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인 이귀녀 할머니가 14일 별세했다. 향년 93세.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이날 “오늘 새벽 용인의 한 요양병원에 계시던 이귀녀 할머니께서 별세하셨다”고 부고를 알렸다.

▲ 고 이귀녀 할머니. [사진제공-정의연]

고 이귀녀 할머니는 1926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17살 즈음에 중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취업 사기에 속아 중국 열하성으로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받았다.

1945년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고인은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며 재봉공장 등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거리에서 한국말이 들리면 찾아 나설 정도로 고향을 그리워하던 고인은 2012년 귀국했다.

고 이귀녀 할머니의 삶은 귀국 후에도 순탄치 않았다. 후원자를 자처하는 김 씨와 박근혜 정부에 이용당한 대표적 사례.

후원자를 자처하던 김 씨는 이귀녀 할머니를 귀국시켜, 용인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시킨 뒤, 정부의 지원금을 관리해왔다. 정부는 이 할머니에게 정착지원금 4천3백만 원을 지급했고, 정부와 서울시는 매달 2백여만 원씩 생활지원비를 보내왔다.

하지만 김 씨는 이귀녀 할머니에게 과일 몇 바구니와 몇 가지 음식만 보내줬을 뿐, 정부 지원금에 대해서는 일절 알리지 않았다.

심지어 화해치유재단이 위로금 1억 원을 지급하던 당시, 김 씨는 이 할머니에게 고개 끄덕이기 연습을 시켜 돈을 받도록 종용했으며, 1억 원도 김 씨의 수중에 들어있는 상황이다.

여성가족부는 김 씨가 이귀녀 할머니의 돈을 착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눈감아주고 있다.

게다가 2017년 1월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귀녀 할머니를 만나, 할머니의 얼굴을 공개했다. 대부분 피해자는 자신이 일본군 성노예였음이 공개되는 것을 꺼리는 데, 피해자의 의사도 묻지도 않은 채, 강제 ‘커밍아웃’을 시킨 셈이다.

윤미향 정의연 이사장은 “이제야 그 긴 병상의 생활을 접고 안식하시겠구나 생각하게 되는 날”이라며 “아주 늦은 2012년에 고국으로 돌아오셨다. 하지만 가족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요양병원으로 들어가셔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신 채 그렇게 병원 생활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그리고 “우리 쉼터로 모시려고 시도도 해봤지만, 우리에게 법적인 권한도 없고, 할머니 보호자를 자처했던 분 때문에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며 “2015 한일합의가 있었을 때, 병상에 계신 할머니를 앞에 두고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사진을 찍고 보도로 내보내 분노했던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고 이귀녀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239명 중 생존자는 25명으로 줄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순천향병원에 마련되며, 발인 등 장례절차는 조만간 확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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