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공동위, 연내 정책협의.새해맞이 공동행사 추진

▲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과 5일 오후 6.15남측위 사무실에서 <통일뉴스> 창간 18주년 기념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올해 들어서만 남북정상회담이 세 차례 열렸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답방이 예정돼 있지만 정작 민간 통일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이하 6.15남측위)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올해 한 차례도 남북해외가 함께하는 공동행사를 주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열린 10.4선언 기념 공동행사마저 정부와 노무현재단 위주로 치러지면서 존재감이 줄어든 것.

이창복 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은 5일 <통일뉴스> 창간 18주년 기념 인터뷰에 응해 그동안의 사정과 심경, 앞으로의 구상을 가감없이 밝혔다.

이창복 의장은 “10.4공동행사와 관련해서 언급한다면, 6.15남측위가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진행과정이 그렇지 못했다”며 “그래서 가기로 결정했다가 불참하기로 결정했고 다시 가기로 번복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 내부의 속상함들이 많이 있었다”고 토로하고 “한마디로 통일부가 못됐다”면서도 “어떻든 정부와의 관계를 잘 풀어가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6.15남측위는 6.15북측위와 6.15해외측위와 함께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계기 민족공동행사를 개최하는 등 명실상부한 민간통일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했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 민간교류가 중단되면서 중국에서 6.15공동위 공동위원장회 회의 개최로 겨우 명맥을 이어왔다. 

그는 지난 3~4일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민화협 연대모임에서 실무협의 결과를 전하며 “6.15공동위를 강화시키기 위한 정책협의를 금년 안에 하기로 했다. 내년 1월에 6.15공동위 회의를 이를테면 총회를 예정하면서 정책협의를 하기로 결정했다”면서 “새해맞이 민족공동행사를 추진하기로 했고, 6.15공동위원회 회의와 같이 할 거냐 아니면 따로 할 거냐는 조금 논의의 여지가 있는 것 같다”고 처음으로 밝혔다.

올해로 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 임기를 마치는 그는 “연임은 가능한 것 같은데, 내가 너무 오래 했다. 6년 동안 했으니까 이제 새로운 사람이 나와서 할 때가 됐다”며 “은퇴라는 말이 맞지 않지만, 죽을 때까지 통일운동하겠다 생각하고 있지만, 조직 속에서의 활동은 이젠 지양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마음을 털어놓고 “어떻든 80이 넘었는데 정년퇴임하는 거다. 운동권의 정년은 80일 거라 생각한다”고 웃음지었다.

그는 “농민들이 농민회에서 하고 있는 게 ‘통일트랙터 보내기 운동’이다. 4천만원 짜리 통일트랙터를 100대 보내자는 것”이라며 “물론 북쪽 농민의 어려움을 도와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대북제재를 돌파해내는 상징적인 뭐가 있지 않느냐는 거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운동은 돌파해 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며 “트랙터 100대 가지고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거기에 남쪽 농민의 마음이 실린 것 아니냐”고 반문하고 “제재라고 하는 조건을 돌파해내는 힘도 가질 수 있겠기에 그 운동은 운동으로서의 훌륭한 의미라 생각한다”고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6.15남측위의 그간 활동에 대해 “제 계기별 활동에 치중했다는 점과 정책단위의 활동이 미흡했다는 점, 그리고 조직을 좀더 강화하고 저변을 확대하는데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는 그런 점들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고 짚고 “3자가 합의해서 민족적인 운동을 전개해나가려면 6.15공동위 같은 조직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며 6.15 조직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5일 오후 3시 서울 서대문 6.15남측위원회 사무실에서 가진 <통일뉴스> 창간 18주년 기념 인터뷰 내용이다.
 

