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지난 10월12일 부산 `통일시대 젊은 벗` 주최 강연에서 썼던 자료를 보완한 것입니다. 원문에 나온 용어를 그대로 명기했음을 밝힙니다.(편집자 주)

* 9월11일 뉴욕에서 납치 항공기를 이용한 세계무역센터 및 펜타곤 충돌 사건이 발생해 110층 짜리 건물 두 동이 무너져 내렸다. 미국은 곧바로 `이슬람 숙적` 오사마 빈 라덴을 배후로 지목하면서 사건 발생 다음날 `9월11일 사건`을 `전쟁`으로 규정하고 사건 발생 26일 만인 10월7일 정오(미국시간) 라덴이 머물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습을 시작했다. 서방 및 아랍권의 친미국가들은 물론 미국의 패권을 견제해 온 러시아와 중국까지 `미국의 전쟁`을 지지 또는 동의하고 나섰다. 미국의 패권 앞에 국제질서가 `미국 편 아니면 미국의 적`이라는 편가르기로 재편될 조짐을 보이면서 북-미 관계가 경색되고 한반도 평화 및 통일의 기운이 된서리를 맞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10월16일부터 2박3일간 이뤄질 예정이었던 4차 이산가족 교환방문이 무기 연기되면서 남북관계가 다시 경색되는 조짐도 나타났다. 금강산관광회담과 4차 이산가족 교환방문이 이뤄지기 직전 이북은 조평통 성명을 통해 10월16일로 예정됐던 이산가족교환방문을 연기할 것을 통보했고 남측은 당국간 회담 연기 의사를 내비치며 자못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조-미 관계와 남북관계가 경색될 것이라는 친미반북세력의 기대 섞인 우려가 현실화되는 것일까? 정말로 `9월11일 사건`이 돌발함으로써 미국의 대한반도정책이 영향을 받는 것인가? 아니다. 9월11일 사건은 미국이 이북과 이라크를 주 전장으로 하는 소위 `윈-윈 전략`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은 지난 10여년간의 조-미 대결사에서 패배함으로써 `윈-윈(Win-Win) 전략`을 포기하고 새 군사전략을 짜야 했다. `9월11일 사건`은 이런 미국의 세계전략 재편을 촉진하고 정당화하는 촉매제 구실을 하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9월11일 사건`은 미 세계군사전략 변화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미국이 대북포위압살을 포기한 것은 조-미 평화와 남북통일의 길에 큰 장애물이 제거됐음을 의미한다. 이산가족 상봉 지연 등은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다. 한반도 정세 변화가 미국의 `윈-윈 전략` 변화를 촉발했고 미국이 세계전략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9월11일 사건`이 발발했음을 논증해 보고자 한다.(필자 주)


강진욱(연합뉴스 기자)


1. 미국이 `윈-윈 전략`을 포기한 것은 조-미 대결에서 패배한 때문이다 : 미국은 윈윈 전략 포기 과정에 `중동 전쟁`을 포함시켰고 9.11사건은 이 전쟁 실행의 촉매제였다.

미국은 9월11일 사건과 10월7일 아프간 침공 사이인 9월30일 4개년 국방전략재검토(QDR)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군의 140만 병력을 유지하되 ▲해외 배치의 중심을 기존의 유럽에서 태평양으로 옮기고 ▲두 전쟁을 동시에 승리로 이끄는 `윈-윈(Win-Win) 전략`을 폐기하는 대신 한 쪽에서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고 다른 한 쪽은 현상을 유지하는 `윈-플러스(Win-Plus) 전략`이라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선회하면서 ▲미 본토 방위를 최우선 과제로 올렸다.

