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트럼프, “북미 협상은 미국의 길”

11월 12일 미국 유력 신문 <뉴욕타임스>는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실험장 폐기를 약속하고도, 다른 16개 비밀 기지들에서 탄도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고 있다”는 기사를 낸다. 군사 분야에서 명성을 자랑하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공식보고서와 현대 과학의 총아 인공위성이 잡은 현장사진 등을 제시하며 신문은, “북한이 큰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한다. 울고 싶다면 이때 울면 된다.

<뉴욕타임스> 주장에 침묵하거나 약간의 동조 신호를 보내면 후속 기사들이 번질 테고, 그 다음 ‘북한의 약속 위반’이란 불가피 사유를 근거로 협상을 접으면 된다. 2002년 10월 아들 부시 정부의 ‘고농축 우라늄 의혹’ 조작을 빌미로 한 제네바협정 파기 등 북미 협상의 역사에서 종종 이런 방법이 적용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뉴욕타임스>의 여론몰이 바로 다음날(11.13.싱가포르 시간)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우리는 북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매우 잘 알고 있다”면서 “여전히 2차 북미정상회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매파의 대표 격인 그가 파문 진압에 가장 먼저 나선 것이 인상적이다. 볼턴의 엄호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11.13. 미국 시간) 트위터를 통해 “북한이 미사일 기지를 개발하고 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는 정확하지 않다. 그저 또 다른 가짜 뉴스일 뿐”이라면서 “만약 일이 잘못되면 내가 가장 먼저 알리겠다.” 기사를 부정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가, 북의 ‘약속 이행 중’에 대해 보증까지 선다.

왜 이럴까? 먼저 <뉴욕타임스> 보도가 거짓임을 짚자. 11월 13일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북한은 이런 기지를 폐기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기 때문에 기만이란 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고 했다. 미국 쪽에서도 같은 말이 나왔다. 시걸 미국 사회과학연구위원회 국장은 “북미는 아직 북한의 미사일 배치를 억제할 합의에 도달하지 않았다”(11.13)고 했고, 미국의 또 다른 유력지 <워싱턴포스트>도 “보고서에 나온 미사일 기지들이 북한이 6월 북미정상회담 합의와 관련해 속임수를 썼다는 증거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란 핵 협정’ 파기, 사우디아라비아의 언론인 살해에 대한 면죄부 발행 등 최근 행적에서도 알 수 있듯 미국 정부는 사실의 진위 여부와 정책 결정을 직결하지 않는다. 그럼, 북에 대해서는 왜 이럴까? 11월 18일 트럼프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만약 기존의 정책을 이어갔다면 북한과 전쟁에 들어갔을 것”이라면서 “내 생각에 우리는 위대한 결정들을 내렸다. 나는 가야 할 길을 가겠다”고 했다. 북미 협상이 (핵)전쟁을 막기 위한 것이란다. 그러니 함부로 깰 수 없다는 것이다.

11월 21일 품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면서도 “북한의 미사일 시험이나 핵 실험이 없기 때문에 협상 기간에 미국 국민이 안심해도 된다”고 했다. 북의 핵, 미사일 동결이 풀리면 미국인은 불안해진단다. 그러니 그것을 어떻게든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간선거가 끝났고, 재선을 결정하는 대선까지는 2년이나 남았으니 그 사이 1년 정도는 판을 깰만한 여유가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트럼프 정권 스스로 부정한 것이다.

2. 북의 두 가지 응답

11월 14일 앤드류 김 미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이 비밀리에 방한한다. 품페이오의 방북 4회에 모두 동행하며 북미 협상의 막후 조율사 역할을 해온 그는 17일까지 서울에 머물렀는데, 그 사이 북 통일전선부와 판문점에서 접촉했다. 그러나 협상 내용은 전혀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미국은 두 가지 신호를 북에 보낸다. 하나는 11월 15일 유엔 총회 제3위원회의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이다. 결의안은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는 방안”과 “인권 유린에 가장 책임 있는 사람들에게 맞춤형 제재를 부과”할 것을 유엔 안보리에 권고하는 내용으로, 김성 유엔 주재 북 대사가 “진정한 인권과 아무 관계가 없으며 적대 세력에 의한 정치적 음모의 산물”이라며 퇴장하는 등 북의 강력한 반발을 낳았다.

같은 날, 미 국무부 노어트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4개의 항목에 합의를 이뤘고, 미국은 이 4개 항목을 놓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면서 “내년 초로 추정되는 다음 만남에서 이 4개 항목이 다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한다. 유엔에서 북미 관계 앞날에 어깃장을 놓은 미국이, 동시에 국무부를 통해서는 다시 미소를 보이는 식이다. 이중적 표변이자, 일관된 상황관리다.

바로 다음날(11.16) 북은 두 가지 카드를 동시에 꺼낸다. 하나는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이 “새로 개발한 첨단전술 무기 실험을 지도”했다는 조선중앙방송의 보도다. 지난해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발사 이후 처음이다. 전술무기로 수위를 조절했으나, ‘병진 부활’ 논평(11.2.조선중앙통신)의 확대 연장이다.

같은 날 북은 “미 중앙정보국의 조종에 따라 불법 입국(10.16.조선중앙통신)”했다가 억류된 미국인 한 명을 추방 조치했다. 스파이 혐의까지 받을 만한데도, 한 달 만에 신속히 석방한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억류 미국인 3명을 석방(5.9)한 재연, 대화 분위기 조성이다.

