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 오후 전남 광양시 백운산 한재에서 '통일애국열사 합동추모제'가 10여년만에 사회단체 관계자들이 폭넓게 참가한 가운데 진행됐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전라남도 광양시 백운산 한재. 지난 13일 아침부터 들머리인 이곳에 광양과 구례, 하동 방향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오후 2시를 조금 넘겨 산중에  '통일애국열사 합동추모제' 현수막이 내걸리고 향이 피어올랐다.

맑고 밝은 가을 하늘 아래 1948년 여순항쟁에서 시작하여 한국전쟁 당시 태백산, 오대산, 소백산, 덕유산, 신불산, 지리산, 운장산, 희문산, 백운산, 백아산, 무등산, 불갑산, 한라산 등 크고 작은 산에서 '빨치산투쟁'을 벌였던 당사자들과 사회단체 관계자 250여명이 모처럼 한데 모여 합동추모제를 지내게 된 것.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를 비롯해 안학섭, 양원진, 양희철, 박희성, 김영승, 김영식 선생 등과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노수희 부의장, 조순덕 민가협 회장 등을 포함, 서울에서 90여명, 부산·경남과 전남·북, 충북 등에서 총 250여명이 참가했다.

특히 지난 2003년 4월 28일 이곳에서 첫 출발을 뗀 백운산 합동추모제는 그동안 전국 산야를 돌고 돌아 조촐한 규모로 지내오다, 올해 4.27 판문점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 등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10여년만에 사회단체 회원들이 함께 참여해 규모도 훨씬 커지게 되었다.

▲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추모제를 주관한 통일광장 권낙기 대표는 제례 절차에 따라 첫 술잔을 신위들에 올리는 초헌을 한 뒤 "십 수년전부터 전국을 돌면서 매년 행사를 해왔는데 오늘 와서 보니까 정세도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셨다. 통일광장 선생님들을 대신해서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말문을 열었다.

또 "그동안 이 행사를 하면서 사실 속앓이를 많이 했다. 하여튼 우리들의 이 행사가 다른 단체 내지는 정세에 누가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에 많이 조심은 했다"고 하면서 "회문산에 참가했던 이가 구속되기도 하는 등 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전통을 이어와서 올해 4.27선언과 함께 좋은 가을에 좋은 결실을 기대하면서 맞이하게 된 오늘 참 좋다"고 소회를 밝혔다.

권 대표는 "과거는 해석하기에 따라 바뀌고 미래는 결정하기에 따라 바뀌며, 현실은 행동을 통해 바뀐다"면서 "그동안 빨치산에 대한 왜곡된 해석으로 인해 많은 오해도 있지만 이름없이 우리 곁을 떠나신 이름없는 영웅들을 잊지 않고 부디 우리가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잘 알고 다시 결의를 세우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이날 추모제의 의미에 대해 말했다.

▲ 김영승 선생.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임방규 선생.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16살 나이에 입산해 소년빨치산으로 활동하던 중 1954년 3월 백운산 옥룡골 부근에서 총탄 3발을 맞고 체포되어 총 35년 9개월을 복역한 뒤 1989년 출소 후 지금까지 통일광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영승 선생이 먼저 전남인민유격대를 대표해 추모사를 했다.

김영승 선생은 화순 백아산이 전남 빨치산의 사령기지라면 광양 백운산은 도당 최후 핵심기지이며, 한재에는 빨치산 4명의 유분이 뿌려져 있는 역사의 현장이라고 설명하고는 "우리 모두는 열사들의 영령들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애국전사가 되어야 한다. 무엇때문에, 누가 누구를 위해 치열한 싸움에서 한줌의 흙으로 산화하여 갔는가를 재삼 회고해 보면서 새로운 결의를 다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북도당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임방규 전 통일광장 대표는 "산속에 오니까 엄숙해 진다. 여기는 김선우(전남도당 부위원장) 동지가 요 밑에서 최후 결전을 하고 돌아가셨다. 위에는 정운찬 선생하고 손영심 선생님 묻혀 있는 곳으로 알고 있다"며 젊은 날의 선명한 기억을 담아 추모사를 시작했다. 그리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조국을 위해서, 겨레를 위해서, 그리고 민족을 위해서 마지막까지 싸운 많은 우리 동지들이 빨치산과 같이 활동하다 돌아가셨다. 우리 후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그런 얼, 여러분들은 가슴에 간직하고 돌아가서 아이들에게도 많은 이야기 들려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임 전 대표는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민중의 뼈아픈 비판을 우리는 가슴에 새겨야 한다.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을 하나로 모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아무쪼록 자기 단체, 개인의 이익을 넘어서 힘을 하나로 모아내는데 노력해 달라. 그것만 이루면 우리 승리할 수 있다. 그게 역사의 요구이고 민족의 바람이며, 한결같이 민중이 원하는 것 아니겠나. 아무쪼록 오늘 먼 길을 와서 선열들을 회상하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추모제가 진행되는 동안 여기 저기선 살아남은 자의 아픔이 힘에 겨운 흐느낌으로 터져나오기도 했다.