“한마디로 통일부가 못됐다”

▲ 이창복 의장은 10.4공동행사 참가 경과를 담담히 밝혔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올 한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특별히 급진전되고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 이창복 상임대표의장 : 세 번씩이나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남북관계가 상당히 급진전 됐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을 이행하기 위해서 군사회담도 했고, 실질적으로 DMZ(비무장지대) 안에서의 긴장을 완화시키는데 명실공히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조치를 취한 것은 아주 크게 환영할만 일이다.

북미관계에 있어서는 철저한 적대관계를 50여년 이상 유지해온 터에 이렇게 1차 정상회담도 했고 2차 정상회담을 준비 중에 있는 상황이니 크게 진전된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다만, 지금 2차 정상회담이 지연되고 있는 것도 내용을 보면 결국은 비핵화와 단계적 상응조치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해서 논의가 계속됨으로 인해 지연되고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북미관계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는데, 남북정상 간의 합의가 북미정상회담에 반영될 수 있도록, 다시 말하면 우리민족에 합의된 것이 북미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걸 굳이 표현한다면 민족자주의 정신이 스며들어 갔으면 좋겠다 생각을 해본다.

□ 누구나 남북관계의 진전을 체감하고 있는 것 같다. 그에 비해서는 민간교류라든지 특히 민간 공동행사는 기대하는 만큼 잘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6.15민족공동행사를 논의한 그때는 정상들의 회담이 준비되고 있었던 과정이었기 때문에 민족공동행사를 협의할 수가 없었다.

8.15민족공동행사를 기획했었는데, 그것도 역시 계속되는 정상회담과 고위급회담 속에서 지연되고 날짜를 맞춰 행사를 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정세의 변화에 따라서 민간 공동행사가 지연돼 왔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10.4공동행사와 관련해서 언급한다면, 6.15남측위가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진행과정이 그렇지 못했다. 정부가 주도하다 보니까 결국 노무현재단 쪽의 의사를 많이 반영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까 6.15남측위의 의사를 많이 경청하지 못한 결점들이 있어서 그런 행사에 참여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을 수 차례의 상임대표의장 회의를 소집해서 논의했다.

그래서 가기로 결정했다가 불참하기로 결정했고 다시 가기로 번복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 내부의 속상함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북측의 요구도 있었고, 또 인원 배정 때문에 거부한다는 마음이 좁은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도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됐다.

6.15남측위가 조금 소외되기는 했지만 북측위나 해외측위에서는 적극적으로 참여한 부분도 있고 그러니 완전히 소외됐다고는 보지 않고 있다.

다만 정부가 추진 과정에서 협의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가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우리측 반발이 있었고,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약속은 했지만 어떨지 모르겠다. 어떻든 정부와의 관계를 잘 풀어가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 정부가 상대적으로 6.15남측위를 홀대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특히 통일부가 6.15남측위를 인정하고 공동대표에도 추가하기로 합의해놓고 다음날 발표 때는 아예 이를 무시했다. 기술적인 문제였나, 실제 문제가 있었나?

■ 결국은 대표단의 일원으로 이름을 넣었고, 그런데 인원 배정이 9명 밖에 안 된다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된 거다. 우리가 안 간다고 하니까 그 자리를 다른데 이미 배정했더라. 그리고 나서 우리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자니까 많이 못들어 주고 9명만 들어주게 된 거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통일부가 못됐다. 우리가 안 간다니까 우리한테 배정할 자리를 다른 단체한테 배정했고, 그러면서도 우리에게 참여해달라고 요청한 것이었다. 그래서 150명 정원이 159명으로 늘어났다.

연내 정책협의, 새해맞이 공동행사 추진

▲ 보수정권에서 민간공동행사가 열리지 못한 가운데 6.15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회의를 중국에서 개최해 명맥을 이어갔다. 통일부는 6.15남측위 대표단의 북한주민접촉을 수리하지 않고 벌금을 물렸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중국 심양에서 6.15공동위 공동위원장회의를 갖고 남북해외 대표들이 한데 모여 기념사진을 남겼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그간 6.15공동위가 민간공동행사를 주관해온 것은 거의 공식이다시피 했고, 보수 정권 시절 승인을 받지 못하더라도 공동위원장 회의를 꾸준히 개최하기 위해 노력해왔지 않나. 그런데도 지금 6.15남측위 위상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궁금증이 나오고 있다. 어떻게 보나?

