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눈을 뜨고 말하라 (1)
=김동명씨의 남북교류반대론을 박함=

박윤희*

(옳은말) 한마딜 하려해도 사방을 살펴 임했던 이승만 시대를 생각하면 이제 제법 자유스럽게 마음속을 털어 놓게 된 것만도 「혁명덕분」일지 모른다.

오랜 억눌림에서 풀려나면서부터 혁명이다, 통일이다, 등등 우리 민족이 아쉽게 바라오던 여러 절실한 과제들에 대한 의견들이 나왔고 그 중에서도 이승만이라면 당장 공산당이란 올개미를 씌워 때려잡았을 남북교류론까지도 등장하여 어찌 보면 금석지감조차 없지 않다.

그런데 남북교류-남북서신교환, 기자교환, 물자교역 등등이 요사이 큰 화제거리로 되어 옳다 그르다는 등의 논의도 상당히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최근) 동아일보 이면 「논단」 란에 네 번에 걸쳐 실린 「먼저 적을 알고 말하라」라는 제하에 남북교류론을 호되게 「치」는 참의원 김동명씨의 글도 이러한 논의의 하나로서 많은 사람들의 눈을 끌었으리라 생각된다.

제목자체가 남북의 교류다. 통일이다 등 그대로 홀홀이 넘겨버리기 어려운 중대문제인데다가 김의원의 글 중에는 그저 「노선배의 노파심」으로만 여겨버리기에는 너무나 한심스러운 점이 있어 몇 마디 나대로의 넋두리를 늘어놓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김의원)은  『자, 보라! 백만대군을 대치시켜 놓고 있는 피·아의 접경선상의 광경을!』하고 소리 높이 외치면서 『신출귀몰한 가지가지의 방법』으로 우리를 먹으려드는 적과 편지 왕래다, 물자교류다, 문화교류다를 끄집어내는 것은 「공산사상의 선전을 끌어 들이자」는 것이 아니면은 한낱 감상적인 「얼빠진 소리」요. 또 「필시 딴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것」이라고 몰아 때려 버린 다음 「남북교류론의 허무맹랑함과, 그 위험성」이 「우려되는바 없지 않기에 감히 경고」하는 것이라고 끝을 맺고 있다.

이 글을 읽은 다음 김의원의 뜨거운 반공열에 다시 한 번 감격하면서도 어쩌면 이승만이나 그의 정부대변인의 「유시」나 「담화」를 되듣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 것이 다만 필자뿐일까?

「(세계적)인 위대한 반공영도자」임을 자처했던 이승만의 반공양식이 실질적으로 얼마만큼의 반공구실을 해 왔는가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고, 또 이 글의 주제도 아니니 일단 덮어두기로 하고, 먼저 김의원이 교류의 성립여부에 대한 부정적인 요소로서 소스라치게 묘사해준 「적과의 전쟁상태」에 관해서 이야기 해보기로 하자.

현재 국경 아닌 국경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그가 말한 것처럼 「국력이상의 백만대군」을 대치시켜놓고 있다는 것이 그 책임이 어느 놈에게 있었던 간에 뚜렷한 현실이요. 또 기막히게 비극적인 현실임에는 틀림없다.

같은 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선 비극이 결국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가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참화를 가져다 준 전쟁을 겪기까지 했고,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 되지 않는 재력과 귀중한 인원을 쏟아 넣어가면서 서로가 적이 되어 죽이지 못해 으르렁대는 이러한 참경을 하루빨리 없애고 다시 한데모여 평화롭고 번영된 생활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통일에의 한결같은 염원일 게고 통일에의 조고마한 자주적 바탕을 마련하고 서로의 접촉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제시된 것이 소위 남북교류론인 줄 안다.

(해방이)된지 열다섯 해가 넘는 지금까지 통일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앞으로도 외부의 어느 누구가 통일이라는 것을 은쟁반위에 놓아 우리에게 갖다 바치기만 바라고 ?아 있어야 한다는 것도 기막히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면 에서 티끌만큼의 자주적인 노력도 없이 그저 대포아가리가 늘어선 처절한 광경 운운을 무슨 활극영화 구경하듯 뇌까리고만 앉아있는 것을 능으로 하고 있다면 통일이란 누가 은쟁반에 올려 우리에게 갖다 바치거나 그렇지 않으면 대포라도 쏘아대며 「북진통일」이라도 하거나 또 그러지도 못한다면 「적들만이 살고 있는 북한」을 아예 타국시해 버리고 통일의 꿈조차 포기해 버리고 말자는 말인가?

김의원은 「숨 막힐 듯한 대치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이 판국에 남북교류란 우리 방비의 해제를 의미하는 것이니 어처구니없는 불장난이라고 말했는데 교류하는 것이 곧 방비의 해제를 의미하고 또 하필이면 우리 남한에게만 그렇다고 해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와 같이 양단상태에 있는 동서양독일이 광범위한 교류를 해왔고 동서양진영의 수령급인 미소양국이 또 그렇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 김의원 생각으로서는 공산북한은 어떠한 경우에도 강력한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는데 남한은 무슨 조고마한 일만 당해도 금시 방비가 해제되고 독일이나 미국인들은 교류를 해도 괜찮은 우월한 사람들인데 남한사람들은 도시 그들과 비교도 될 수 없는 열등민들이란 말인가?


*당시 통일사회당 선전국장, 민족일보 논설위원, 혁신동지연맹 대변인, 1960년 7.29선거에 사회혁신당 후보(천안을구)로 천거

▲ 논단-먼저 눈을 뜨고 말하라 (1) [민족일보 이미지]

朴允熙

(옳은말) 한마딜 하려해도 四方을 살펴 임했던 李承晩時代를 생각하면 이제 제법 자유스럽게 마음속을 털어 놓게 된 것만도 「革命德分」일지 모른다.

