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남을 위할 줄도 모를 뿐더러 자기 자신도 위하지 못한다 (에리히 프롬)

 
 
 자유
 - 김남주
 
 만인을 위해 내가 노력할 때
 나는 자유이다
 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이다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이다
 피와 땀을 눈물을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밖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중국발 미세먼지가 몰려온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얼마 전에 보았던 ‘중국 대장정 다큐멘터리’가 생각난다.
 
 중국의 공산당 홍군은 국민당 정부군의 추격을 피해 일 여 년 동안 걸어서 서쪽으로 탈출한다. 이 과정에서 모택동의 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 건설의 기반을 마련한다.
 
 큰 늪을 지나며 많은 홍군들이 늪에 빠져 죽는다. 이 때 죽어가는 홍군들은 옷을 전부 벗어놓는다. 살아남은 동지들을 위해! 눈시울에 눈물이 맺혔다. 아, 이렇게 지금의 중국이 건설되었구나! 그런데 왜? 지금은 먼지투성이의 중국이 되었나?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은 혁명을 일으켜 인간의 지배에서 벗어난 동물들이 다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눠지는 비극을 다뤘다. 왜 인간은 해방된 세상을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는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사람들이 ‘완장’을 차고 나서는 한 순간에 달라지는 모습을 많이 본다. 그래서 인간 세상의 혁명은 실패하고 마는 건가?
 
 마르크스와 결혼한 귀족 출신의 예니는 왜 가난한 평민 마르크스와 결혼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권태로운 귀족 생활이 싫어요.’   
 
 자본주의 세상에 살면서 겪는 가장 큰 고통 중의 하나는 ‘권태’일 것이다. 의식주가 충분한 사람들을 보면 한결같이 깊은 권태의 늪에 빠져 있다. 그들은 일중독에 빠져 벌어들인 풍요로운 부를 누리지 못한다.
 
 그래서 자본주의 세상에 사는 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사람들은 실패한 현실 사회주의를 생각하며 다른 세상을 꿈꾸지도 못한다.   
  
 인간이 바라는 가장 고귀한 가치 ‘자유’는 ‘만인을 위해 내가 노력할 때’ 온다.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온다.  
 
 ‘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나는 자유이다/피와 땀을 눈물을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밖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우리는 외로워지고 결국엔 불행해진다. 
 
 인간은 개인이면서 동시에 ‘유적(類的)존재’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사람과 연대하고 공감할 때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은 철저히 고립된다. 자본주의는 모든 사람과 물질을 사고파는 대상, 상품으로 보게 한다. 그래서 사람이 얼마짜리의 물건으로 보인다.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가 모래알처럼 흩어져 사니 인간은 깊은 외로움에 빠져 불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우리는 ‘만인을 위해 일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세상은 자꾸만 자신의 잇속만 챙기게 하는데.
 
 인간의 잇속은 ‘돈, 권력, 명예’다. 이 셋 중의 하나만 가지면 세상에서는 성공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은 결국 권태의 늪에 빠져 불행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이 자신의 잇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소련, 중국의 사회주의가 실패한 이유도 크게 보면 혁명의 주역들이 자신의 잇속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의 인생삼락(人生三樂)의 첫째는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이다. 
 
  우리는 공부를 ‘지식을 쌓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즐거움이 공자의 최고의 즐거움이었구나! 이렇게 착각한다. 공자의 공부는 ‘배우고 익히는 것’ 즉 ‘공부하여 자신이 바뀌는 것’이다.
 
 공자는 공부하면서 자신이 잇속을 차리는 인간에서 만인을 위해 일하는 인간으로 변신하는 경이로운 기적을 체험한 것이다. 이 즐거움이야말로 인생의 최고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한숨을 쉰다. ‘언제 좋은 세상이 오는 거야?’ 하지만 이렇게 기다리기면 할 때 좋은 세상은 절대 오지 않는다. 혁명이 되더라도 다시 실패할 것이다. 기다리기만 하는 인간은 자신의 잇속만 차리는 인간이니까.
 
 ‘좋은 세상’은 지금 당장 실현해야 하는 삶일 것이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가정, 직장, 단체, 지역 사회, 나라, 세계에서 살아내야 하는 삶일 것이다. 자신부터 자신의 잇속을 차리는 인간에서 벗어나며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서로를 위하여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전체 사회가 바뀌는 그날까지. 인생 최고의 즐거움을 갖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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