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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도 딛고 일어서 희망의 나비로 살아나는 김복동"여성인권운동가 고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남녀노소 1천명 추모객 눈물바다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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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01  18: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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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인권운동가 고 김복동 시민장 영결식이 1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거행됐다. 사진은 김복동 할머니 영정 초상.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복동 할머니께서는 전쟁도 이겨내고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편견도 이겨내고, 드디어는 죽음도 딛고 일어서서 전국 각지에, 세계 각처에 다시 희망의 나비로 살아나고 있는 것이 느껴지시나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의 멍에를 스스로 끊어내고 남모를 고통을 속으로 삭이면서 평생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해 온 김복동 할머니.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모아놓은 통장을 모두 털어서 세계 분쟁지역의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게 전달하고 그 자식들의 안전을 염려했던 여성인권운동가로 기리는 김복동 할머니에 대한 시민장 영결식이 1일 오전 매주 수요시위가 열리는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엄숙히 거행됐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영결식 호상 인사를 통해 "중학생들이, 엄마의 손을 잡고 나온 어린 아이들이, 부모님의 초상을 당해 다른 조문객들을 맞았던 다른 가족들이 아침 7시부터 새벽 1~2시까지 할머니의 빈소를 찾아주었고, 멀리 있어서 빈소를 찾을 수 없었던 분들은 그들이 사는 지역에 분향소를 만들었다. 미국 워싱턴, 시카고, LA  등 곳곳에서 한인 동포들이 사는 곳마다 김복동 할머니를 추모하고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뒤따르고자 결심하는 수많은 나비들이 날개짓을 했던 지난 5일이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 영결식은 일본대사관 앞에서 평화나비를 든 남녀노소 1,000여명의 추모객이 참가한 가운데 숙연하게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영결식을 마치고 영구차가 천안 장지를 향해 출발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영결식을 끝내고 김복동 할머니의 영구가 장지인 천안 망향의 동산으로 출발한 이후에도 초중고 학생들과 청년, 대학생, 중장년의 남녀 노소 추모객 1,000여명이 눈물을 뿌리며 영전에 국화를 바쳤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김복동 할머니의 건강을 챙겼던 권미경 연세대학교의료원노동조합 위원장은 추모사에서 "할머니가 진통제도 듣지 않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힘들어하며 '엄마, 엄마, 너무 아파'라고 외칠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손밖에 잡을 수 없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일본이 사과하는 날 활짝 웃겠다며 평소에 잘 웃지도 않으셨던 할머니, 이제는 보고싶어하던 동생, 아빠 잘 만나시고, 고통속에 찾으셨던 엄마랑도 같이 하세요. 그 오랜 세월 모질고 모진 고통과 상처, 잘 견디고 잘 싸웠다고 어머니가 꼭 안고 머리 쓰다듬어 주시는 그곳으로 마음편히 훨훨 날아가세요"라고 흐느꼈다.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는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 담담하면서도 당당한 목소리로 일본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셨다. 그리고 자애로운 목소리로 다시는 당신과 같은 고통을 받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비가 오나 길거리에 나온다고 하셨다. 크고 넓고 자애로운 마음이 느껴졌다"고 김복동 할머니와의 만남을 회고했다.

또 "나비기금을 조성해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고 재일조선학교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보내주는 등 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위해 여생을 산 할머니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잡아주셨"던 모습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언니야, 형아, 거기 가니까 편하고 좋나. 나는 너무 힘들다. 속이 썩어들어간다. 사과 한마디 듣기가 이리 힘드나. 언니야, 형아, 나도 죽고 싶은데 억울해서 못 죽는다'라고 했던 할머니의 넋두리도 꼭 기억해 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 나비되어 훨훨 날으소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끝내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보지 못한 김복동 할머니를 생각하며, 추모객들이 침묵하는 일본 대사관을 향해 분노를 표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일본 대사는 들어라. 내가 전 세계로 돌아다니면서 동상(평화의소녀상)을 세울테니 다 세우기 전에 하루 빨리 일본 정부에 말을 해서 사죄하고 배상하라. 뭐 합니까 밥이나 먹고 잠자러 왔어요?"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 28년을 한결같이 주장해 온 '일본 정부의 공식사죄와 법적 배상'을 외치는 김복동 할머니의 모습이 화면에 나오자, 추모객들은 사죄는 커녕 발뺌으로 일관하는 일본 정부를 향해 한 목소리로 분노를 터뜨리기도 했다.

최광기 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영결식에서는 '바닥소리'가 여는공연을 하고 장순향 한국민족춤협회 회장이 살풀이 춤을 추어 할머니의 넋을 위로했다.

영결식에 앞서 이날 오전 8시 30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김복동 할머니의 대형 영정 초상이 앞장서고 그 뒤를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앞세운 영구차와 '여성인권운동가 고 김복동님 나비되어 훨훨 날으소서'라는 현수막을 든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 장례위원회' 위원들이 일본대사관까지 행진해 따라가는 노제가 진행됐다.

그 뒤로 할머니의 생애 년수에 맞춘 94개의 만장과 수백의 노란 나비를 든 각계각층, 남녀노소 추모객의 노제 행진이 숙연하게 이어졌다.

대형 영정 초상에는 형형색색의 나비가 되어 나비들과 함께 환한 웃음으로 두팔을 벌려 날아가는 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졌고, 만장에는 '우리의 희망, 김복동', '우리의 영웅, 김복동', '당신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일본군 성노예 책임자 처벌', '평화로운 세상을 아이들에게' 등 글귀가 빼곡히 써있었다.

   
▲ 이날 오전 8시 30분 서울시청 앞을 출발해 영결식이 열리는 일본대사관까지 노제가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일본 대사관 정문 앞을 지나는 노제행렬.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추가-2일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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