오랜 억눌림에서 풀려나면서부터 革命이다, 統一이다, 등등 우리 民族이 아쉽게 바라오던 여러 절실한 課題들에 대한 意見들이 나왔고 그 중에서도 李承晩이라면 당장 共産黨이란 올개미를 씌워 때려잡았을 南北交流論까지도 登場하여 어찌 보면 今昔之感조차 없지 않다.

그런데 南北交流-南北書信交換, 記者交煥, 物資交易 등등이 요사이 큰 話題거리로 되어 옳다 그르다는 등의 論議도 상당히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최근) 東亞日報 二面 「論壇」 欄에 네 번에 걸쳐 실린 「먼저 敵을 알고 말하라」라는 題下에 南北交流論을 호되게 「치」는 參議員 金東鳴氏의 글도 이러한 論議의 하나로서 많은 사람들의 눈을 끌었으리라 생각된다.

題目自體가 南北의 交流다. 統一이다 등 그대로 홀홀이 넘겨버리기 어려운 重大問題인데다가 金議員의 글 中에는 그저 「老先輩의 老婆心」으로만 여겨버리기에는 너무나 寒心스러운 點이 있어 몇마디 나대로의 넋두리를 늘어놓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金議員)은  『자, 보라! 百萬大軍을 대치시켜 놓고 있는 彼•我의 接境線上의 光景을!』하고 소리 높이 외치면서 『神出鬼沒한 가지가지의 方法』으로 우리를 먹으려드는 敵과 便紙 往來다, 物資交流다, 文化交流다를 끄집어내는 것은 「共産思想의 宣傳을 끌어 들이자」는 것이 아니 면은 한낱 感傷的인 「얼빠진 소리」요. 또 「필시 딴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것」이라고 몰아 때려버린 다음 「南北交流論의 虛無孟浪함과, 그 危險性」이 「憂慮되는바 없지 않기에 敢히 警告」하는 것이라고 끝을 맺고 있다.

이 글을 읽은 다음 金議員의 뜨거운 反共熱에 다시 한 번 感激하면서도 어쩌면 李承晩이나 그의 政府代辯人의 「諭示」나 「談話」를 되듣는 듯 한 錯角을 일으킨 것이 다만 筆者뿐일까?

「(世界的)인 偉大한 反共領導者」임을 自處했던 李承晩의 反共樣式이 實質的으로 얼마만큼의 反共구실을해 왔는가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고, 또 이 글의 主題도 아니니 一旦 덮어두기로 하고, 먼저 金議員이 交流의 成立與否에 對한 否定的인 要素로서 소스라치게 描寫해준 「敵과의 戰爭狀態」에 관해서 이야기 해보기로 하자.

現在 國境아닌 國境을 사이에 두고 南北이 그가 말한 것처럼 「國力以上의 百萬大軍」을 대치시켜놓고 있다는 것이 그 責任이 어느 놈에게 있었던 간에 뚜렷한 現實이요. 또 기막히게 悲劇的인 現實임에는 틀림없다.

같은 民族이 南北으로 갈라선 悲劇이 結局 數百萬의 목숨을 앗아가고 이루 말할 수 없는 慘禍를 가져다 준 戰爭을 겪기까지 했고, 오늘날에 있어서도 얼마되지 않는 財力과 貴重한 人員을 쏟아 넣어가면서 서로가 敵이 되어 죽이지 못해 으르렁대는 이러한 慘景을 하루빨리 없애고 다시 한데모여 平和롭고 繁榮된 生活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統一에의 한결같은 念願일게고 統一에의 조고마한 自主的 바탕을 마련하고 서로의 接觸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意味에서 提示된 것이 所謂 南北交流論인 줄 안다.

(解放이)된지 열다섯해가 넘는 지금까지 統一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앞으로도 外部의 어느 누구가 統一이라는 것을 銀쟁반위에 놓아 우리에게 갖다 바치기만 바라고?아 있어야 한다는 것도 기막히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現實的인 面 에서 티끌만큼의 自主的인 努力도 없이 그저 大砲아가리가 늘어선 悽絶한 光景 云云을 무슨 活劇映畫求景하듯 뇌까리고만 앉아있는 것을 能으로 하고 있다면 統一이란 누가 銀쟁반에 올려 우리에게 갖다 바치거나 그렇지 않으면 大砲라도 쏘아대며 「北進統一」이라도 하거나 또 그러지도 못한다면 「敵들만이 살고 있는 北韓」을 아에 他國視해 버리고 統一의 꿈조차 抛棄해 버리고 말자는 말인가?

金議員은 「숨막힐 듯한 대치 狀態」가 持續되고 있는 이 版局에 南北交流란 우리 防備의 解除를 意味하는 것이니 어처구니없는 불장난이라고 말했는데 交流하는 것이 곧 防備의 解除를 意味하고 또 何必이면 우리 南韓에게만 그렇다고 해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와 같이 兩端狀態에 있는 東西兩獨逸이 廣範圍한 交流를 해왔고 東西兩陣營의 首領級인 美蘇兩國이 또 그렇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 金議員 생각으로서는 共産北韓은 어떠한 경우에도 强力한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는데 南韓은 무슨 조고마한 일만 當해도 금시 防備가 解除되고 獨逸이나 美國人들은 交流를 해도 괜찮은 優越한 사람들인데 南韓사람들은 도시 그들과 比較도 될 수 없는 劣等民들이란 말인가?

自虐, 自侮, 自蔑도 이만하면 어지간한 것이라고 해야겠다.(계속)

<민족일보> 1961년 3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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