9.11 연쇄 테러사건으로 건국이래 처음 `본토도 적의 공격권내에 있다`는 공포심이 국민들을 아연 긴장으로 몰아넣고 있는 상황에서 QDR이 본토방위를 제1의 임무로 강조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미국과 우리의 일반적인 평가도 이러하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90년대 중반 이북과의 핵 및 탄도미사일 협상을 본격화하면서 `윈-윈 전략` 수정에 나섰고 한반도 정세가 획기적으로 변한 2000년 윈-윈 전략을 대신할 새로운 전략 수립에 착수했으며 2001년 신 부시 정부가 출범 후 6개월 동안 `윈-플러스 전략`을 사실상 완성했다. 9월30일 발표된 QDR은 `9월11일 사건` 이전부터 계획했던 세계군사전략 구상이며 9.11사건은 이 구상을 확정하는데 좋은 구실을 제공했을 뿐이다. 결국 `9월11일 사건`은 `윈-윈`에서 `윈-플러스`로의 전략 수정 작업이 막바지 단계에 도달했을 때 발생해 미국의 세계전략 수정을 촉진하면서 새로운 전략의 정당성을 드높이는 필요충분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윈-윈 전략`을 대신하는 `윈-플러스 전략`의 본래 재래병력의 감축이 핵심이었으나  테러를 빌미로 작년 윈-윈 전략 폐기 논란의 초점이 됐던 `군 개혁을 통한 미군 감축`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육군 10개 사단, 해군 12개 항공모함 전단과 공격용 잠수함 55척, 공군 46개 비행대와 폭격기 112대에 이르는 현 병력의 감축 계획이 온데 간데 없이 없어진다. 미 군부로서는 천만 다행스럽게도 9.11사태가 발생함으로써 군 병력을 줄이지 않으면서도 미사일방위계획(MD) 추진 및 첨단 무기 개발에 들어갈 막대한 예산을 아프간 전쟁 비용 및 전후복구비에서 충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 부시 정부가 아프간 침공을 개시하면서 전쟁이 몇 년 걸릴지 모른다고 말한 것은 앞으로 몇 년 동안 계속해서 전쟁을 구실로 사회복지와 교육 및 환경에 투여돼야할 막대한 예산을 군수무기 생산에 투입하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윈-윈 전략` 포기에 따른 재래병력 감축에 강력히 반발하던 군부의 손을 들어준 것은 바로 `9월11일 사건`이었다.

"부시 정부가 출범한 이래 국가경제의 최우선 순위로 삼고 있는 사인이 미사일방어체제(MD) 추진이다. 미국으로서는 이를 위한 명분 마련이 절실하다. 미국이 MD를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는 안보적 측면 이상으로 경제적 측면에도 기인한다. 침체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는 미국 경제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모멘트가 필요하다. 그 계기가 바로 전쟁과 기술혁신이다. MD사업에는 군수자본가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부시 정권의 물적 토대 중 하나가 바로 군수자본이다. 만약 MD가 추진되면 메이저 군수기업뿐 아니라 첨단산업 분야의 많은 기업들이 참여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기술혁신을 통해 새로운 수요 창출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MD는 군사기술의 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동시에 19세기 산업혁명을 능가하는 21세기 디지털혁명을 이끌어내는 긴요한 도구이다. 이 거대 프로젝트의 추진 여부는 미국이 21세기에도 계속 경제적.군사적 패권국가로 남아 있을지를 판가름할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이 MD를 강행하는데는 미국의 세계전략을 위해 악마와 불량국가의 위험을 담보로 우방국들에게 `안보 보호`라는 상품을 파는 경제적 의도가 숨어 있다."(정낙근 안민포럼 통일안보위원. - 신동아 10월호 <남-북-미 삼각관계 이변은 없다>)

또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미국 정부가 올해 들어, 즉 부시 정부 출범 이후 윈-윈 전략 폐기와 함께 새 국방전략을 검토하면서 이번 9월11일 사건을 예상 또는 상정했다는 점이다. 오비이락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정확한 예측이었고 그 정확했던 예측만큼 국방비 무한 증대라는 목적 또한 한 치의 오차 없이 달성할 수 있게 됐다.

1) 윈-윈 전략

`윈-윈 전략`이란 미국이 1991년 걸프전을 벌이면서 한반도에서의 전쟁(미국의 이북 침공) 개시에 대비한다는 취지로 수립한 `두 개 전쟁 동시 승리 전략`으로 당시 딕 체니 국방장관(현 부통령)과 콜린 파월 합참의장(현 국무장관)이 주도한 군사검토보고서에서 처음 제기됐다. 2년 뒤인 93년 클린턴 행정부 출범과 함께 레스 애스핀이 국방장관에 부임하면서 `윈-홀드-윈`(Win-Hold-Win) 즉, 두 개의 전선중 한 곳에 치중하고 다른 곳은 현상유지하는 전략으로 수정하자는 제의가 있었지만 윈-윈 전략은 지금까지 10년 간 유효했다.