■ 정부가 오랫동안 남북문제에 대해서 주도적으로 역할을 못해온 터에 이제 바뀐 상황에서 통일부는 통일부 대로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의욕도 있었을 것이다. 또 그런 일을 하는데 자기들 의사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데, 걸리적거리는 6.15남측위가 눈밖에 났다고 보여진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깊은 고려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밖에 없다.

내 소신껏 일관되게 주장한 것은 뭐냐면, 정부는 정부 대로 역할이 있고 민간은 민간운동의 역할이 있다. 정부의 역할 중에 중요한 것이 민간운동이 잘 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조정해주는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역할이 감독하고 제한하고, 거절하는 이런 식으로 나타나면,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 10.4 공동행사 대표단으로 방북했고, 특히 공동대표의 일원으로 활동했는데, 개인적인 소회는 어땠나?

■ 그때는 갈 때부터 올 때까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선 배제된 사람이 있었고, 그런 점에서 뿐만 아니라 가냐 못가냐 이것 때문에 비상상임대표단 회의를 세 번이나 열었었고 그런 속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들이 토로됐겠나.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참가하기는 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참가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편한 마음은 아니었다. 그리고 기념식에 북측위 위원장 축사도 있었고 해외측위 위원장 축사도 있었고 그런데 남측위 위원장 축사가 빠졌다. 그런 점에서 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왜 우리 뺐느냐” 이렇게 항의하기에는 뭐랄까 제 얼굴에 침뱉는 격이 돼서 안했다.

10.4 기념식 끝난 다음에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대표단을 접견했는데, 김영남 위원장 옆자리로 나를 배치하더라. 그리고 나를 상당히 추켜세우더라. 그런 해프닝이 있어서 조금 위로받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마음이 불편했다.

▲ 지난 10월 5일 평양에서 개최된 10.4선언 11주년 기념 공동행사에 이창복 의장도 공동대표의 한 명으로 참석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올해 10.4 공동행사 당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면담하는 모습.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이창복 의장의 통일운동 경력에 대해 이례적으로 상찬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최근에도 금강산 남북 민화협 행사에 민주노총 관계자들을 비롯해 5명이 불허가 됐고, 그 여파로 민주노총과 전교조 참가 대상자 40명이 보이콧했다. 민주정부에서 그러리라 예상을 별로 예상을 못했던 사안인데 이런 문제를 어떻게 보나?

■ 정부가 정확한 조치를 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불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6월 공동위원장회의 때 5명 정도 불허를 했고, 이번에 금강산 갈 때도 불허했다.

이러한 불허를 하면서 물론 구차하게 변명하고 싶거나 이유를 대고 싶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조직의 대표가 못 가도록 한 것에 대해서는 선명하게 그 이유를 밝혔어야 옳았다. 그런데 그런 것도 없이 “발표할 수 없다”, “대답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일관하는 모양인데, 그런 정부의 태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통일운동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 6.15남측위가 민화협, 종단, 통일연대 3자 연대체로 시작했고, 이후 통일연대는 진보연대로 전환했고, 시민사회가 추가로 참가해 4자 연대로 발전해 통일과 관련된 민간부문을 포괄했다고 평가받아 왔다. 그런데 지금 일각에서는 6.15남측위가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있지 못하다, 새로운 연대체가 필요하다는 흐름도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보고 있나?

■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고 다른 단체들이나 정부의 주도하에 진행되는 일이니 만큼 좀더 진행 상황을 파악해 가면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10.4공동행사의 경우 6.15북측위는 한 축으로 참가했는데, 6.15남측위는 어려움을 겪었다. 6.15북측위의 입장은 들어봤나?

