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끈다 (괴테) 


 그 희고 둥근 세계 
 - 고재종

 나 힐긋 보았네
 냇가에서 목욕하는 여자들을

 구름 낀 달밤이었지
 구름 터진 사이로
 언뜻, 달의 얼굴 내민 순간
 물푸레나무 잎새가
 얼른, 달의 얼굴 가리는 순간

 나 힐끗 보았네
 그 희고 둥근 여자들의
 그 희고 풍성한
 모든 목숨과 신출神出의 고향을

 내 마음의 천둥 번개 쳐서는
 세상 일체를 감전시키는 순간

 때마침 어디 딴 세상에서인 듯한
 풍덩거리는 여자들의
 참을 수 없는 키득거림이여

 때마침 어디 마을에선
 훅, 끼치는 밤꽃 향기가
 밀려왔던가 말았던가

 
 모 대안 고등학교에서 남학생들이 여학생 기숙사를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여학생들이 샤워하는 장면을 남학생들이 몰래 훔쳐보았다고 한다.

 여학생 부모님들이 어찌 대안학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분노했단다. 그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어머니는 어찌하면 좋으냐고 내게 물었다. 

 우리 어른들은 이 사건을 ‘음란’으로 생각할 것이다. 과연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고재종 시인도 청소년 시절에 ‘그 희고 둥근 세계’를 본 것 같다.  
 
 ‘나 힐긋 보았네/냇가에서 목욕하는 여자들을//구름 낀 달밤이었지/구름 터진 사이로/언뜻, 달의 얼굴 내민 순간/물푸레나무 잎새가/얼른, 달의 얼굴 가리는 순간’

 ‘나 힐끗 보았네/그 희고 둥근 여자들의/그 희고 풍성한/모든 목숨과 신출神出의 고향을’

 그 언뜻 본 숨 막히는 순간을 시인은 ‘모든 목숨과 신출神出의 고향을’ 보았다고 했다. 

 시인만 이런 눈을 가졌을까? 시도 때도 없이 음란을 조장하는 문화에 접하는 요즘 아이들은 이런 마음이 전혀 없을까?  

 도덕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는다 谷神不死 이를 현묘한 암컷이라고 하고, 현묘한 암컷의 문을 일러 천지의 뿌리라고 한다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之根’

 나는 강의 시간에 이 구절의 이해를 위해 프랑스 화가 쿠르베의 ‘세계의 기원’을 핸드폰에서 검색하게 했다.   

 가끔 아저씨들은 ‘세계의 기원’을 검색해 놓고서도 지나치곤 했다. 설마 인문학 강의 시간에 이런 음란한 그림을 찾게 하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쿠르베의 ‘세계의 기원’은 여성이 누워 성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림이다. 나는 처음 그 그림을 보았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여성 성기가 세계의 기원이라니! 신도 아니고 하늘도 아니고...... 오! 맞네! 머리가 띵 했다. 나의 음란을 한순간에 날려 버리는 그림이었다.   

 헝가리의 철학자 루카치는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사물, 사람들을 물화(物化)한다고 했다. 우리의 원래 마음은 여성의 몸을 신성(神聖)하게 보는데, 자본주의는 자꾸만 우리에게 여성의 몸을 음란하게 보게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음란’을 통해 얼마나 많은 자본을 증식시키는가! 우리는 음란물을 즐기며 자신이 정말 즐거워한다는 착각을 한다. 하지만 그건 루카치가 말하는 ‘허위의식’이다. 

 사람은 자신의 의식이 세상과 정직하게 만날 때 행복하다. ‘모든 목숨과 신출神出의 고향을’ 음란하게 보는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분열되어 있는가! 그래서 우리 사회엔 정신질환자가 이리도 많다. 모 대향병원에서 마음이 아픈 사람이 자신을 치유하던 의사를 살해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 화가 신윤복의 그림 중에 ‘목욕을 하는 여인들을 몰래 훔쳐보는 까까머리 동자승’이 있다. 이 그림은 음란한가!

 나는 그 어머니에게 학교에서 먼저 ‘성과 사랑’ ‘인권’에 대한 심도 있는 교육을 하고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함께 솔직한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음란으로 몰아가지 말고 ‘인권’의 차원에서 다뤘으면 좋겠다. 

 그리하면 잘못한 아이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정직하게 알고 반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허위의식에 젖을 때 우리는 얼마나 무서운 괴물이 되는가! 이 사건이 우리 모두 함께 성숙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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