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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에의 고동 (1)'민족일보 다시보기'<63>
이창훈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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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04  10:4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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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통일에의 고동」을 연재합니다. 3.1절로 부르자는 외침도 있습니다. 민족통일의 거창한 과업달성에 매진하려는 팽배한 겨레의 의욕은 이제 시간의 유예를 둘 여지가 없읍니다. 「실업자여! 일터는 통일에 있다.」는 절실한 외침이 통일에의 불타는 열원을 남김없이 표징하고 있습니다. 드높이 고동치는 통일에의 의욕.... 조국의 통일을 절규하며 나아가는 본지는 각 정당 각계의 고동을 독자와 같이 타진해보려는 것이다.

통일에의 고동 (1)

서울대 민통

다시 일어선 혁명의 기수
= 퇴색한 정의에 분기•재정빈곤이 큰애로 =
각 단대서 모여 학구와 실천 겸행

 
자유와 정의를 지키고 찾기 위하여 독재정권타도에 용감히 항거하였던 사월이 사자들! 그들은 혁명 있은 지 어언 일년이 지나도록 편협과 고루 부패를 반복하는 기성세대에 기대를 걸 수가 없이 다시 조국통일전선의 기수가 될 것을 다짐하면서 새로운 전선을 구축하려하고 있다.

 「속굴종 예속의 구별없는 연면한 타율의 역사에 종언을 고하고 빈곤과 기아의 질곡을 벗어나 다시는 외세에 의하여 분단되지 않는 나라! 참으로 민족에 의한 나라! 참으로 배고픈 사람이 없는 통일독립국가를 건설할 것」을 부르짖으면서 새세대의 기치을 올린 서울대학교 민족통일연맹이 바로 그것이다.

독재를 타도한 사월혁명의 감격도 일순이었다. 그렇게 부르짖던 정의도 날이 갈수록 퇴색하기 시작하였다.

진리에 살고 정의에 용감한 학생들은 그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몇몇 학우들이 모여 이론 탐구에 열중하였던 문리과대학 신진회, 후진사회문제연구회, 법과대학 사회법학회 등 3개「서클」대표들은 작년 10월 15일 회합을 갖고 새로운 학생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종래 순수연구체로 되어있던 일개 「서클」을 연구체로서의 성격을 살리면서 통합강화하여 가칭 서울대학교 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기로 하고 11월 1일 대회를 가지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전선이란 명칭을 둘러싸고 학교 당국에서는 물론 사회각계에서 공격의 화살이 날라들었다. 

그것은 전선이라는 명칭이 공산당이나 이북의 통일전선이란 이름과 같다는 이유였다한다. 학생들은 당초 명칭을 바꿀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명칭에 사로잡혀 행동에 구애될 필요가 없다는 결론으로 11월 8일 서울대학교 민족통일연맹으로 결정. 각계에 「메시지」를 보내고 결성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현재 서울대학교내의 각 단과대학생 약 4백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동연맹은 학구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 민족문제의 해결을 위해 실천에 나서고 있다.

동연맹 중앙위 의장 윤식군은 연맹의 성격과 활동상황에 대해서

『요즈음 학생들 사이에는 대별해서 3개의 풍조가 흐릅니다. 첫째 순수한 학문파, 실천은 염두에 두지 않고 이론만 파고드는 학생들과 맹목적으로 실천만 앞장세우는 실천파, 그리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실천에 나서는 3파가 있습니다. 그 중 우리 연맹에 들어있는 학생들은 세번째에 해당합니다.』라고... 학생들의 풍조를 설명하면서 연맹의 성격을 밝혔다.

『사월혁명은 너무나 무조직적이었고 무이념적이었기 때문에 실패했어요. 우리는 지난번의 쓰라린 체험을 통해서 다시는 그런 학생운동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의미에 있어서의 민족의식에 투철하고 조직적이고 이념적인 학생운동을 전개해야 되겠습니다.』 혁명의 뒷 처리에 자못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윤군은 학생운동의 조직력과 지도이념을 강조했다.

그리고서는 준비위원회 결성때부터 순탄하지못했던 몇 가지 점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글쎄 발기대회부터 정부와 사회에 보내는 4개항목의 건의문을 결의했습니다. 「기성세대는 남북분단의 책임을 지고 조국통일에 대한 새세대의 정당한 발언을 묵살 또는 억압할 자격이 없음을 시인하라.」는 것과 장총리는 남북통일문제만을 협의하기 위하여 미소양대국 수뇌와 회담하라는 내용이었는데 공격이 대단하더군요. 통일문제에 대한 열렬한 주장을 위험시하고 있어요.』

젊은 학도의 통일문제발언을 억압하려는 태도에 대한 예리한 일침이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잇는다.

『통일문제에 대한 연구자료를 얻기 위하여 미국에 있는 김용중씨나 일본에 있는 김삼봉씨와 연락해서 피차 연구자료를 교환해 보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국내의 지도자들과도 만나서 지도와 재정적 원조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여하간 살림이 빈약해서 연구와 행동면에 애로가 많습니다』는 예산부족으로 타오르는 정열을 실천할 수 없다는 새세대의 토로였다. 통일에의 고동은 누구보다도 드높고 용솟음치고 있건만...