▲ 허찬형 선생.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구연철 선생.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충북인민유격대를 대표하여 추모사를 한 허찬형 선생은 지팡이를 짚고 불편한 몸으로 나서 "광복 후 이 백운산은 분단과 통일의 갈림길에서 치열했던 역사적 현장이다. 조국통일의 과업을 짊어지고 청춘 남여가 비참히 숨져간 비극의 현장이다. 이 산 구석 구석에 맴도는 영혼들의 울음소리는 하릴없어 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활활 타오르는 단풍잎과 같이 임들이 한맺힌 울음짓는 소리이다. 수많은 동지들의 죽음이 돌무덤으로 쌓이고 동지들의 피눈물은 비가 되고 강이 되고 흘렀으며, 그 유골은 아직도 이 산과 벌판에 널리 흩어져 있다. 우리는 그 아픔이 너무 절절한 것이어서 감히 들여다볼 염두조차 낼 수 없는 준엄한 역사의 발자욱 위에 서 있다"고 여러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어 "까마귀 울지말라. 울지를 말라. 이 산 저 산 70여년 돌고 돌아 눈물마저 말라버렸구나. 저 백운산 마루에 통일 깃발 꽂았다. 8천만 우리민족끼리 만세! 만세! 만만세!"라고 추모시를 힘겹게 낭독하고는 "나는 90년이나 통일 사업을 한다고 했으나 완수하지 못했다. 여기 있는 젊은 동지들이 그 임무를 틀림없이 완수해 달라"고 당부했다.

구연철 선생은 경남인민유격대를 대표하여 부산·경남 참가자들과 함께 추모사에 나서서 추모제 참가자들을 웃기고 또 울렸다. 

"녹음이 우거진 산야를 보면서 가슴이 너무 벅찼다. 여건만 되면 한번 더 빨치산을 하고 싶다"는 기개를 뽐내 박수갈채를 받는가 싶더니 "총탄에 쓰러져간 동지의 사늘하게 식어가는 시신을 붙들고 울분을 터뜨리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회상에 잠겨 참가자들을 숙연하게 했다.

구 선생은 "누구보다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산에 올랐던 동지들은 오로지 나라와 인민을 위해 눈물의 강을 건너 피바다를 헤엄쳐 통일혁명의 큰길로 오롯이 헤쳐나왔다. 일신의 공명과 영달이라는 말은 몰랐다"고 열사들을 추모했다.

 

▲ 통일애국열사 합동추모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이날 합동추모제에는 빨치산 투쟁 당사자들과 사회단체 회원 등 250여명이 참가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추모제는 경남과 전남의 청년들이 대표로 결의문을 낭독하고 '살아 천년, 죽어 천년'가는 주목나무를 골라 한재에 식수한 후 한라산과 백두산에서 떠 온 물을 주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청년들은 결의문에서 "해방되는 날 이 산천의 모든 꽃들에게 그대들의 이름을 덧붙이겠습니다. 태백산 산나리엔 선전일꾼 누구의 이름을, 대둔산 연산홍엔 소대장 누구의 이름을, 덕유산 상사화엔 문화일꾼 누구의 이름을, 신불산 구절초엔 조직부원 누구의 이름을, 지리산 진달래엔 이름도 없이 죽어갔던 수많은 무명전사들의 이름을 붙여 영생불멸의 전사로 남겨 후손들에게 그대들의 이름을 빛내이겠습니다"라고 열사들을 기렸다.

<추도시> (전문)

섬진강은 흐른다

나락 한도숙


조국은
아구사리 노랗게 핀 산하
다시 피는 날을 기약하지 못하고
강을 건넜다
저간의 일들은 기억하지 말자
흐르는 물소리 지저귀는 새소리도
혁명의 열정이던
지리산
총을 메고 건너던
차거운 물은 몸을 휘감고
살을 도려내는 고통쯤이야
견뎌 내리라
노여움으로 출렁이는 강
핏빛으로 울먹이는 강
마른 잎 하나에 침 삼키며
긴장해야했던 저 물소리에
청춘은 정열은
남루하지 않았다

강가의 별들은 무수히 떨어지고
혁명의 날개는 깃털을 잃어
아구사리 노란 단풍잎에 떨며 선 골짜기
조국은
서러운 별 하나 내게 허용하지 않았다
절망하고 절망하고서도
흐르는 저 강을 건너야 할 것
또 여기 총을 부여안고 선다 해도
결국 혁명의 뜨거움은
날리는 먼지 알갱이 하나도
용납하지 않을 것
별이 된 사람도 남은 사람도
뜨거운 숨소리로 숨죽이던 강
한방의 총소리로 새벽을 깨우던 강
피에 젖은 섬진강

 

▲ 임방규 선생과 '빨치산 투쟁'에 직접 나섰던 선생들이 오열하며, 머리 숙여 참배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구연철 선생이 부산 경남 사회단체 참가자들과 함께 추모의 절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한도숙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이 추도시 '섬진강은 흐르는가?'를 낭송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순천  6.15통일합창단 지휘자인 박종열 테너는 가을 백운산에 울려퍼지는 맑고 기운찬 목소리로 '전사의 맹세'와 '백두산'을 불러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양기창 금속노조 부위원장이 '쏠테면 쏘아봐라'는 제목으로 추모시를 낭송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촛불가수 한주상 씨는 '전남빨치산의 노래'를 헌정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사회단체 회원들과 함께 열린 통일애국열사 합동추모제는 10여년 만의 일이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한재 올라가는 길 '전남 유격대 연병장' 아래로 물 흐르는 계곡이 길을 따라 이어진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전남도당 비밀아지트.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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