■ 지난번 10.4 때도 만나서 의견을 나눴고, 이번에도 금강산에 우리 실무팀이 가서 북쪽팀과 대화를 해서 확인한 것은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6.15공동위를 강화시켜야겠다는 방침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번에 금강산에서 결정한 것 중의 하나가 6.15공동위를 강화시키기 위한 정책협의를 금년 안에 하기로 했다. 내년 1월에 6.15공동위 회의를 이를테면 총회를 예정하면서 정책협의를 하기로 결정했다.

또 새해맞이 민족공동행사를 추진하기로 했고, 6.15공동위원회 회의와 같이 할 거냐 아니면 따로 할 거냐는 조금 논의의 여지가 있는 것 같다. 새해맞이 공동행사를 잘 해서 그 결과로 총회를 힘있게 치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 회의와 행사를 통해서 4.27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을 어떻게 잘 이행할 수 있을 것인가 협의할 것이다.

6.15남측위원회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6.15공동선언을 내세운 것 아니냐. 이번에는 6.15부터 10.4선언, 4.27선언, 평양선언까지 정상들 간에 합의된 것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고민이 집중돼 있는 만큼 명칭도 바뀌어야 한다는 말도 있고 그렇다. 그런데 아직까지 결정된 것은 없다.

어쨌든 6.15공동위를 비롯한 3자 연대체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데는 남북해외 간에 의견의 일치는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우리 남측위도 조직 내부를 강화하고 외연을 확대해야 하는 책임도 있다.

“운동권의 정년은 80일 거라 생각한다”

▲ 서울 서대문 소재 6.15남측위원회 사무실 모습. 인터뷰는 안쪽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내년 공동행사는 어떻게 계획하고 있나?

■ 3.1절 100주년 기념행사. 6.15, 4.27이 있지 않나. 이런 공동행사들이 줄지어 있으니까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가 힘있게 준비해 나가서 성과가 있도록 할 계획이다.

□ 지금까지 6.15남측위가 6.15, 10.4 공동행사를 주관해왔는데, 4.27, 9.19 공동행사도 주도적으로 치를 생각인가?

■ 그건 남북 간에 합의하기에 달렸다. 그러니까 명칭을 바꾼다고 하면 6.15만이 아니라 6.15부터 평양선언까지 다 포괄해서 실천하는 조직으로 변모가 될 것이다.

□ 그러면 명칭 변경도 거론되고 있겠다.

■ 거론되고 있다. 남북해외가 다 같이해야 한다.

□ 이번 금강산 남북 민화협 연대모임에서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선언 등 주요 계기에 회합하자는 합의가 공동결의문에 담겼다.

■ 두고 보자. 우리도 변화가 있을 것이고 북쪽도 변화가 있을 터인데, 그러나 큰 기조의 변화는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있다.

□ 6.15남측위 대표상임의장 이번 임기가 연말에 끝나는 것으로 안다. 규정상 이후에도 연임이 가능한가?

■ 연임은 가능한 것 같은데, 내가 너무 오래 했다. 6년 동안 했으니까 이제 새로운 사람이 나와서 할 때가 됐다.

□ 마땅한 적임자를 염두에 두고 있나?

■ 그건 내가 이야기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새로운 사람을 새로운 인선위원회에서 뽑을 거니까.

□ 주변에 물어보니 의장님이 연임해야 될 상황이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주변에서 강력한 요청이 들어온다면?

■ 뭐 그렇게 결정되지도 않을 거라고 본다. 어떻든 80이 넘었는데 정년퇴임하는 거다. 운동권의 정년은 80일 거라 생각한다.(웃음)

□ 판문점선언 이후 남북관계에서 당국 주도가 뚜렷한 상황이다. 민간은 민간의 역할이 있다고 말했는데, 주요한 역할은 무엇이고, 거기에 부합한 사업들이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다?