그러나 걸프전 이후 이라크 등 중동의 가상 적국의 전력이 약화되는 반면 한반도에서는 미국의 가상 적국인 이북의 미 본토 타격력이 현격히 증대됨에 따라 부득이 윈-윈 전략은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이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기에 이르면서 미국은 본토 공격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려했고 이북과의 전선인 38도선에 지상군을 전진배치하기보다는 장거리 폭격기와 정밀유도무기 등 첨단무기를 많이 보유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즉 공격전략을 포기하고 본토 방어위주의 수비전략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93년 클린턴 행정부 출범과 동시에 `윈-홀드-윈 전략`이 논의된 데 이어 1995년 미 공군을 중심으로 `윈-윈 전략` 개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고 97년 QDR 검토 때도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1999년까지 `반드시 두 개 전쟁에서 모두 승리해야 해야 하고 할 수 있다`는 명제를 견지했다. 미국은 마침내 2000년 초부터 이 전략에 대한 수정 논의를 공론화했고 2001년 부시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 전략 수정에 본격 착수한다. 윈-윈 전략의 수정 과정은  북-미 대결사의 종결 과정과 일치한다.

93년 5월29일과 30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한데 이어 96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성공하고 98년 8월31일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발사, ICBM 발사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한반도는 더 이상 미국이 전쟁을 벌일 수 없는 곳이 돼 버렸다. 미국의 윈-윈 전략은 한반도 정세 변화로 인해 효력을 상실한 셈이다. 93년 클린턴 행정부 출범과 동시에 `윈-윈` 대신 `윈-홀드-윈`이 논의된 것이 88년12월 시작된 조-미 대좌의 결과였다면 95년 미국에서 윈-윈 전략 수정 논의가 시작된 것은 93년 IRBM 발사와 이 탄도미사일이 촉발한 94년 북-미 제네바 핵 합의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97년 또 한차례 논란이 있었다면 그것은 96년 이북의 ICBM 개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2000년 들어 윈-윈 전략 수정 논의가 공식화되고 2001년 `윈-플러스 전략` 수립이 본격 추진됐다면 그것은 98년 `광명성 1호` 발사와 이때 발사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촉발한 99년 페리보고서에서 때문이다.

미국 군사전략의 최고실무자인 국방장관이나 합참의장이 `윈-윈 전략` 수정의 뜻을 공공연히 밝히기 시작한 것은 98년 8월말 이북의 `광명성 1호` 발사 이후이다.

98년 당시 미 합참의장 헨리 셸턴은 `광명성 1호` 발사 뒤 한 달 만인 9월30일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미군은 추락하고 있으며 전투태세도 약화되고 있다"며 국방비 지출을 늘려줄 것을 호소했고 99년 10월26일에는 "2개 전쟁 동시 수행능력 약화"를 공식 선언한다. 미국의 대북전략을 `고립-압살`에서 `평화공존` 개념으로 전환시킨 `페리보고서`가 공식 발표된 직후였다. (미국은 97년 5월19일 `윈-윈 전략` 유지 개념을 포함 4개년 국방검토보고서를 발표했고 이 전략이 2001년 9월말까지 유지됐다. 미국의 합참의장의 임기는 2년이나 대개 연임돼 4개년 국방전략검토(QDR) 기간과 일치한다)

98년 `광명성 1호` 발사 이후 또 한차례 조-미 군사대결 국면을 거친 뒤 미국은 이북과 본격적인 탄도미사일 협상에 나섰고 99년 5월 윌리엄 페리를 특사로 임명해 김정일 위원장에게 클린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본격적인 대북 관계 개선에 나서게 된다. 미국은 대북관계 개선에 나서면서 이북과 이라크를 공격할 목적으로 짜 놓은  `윈-윈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두 개 전장`중 하나인 한반도에서의 침략전쟁 의도를 포기하는 대신 또 하나의 전장인 중동지역에 대한 `압도적인 승리`를 획책했으며 이를 위한 모종의 시나리오를 작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추정의 근거는 바로 2001년 9월30일 발표된 4개년 국방보고서가 완성되기까지 미국은 이북과의 관계 개선과 동시에 이라크 등 중동의 숙적들에 대한 군사작전을 지속적으로 펼친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2001년 부시 정권 출범 후 미국은 이북과 이라크 등 `불량국가`를 자주 거론하며 무력사용을 강조했지만 실제 군사작전의 대상은 이라크였고 10월7일 아프가니스탄 공습이후 이라크로의 확전을 위한 구실 찾기에 골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대중동전쟁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다. 결국 빈 라덴 또는 탈레반의 `테러`라는 정체불명의 `9.11사건`을 구실로 한 아프간 침공은 이러한 `대중동전쟁` 시나리오의 1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또 99년 10월 발생한 파키스탄 쿠데타 역시 미국의 배후조종하에 이뤄진 친미 쿠데타의 성격이 짙다는 점도 미국이 페리보고서 이후 대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면서 대중동전쟁을 획책했을 것이라는 추론의 한 근거가 된다.

