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눈을 뜨고 말하라 (2)

=김동명씨의 남북교류반대론을 박함=

박윤희*

한마디로 말해서 김시인의 글은 철저한 패배의식 또는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다. 우선 서신교환을 논하는 대목에서 그는 『북괴가 서신을 통한 선전공세를 대규모로 전개하자는 복심으로』 나올 것이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하였다.

규모의 크고 작고를 막론하고 대립해 있는 사회나 정치세력사이에 선전공세가 치열하게 전개되어 왔고 지금도 되고 있다는 것은 굳이 김의원의 시적상상력을 빌리지 않고도 능히 알 수 있는 일이다. 하물며 전세계가 양극단을 이루고 있는 미·소간이나 양극간의 대립상이 상징적으로 축도되어 있는 한국의 남북간에 있어서랴!

그러나 이 사실만 가지고는 남북간의 서신교환을 반대하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없다.

첫째로, 편지를 통한 선전공세가 보다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남북에 똑같이 적용되는 일이며 이런 경우 서신교환이 북쪽에만 유리하다든가 그쪽만이 이길 수 있다든가 하는 따위의 생각은 이쪽의 무능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이때까지 남쪽의 정권담당자들이나 패배주의자들은 입버릇처럼 북한을 「지옥」으로 그려왔고 남한을 「자유천지」라고 노래해왔다.

만약 그들이 진정으로 이렇게 믿어왔고 지금도 믿고 있다면 편지를 비롯한 남북간의 교류를 반대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남북교류에서 선전적 승리를 거둘 가능성은 오히려 이쪽에 있으면 있지 저쪽에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김씨는 또 『가정을 파고드는 사신의 소곤거림-세상에 이보다 더 가공한 유혹』이 있겠느냐고 자문하고 있다. 열등의식도 이쯤 되면 애교가 있다고나 할까? 지금 『가정을 파고드는 소곤거림』을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김씨의 말대로 「사신의 자유」조차 거부당하고 있는 이북동포들이지 결코 지나칠 정도로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 이남동포들은 아니다.

우리의 형편이 이럴진대 『마지못해 짜내는 북한동포들의 소리가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도리어 더 선전적인 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줄 아는 김 참의원이 어째서 마음 놓고 자기하고 싶은 말을 적어 보낼 자유를 누리고 있는 이남동포에게 줄 수 있는 「선전적 효과」에 대해서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아예 그런 방향으로는 생각조차 안하기로 작성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는 또 『적어도 공산당의 비위에 맞도록 적당히 꾸며진 수만, 수십만통의 편짓장이 정기적으로 남한 땅을 향해 온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못 참을 이야기다』라고 단정하고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적당한 이야기가 아니라 정정당당한 이야기를 적어서 수만, 수십만통을 정기적으로 북한 땅으로 보내지 못한단 말인가? 아무래도 이 양반은 서신교환이 이북에서 이남으로만 오는 것이지 이남에서 이북으로도 가는 것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하물며 지금 혁신정당들뿐만 아니라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있는 국민이면 누구나가 바라고 있는 서신교환이 결코 정보교환을 허용할 수 있을 정도의 광범위한 것이 아니라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기일에 한해서만 그리고 양측의 검열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김의원의 소론은 한낱 지나친 노파심에서가 아니면 일종의 패배「노이로제」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십여 년 동안이나 소식을 모르고 지내오고 있는 부모형제 친지들 사이에 문안편지라도 주고받게 되기를 갈망해 마지않는 국민들의 「정당한 울분」을 송두리채 말살해버리려는 「불순한 의도」의 소치일지도 모른다.

하기는 이상과 같은 절박한 문제를 론함에 있어서 선전적 효과같은 것을 운운한다는 것부터가 불순하고 반민족적인 일이다. 선전이니 치안이니 하는 문제들은 정부가 맡아서 할일이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한 예산도 국민들은 마련해 준지 오래다. 

김의원 같은 이 나라의 국회의원들이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정치가들이라면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옳게 파악하고 이것을 현명하게 풀어 줄줄 알아야 할 것이다. 김의원의 말이야 말로 『하나의 영막』은 될지언정 『정치적 제언일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의 의사대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닌 남북간의 인위적인 장벽을 어떻게 하루바삐 제거하느냐에 있는 것이며 이러기 위해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 국민 하나하나의 마음속에 쌓이고 쌓인 「마음의 장벽」 즉 「닫힌 마음」을 다시 여는 일이다. 지금 당장 군사적 통일이나 정치적 통일을 부르짖는 미치광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한 첫 단계로서 우선 편지왕래라도 가져보자는 국민들의 염원을 굳이 짓밟으려는 김의원같은 사람들의 의도는 무엇인가? 굳이 미.소간의 각종관계를 예로 들기에는 우리네의 민족적 긍지가 부끄러운 일이기에 그만두거니와 우리의 문제를 가능한 범위 내에서 우리 손으로 해보자는 소리에 귀를 닫으려고 한다거나 심지어는 이런 소리를 위험시하려드는 따위의 시대착오적인 망언은 제발 말아주기를 빌 따름이다.(계속)

*당시 통일사회당 선전국장, 민족일보 논설위원, 혁신동지연맹 대변인, 1960년 7.29선거에 사회혁신당 후보(천안을구)로 천거

▲ 먼저 눈을 뜨고 말하라 (2) [민족일보 이미지]

=金東鳴氏의 南北交流反對論을 駁함=

朴允熙


한마디로 말해서 金詩人의 글은 철저한 敗北意識 또는 劣等感으로 가득 차 있다. 우선 書信交換을 論하는 대목에서 그는 『北傀가 書信을 通한 宣傳攻勢를 大規模로 展開하자는 腹心으로』 나올 것이기 때문에 反對한다고 하였다.

