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힘이 없는 선은 악보다도 못하다 (마키아벨리)


 칠보시
 - 조식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가마솥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어찌하여 이다지도 급히 삶아 대는가


 학교 교사로 있을 적에 아이들이 막 발령받아 온 ‘도덕 선생님’을 보고 ‘도둑 선생님’이라고 놀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한 눈에 임금님을 벌거숭이로 알아보는 아이들의 무서운 혜안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경외감.

 공자는 말했다. ‘중행(中行)을 실천하는 선비(군자)를 얻어서 그와 더불어 일을 도모할 수 없다면, 반드시 광자(狂者; 미친 놈)와 함께 할 것이다.  

 공자는 향원(鄕愿)을 가장 싫어했다. 향원은 언뜻 보면 후덕해 보이는 사람이다. 그는 세상에 맞춰 살기에 모가 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는지를 잘 알기에 그는 사람들의 미움을 받지 않는다. 도덕군자처럼 보이는 향원을 왜 공자는 경멸했을까?

 나는 살아오면서 향원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들은 언젠가는 내게 크고 작은 피해를 줬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겉으로 보이는 도덕이 한 순간에 ‘도둑’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공자는 그들을 덕을 훔치는 자들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도덕을 행하는 게 아니라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도덕을 행했다. 그러니 마음속에 어둠이 쌓이고 그 어둠이 때가 되면 악마가 되어 밖으로 틔어 나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흉악범을 보면 경악한다. 그들의 순한 얼굴 표정에.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그(녀)는 참 얌전한 사람이었어요.’ 

 공자가 말하는 ‘중행(中行)을 실천하는 군자’가 되기는 얼마나 힘이 드는가? 항상 마음의 중심을 잡고 산다는 건, 오랜 수행의 결과로만 가능하다.

 그래서 마음의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사람은 처음엔 ‘광자’처럼 보일 수가 있다. 마음속의 큰 뜻과 세상의 불일치로 그는 광자가 되어 세상을 떠 돌 수가 있다. 하지만 그는 서서히 마음의 중심을 잡아간다. 인품이 쌓여간다.

 그래서 공자는 군자를 가까이 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광자를 가까이 하겠노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광자를 좋아할까? 향원을 좋아할까? 가정과 학교에서는 어떤 유형의 아이를 좋아할까?

 우리 사회는 정치인에게 ‘엄청난 도덕’을 요구한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인에게 ‘부도덕’의 낙인이 찍히면 그는 한순간에 훅 간다. 

 그럼 다른 정치인들은 정말 도덕적일까? 혹 향원들은 아닐까?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키아벨리는 ‘도덕과 정치는 별개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중세 봉건사회까지는 도덕군자가 정치하는 게 맞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주의가 출현하고 사회가 여러 분야로 세분화된 근대 사회에서는 정치도 전문가의 영역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도덕과 정치로 하나로 묶어 사고한다. 그러다보니 향원들이 득세한다는 생각이 든다. 광자로 보이는 정치인은 자리를 잡을 수가 없다.

 이런 우리의 정치의식을 지배세력은 어떻게 이용하고 있을까? 지배세력에게 위험이 되는 정치인은 도덕의 이름으로 날려버리지 않는가? 우리는 거기에 환호하고. 

 정치란 얼마나 잔혹한 것인가? 위왕(魏王)이 된 조조의 아들 조비는 아우인 조식을 제거하기 위해 그에게 일곱 발자국을 걸으며 시를 짓게 했다.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가마솥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어찌하여 이다지도 급히 삶아 대는가’

 조비는 이 시를 듣고는 차마 아우를 죽일 수 없어 살려주었다고 한다(사실 시인 조식은 힘이 없었기에 겁만 주고는 살려주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골육상쟁(骨肉相爭)의 정치판에서 도덕군자가 가능한가? 도덕의 이름으로 광자 같은 정치인들을 다 쳐버리고 나면 향원들만 남을 텐데,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공자의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군자를 정치인으로 세울 수 없다면 차라리 광자를 정치인으로 세워야 할 것이다. 향원 정치인 말고.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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