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배워 때에 맞추어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공자)


진정한 여행   
- 나짐 히크메트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다.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나는 오래전에 우연히 모 문화센터에서 성인대상의 강의를 한 것이 시원이 되어 지금까지 성인 대상의 강의를 하고 있다. 인문학 붐이 일면서 자연스레 강의 내용도 인문학 강의가 되었다.

 나는 공부를 대학원에서 한 게 아니라 ‘삶’에서 했다. 나는 사범대학에 진학했지만 대학을 다니면서 나의 목표는 대학원 철학과에 진학해 철학자가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당장 돈이 없으니 교사 생활을 하면서 돈을 모을 생각이었다.

 그러다 ‘전교조’를 하게 되면서 일생 처음으로 ‘나 자신을 공부(성찰)’하게 되었다. 전교조 활동을 통해 봐버린 세상은 지금까지 내가 본 세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부질없어 보였다(지식을 쌓는다고 해서 내 삶의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알’ 속에서 신음하던 나는 무작정 알을 깨고 나왔다. 밖에 나오니 날개가 돋아 버렸다. 하늘을 마음껏 날았다. 며칠 동안 술을 마시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았다. 시민운동단체에 근무하면서 인문학, 사회과학을 공부했다. 새가 되어 보는 세상, 그것은 경외 그 자체였다.  
 
 공부는 나 자신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공부하고는 얼마나 다른가! 하지만 새의 비상은 순탄하지 않았다. 나뭇가지나 바위에 부딪쳐 피를 철철 흘리기도 하고 물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했다.   

 너무나 오래 알 속에서 있어서였는지 큰 병에 걸리기도 했다. 죽음 문턱까지 갔다 왔다. 하지만 서서히 회복되면서 환골탈태(?)했다. 잘 이해되지 않던 고전, 철학 이론들이 확연히 이해되었다.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왜 고행을 하는 지가 이해되었다.

 나의 인문학 강의는 거의 삶이 소재가 된다. 서로의 경험이 인문학의 눈에 의해 새로이 태어난다. 속된 강의실이 성스러워지는 체험, 다들 공부를 즐거워했다.    

 모든 성현들은 공부를 ‘거듭나는 나’로 생각한 것 같다. 예수는 부활에 의해 세계의 종교가 되었고, 불교에서는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고 했다. 죽으면 중생에서 부처로 거듭나는 신비. 감옥에 갇힌 소크라테스는 도망가라는 제자들에게 ‘나도 그렇게 생각해 봤는데, 내 안의 다이몬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더군.’하고는 독배를 마셨다. 공자는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라고 했다. 배우고 때에 맞춰 익히는 것, 그래서 몸이 바뀌는 것이 공부의 즐거움이었다.  

 공부가 이렇게 자신을 거듭나게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학교에서 파편적인 지식을 달달 외운다. 논술이라고 하지만 이미 답이 정해져있다. 머리에 지식만 가득 쌓여간다. 그렇게 공부하여 대학에 가고 직장을 얻는다. 

 이렇게 공부한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사람을 물화(物化)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우리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서로 잘 난체 하며 살아간다. 권태가 강물처럼 몰려오고 우울증에 걸린다.
 
 가끔 명문대 출신의 석박사들이 공부하러 온다. 그들을 만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들은 대개 자신의 문제를 모른다. 공부는 자신의 문제를 질문하는 것인데, 그들은 성공한 인생이라는 허상에 갇혀 자신의 문제를 볼 줄 모른다. 그러니 그들은 너무나 뻔한 질문을 하고 뻔한 답을 얻는다. 그래도 세상은 그들을 지식인이라고 하니 그들은 자신의 단단한 알 속에서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알속이 답답하다는 건 느낀다. 하지만 알을 깨야 세상을 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한다.       
 
 터키의 혁명 시인 히크메트는 우리에게 ‘진정한 여행’을 하라고 한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모조리 파산시키라고 노래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그는 감옥에서 이 시를 썼다고 한다. 그의 정신은 탈옥할 것이다. 세상 위를 비행할 것이다.
   
 최근에 청년 인문학 강의를 하며 나는 새로운 세상을 본다. 대학을 가지 않은 젊은이, 그는 노래를 부르며 세상의 하늘을 날려고 한다. 대안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가 대학을 가지 않고 조만간 공부하러 온다고 한다. 그녀는 알 속에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취직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진정한 삶을 사는 데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 우리의 대학 교육, 나는 과감히 대학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에게서 우리 사회의 희망을 본다. 나는 그들이 새로운 세상의 시원이 되리라는 것을 믿는다.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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