한반도 정세 변화, 즉 미국의 대북 침공 계획 포기에 따른 `윈-윈 전략` 폐기 과정이 `중동전쟁 시나리오`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은 세계패권국가로서의 위상을 지켜야 한다는 미국의 허위의식과 함께 `유럽 배치 전력의 아시아 이동 필요성`과도 관련이 있다. 미국은 구 소련이 붕괴된 이후 유럽배치 전력의 아시아 이전을 모색해왔고 중동전쟁은 이 계획 실현을 위한 적절한 구실을 제공한다. 실제로 미국은 2001년 9월30일 발표한 QDR에서 유럽배치 전력을 `벵골만에서 동해에 이르는 아시아 지역`으로 옮긴다고 밝힌다.

페리보고서에 따라 미국이 대북 고립압살 대신 대북 평화공존 노선을 택하며 이북과 협상을 본격화한 99년말 이후 2000년의 한반도 정세 변화는 미국의 `윈-윈 전략` 수정을 가속화시켰다.

미국의 대한반도정책 변화에 따라 남북이 밀사회담을 거쳐 남북정상회담개최에 합의한지 열 하루만인 2000년 4월19일 미 민주-공화 국가안보자문위원회는 "국제분쟁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채택한 2개 전쟁 동시수행 전략인 `윈-윈 전략`은 시대에 뒤떨어졌으며 부적절한 것이라고 밝힌다.

당시 전 상원의원인 게리 하트와 워렌 루드먼의 이름을 따 하트-루드먼 위원회로도 불렸던이 자문위원회는 21세기 미국의 국가안보에 대한 대략적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한반도와 걸프 지역에서 동시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동시 개입해 승리한다는 윈-윈전략은 냉전시대의 유물"이라고 지적했다.(주 : 자문위원회는 당시 <미래의 미군에게 필요한 5대 요소>로 ▲걸프전 같은 주요 분쟁에서 승리할 비핵(核) 중무장 군대 ▲소말리아 내전 같은 국지전에 신속히  파견할  신속대응군 ▲미국과 동맹국들에 대한 공격을 저지, 보호할 핵 병기 ▲미사일  방어체제와 국경 및 영공 보호, 테러리스트의 공격 차단 등의 임무를 수행할 자국군 ▲군 경찰과 평화사절단 등 인도적 원조를 위한 특별부대 등을 거론했다. 한반도 전장화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은 점은 2001년 10월1일 발표된 QDR과 같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성공리에 개최된 직후 미국 언론의 반응은 한 층 더 솔직해진다. 미 USA투데이는 정상회담 마지막날인 6월15일 ▲주한미군 철수와 ▲윈-윈 전략 폐기를 동시에 언급했다. : “...한반도 교착상태가 끝나면 주한미군 3만7천명은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한반도와 중동지역에서 동시에 전쟁이 발발했을 경우 적용되는 `윈-윈 전략` 등 미국의 방위 입장이 전반적으로 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 한반도 위협이 사라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며 남북이 미군이나 미사일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으나 이번 정상회담은 한국전 휴전이래 가장 고무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미 국무부는 곧 이북과 미사일 협상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6월 6.15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고 곧이어 조-미 관계가 급속도로 개선되면서 10월12일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차수)의 백악관방문과 10.12공동코뮈니케가 발표된다. 6.25전쟁의 완전 종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조-미 평화협정을 시사한 이 공동코뮈니케는 이북 침공 작전을 한 축으로 하는 `윈-윈 전략`이 무용지물이 됐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조-미 공동코뮈니케가 발표돼 미 `윈-윈 전략`이 무용지물이 된 바로 그날 미국의 `중동전쟁 시나리오` 집행을 촉발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북 침공작전 포기로 인한 `윈-윈 전략` 폐기가 중동 침공 작전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10월12일 예멘 항에 정박중이던 미 해군 구축함 콜 호에서 의문의 폭발사고가 발생하고 미국은 이를 빌미로 98년 8월에 이어 두 번째 아프가니스탄 공습을 시도한다.(미국은 이 공습 계획을 포기했다. 미국은 빈 라덴이 배후라고 주장하며 아프간 침공의 명분을 세우려 했지만 예멘 대통령은 오히려 이스라엘 정보기관을 의심한다고 밝힘으로써 미국의 아프간 침공이 정당화될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동시에 파키스탄 등 주변국이 아직 미국의 중동전쟁에 적극 따라나설 준비가 덜 돼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파키스탄 군부정권은 한 때 `부정축재자` `암살 계획` 등을 이유로 사형선고를 내렸던 전 총리의 신병 처리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는 등 1년 전 쿠데타의 후유증을 완전히 털어 내지 못하고 있었다. 무샤라프는 전 총리를 이 해 12월 사우디로 추방하면서 반대세력을 모두 제거하게 되고 2001년 3월 클린턴 미 대통령의 파키스탄 방문을 계기로 사실상 지배체제를 완비한다.)