■ 각계각층의 교류가 확대되어야 한다. 우리가 “만나야 통일이다”는 말을 하는데, 이런 핑계 저런 핑계,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많이 만나서 대화도 나누고 인적 왕래가 활발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민간교류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거다. 그 모든 것을 정부가 다 주선하려하고, 담당하려고 하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민간은 민간이 해야 할 일이 있고 정부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결국은 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의 한 부분을 민간이 보완적인 역할을 한다고 봐도 괜찮을 정도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근간에 되어지는 일들을 보면 통제를 중요한 수단으로 생각해 민간운동을 다스리려고 하는 것 같은 인상을 풍겨서 퍽 유감일 수 밖에 없다.

선한 정부는 선한 민간운동을 유발한다. 통일운동이 어느 한쪽의 역할만으로 완성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대중을 상대로 하고 전체 민족을 생각한다면 더욱더 민간 차원의 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정부는 그 일을 조정해주고, 도와주고, 지원하는 입장에 분명히 서 있을 때 민간활동이 활발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곧 통일을 앞당기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정부와 함께 일을 추진해야 되겠지만 정부도 우리를 한 파트너로서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 민간의 역할로 교류 확대를 꼽았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주로 어떤 교류가 가능한가?

■ 처음에는 문화활동이 이루어질 것이고, 생산활동, 그리고 나아가서 민족의 공통성을 회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상황 속에서 선입견들이 있다. 말끔히 씻어주고 민족 내의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업들이 진행돼야 한다.

거기에 곁들여서 중요한 것이 경제교류다. 경제교류를 활성화시키는데 더욱더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워서 민간의 참여가 보장되면서 활성화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경제가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는데 이 어려운 국면을 돌파해낼 수 있는 것이 북쪽으로의 경제협력이다. 이걸 통해서 서로 부족한 것을 보완해 나가는 구조를 도모할 때 남북 경제가 활성화되고 특히 남쪽 경제의 활로, 출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경제협력이 큰틀에서야 민간교류에 포함되지만 영역이 다르지 않나?

■ 다르다. 사람의 왕래가 자유로워지면 자본도 따라서 움직이게 된다. 자본이라는 것은 항상 이익이 발생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돼 있는 거다. 민간교류가 활성화되면 거기에 얹혀서 경제교류가 활성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운동은 돌파해 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 이창복 의장은 '통일운동 현장'의 앞자리를 지켰다. 지난해 정권교체 직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지난 8월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 원코리아 응원단을 이끌고 간 이창복 의장에게 북측 김일국 체육상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민간교류도 뭔가 특성있게, 안정적으로 잘 될 수 있는 일들이 필요할 것 같다. 6.15남측위 같은 경우 너무 공동행사 위주로 추진하다가 공동행사가 안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경향도 많지 않았나.

■ 그건 초기의 양상일 것이고, 이제 구체적으로 각계각층의 교류가 확대되지 않겠나.

농민들이 농민회에서 하고 있는 게 ‘통일트랙터 보내기 운동’이다. 4천만원 짜리 통일트랙터를 100대 보내자는 것이다. 물론 북쪽 농민의 어려움을 도와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대북제재를 돌파해내는 상징적인 뭐가 있지 않느냐는 거다.

□ 그게 가능한가? 대북 제재가 있는데 트랙터를 보낼 수 있나?

■ 지금 그것이 문제가 돼 있는데, 운동은 돌파해 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운동이다. 다시 말하면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제재라는 원칙이 있는데 그걸 뚫을 수 있겠느냐’ 그러면 거기 머물러야 한다. 포기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보통인데, 운동은 그것보다 한발자국 앞서나가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그것은 의미가 있고 북한 농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거다.

트랙터 100대 가지고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거기에 남쪽 농민의 마음이 실린 것 아니냐. 남쪽 농민의 사랑이 깃들어 있고 성의가 깃들어 있는 거니까 그런 것을 중요한 요소로 삼고 제재라고 하는 조건을 돌파해내는 힘도 가질 수 있겠기에 그 운동은 운동으로서의 훌륭한 의미라 생각한다. 지금 모금운동을 하고 있다.

