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구자숙 통신원(사드배치반대김천시민대책위 홍보팀장)

 

▲ '자주평화의 한길 고 김판태 군산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 대표 추모의 밤이 15일 오후 7시 전주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사진제공 - 평통사]

단톡방에 부고가 떴다. 김판태 군산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대표가 운명했다는 소식이었다. 아, 기어코!

소성리 지킴이였던 김판태 대표와 함께 신음동 이마트 네거리에서 홍보물을 돌린 적이 있었다. 작은 도시에서 낮에 홍보물 돌리는 일은 참 온몸이 쭈뼛거리는 일이었다. 게다가 젊은 새댁이 와서 시끄럽다고 따졌다. 그때 김 대표는 나보다 더 성실하게 그 비난의 화살을 맞아주고, 홍보물을 돌렸다. 대표님이 가져온 멋진 영상차는 김천집회에서 사용되어 그 진가를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던 분이 느닷없이 암수술을 받고 요양에 들어갔다는 소식에 놀랐다. 한 달 전 집회에서 보니 살이 무척 빠져 있더라고 남편이 말했다. 그때부터 이별의 예감은 있었으나 뜻밖에 그날이 빨리 왔다.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에서는 함께 연대해주었던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전주로 가기로 했다. 김천에서 전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이 먼 거리를 그는 그리 자주 달려와 주었구나! 새삼 고마웠다.

예전에 전주에 들어서니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이 전봇대마다 나부끼던 것이 인상 깊었다는 이야기를 내가 했다. 그랬더니 운전을 하던 이종균님은 “전주에 오니 사드반대 깃발이 김천보다 더 많아서 감동받았어요”라고 말했다.

▲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고인의 영면을 기원하는 현수막을 먼저 만날 수 있었다. [사진제공 - 평통사]

전북대병원 앞과 김판태님 영안실 앞에는 그의 영면을 기원하는 현수막들이 여러 단체의 이름으로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환히 웃고 있는 모습을.

검은 옷을 입은 많은 동지들이 서 있거나 앉아 있었다. 소성리나 김천집회에서 보던 낯익은 얼굴도 많았다. 눈들이 젖어 있었다. 일본 젠코(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전국교환회) 초청으로 연대하러 갔다가 막 돌아온 김영재 소성리상황실 팀장도 울고 있었다.

오후 7시 시작한 ‘추모의 밤’.
묵념을 하고 그가 걸어온 길을 영상으로 보았다. 현대사의 고비마다 그가 있었다. 건대 옥상에서, 노동 현장에서, 미선이 효순이가 미군장갑차에 깔려 죽은 곳에서, 군산 우리땅 되찾기 운동에서, 그리고 그 마지막은 사드 철회 투쟁 현장이었다.

영상을 보는 동안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유가족의 깊은 슬픔... 부인은 우리가 김천에서 왔다고 조문했을 때, 남편이 사드 철회를 위해 기도를 많이 했다고 전해 주었다.

약력 소개에 이어진 조시 낭독.

평화와 통일의 한길

걷는 시간조차 아까워 빠른 걸음을 했던
한눈 팔지 않고 올곧게 내달려왔던
반통일, 반민중 세력과 맞선 싸움에서 물러섬 없이 당당했던
그이는 뒤를 돌아다보듯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마침내 그 길에 여명이 동터오는 지금......

남은 걸음은 우리의 몫이리라.
전사가 못다 한 꿈
자주 세상, 평화 세상, 통일 세상
끝끝내 이루리라.

그리고 추모 노래.

우리가 지금은 헤어져도 모든 것 그대로 간직해요 다시 우리가 만나는 날엔 헤어지지 않을 테니까 어쩌면 영원히 못 만날까 한 번쯤 절망도 하겠지만 화초를 키우듯 설레이며 그 날을 기다리겠죠......

노병섭 민주노총 전북지역본부장은 “이제는 무거운 짐 내려놓으시고 더 이상 아픔이 없는 세상으로 새처럼 자유롭게 떠나십시오. 자주평화와 통일, 민중해방의 세상을 향한 당신의 귀한 뜻은 우리가 이어갈 것입니다. 그동안 당신으로 희망을 만들어 가고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라고 추도했다.

▲ 평통사 상임대표 문규현 신부가 조사를 읽고 있다. [사진제공 - 평통사]

문규현 평통사 상임대표는 조사에서 “당신은 백해무익한 사드를 막아내기 위해 자비로 영상차량을 구입하여 전국을 돌면서 홍보활동을 전개했을 뿐만 아니라 사드 반입을 저지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인간사슬로 내어놓기를 여러 번 하셨죠. 이제 가정의 기둥인 당신을 믿고 함께 해온 가족들이 이 가눌 수 없는 슬픔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늘 함께 하겠습니다. 그동안 시대의 무게를 짊어지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당신이 못다 걷어낸 분단과 전쟁의 철조망, 이제 우리가 힘을 합쳐 마저 치우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활동했던 이들의 회고사가 이어졌다.

다시 추모의 노래.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흙먼지 재를 쓰고 머리풀고 땅을 치며 나 이미 큰강 건너 떠났다고 대답하라 저 깊은 곳의 영혼의 외침 저 험한 곳의 민중의 뼈아픈 고통 내 작은 이 한 몸 역사에 바쳐 싸우리라 사랑하리.