미국내 윈-윈 전략 폐기 논의는 2000년 클린턴의 평양 방문 준비를 계기로 급피치를 올렸겠지만 시간 부족과 이해집단간 알력과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면서 최종 결론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00년 말 또는 2001년 클린턴 방북이 무산된 것은 바로 클린턴 정부가 군부 등 윈-윈 전략 포기에 불만을 품은 세력의 반발을 억제하지 못한 때문이다.

또한 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곧 이북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상징으로서 `윈-윈 전략`이 잘못된 전략이었음을 인정하고 포기할 것임을 세계 만방에 천명하는 것이다. 99년말 페리보고서 이후에 가서야 본격화된 미국의 대북관계 개선이 `윈-윈 전략` 수정`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는 점에서 `클린턴의 평양행` 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미국 지배집단 구성원들이 4년 주기로 바뀌고 이 주기에 맞춰 미국의 군사전략이 재검토되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정치적 군사적 이해관계가 상충되고 조정되는 미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2000년말 클린턴이 대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모든 조치를 완료할 수는 없었다. 이 임무는 새 정부가 짊어질 일이었다. 부시 정부가 클린턴의 대북포용정책(Engagement Policy)를 전면 재검토한 것은 바로 미 군산복합체와 군부의 이익을 침해할 `윈-윈 전략` 포기`의 타당성과 필요성을 재확인하려는 것이었고 이북과의 대화 재개를 희망하는 것은 바로 이북과의 평화공존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세계전략이 수립됐기 때문이다. 클린턴이 약속한 `미 합중국 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곧 부시의 평양행을 위한 예약이었다.

2001년 부시 정부 출범과 함께 더욱 가속화돼 이 전략을 대체하는 `윈-플러스 전략` 수립 단계로 들어간다. 부시가 2001년 6월6일 이북에 대해 대화 재개 의사를 선언한 것은 `윈-윈 전략`수정 작업이 마무리돼 새로운 전략이 수립됐음을 뜻했다. 미국은 9월11일 사건과 10월7일 아프간 침공 이후에도 이북에 대해 대화 재개를 요구하는 것은 바로 `윈-플러스 전략`에 조-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수순이 포함돼 있음을 의미한다. 부시 정부 출범으로 조-미 대화와 남-북대화가 두절됐지만 미국은 상반기 6개월간 조-미 관계 정상화와 남-북통일의 개연성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세계전략을 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미 군부와 행정부 사이에, 또 군산복합체와 이들 기업이 위치해 있는 정치권사이에도 치열한 싸움이 전개됐다. 9월11일 참사 사건은 이런 와중에 터진 것이다.

2) `윈-윈` 포기와 `윈-플러스` 수립 과정 : 2001년 미 언론보도를 중심으로

- 재래식 무력 감축을 통해 첨단 무력을 증강하려는 계획 대신 양쪽을 모두 증강하는 계획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전쟁이 필요했고 그 계획에 소요될 수천억 달러의 재원은 9.11사건과 아프간 침공에 따른 `국내외 군비 염출`로 충당되고 있다.

- `윈-윈 전략` 수정 과정에서 올 7월 `병력 감축`이 `병력 증강`으로 변질됐고 `정체불명의 9월11일 사건`이 터지면서 `140만 병력 유지`가 최종 결정됐다면 9.11사건은 바로 미군 병력 감축을 저지시킨 1등공신이었다.

- 미국은 또 7월부터 자국내 핵.생화학테러를 상정하고 있었다.

