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회적 투쟁은 인정을 둘러싼 투쟁이다! (호네트) 


 거대한 거울 
 - 황지우

 보따리 장사 시절, 강사 휴게실도 없는 학교의
 벤치에 누워
 한 점 콤플렉스 없는
 가을 하늘을 보노라면
 거대한 거울

 이번 생의 온갖 비밀을 빼돌려
 내가 귀순하고 싶은 나라;
 그렇지만 그 나라는
 모든 것을 되돌릴 뿐
 아무도 받아주지는 않는다

 대낮에 별자리가 돌고 있는
 현기증 나는 거울,
 미술대학 학생들이 그 양쪽을 들고
 붉은 벽돌 본관으로 들어간다
 벤치에 앉았더니
 따가운 햇살을 오래 쬔 탓일까
 내가 왜 여기 있지?
 갑자기 모든 게 낯설어진다


 인문학 강의를 하며 가장 힘든 수강생이 ‘사회적 위치가 있는 남성’이라는 것을 자주 경험한다. 명문대 출신의 모 대기업 간부가 결국 강의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속으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곧 퇴직하는 그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너무나 강고한 그의 자아’가 명함이 없는 날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철학자 호네트는 ‘사람은 인정을 먹고 산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인정은 사회적 인정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때 건강한 자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자기 계발서들을 보면 칭찬의 힘에 대해 극찬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무수히 받으며 살아 왔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건강한 자아를 갖고 있을까? 

 호네트가 말하는 ‘인정’은 자기 계발서에서 말하는 ‘칭찬’이 아니다. 칭찬은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간악한 욕망에서 나온다. 개를 길들이듯이 자식을 길들이고 부하 직원을 길들이고 친구를 길들인다. 

 그래서 노자는 ‘칭찬을 받거나 욕을 먹을 때 놀란 것처럼 하라’고 말한다. 칭찬을 좋아하고 욕을 싫어하다 보면 우리는 남에게 조종당하는 사람이 된다. 노예가 되어 버린다.    

 호네트는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이기에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살아야 모두가 삶의 주인이 되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인정’은 칭찬과 전혀 다른 것이다. 

 오랫동안 칭찬을 먹고 살아 온 ‘엘리트 의식을 가진 남성들’ 그들은 ‘인정’이라는 것을 알기가 힘들 것이다. 그는 TV 프로 ‘나는 자연인이다’를 즐겨본다고 했다. 그는 칭찬이 사라졌을 때 자연으로 도피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자연인들은 정말 자연인일까? 진정한 자연인은 ‘스스로 그러하게(자연自然) 살 수 있는 사람’이다. 남의 칭찬과 욕에 좌우되지 않는 사람이다. 산속에 혼자 산다고 해서 오랫동안 몸에 배인 칭찬과 욕이 떨어져나가지 않는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사회에서 유폐된 사람들이지 진정한 ‘삶의 주인’은 아닐 것이다. 삶의 주인은 사회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강고한 자아’가 있는 한, 우리는 삶의 주인이 될 수가 없다. 자아는 칭찬과 욕을 먹으며 형성된 허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연인이야! 나는 이런 사람이야! 다 허상일 뿐이다. 

 우리의 자아는 어떤 연기를 하는 허상이다. 사장, 부하 직원, 교사, 학생, 정치인, 국민, 아버지, 어머니, 자식, 남자, 여자...... 우리는 역할극을 하고 있다. 역할이 끝나면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래서 자아는 진정한 나가 아니다. 그러니 칭찬과 욕으로 만들어진 자아를 진정한 자신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삶이 헛것으로 느껴진다. 깊은 권태의 늪에 빠져버린다.   

 따라서 우리는 가끔 ‘거대한 거울’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한 점 콤플렉스 없는/가을 하늘을 보노라면/거대한 거울//이번 생의 온갖 비밀을 빼돌려/내가 귀순하고 싶은 나라;’ 

 ‘대낮에 별자리가 돌고 있는/현기증 나는 거울,’

 ‘내가 왜 여기 있지?/갑자기 모든 게 낯설어진다’ 우리는 가끔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인간은 불교에서 말하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나’는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다. ‘자아’는 헛것이면서도 분명히 있다.

 역사 속에서 사회 속에서, 가치 있는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은 ‘이런 자아’를 경험할 것이다. ‘촛불 집회’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런 황홀경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사회는 없고 오로지 나만 있는 칭찬과 욕의 노예들은 헛것인 자아에 목매어 살다가 자아(명함)가 갑자기 사라지면 맨붕이 될 것이다. ‘자연인’으로 도피하고 싶을 것이다. 아이들이 두려움을 느낄 때 어디 구석진 곳으로 도망가 자신을 견뎌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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