▲ 고인이 자주 달려갔던 투쟁 현장의 주민들이 소개됐다. [사진제공 - 평통사]

마지막 투쟁의 현장이었던 소성리와 김천, 아직도 싸우고 있는 주민들이 소개되었다. 앞에 나가서 섰다. “소성리에 가장 먼저 달려왔고 행사 있을 때마다 오셔서 누구보다 열심히 하셨던 분”으로 김판태님을 기억한 이석주 소성리 이장님. 그러한 일을 통해 평통사 분들이 누구보다 열심히 연대해 주시는 걸 알았다고 했다.

나 역시 김천촛불집회에 누구보다 성실하게 연대해 준 평통사를 보고, 후원회원으로만 있겠다면서 가입하였다.

임순분 소성리 부녀회장은 “잇몸을 활짝 드러내고 웃으며 ‘전국에 있는 사람들이 소성리 주민들과 함께 해줄 거’라며, 소성리를 열심히 찾아주셨다. 사드가 뽑혀나가는 날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우겠다. 그날 소 잡고 잔치하기로 했는데 그날 다시 한 번 대표님 이름을 부르겠다”고 했다.

김종희 김천대책위 기획팀장은 너무 울어서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힘내라고 박수를 쳤다.

유가족 대표로 동생이 나와 감사의 인사를 했다.
“저희들은 형의 뜻을 늘 지지했습니다. 형님 삶의 뜻을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투쟁의 현장에서 씩씩하게 김판태 대표의 선창에 따라 힘차게 불렀다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헌화를 했다.

▲ 16일 발인한 운구행렬은 오전 9시 군산미군기지 앞에 멈춰 노제를 지냈다. [사진제공 - 평통사]
▲ 문규현 신부의 집전으로 하관식이 16일 오후 마석 모란공원에서 진행됐다. [사진제공 - 평통사]

그가 걸음을 멈춘 곳에서 우리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를 보내며, 그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걸음을 옮긴다.

동지여, 잘 가소서. 우리 다시 뚜벅뚜벅 걸어가겠습니다.

 

故김판태 군산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대표 발자취

1965년 3월 24일생, 부산 출신

1984년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입학

1986년 10.28 건대사건으로 구속

1987년 인천에서 노동운동

1989년 인천 신창전기에서 노조활동
 

1990년 인천 남동공단 노조연대회의 사무처장

1995년 인천에서 노동자 통일단체인 민족사랑청년노동자회를 만들고 사무국장으로 활동

1998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1999년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자통협) 및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에서 상근 활동 시작

1999년 불평등한 소파개정국민행동 사무처장 활동
 

2000년 매향리 폭격장 폐쇄 활동

2001년 자통협 투쟁국장

2001년 굴욕적이고 기만적인 소파 개정안 국회 비준 동의 거부를 촉구하며 국회에서 할복

2002년 효순미선 여중생 미군 장갑차 압사 사건 직후 현장 조사 및 진상규명 활동

2002년 광화문 열린시민공원 반미연대집회가 미대사관 100미터 이내라는 이유로 경찰이 탄압하는 데 맞서 현장투쟁과 함께 거리 실측 등을 통해 합법성을 쟁취

2003년 평통사 기지협정팀 국장

2003년 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 규탄집회에 대한 벌금형에 항의하여 최초로 집단적 노역투쟁 주도

2004년 용산미군기지이전협상 관련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 면담 등을 통해 불법부당성을 밝혀내는 데 앞장섬

2004년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2005년 작전계획 5027의 작전목적이 "북한군 격멸, 북한정권 제거, 한반도 통일여건 조성"이라는 사실을 발굴해 작전계획 5027의 위헌성을 밝힘

2006년 평통사 평화군축팀장

2006년 만리포 한미연합상륙훈련 저지투쟁 참여로 집행유예 판결

2007년 한미연합사 청계산 탱고(전쟁지휘소) 발견ㅡ이후 탱고 앞 전쟁연습반대 투쟁 시작

2009년 게이츠 미 국방장관 방한 반대, 작전통제권 즉각 환수 촉구 서한 전달 투쟁(신라호텔)

2008년 군산평통사 사무국장. 군산 우리땅 되찾기 시민모임 운영위원. 군산 미군기지 앞 정례 집회와 캠페인, 군사미군기지띠잇기, 평화대행진 등 주도적 역할
 

2012년 제주해군기지반대운동 위축 노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 5년간 재판투쟁 끝에 무죄 확정

2014년 전주평통사 사무국장

2015년 일본 안보법제 제개정 반대 도쿄 투쟁, 일본 교가미사키 X-밴드레이더 철거 투쟁 연대

2017년 군산평통사 대표

2017년 사드배치반대 전북대책위 집행위원장

2017년 사드 배치 저지를 위한 영상홍보활동을 위해 자비로 영상차 구입, 9월 6~7일 불법적인 사드 추가배치 저지를 위해 인간사슬투쟁에 참가하는 등 사드 철회 투쟁에 앞장 섬

2018년 7월 신장암 4기와 다발성 전이 진단받고 항암투병 시작

2018년 10월 14일 8시 18분 운명(殞命)

(자료제공 -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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