미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는 2001년 3월21일 미 군사력 재편방안과 관련한 종합보고 초안을 마련,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미국이 국제분쟁 대응방식으로 채택한 2개 전쟁 동시 수행전략인 윈-윈전략을 폐기하고 미 군사력을 냉전시대의 유럽 중점배치에서 이제는 태평양지역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날 브리핑 때는 부시 외에 딕 체니 부통령과 국가안보위원회(NSC) 및 국방부 고위인사, 헨리 셸턴 합참의장 등이 참석했고 미 국방부는 다음날인 22일 이 계획을 각 군 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에 전달한다.(럼즈펠드 장관의 백악관 보고를 처음 보도한 워싱턴포스트는 3월24일자에서 "럼즈펠드의 보고로 국방부의 군비구매와 해외 주둔병력의 이동 등 중대한 변화가 뒤따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신문은 당시 ▲해군은 대형 항공포함 건조 중단 ▲미사일공격에도 피해를 덜 입을 수 있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항모 건조 착수 논의가 있었다며 "크게 잃은 쪽은  항공모함"이라고 전했다. 또 ▲사정(射程)이 긴 미사일과 무인전투기 증강 ▲미 공군의 차세대 주력기종 F-22기와 해군의 F/A-18 슈퍼 호넷 등 전술전투기 감축 ▲미사일 증강과 스텔스기 혹은 레이더추적을 피할 수 있는 전함, 항공기, 각종 차량 증산 ▲전통적인 구식무기류 사용 중단 등이 보고서에 포함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2001년 4월에는 윈-윈 전략을 수정하는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군비 배정을 둘러싼 이해다툼이 표면화되기 시작한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4월15일자에서 "미국 국방부는 예컨대  이라크와  북한 등 2개의 적성국을 상대로 전쟁을 동시 수행, 승리로 이끄는  소위 `윈-윈 전략`이 여전히 일부 옹호자를 갖고 있지만 미 국방부와 광범위한 국방 전문가들은 `다음달 정도안에` 폐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하고  그 이유로 "부시 정부는 클린턴 전 정부와 국방전략을 차별화하고 일부 국방 예산삭감 여지를 만들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신문은 "이런 전략 변화가 군의 역할과 국방예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군사전략 수행에 따를 치열한 이해다툼을 예견한다. : "특히 윈-윈 전략이 중화기 지상병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육군이 가장 큰 타격을 입고 해군 항공모함의 임무 축소와 공군 수뇌부에 소중한 전투기도 감소시킬 수 있다.  대형 전차나 화포, 단거리  전투비행대보다는 탐지와 공격이 어려운 장거리 폭격기와 정밀유도무기, 무인 비행기. 함선 등과 같은 기동성이 뛰어나 신속하게 장거리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장비가 더 필요할 것이다. ....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와 의원들은 윈-윈 전략은 미국이 초강대국으로서의 마땅히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윈-윈 전략 폐지는 군사력을 더욱 축소하는 길을 열 것으로 우려하고 있으며 국방부 일각에서도 `가장 든든한 국가안보전략`인 윈-윈 전략보다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5월7일 워싱턴 포스트(WP)지도 미 국방부의 `윈-위 전략` 공식 폐기 방침을 보도한다.     이 신문은 국방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9일쯤 부시 대통령을 만나 미국 군사전략상 10년만의 중대변화를 포함하는 새 전략안을 보고하고 최종 재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신문은 "`윈-윈 전략`이란 예컨대 북한과 이라크 등 2개 적성국과 동시에 전쟁을 수행하더라도 승리할 수 있도록 언제라도 최소한도의 병력과 전투기, 전함, 필수장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개념으로 지난 91년 처음 제기된 뒤 지난 10년간 미국의 군제분쟁 대응 핵심전략으로 유지돼 왔다. 미국이 윈-윈 전략을 폐기하고 새 전략안을 채택하면 최근 수년간 항상 140만명을 지켜왔던 현역병력 수준을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되고, 이를 통해 절감된 예산으로 국방부가 추진중인 신무기 개발 및 구매사업에 매진할 수 있게 된다."고 전했다.
 
5월8일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은 변화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위협을 평가하고 장래 인간에 의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실무대책팀을 이끌 것이라고 밝힌다.
체니 부통령은 이날 CNN방송과 가진 회견에서 미국이 직면한 최대의 위협은  더이상 재래식 군사공격이 아니라 ▲국내의 테러행위와 해외의 테러단체 또는 ▲미국에 대해 대량파괴무기를 사용하는 국가나 ▲휴대용 핵 및 생화학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테러문제에 대한 미 정부 핵심자들의 언급은 이후 점차 노골화되고 9월11일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까지 `테러로부터의 위협` 발언이 계속된다. 미국은 최소한 테러를 예상했거나 또는 상정했다.

체니는 이어 "미국 본토와 사회간접시설에 대한 위협은 변화, 발전하고 있으며 우리는 조국방어로 지칭되는 모든 분야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자신이 `새로운 위협에 관한 실무대책팀`을 이끌어야 할 이유를 설명했다. 통상 자연재해문제를 처리하는데 그치지 않고  테러대책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말도 남겼다.