통일에의 고동 (1)

   
▲ 통일에의 고동 (1) [민족일보 이미지]

統一에의 鼓動 (1)

오늘부터 「統一에의 鼓動」을 連載합니다. 三.一節로 부르자는 외침도 있습니다. 民族統一의 巨創한 課業達成에 邁進하려는 澎湃한 겨레의 意慾은 이제 時間의 猶豫를 둘 餘地가 없읍니다. 「失業者여! 일터는 統一에 있다.」는 切實한 외침이 統一에의 불타는 熱願을 남김없이 表徵하고 있습니다. 드높이 鼓動치는 統一에의 意慾.... 祖國의 統一을 絶叫하며 나아가는 本紙는 各政黨 各界의 鼓動을 讀者와 같이 打診해보려는 것이다.

서울大 民統

다시 일어선 革命의 旗手
= 褪色한 正義에 忿起•財政貧困이 큰애로 =
各單大서 모여 學究와 實踐 兼行


自由와 正義를 지키고 찾기 위하여 獨裁政權打倒에 勇敢히 抗拒하였던 四月이 獅子들! 그들은 革命 있은지 於焉 一年이 지나도록 偏狹과 固陋 腐敗를 反復하는 旣成世代에 期待를 걸 수가 없이 다시 祖國統一戰線의 旗手가 될 것을 다짐하면서 새로운 戰線을 構築하려하고있다. 

「屬屈從 隸屬의 區別없는 連綿한 他律의 歷史에 終焉을 告하고 貧困과 饑餓의 질곡을 벗어나 다시는 外勢에 依하여 分斷되지 않는 나라! 참으로 民族에 依한 나라! 참으로 배고픈 사람이 없는 統一獨立國家를 建設할 것」을 부르짖으면서 새世代의 旗幟을 올린 서울大學校 民族統一聯盟이 바로 그것이다.

獨裁를 打倒한 四月革命의 感激도 一瞬이었다. 그렇게 부르짖던 正義도 날이 갈수록 퇴색하기 始作하였다.

眞理에 살고 正義에 勇敢한 학생들은 그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몇몇 學友들이 모여 理論 探求에 熱中하였던 文理科大學 新進會 後進社會問題硏究會 法科大學 社會法學會 등 三個「서클」代表들은 昨年 十月十五日 會合을 갖고 새로운 學生運動을 展開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從來 純粹硏究體로 되어있던 一個 「서클」을 硏究體로서의 性格을 살리면서 統合强化하여 假稱 서울大學校 民族統一戰線을 結成하기로 하고 十一月一日 大會를 가지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戰線이란 名稱을 둘러싸고 學校 當局에서는 勿論 社會各界에서 攻擊의 화살이 날라들었다. 그것은 戰線이라는 名稱이 共産黨이나 以北의 統一戰線이란 이름과 같다는 理由였다한다. 學生들은 當初 명칭을 바꿀 수 없다고 主張했지만 名稱에 사로잡혀 行動에 拘碍될 필요가 없다는 結論으로 十一月 八日 서울大學校 民族統一聯盟으로 決定. 各界에 「메시지」를 보내고 結成大會를 開催한 것이다.

現在 서울大學校內의 各單科大學生 約四百名으로 構成되어 있는 同聯盟은 學究的인 態度를 堅持하면서 民族問題의 解決을 위해 實踐에 나서고 있다.

同聯盟 中央委議長 尹埴君은 聯盟의 性格과 活動狀況에 對해서

『요즈음 學生들 사이에는 大別해서 三個의 風潮가 흐릅니다. 첫째 純粹한 學問派, 實踐은 念頭에 두지 않고 理論만 파고드는 學生들과 盲目的으로 實踐만 앞장 세우는 實踐派, 그리고 問題意識을 가지고 實踐에 나서는 三派가 있습니다. 그 中 우리 聯盟에 들어있는 學生들은 세번째에 該當합니다.』라고... 學生들의 風潮를 說明하면서 聯盟의 性格을 밝혔다.

『四月革命은 너무나 無組織的이었고 無理念的이었기 때문에 실패했어요. 우리는 지난번의 쓰라린 體驗을 通해서 다시는 그런 學生運動이 되어서는 안되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意味에 있어서의 民族意識에 透撤하고 組織的이고 理念的인 學生運動을 展開해야되겠습니다.』 革命의 뒷處理에 자못 못마땅한 表情을 지은 尹君은 學生運動의 組織力과 指導理念을 强調했다.

그리고서는 準備委員會 結成때부터 順坦하지못했던 몇 가지 點을 指摘하기 始作했다.

『글쎄 發起大會부터 政府와 社會에 보내는 四個項目의 建議文을 決意했습니다.

「旣成世代는 南北分斷의 責任을 지고 祖國統一에 대한 새世代의 正當한 發言을 默殺 또는 抑壓할 資格이 없음을 是認하라.」는 것과 張總理는 南北統一問題만을 協議하기 爲하여 美蘇兩大國 首腦와 會談하라는 內容이었는데 攻擊이 大端하더군요. 統一問題에 對한 熱烈한 主張을 危險視하고 있어요.』

젊은 學徒의 統一問題發言을 抑壓하려는 態度에 對한 銳利한 一針이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잇는다.

『統一問題에 對한 硏究資料를 얻기 위하여 美國에 있는 金龍中氏나 日本에 있는 金三奉氏와 連絡해서 彼此 硏究資料를 交換해 보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國內의 指導者들과도 만나서 指導와 財政的援助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如何間 살림이 貧弱해서 硏究와 行動面에 隘路가 많습니다.』는 豫算不足으로 타오르는 情熱을 實踐할수 없다는 새世代의 吐露였다. 統一에의 鼓動은 누구보다도 드높고 용솟음치고 있건만...

<민족일보> 1961년 3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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