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2018년은 한마디로 ‘격변의 해’였습니다. 70여 년에 걸친 분단과 전쟁의 역사에 파열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웬만큼 굵직한 사건들을 차치하더라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 그리고 역시 세 차례의 북중정상회담 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커다란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 것입니다.

한반도에 과연 평화와 통일의 싹이 틀 것인가? 올해 안에 예상됐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의 내년으로의 순연과 내년 초 예정된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 기대를 걸면서, 통일뉴스는 <2018년 송년특집>으로 ①남북관계 ②북미관계 ③북한 내부 ④문재인 정부의 대북·대외정책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 올해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다. [자료사진-통일뉴스]

2018년 6월 12일 오전 9시(한국시간 10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 센토사섬에 있는 카펠라호텔에서 만났다. 

두 정상은 우리 민족과 전 세계 앞에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미군 유해 발굴 및 송환이라는 네 개의 기둥으로 구성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되는 조(북)미 수뇌회담이 두 나라 사이에 수십 년 간 지속되어온 긴장상태와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는 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획기적인 사변”이라고 평가하고, “공동성명의 조항들을 완전하고 신속하게 이행”하기 위해 고위급 후속협상을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열기로 했다. 

▲ 북미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 하는 트럼프 미 대통령. [자료사진-통일뉴스]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후속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중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루 빨리 ‘종전선언’을 하고 싶다는 희망과 함께 “되돌릴 수 없다고 판단될 때 제재를 해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6월 13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대화와 협상을 통한 관계개선이 진척되는데 따라 대조선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의향”을 밝혔으며,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 측이 조미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한 신뢰구축조치를 취해나간다면 우리도 그에 상응하게 계속 다음 단계의 추가적인 선의의 조치들을 취해나갈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알렸다. 

6월 19일 한.미 국방부는 8월말로 예정된 한미연합군사연습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전략폭격기와 항공모함, 핵잠수함 등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가 중지되고 한미 해병대 연합(KEMP)훈련 2개도 유예됐다. 북한은 이미 4월 20일 김정은 위원장이 주재한 노동당 중앙위 제7기 3차회의 결정서를 통해 △4월 21일부터 핵실험과 로켓 시험발사 중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 집중 노선 등을 표명했다. 

미국 주류 언론들은 “실패”라고 혹평했으나, 7월 6~7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방북해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정상회담 이후 첫 고위급회담을 진행했다. 북한은 서해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과 발사대 폐기 작업에 들어갔다. 북.미 장성급 및 실무회담을 거쳐 정전협정 체결 65주년(7.27) 계기에 미군 유해 55구가 송환됐다.    

10월 19일 미국 국방부는 한미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에이스’ 유예를 발표했다. 내년 봄 독수리연습도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남북 정상들이 평양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군사합의서에 의거 비무장지대(DMZ) 초소 철거 등이 진행되는 흐름에 맞춘 셈이다. 북.미 후속협상 동력을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도 평가된다. 

▲ 지난 10월 7일 김정은 위원장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만났다. [자료사진-통일뉴스]

10월 7일 폼페이오 장관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실무회담 조기 개최’에 합의했다. 그러나, 북한의 상응조치 요구에 미국이 꿈쩍하지 않으면서 2개월이 넘도록 북.미 실무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지난달 8일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었다가 연기된 고위급 회담마저 감감무소식이다. 2차 북미정상회담은 일치감치 내년 초로 넘어갔다. 

지난 1일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1월 또는 2월에 (2차 북미정상회담이) 있을 것 같다”면서 “장소 3곳을 검토 중”이라고 확인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3일 ‘정현’ 명의 논평을 통해 “지금 조미협상은 교착상태에 있다”고 선언했다. 16일 북한 외무성 산하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은 미국이 종전선언과 제재 완화 등 상응조치는커녕 제재.압박만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조선반도 비핵화에로 향한 길이 영원히 막히는 것과 같은 그 누구도 원치 않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내년 초 북미관계의 진전을 위하여

1차 북미정상회담의 역사적 의미는 결코 폄하될 수 없다. 동시에 지금 북미관계가 “교착상태”라는 사실도 외면할 수 없다.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이 역사적 문건임에도 불구하고 빈 터에 4개의 기둥만 세웠다는 다소 혹독한 평가를 받는 이유다. 