미 상원은 또 체니가 `테러대책반 운영`을 발표한 이날부터 세출위원회, 군사위원회 및 정보위원회 합동으로 폴 오닐 재무, 콜린 파월 국무 및 노먼 미네타 교통 장관 등을 증인으로 출석시킨 가운데 `테러대책 청문회`를 시작했다.
   
이날 첫 증언에 나선 오닐 재무장관은 "재무부는 국경과 지도자, 그리고 금융기관의 수호자로서 미국에 대한 테러공격 예방 업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기술이 크게 진보하고 국제화가 급격히 이뤄짐에 따라 테러에 대응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또 파월 국무장관은 "테러는 세계화의 어두운 일면이지만 미국은 결코 테러에 굴복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만일  미국이 테러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보일 경우 테러분자들이 모종의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5월말께부터는 미 군사전략 재검토 과정에서 빚어지는 각 이해집단간의 알력에 대한 보도가 잇따른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25일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과 미군 합동참모본부의 고위 관계자들이 이번 주 국방부내 비밀 회의실에서 국방개혁을  둘러싼 역할문제를 놓고 언쟁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 "5월22일 `탱크`로 알려진 국방부 비밀회의실에서 약 2시간 동안 열린 회의에서 럼즈펠드 장관은 자신의 군개혁 계획이 누출된 데 대해 실망감을 표시했으며 합참 수뇌부는 수개월에 걸친 이 계획의  검토과정에서 자신들이 배제된 데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 신문은 또 럼즈펠드 장관과 합참수뇌부가 향후 6주동안 새 국방전략을 짜내기 위해 집중적으로 협의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으며 이는 5월 하순부터 6월말까지 미 군부와 행정부 사이에 군사비 증감 및 배분을 둘러싼 본격적인 절충이 이뤄졌음을 시사한 것이었다. "미 국방부는 두 적성국과  동시에  전쟁을 수행해 승리로 이끈다는 이른바 `윈-윈 전략` 폐기를 결정했다"는 워싱턴타임스(WT) 6월20일자 보도가 이를 뒷받침한다.

: "부시 대통령이 19일 국방부를 방문,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만나 9월 작성예정인 4개년 국방정책검토(QDR) 보고서에 관해 협의했다. 국방부 관리들은 럼즈펠드 장관의 보좌관들이 QDR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  즉 글로벌한 차원의 전쟁에서 승리를 위해 유지해야 하는 육.해.공군 및  해병의  병력 규모 결정에 관한 내용을 놓고 최종 마무리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방장관 보좌관들은 국제 분쟁에 대응하기 위한 병력규모에 관해 최소 6가지의 초안을 놓고 면밀한 검토작업을 진행중이며, 이들 초안은 미국의 군사력이 1개 전쟁과 여타 소규모 군사작전을 함께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남은 문제는 `원-플러스(one-plus)`, 즉 1개 전쟁과 함께 수행해야하는 나머지 소규모 군사작전을 위해 유지해야 하는 군사력의 규모이다."

9월11일 참사 약 3개월 전인 6월20일 워싱턴타임스는 미 국방부가 두 적성국과  동시에  전쟁을 수행해 승리로 이끈다는 이른바 `윈윈(win-win) 전략`의 폐기를 결정했으며 부시 대통령이 전날 국방부를 방문,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만나 오는 9월 작성예정인 4개년 국방정책검토(QDR) 보고서에 관해 협의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윈-윈 전략 포기와 윈-플러스 전략 수립이 마무리된 시점은 미 대통령 부시가 취임 6개월만인 6월6일 이북에 대해 대화 재개 희망 의사를 표시한 때와 일치한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6월22일 상원 군사위원회 증언에서 `윈-윈 전략` 폐기를 기정사실화 하면서 "늦여름이나 초가을까지는 부시 대통령에게 미국의 새로운 전략과 군 조직에 관한 권고안을 제출할 것... 북한, 이라크 등 이른바 `불량 국가`의 미사일 개발은 물론 저소음 잠수함에서 사이버 전쟁, 핵과 생화학 무기를 동원하는 테러에 이르는 21세기의 새로운 위협에 대처할 방어 수단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은 럼즈펠드의 상원 군사위 증언이 있는 날 김동신 국방장관을 불러 미국의 새 군사전략 수립 현황을 통보한다. 럼즈펠드는 김 장관에게 "우리는 올해에 디펜스 리뷰와 관련해 매우 훌륭한 진전을  이룩했다. 지금은 디펜스 리뷰에 관해 의회에서 증언하는 단계고, 대통령도 이 과정에  관여하고 있다. 다음단계는 QDR로서 각군 총장, 합참의장, 국방부내 민간 고위관리들의 검토를 거치는 것이다. 지금은 완전히 종결된 게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말해 세계군사전략 검토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있음을 밝혔다.

