, 2014년 8백만 달러로, 북한은 철광 등을 수출하고, 쌀, 커피, 담배, 세재 등을 수입했지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급감했다. 2014년 하노이에서 제9차 북한-베트남 경제과학기술공동위원회가 개최한 이후로 지금까지 열리지 않고 있다.

북한은 1995년부터 2012년까지 베트남으로부터 약 5만5천3백t의 쌀을 지원받았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1996년 2만t, 1997년 1만3천t, 2002년 5천t, 2005년 1천t, 2007년 2천t, 2012년 5천t 등이다.

부침을 겪은 북한과 베트남 관계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빈 방문으로 다시 강화될 전망이다. 2020년 수교 70년을 앞두고, 양국은 “새로운 상황에 맞는 양자관계를 강화하자”는 데 의견을 일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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