지난해 전쟁 위기에 처했던 한반도 정세가 올해 들어 평화 무드로 확 바뀌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남북미 정상 간 끈끈한 유대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톱다운 방식’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여러 차례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심지어 “김정은 위원장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비마다 나서서 중재자.촉진자 역할을 다했다. 지난해 12월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 제안으로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이끌었다. 3월초 남측 특사단의 방북.방미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북미정상회담 개최 약속을 이끌어냈다. 4월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받아냈고 5월 26일 2차 회담으로 무산 위기에 처했던 1차 북미정상회담 불씨를 되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두르지 않겠다”며 한발 빼는 모습을 보이던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으로, 10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성사시켰다.  

지난달 30일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주최 토론회에서 ‘문 대통령이 다시 나서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은 정창현 현대사연구소 소장이 “문재인 대통령은 할 만큼 했다”고 잘라 말한 이유다. 그는 “남북미 모두 실무적 뒷받침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서로 미덥지 않아 하는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중재할 한국 측 인사가 눈에 띄지 않는다. 중앙정보국(CIA) 국장 시절 폼페이오는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매개로 김영철 부위원장과 활발하게 소통했었다. 

전직 고위당국자도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을 앞세워서 여기까지 잘 끌어왔다”고 호평했다.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10월초 폼페이오 방북, 11월말 한미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각론을 이행할 실무 책임자와 아이디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봤다.

▲ 7월초 평양 공항에서 악수하는 김영철 부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 두 사람은 지난달 8일 뉴욕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연기 이후 만나지 못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정부 당국자는 “장관급에서 정상 간 합의를 뒷받침할 사람이 없다”고 인정했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설득하지 못했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의미 있는 카운터파트로 인정받지 못했다. 북핵 관련 주무장관은 아니지만, 볼턴 보좌관은 트럼프 행정부 각료급 중 유일한 핵 협상 경험자이자 자신 만의 해법(‘리비아 모델’)을 가지고 있다. 북미 고위급 회담 대표인 폼페이오 장관이 제시하는 북핵 구상과 해법을 ‘비토’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볼턴 보좌관을 직접 설득할 수 있는 역량과 강한 의지를 갖고 폼페이오 장관을 내실 있게 지원할 수 있는 한국 정부 내 장관급 인사가 필요한 이유다. 

근본적 난제는 접근법을 둘러싼 입장 차이다. 특히, 제재 완화와 직결되는 “되돌릴 수 없는 지점(no return)”까지 갔다고 받아들여질 비핵화 조치가 쟁점이다. 미국은 줄곧 신고.검증을 주장해왔다. ‘신고’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온 북한은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계기에 ‘미국의 상응조치와 맞물리는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 카드를 내밀었다. 한국 내 일부 전문가들은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일부를 미국에 건네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미국은 일단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의 전제조건이던 신고서 제출 요구를 접었다.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과 10월 폼페이오 방북 합의에 따라 북한이 풍계리.동창리 전문가 참관 허용 등 몇 가지 조치를 하고 미국이 상응조치를 통해 우선 신뢰를 쌓자는 것이다. 

“신뢰조성을 앞세우면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단계별로 해나가는 방식으로 조미관계를 개선해나갈 것”(12.16 외무성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 담화)이라는 북한 입장이 관철됐다고 볼 수 있으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북.미가 합의하는 로드맵, 주요 쟁점에 대한 해법이 없는 한 다음번 협상은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외교소식통은 “청와대와 외교부, 국정원이 각자 제안서를 건네는데 그 해법들이 미국이 보기에 흡족하지 않은 것 같다”고 알렸다. 또 “신고 문제를 정면으로 대하지 않고는 북미관계의 결정적 진전은 어렵다”면서, 검증 의정서 문제로 협상 자체가 깨졌던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 않고 “신고 과정에서부터 북미가 협력적 메커니즘을 구축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한국 홀로 중재자.촉진자 역할을 하는 게 힘에 부치는 상황에서 주변 나라와의 공조 필요성도 거론된다. 미국 설득이 당면과제라는 점에서, 미국과 ‘무역전쟁’ 중인 중국보다는 일본이 보다 적절한 파트너라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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