청년학생들의 북녘 유적지 답사도 있다. 고구려 유적이라든지 고려시대 유적이라든지 북쪽에 상당히 많이 남아있지 않나. 그것을 봄으로 인해서 민족이 통일되어야 하겠다는 의식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되는 거다.

그리고 여성들이 정신대 문제라든지 한일 간의 어려운 문제들을 극복해 나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거고.

하여튼 각계각층이 그 분야에서 교류와 평화와 화해를 위한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할 거다. 그런 것들을 정부가 뒤에서 지원해주고, 조정해주고, 안내해주는 그 역할이 더 중요하다. 막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 아니라 조장해주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 그같은 민간교류의 창구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할 건가?

■ 현재로서는 그것이 민간창구 역할까지 감당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정부가 길을 열어줘야 한다. 시간이 문제지, 시간이 지나면 다 될 거다. 일정하게 이땅의 민족의 열화와 같은 바람들이 있지 않나. 그것을 어느 한 정권이 막으려고 하면 더 넘쳐흘러서 가게 돼 있다. 그러니까 시간이 걸릴 뿐이지 그것은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 북미관계가 관건인 것 같다. 생각보다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진단하고 어떤 해법이 있다고 보나?

■ 금년에 북미관계도 수십년 적대관계를 유지해온 터에 평화와 화해의 합의들을 해내면서 비핵화 문제와 평화체제 문제를 열어놓고 협의하자는 것 아니냐. 많은 진전이 있다.

특히 그동안에 속도가 나지 않는다고 걱정했던 고위급회담이 실무회담과 함께 11월 8일 진행이 되면 100프로 다는 아니겠지만 하나하나 협의해서 진행하는 가운데 좀 속도를 가지고 진행될 수 있지 않을까 예상을 해본다.

□ 6.15남측위 시민평화대표단이 지난 9월 뉴욕에서 민간외교 활동을 폈는데, 성과가 있었나?

■ 우리가 시민사절단을 유엔에 보냈다. 비핵과 평화를 주제로 갔었는데, 대북제재 완화.철폐를 촉구하는 10만여 명의 서명을 전달했다. 그리고 유엔본부의 관계자를 만났고, 남쪽과 북쪽 유엔주재 대사도 만났고, 그 외에 뉴욕타임스에 광고도 냈다.

또 민간접촉을 통해서 여러 가지 활동을 많이 하고 돌아왔는데 다들 흡족해하고 성과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교포사회에 충격을 준 것 같고 성과가 있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 앞으로도 이런 대외적 활동을 할 계획인가?

■ 그때마다 사안에 따라서 필요하면 할 것이다.

“계기별 민족공동행사에 집중해 왔었다”

▲ 이창복 의장은 통일운동은 평생하지만 80세가 정년이라고 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어려운 시기 6.15남측위를 이끌어왔는데 개인적인 소회가 있다면?

■ 초기에 남북간에 만나지 못했지 않나. 만나기 위한 몸부림을 쳤다. 어떤 때는 정부의 허락을 받기도 하고 대부분 못 받고 만났는데, 이러한 조건 속에서 6.15공동위 혈맥을 잇는데 집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까 계기별 활동에만 집착하게 됐다. 6.15라든지 8.15, 10.4 이런 계기들 하나하나 공동행사에만 집중하게 되는데, 이것을 좀 극복해서 일상적인 활동으로 전화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가만히 평가해보면 본부에서 하는 일과 지역본부나 부문본부에서 하는 일들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고, 그래서 종합해 보면 운동을 1년 내내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남측위로서 평가해볼 때 계기별 민족공동행사에 집중해 왔었다. 그것도 만나지 못하면서. 만나지 못한 상태에서 기념식을 따로따로 하다 보니까 조금 아쉬움이 있는 거다.

