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파라 내고향 13-용암포
장손(長孫)이기에 죄가 더욱 많아요
고무신에 불붙여 재미있던 박쥐굴 뒤지기
타향살이 10에 남은 것은 고향생각 뿐
〇... 평남북 일대에서 나는 쌀의 집산지(集散地)인 용암포(龍岩浦)! 이 포구가 지금쯤은 중공 오랑캐들의 짐짝이 오르고 내리는 항구가 되어 있겠지요.
이 포구는 봄철이면 뱅어(白魚)도 흔했고 조깃배도 많이 닿는 곳입니다. 다사도(多獅島)가 멀리 보이는 이 포구! 옛날에는 중국과의 무역항구로 되어 있었다고... 강동(江東)출신 황현익(黃炫益)씨는 고향의 추억을 더듬는 것이다.
〇... 내 고향은 대동강 상류! 그곳에 구암(구岩)이라는 바위가 있었습니다. 빨가벗고 미역을 감다가도 심심하면 빨가벗은 채로 고문신짝에 불을 달려서 들고 박쥐굴 뒤지기가 일쑤였지요. 고문신짝이 「칸데라」 대용이니 고무 타는 찐득찐득한 불이 빨가벗은 살에 떨어지는 날이면 불꽃이 닿은 데가 데어가지고 부풀어 올라 밤이면 쑤시고 아파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평양에서 살다가 올라왔다는 웅서란 놈이 왜 그렇게도 장난이 심했던지 글쎄 헤엄도 칠 줄 모르는 놈이 깊숙이 들어갔다가 빠져죽을 뻔 한 일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〇... 지금 내 처지는 우리 문중의 장손(長孫)입니다. 선조를 모셔야하는 내가 이곳에 와 있으면서 성묘도 못하고 보니 선조에 대한 죄도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 고향에는 부모님과 남동생들 여동생들이 있는데 그놈들에게 아마 시달리고 있을 겁니다.
이곳에 나와서 혼인을 하고 보니 지금 내 자식들이며 내 처가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도 모르고 사니 한심합니다.
고향에 계신 내 부모님인들 며느리나 손자들의 얼굴을 얼마나 보고 싶고 궁금하게 지내겠습니까.
〇... 하루 빨리 남북이 통일되어야지요! 고향땅 앞 여울에는 모래무지니 날치니 하는 고기가 많이 잡힌답니다.
그 놈들 잡아서 막걸리 안주를 하면 별미지요. 언제나 고향땅에 가서 그 놈의 고소한 고깃맛을 보려는지 타향살이 이십여 년에 남은 것이 고향생각뿐이랍니다.
(사진=용암포의 조기 어획=1938년 촬영)
황현익(강동출신=교육가)
<민족일보> 1961년 3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