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진리는 우연한 사건들 속에서 출현한다 (알랭 바디우)

 
 
 그들은 나를 
 - 하이네 
 
 그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서로가 곧 이해했던 것은
 다만 수렁 속에 같이 있을 때 뿐이었다.
 
 
 존 로날드 톨킨은 그의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엘론드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강한 자나 지혜로운 자는 멀리까지 갈 수 없습니다. 그 길은 강한 자 만큼의 희망을 가진 약한 자가 가야하는 길입니다. 지금껏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인 것은 사실 그런 방식이었습니다.’
 
 ‘절대 반지’가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모든 종족들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약자들의 끈질긴 저항 끝에 절대 반지를 파괴함으로써 피비린내 나는 싸움은 비로소 끝이 난다.
 
 ‘돈’이라는 절대 반지가 지배하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절대 반지는 파괴될 수 있을까?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자본주의가 우리를 통제하는 부드러운 억압의 방식에 대해 말한다. 자본주의는 하나의 거대한 공장이다. 우리는 부품 하나가 되어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바쁘다. 바빠!’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는 삶의 시간. 그는 묻는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닌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발명할 수 있을까?’
 
 나는 10여 년 전에 죽음의 문턱까지 간 적이 있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놓아버리고 밥만 먹으면 뒷산에 올라갔다. 여기 저기 헤매 다니다 평평한 곳을 찾아 돗자리를 펴고 앉아 아카시아 꽃향기를 맡으며 요가를 했다.
 
 생사(生死)의 경계는 고요했다. 공포도 눈물도 없었다. 건강할 때 죽음의 공포가 있지 막상 죽음의 세계 언저리에 가 보면 다만 텅 비어 있을 뿐이었다. 

 삼라만상이 사랑스러웠다. 산길을 오가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스러웠다. 벤치에 앉아 쉴 때 옆 벤치의 사람들이 건네는 과일 하나는 목을 메이게 했다. 
 
 그러다 기적적으로 차츰 건강이 회복되며 읽은 고전들.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난해하게만 여겨지던 것들이 명확하게 이해가 되었다. 나의 삶은 재구성되었다. 내가 가야 할 새로운 길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알랭 바디우는 이러한 ‘사건’을 중시한다. 사건은 지금까지의 모든 체계를 송두리째 날려 버린다. 우리에게 다른 체계를 재구성하게 한다. 
 
 2017년 ‘박근혜 탄핵’이라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전혀 다른 체계 속에 들어갔다. 광화문에 모여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의 정치 체계를 정지시켰다. 한 순간에 권력의 중심이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했다. 사람들은 재탄생했다. 모두 의인(義人)이 되었다.
 
 그래서 알랭 바디우는 말한다. ‘우연한 사건들 속에서 진리는 출현한다.’ 평상시에 우리는 얼마나 이기적이고 속물적이었던가! 그렇던 우리가 ‘박근혜 탄핵’이라는 사건을 만나 한 순간에 ‘의인’으로 부활하다니!
 
 우리가 말하는 ‘평상시’는 얼마나 무서운 감옥인가! 다들 기계 부품이 되어 뱅글뱅글 돌아간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회사원, 공무원, 과장, 학생......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각자 역할극을 하고 있다. 누군가가 부여한 꼭두각시의 삶이다.
 
 그러다 갑작스레 만난 사건은 모든 역할을 정지시킨다. 세상은 새로운 역할을 창조하게 한다. 매뉴얼 없는 삶. 이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나’가 된다. 우리는 ‘진리’를 만난다. 이렇게 진리는 사건을 통해 현현한다.    
   
 하이네는 슬프게 노래한다. 
     
 ‘그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나도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서로가 곧 이해했던 것은/다만 수렁 속에 같이 있을 때 뿐이었다.’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의 덫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우리를 끝까지 파편화시킨다. 티끌처럼 조각난 삶. 
 
 요 며칠 사이에도 우리는 수많은 사건들을 만났다. ‘택시기사 분신’ ‘강릉 펜션’ ‘천호동 성매매 업소 화재’...... .
 
 반지의 제왕의 인기가 지금도 시들지 않고 있는 것은 티끌 같은 우리들이 무의식중에 알고 있나 보다. ‘돈세상은 우리 손에 의해 언젠가는 끝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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