3. 철도 조사 제재 면제 - 그러나 조사만 면제

11월 20일 ‘한미 워킹그룹’ 1차 회의가 워싱턴에서 열렸다. 모임이 끝난 후 우리 측 대표인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미국이 남북 철도 공동 조사 사업에 적극 지지 입장을 밝혔다”면서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11월 21일 통일부는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 회의를 통해 5건의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의결한다. 4건은 남북교류협력 기금 지원, 1건은 ‘문산-개성 고속도로’ 관련이다.

기금 지원은,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발굴조사 11억 6백만원, 서해 군 통신선 광케이블 교체 9억 3천9백만원, 방제약제 구매 및 수속비 등 14억 7백만원, 화살머리 도로 공사 북 장비 지원 7억 3천5백만원 등이다. ‘문산-개성 고속도로’는, 그 남측 구간 ‘문산-도라산 고속도로’를 남북교류협력사업으로 인정,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2-3년 걸리는 절차를 생략, 전체 22.2km에 달하는 구간 중 ‘문산-도라산’ 11.8km 공사에 먼저 착수한다는 것이다. 막혔던 것이 뻥 뚫렸나?

11월 20일 ‘한미 워킹그룹’ 회의를 위해 한국 대표단이 미 국무부 청사에 들어선 직후, 품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기자회견을 자청, “워킹그룹 출범으로 한국이 단독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한미워킹그룹이 ‘한국의 단독 행동 금지’ 장치임을 공개 천명한 것이다.

11월 22일 청와대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남북 항공 실무회담(11.16)에서 북측이 제안한 동, 서해 국제항로 개설에 대해 긍정 평가한 다음, 적극 검토해 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한다. 11월 23일 통일부는 “제재와 상관이 없는 남북관계 현안에 대해서도 미국 측과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의해 나가겠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한다. 여기서 국제사회란 사실상 미국이다. 논의는 하되 결론은 유보하고, ‘제재와 상관없는’ 것까지 미국과 협의한다. ‘한미 워킹그룹’ 현상이다.

11월 23일 유엔 대북제재위원회가 남북 철도 공동조사에 대해 대북 제재를 면제했다. 8월 22일 서울역을 출발하려던 기차가 유엔사(미군)에 가로막힌 지 무려 네 달 만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는 “구체적인 조사 규모와 허가 품목 등이 담긴 승인 서류를 공개할 계획은 없다(미국의소리.11.27)”고 한다. 이것이 관행인가? 아니다. “앞서 대북제재위원회는 지난달 24일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에 서한을 보내 대북제재 유예 요청을 허가하면서 대북 유입이 허가된 물품의 양과 금액, 사용처 등을 명시(같은 기사)”했다.

면제 사항이 충분해서 다른 분야, 타국에 해빙 기운을 옮길까 우려해서일까? 아니면 ‘빈 수레 면제’여서 결국 덜컹거릴 테고, 그 책임 회피를 위해 미리 수를 쓴 걸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미국이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를 통해 제재 면제에 동의한 것은 남북 철도 공동조사뿐이다. 착공식은 아직 별도다. 그것은 한 달에 2회 열리는 것으로 합의된 ‘한미 워킹그룹’에서 다뤄질 것이다. 또 하나, 어렵게 착공식이 열려도 애초 남북이 약속한 남북 철도, 도로 현대화 사업은 또 별개다.

4. 미국의 시간 끌기 - 2차 북미정상회담 일정 불투명

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교착된 북미 관계는 2차 북미정상회담을 통해서만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의 개최는 북미고위급회담의 성공에 달렸다. 트럼프는 지난 9월 24일 “2차 북미정상회담이 매우 곧 열릴 것”이라고 했고, 10월 9일 “11월 6일 중간선거 이후 열릴 것”이라고 했다. 10월 22일 볼턴이 “내년 1월 1일 이후 열릴 것”이라고 한 다음 현재까지 그것이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북미정상회담 관련, 미국의 최신 입장은 11월 21일 품페이오의 라디오 인터뷰에 담겨있다. 그는 먼저 “김 위원장을 수주 전 만났을 때 그는 계속 비핵화 검증을 수용한다고 약속했고 그 대가로 우리는 북한 사람들에게 보다 나은 미래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중앙일보.11.22)”고 한다. “보다 나은 미래 제공”이란 대가는 “북의 비핵화 검증” 이후라는 것, ‘선 비핵화’를 또 다시 꺼내든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시간표는 없다. 논의는 오래 걸릴 것이다. 매우 복잡한 문제”라고 한다.

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선 비핵화’ 주장은 빨간불, ‘북미 정상회담 네 가지 합의 사항 이행’은 파란불이었다. 10월 7일 4차 방북을 전후로 품페이오는 파란불을 점등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빨간불로 바꾼 것이다. 스스로 정지 신호등을 켠 다음 “오래 걸릴 것”이란다. 셀프 장기 주차다. 같은 날,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내년 독수리 훈련 규모 축소”를 발표한다. 그들 생각에 주차권을 끊은 것이다. 그러나 그 주차권은 미국이 혼자 값을 매긴 것, 객관적 통용 여부는 별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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