그리고 우리가 운동단체 아니냐. 운동단체가 정확한 정책을 수립해서 분석을 하고 그것을 실천해보고 또 반성을 해가면서 운동을 해야 운동이 과학적으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성공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 기능이 상당히 약화돼 있었다. 남측위 내에 정책기능이 약화된 것도 지적할 수 있겠다.

우리 6.15남측위 조직이 이상적으로 돼 있다. 부문조직이 있고, 지역조직이 있는데, 부문본부도 구성단체들 간에 결속이 더 강화돼야 할 필요가 있고, 지역본부도 광역시.도 단위의 조직은 어느 정도 활동이 궤도에 올랐다고 볼 수 있으나, 이것이 대중운동이자 민중운동으로 발전하려면 시.군.구 지방조직까지 갖춰져야 하는데 아직도 조직의 완성도는 미흡하다.

그래서 이제 계기별 활동에 치중했다는 점과 정책단위의 활동이 미흡했다는 점, 그리고 조직을 좀더 강화하고 저변을 확대하는데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는 그런 점들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 6.15남측위 조직을 평가한 것 같다. 6.15남측위가 어려운 시기에 오랫동안 이끌어왔는데 개인적 소회가 있다면? 어떻게 보면 사회활동 마지막인 셈 아닌가?

■ 은퇴라는 말이 맞지 않지만, 죽을 때까지 통일운동하겠다 생각하고 있지만, 조직 속에서의 활동은 이젠 지양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한다.

앞으로 3자가 합의해서 민족적인 운동을 전개해나가려면 6.15공동위 같은 조직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남과 북, 해외가 조직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그래서 이것이 민족운동으로 승화, 발전되기 위해서는 3자연대의 강화를 꼭 필수요건으로 생각하고 있다.

또 우리의 운동은 1990년대에 범민련 만들 때 정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정부하고 어떤 관계를 형성하면서 운동할 거냐다. 항상 우리 내부의 토론거리고 과제이기도 하다. 우리 운동 구성원들의 생리를 보면, 정부하고는 항상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해오지 않았고 그런 심리들이 있다. 그런 속에서 정부와의 충돌이 없지 않아 있을 것이고.

그런데 이 정부마저 과거처럼 견제세력으로만 볼 것이냐 아니면, 협력해야 할 대상으로 볼 것이냐에 대해서는 내부적인 토론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 6.15남측위 내에서 민화협이 정부와의 관계를 도맡다시피 하다가 민화협이 빠져나가면서 공백이 생긴 것 아닌가.

■ 아니다. 사실은 민화협이 탈퇴선언만 안했지 내가 대표상임의장을 한 6년동안 협조한 것은 거의 없다. 독자적인 행동을 취한다는데 대해서는 크게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다만, 조직구조상의 한 축이 빠져나간다는 점에서 조직의 약화를 가져온다고 할까, 심리적인 불안을 가져온다고 할까 그런 점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건강은 어떤가?

■ 아직은 괜찮다.

□ 창간 18주년을 맞은 통일뉴스에 격려와 채찍의 말씀 부탁드린다.

■ 정말 어려운 조건 속에서 취재하고 보도해준, 민족통일 과정에서 보면 큰 일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정말 18주년 행사를 축하한다. 말로만 축하하는 것이 아니다. 18년이라는 과정이 정말 지루하고 어렵고 힘든 싸움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더 값진 18년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통일뉴스에 종사하는 대표를 비롯해서 기자 여러분이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나. 그런 점을 정말 높이 평가하고 싶다. 결국 이것이 남북 간의 상호 이해를 돕는데 큰 역할 해왔다고 생각한다.

언론매체들이 많이 있지만 통일뉴스야 말로 끊어진 허리를 이어가는데 맨 앞장을 서왔던 족적을 우리는 꼭 기억할 것이다. 북경에서 진행된 첫 6.15공동위원장 회의에도 동행 취재했는데, 그만큼 열정과 희생이 있었으니까 가능한 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걸 잊을 수가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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