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필리핀 대학교 역사학과와 제3세계 연구소의 초청으로 한국전쟁 시기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상영시간 59분)’ 상영회가 진행되었다.

상영회를 다녀온 다큐멘터리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정진호 감독(팟케스트 ‘아는 것이 힘이다’ PD)을 15일 팟케스트 ‘아는 것이 힘이다’ 스튜디오에서 만나 상영회에 다녀온 이야기와 향후 계획을 물었다.

▲ 다큐멘터리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정진호 감독(팟케스트 ‘아는 것이 힘이다’ PD)를 만나 상영회에 다녀온 이야기와 향후 계획을 물었다. [사진 - 임재근 객원기자]

□ 통일뉴스 : 필리핀에서 진행된 상영회 소식을 소개해준다면?

■ 정진호 감독 : 국립 필리핀 대학교의 역사학과와 제3세계 연구소의 초청으로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The Longest Tomb)’ 영어 자막본 상영회를 다녀왔다.

상영회는 10월 11일 오후 1시(현지 시각)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의 쾌손 시티에 있는 필리핀 대학교 시청각실에서 열렸고, 상영회가 끝난 후에는 한국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세미나도 진행되었다.

이번 상영회는 필리핀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 컨설턴트 프레드 디아즈(Fred Diaz) 박사가 코디네이터 역할을 자처하며 성사되었는데, 6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청각실에 100여 명이 넘는 학생들과 교수들이 찾아왔다.

상영회 내내 진지한 분위기였고, 일부 교수들과 학생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상영회를 마친 뒤 이어진 세미나와 질의응답 시간은 더욱 뜨거웠다.

▲ 지난 10월 11일 오후 1시(현지 시각),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의 쾌손 시티에 있는 필리핀 대학교 시청각실에서 필리핀 대학교의 역사학과와 제3세계 연구소의 초청으로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The Longest Tomb)’ 영어 자막본 상영회가 진행되었다. [사진제공 - 정진호]

□ 필리핀 상영회에서 관계자들과 어떤 대화들을 나누었나?

■ 필리핀 상영회 코디네이터를 맡은 프레드 디아즈는 “필리핀의 젊은 학생들에게 이런 비극을 알림으로써 전쟁이 가져올 수 있는 참상에 대한 교훈을 주고자 했다”며 상영회 유치 이유를 설명했고, 돈디 페티토 라모스(Dondy Petito Ramos) 필리핀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는 “역사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한국 전쟁 당시 한반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알려 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말했다.

닐 마셜 산틸란(Neil Martial Santilan) 필리핀 대학교 역사학과장은 “필리핀은 한국전쟁 참전국임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한국전쟁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초청했다”며, “우리 학과의 주요 학술 목표는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인데, 이 영화가 그러한 동기부여를 주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향후 필리핀 대학교 역사학과에서 수업 자료로 잘 활용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필리핀 대학교 역사학과 조슈아(Joshua) 학생은 “한국 전쟁 때 민간인들이 학살당했다는 사실은 전혀 예상치 못해서 상당히 충격이었다”며, “이 영화를 통해 다른 나라의 역사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고 답했다.

▲ 상영회 이후 소감을 말하는 닐 마셜 산틸란(Neil Martial Santilan) 국립 필리핀 대학교 역사학과장. [사진제공 - 정진호]

□ 필리핀 상영회를 추진하게 된 배경은?

■ 필리핀은 한국전쟁 참전 국가였고,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였다. 과거 필리핀이 우리나라를 많이 도와줬고, 아끼노 여사(Corazon Aquino)가 군부독제를 종식시켰을 때,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이후 ‘코피아노’ 문제 등 우리 국민들이 필리핀에 가서 나쁜 짓을 많이 했다. 그게 개인적으로 필리핀이라는 나라에 마음의 빚, 짐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필리핀 사람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고, 비슷한 경험을 받은 나라끼리 아픈 역사의 사례를 공유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큐를 만든 목적이기도 하지만, 시민들,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졌을 때 국가 권력에 대한 견제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도 싶었다.

▲ 상영회 이후 질의응답에 답하는 정진호 감독. [사진제공 - 정진호]

□ 11월에는 국회 상영회도 예정되어 있다고 들었다. 국회 상영회 계획과 추진하게 된 계기는?

■ 11월 19일 오전 10시에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상영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상영회는 천정배 의원실에서 요청을 해 성사가 되었다. 국회 상영회에는 희생자 유족이자 출연자인 이계성, 전숙자 선생과 영국인 학자 데이빗 밀러 박사가 함께 참석해 발언도 예정되어 있다.

이번 국회 상영회를 통해 유해발굴과 진생규명, 그리고 아직 확인되지 않은 희생자들의 명부를 찾는데 국회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호소를 할 계획이다.

□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된 이유와 향후 바라는 점이 있다면....

■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에 대해서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었는데, 팟케스트 코너로 ‘띠동갑네기 여행하기’란 프로그램에서 산내 골령골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편집하는 과정에 울림이 컸다. 프로그램에 대해 시청자들의 의견도 많았지만, 생각보다 관련 자료가 적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료를 정리하고, 관련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기록에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큐멘터리 제작까지 나서게 되었다.

작품을 제작을 하게 되면 그것이 결말이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제작은 출발점이다. 다큐를 제작한 후에 취재나 인터뷰, 언론의 요청이 많아졌고, 골령골에 대해서 과거보다는 언급이 많아진 것 같다.

본래 목표 중 하나였던 대전시민 10명 중 1명 정도는 이 비극에 대해 인지할 수 있도록 진실이 더 많이 알려지길 바라고, 이를 위해 상영회를 비롯한 후속 작업에 나설 것이다.

대전 산내 골령골은 한국전쟁 당시 우리나라 군대와 경찰에 의해 민간인 7천여 명이 학살, 암매장된 곳으로 우리의 아픈 현대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곳이다. 다큐멘터리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은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과 대량 학살이 벌어진 근본적 이유, 국가 권력의 부당한 행사로 국민들이 받은 고통, 연좌제로 또 한 번의 고통을 겪어야 했던 희생자 유가족의 삶 등을 담고 있다.

지난 5월 18일 시사회를 통해 대중에게 첫 공개를 한 다큐멘터리는, 이후 영국 런던대학교 SOAS 초청(5월 29일), 대전작가대회 초청(6월 23일),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전남지회 초청(6월 24일), 제주4.3희생자유족회대전위원회 초청(7월 21일) 상영회가 진행되었고, 9월 19일에는 대전서구의회에서도 상영되었다. 11월 19일에는 천정배 의원실 주최로 국회에서도 상영회가 예정되어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영어 자막본까지 유튜브와 페이스북에 공개되어 누구나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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