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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목사 25년 전 '통일은 됐어'는 선지자의 예언늦봄 25주기 추도식 진행...4.2선언 30주년 평양 '금강'공연 추진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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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19  22: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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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익환 목사 25주기를 맞아 19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문익환 목사 묘역에서 추묘예배 및 추도식이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통일은 됐어'라는 선지자적 외침이 새삼스러운 19일 오전 늦봄 문익환 목사 25주기 추모예배 및 추도식이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문익환 목사 묘역에서 진행됐다.

이날 추도식은 2월 말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소식이 알려져 어느때보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25년전인 1994년 1월 18일 문익환 목사의 서거와 30년전인 1989년 3월 문익환 목사의 방북을 기억하며 정중한 분위기속에 진행됐다.

1월 중순의 날씨치고는 매우 따뜻한 이날 사단법인 통일맞이,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한빛교회, 사단법인 전국민족민주 유가족협의회, 늦봄문익환학교 학생과 학부모 등 300명이 추도식에 참가했다.

세종특별시 교육감인 최교진 통일맞이 이사는 이해찬 통일맞이 이사장을 대신한 개회사에서 "목사님이 열어주신 화해와 평화의 길, 내가 가고 네가 오고 우리가 함께 내달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이 땅 한반도가 더이상 섬나라가 아니라 세계로 뻗어가는 큰나라가 되도록 미래로 나아가는 큰길을 내겠다. 가장 늦은 통일을 가장 아름다운 통일로 피워내겠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은 문익환 목사가 30년전 방북 후 감옥에 갇혔을 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주심변호사로서 여러 차례 독대할 당시 문 목사가 "남과 북이 서로를 찬양하고 고무할수록 통일은 빨라진다고"했던 언급을 거론하고는 당시 서울역에서 평양가는 기차표를 당장 내놓으라는 내용으로 문목사가 발표한 시를 잠꼬대로 여겼지만 지금은 가히 예언자인 문목사의 선지자적 능력을 보게 된다고 회고했다.

북측은 이날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명의로 문익환 목사 서거 25주년 추도사를 보내왔다.

북측은 김희선 통일맞이 이사가 낭독한 추도사를 통해 "늦봄 문익환 목사의 고결한 넋은 길이 살아있을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민족을 열렬히 사랑하고 조국통일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깡그리 바쳐온 문익환 목사. 그 이름은 수십년 세월이 흘러갔어도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 소중히 자리잡고 있다"고 기렸다.

이어 "문 목사가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새봄은, 조국통일의 동반자로 함께 손잡고 민족번영의 새 시대를 앞장서서 열어나가시는 북남 수뇌분들의 대범한 결단과 의지에 의하여 오늘날 비로소 현실로 꽃피어 나가고 있다"고 하면서 "우리는 역사적인 북남선언들을 철저히 이행하여 조선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의 전성기를 열어나가는데 한사람같이 떨쳐나 늦봄 문익환 목사가 그처럼 절절히 바라던 통일의 소망을 반드시 실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왼쪽부터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김홍걸 민족화해협력위원회 대표상임의장,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박원순 서울시장, 문성근 통일맞이 부이사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은 추도사를 통해 "지난 2년간 민주정부의 탄생과 남북관계의 진전이 있었다는 보고를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늘 목사님을 뵙기 위해 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고 하면서 "목사님이 오래전 통일은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이 이렇게 완성되어 가고 있는 것은 씨를 뿌린 문목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기억했다.

이어 "그러나 모든 것이 잘되는 것이 아니어서 걱정이 있다"며, "적폐청산의 속도는 느려지고 삶이 어려운 민중의 아우성이 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이 주변국의 결정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 때문에 고민이 커가고 있다. 부디 8천만 민족이 한마음 한뜻으로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보호해달라"고 말했다.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은 문익환 목사를 '평화와 통일의 사도', '실천하는 예언자'라며, "문목사의 통일의지가 2000년 6.15공동선언과 2007년 10.4공동선언, 그리고 2018년 4.27 및 9.19공동선언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30년전 문익환 목사가 휴전선을 넘어 평양으로 갔던 그 정신과 용기를 본받는다면 해내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라며, "한반도 평화와 번영, 남북 동포들이 화합하고 자유롭게 왕래하는 그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밝힌다"고 말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이어진 추도사에서 문익환 목사가 방북과 수감생활을 지내면서 익힌 파스요법을 확산하던 생전 모습을 상기시키면서 뒤늦게 이를 시대의 아픔을 고치려했던 마음으로 생각하게 됐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1994년 3월 방북을 일주일 앞두고 문 목사로부터 방북계획을 통보받으면서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예수의 모습을 떠올렸다고 하면서 이를 '벽을 문이라고 여기며 박차고 나갈 수 밖에 없었던 절실함'이며, '통일의 십자가를 진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들을 대표해 문목사의 아들 문성근 통일맞이 부이사장은 "한분 한분 문익환 목사가 살아온 것 같이 반갑고 환영한다"고 추도식 참가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어 "문목사가 1989년 3월 방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 연방제로 단꺼번에 통일하려면 부지하세월이니 이산가족 상봉과 문화교류협력부터 시작하자고 한 합의가 그대로 축약되어서 2000년 6.15선언으로 옮겨 앉았고 10.4선언. 지난해 판문점 선언으로 이어졌다"고 하면서 "그 합의는 옳았다는 생각이다. 세월을 허비하지 않았다면 지금 화폐통일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을까"라며 통탄스럽다고 말했다.

문 부이사장은 올해 4.2일 성명서 발표일에 즈음해 통일맞이 대표단이 방북해 기념행사와 함께 문 목사의 장남인 고 문호근 연출가가 준비했던 가극 '금강'의 평양공연을 추진하며, 지난해 박물관으로 새로 꾸민 문 목사 수유리 자택에서 3월 25일 특별전시회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또 통일맞이 행사는 아니지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주도해 4.27 판문점선언 1주기에 맞추어 당일 오후 4시 7분 비무장지대(DMZ) 500km 강화-고성 구간을 100만명이 나서 인간띠잇기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며 관심을 가져 줄 것을 호소했다.

이날 문익환 목사 25주기 참배식에는 문 목사가 목회했던 한빛교회 교인들과 전남 강진의 늦봄 문익환학교 학생과 학부모,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과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원들, 이해동 목사, 나핵집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원회 위원장, 고 장준하 선생 장남 장호근 선생 등 300여명이 참가했다.  

   
▲ 전남 강진의 늦봄문익환학교 학생들이 '비무장지대로 가자'는 노래 공연을 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목사님, 우리가 이제 분단의 벽을 넘어서려 합니다.' 이날 문익환 목사 25주기 추모제에는 300여명의 시민, 학생들이 참가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추모식이 끝난 후 헌화와 참배가 이어졌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수정-20일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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