規模의 크고 작고를 막론하고 對立해 있는 社會나 政治勢力사이에 宣傳攻勢가 치열하게 展開되어 왔고 지금도 되고 있다는 것은 굳이 金議員의 詩的想像力을 빌리지 않고도 能히 알 수 있는 일이다. 하물며 全世界가 兩極端을 이루고 있는 美.蘇間이나 兩極間의 對立相이 象徵的으로 縮圖되어 있는 韓國의 南北間에 있어서랴!

그러나 이 事實만 가지고는 南北間의 書信交換을 反對하는 充分한 理由가 될 수 없다.

첫째로, 편지를 通한 宣傳攻勢가 보다 더 치열해질 可能性이 있다면 그것은 南北에 똑같이 適用되는 일이며 이런 경우 書信交換이 北쪽에만 有利하다든가 그쪽만이 이길 수 있다든가 하는 따위의 생각은 이쪽의 無能을 스스로 是認하는 것 以外의 아무것도 아니다. 이때까지 南쪽의 政權擔當者들이나 敗北主義者들은 입버릇처럼 北韓을 「地獄」으로 그려왔고 南韓을 「自由天地」라고 노래해왔다.

萬若 그들이 眞情으로 이렇게 믿어왔고 지금도 믿고 있다면 편지를 비롯한 南北間의 交流를 反對할 理由가 어디 있단말인가? 南北交流에서 宣傳的 勝利를 거둘 可能性은 오히려 이쪽에 있으면 있지 저쪽에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金氏는 또 『家庭을 파고드는 私信의 소곤거림-세상에 이보다 더 可恐한 誘惑』이 있겠느냐고 自問하고 있다. 劣等意識도 이쯤되면 愛嬌가 있다고나 할까? 지금 『家庭을 파고드는 소곤거림』을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金氏의 말대로 「私信의 自由」조차 拒否當하고 있는 以北同胞들이지 決코 지나칠 程度로 많은 自由를 누리고 있는 以南同胞들은 아니다.

우리의 형편이 이럴진대 『마지못해 짜내는 北韓同胞들의 소리가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도리어 더 宣傳的인 效果를 낼 수도』 있다는 事實을 認定할줄 아는 金參議員이 어째서 마음 놓고 自己하고 싶은 말을 적어 보낼 自由를 누리고 있는 以南同胞에게 줄 수 있는 「宣傳的 效果」에 對해서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아예 그런 方向으로는 생각조차 안하기로 작성한 것인지 理解가 가지 않는다.

그는 또 『적어도 共産黨의 비위에 맞도록 적당히 꾸며진 數萬, 數十萬通의 편짓장이 定期的으로 南韓땅을 向해 온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못 참을 이야기다』라고 斷定하고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적당한 이야기가 아니라 正正堂堂한 이야기를 적어서 數萬, 數十萬通을 定期的으로 北韓땅으로 보내지 못한단 말인가? 아무래도 이 양반은 書信交換이 以北에서 以南으로만 오는 것이지 以南에서 以北으로도 가는 것이라는 事實은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하물며 지금 革新政黨들뿐만 아니라 健全한 常識을 가지고 있는 國民이면 누구나가 바라고 있는 書信交換이 決코 情報交換을 許容할 수 있을 程度의 廣範圍한 것이 아니라 一定한 場所에서 一定한 期日에 限해서만 그리고 兩側의 檢閱을 前提로 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金議員의 所論은 한낱 지나친 老婆心에서가 아니면 一種의 敗北「노이로제」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十餘年동안이나 소식을 모르고 지내오고 있는 父母兄弟 親知들 사이에 問安편지라도 주고받게 되기를 갈망해 마지않는 國民들의 「正當한 울분」을 송두리채 抹殺해버리려는 「不純한 意圖」의 所致일지도 모른다.

하기는 以上과 같은 切迫한 問題를 論함에 있어서 宣傳的效果같은 것을 云云한다는 것부터가 不純하고 反民族的인 일이다. 宣傳이니 治安이니 하는 問題들은 政府가 맡아서 할일이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한 豫算도 國民들은 마련해 준지 오래다. 金議員같은 이 나라의 國會議員들이 眞正한 意味에 있어서의 政治家들이라면 國民이 願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옳게 파악하고 이것을 賢明하게 풀어 줄줄 알아야 할 것이다. 金議員의 말이야 말로 『하나의 영暯』은 될지언정 『政治的 提言일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보다 根本的인 問題는 우리의 意思대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닌 南北間의 人爲的인 障壁을 어떻게 하루바삐 除去하느냐에 있는 것이며 이러기 위해 무엇보다도 時急하고 重要한 것이 國民 하나하나의 마음속에 쌓이고 쌓인 「마음의 障壁」 即 「닫힌 마음」을 다시 여는 일이다. 지금 당장 軍事的 統一이나 政治的 統一을 부르짖는 미치광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의 門을 열기 위한 첫 段階로서 우선 편지왕래라도 가져보자는 國民들의 念願을 굳이 짓밟으려는 金議員같은 사람들의 意圖는 무엇인가? 굳이 美.蘇間의 各種關係를 例로 들기에는 우리네의 民族的 긍지가 부끄러운 일이기에 그만두거니와 우리의 問題를 可能한 범위內에서 우리 손으로 해보자는 소리에 귀를 닫으려고 한다거나 심지어는 이런 소리를 危險視하려드는 따위의 時代錯誤的인 妄言은 제발 말아주기를 빌 따름이다.(계속)

<민족일보> 1961년 3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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