7월 들어 `윈-플러스 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이 때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공격 계획을 구체적으로 집행하기 시작한 때이다.(아프간 공격 계획에 대해서는 후술) 또한 이때 미 군부와 행정부는 새 국방전략 수립 논쟁의 핵심인 군사력감축을 백지화하고 재래병력도 늘리고 첨단무력도 증강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9.11사건` 이 터지고 아프간에 대한 `전쟁`이 선포된 직후인 9월30일 발표된 QDR 내용도 이와 같다.

뉴욕타임스는 7월12일 29쪽 분량의 국방부 문건을 인용, "미국은 2개의 대규모 전쟁을 동시에 수행, 승리로 이끄는 기존의 `윈-윈 전략`을 포기하는 대신 ▲1개의 대규모 전쟁에서의 `결정적 승리` ▲미본토 방어 ▲침략국 적대행위 ▲제한된 기간의 국지전 참가 등 4개 임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내용의 새  전략을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 "미 국방부는 최근 장기간의 협상 끝에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최종 군사전략안을 마련,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각군 사령관 등 군 수뇌부의 승인을 받았다. 미국은 북한과 이라크를 겨냥해 93년 이래 유지해온 `윈-윈 전략`을 포기했다. 새 군사전략은 그러나 군이 지금보다 많은 임무를 수행해야하는 만큼  대폭적인 병력증강이 뒤따를 가능성이 있다...... 민간부문과 군 지도부는 새 군사전략안이 예산부족으로 백지화될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면서도 "타협의 승리"며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뉴욕타임스는 특히 미국이 본토방어 개념을 처음으로 4개의 지침에 포함시킨 것은 부시 행정부가 현재 추진중인 미사일 방어계획을 주로 염두에 둔 것이라고 분석하고 미군이 국내에서 핵.생화학 무기에 의한 테러공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명문화한 점도 주목되는 대목이라고 지적하고 "이런 국내임무를 정규 현역과 주 방위군, 예비군 가운데 어떤  병력이 수행할 지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 임무를 수행할 조직은 9월11일 사건 발생 아흐레만인 20일 창설된다. 이름하여 조국안보국(OHS :Office for Homeland Security)으로 9.11사건 한 달 전 필요성이 제기됐다는 사실이 대단히 흥미롭다. (부시 미 대통령은 20일 TV로 생중계된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을 통해, 여러 정부 기관들의 대(對) 테러 업무를 최고위급에서 지휘할 필요가 있다며 국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테러 방지 업무를 통합 조정할 `조국안보국`을 신설한다고 밝히고 책임자(국장, 장관급)로 톰 리지 전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를 임명했다. 부시 대통령은 연설에서 "오늘 밤, 나는 나에게 직접 보고할 각료급 기관의 신설을 발표한다. 그것은 조국안보국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조치들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방식을 위협하는 테러리즘을 물리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저지하고, 제거하고, 파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국안보국장은 백악관에서 기존 정보.수사기관에서 차출된 요원들을 지휘하고 부시 대통령과 함께 고위 각료진의 국내 보안 문제 논의를 주재하며 특히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의 정보 분석에 차이가 있을 경우 이를 조정한 뒤 대통령에게 보고할지를 결정하며 국방부의 대테러 대책에 대해 건의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미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리지 국장은 2000년 대통령 선거 때 공화당 부통령 및 국방장관 후보로 거명됐을 정도로 군산복합체의 신임을 받는 인물이다.)

7월말까지 미국 언론들에는 미군병력 규모를 놓고 민간지도부와 이들의 지시를 받고있는 군부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주 실린다. 뉴욕타임스는 7월30일 "국방부내의 이견은 미래의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첨단무기 개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현재의 미군 병력규모를 줄이는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민간지도부와 이들의 지시를 받아 현장에서 집행하는 군 지휘관의 이견은 세계관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부시 대통령과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군부측에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병력규모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미사일방어체제를 비롯한 미래의 전투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우선돼야 하며 이에 소요될 재원은 병력감축을 통해 조달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일선 군 지휘관들은 새 전략을 수행하는 것이 행정부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지상군과 전진 배치가 필요할 수 있다며 병력 감축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병력 감축와 예산 배정 문제를 놓고 군부와 정치권 및 군산복합체들 사이에 이해다툼이 치열했음을 알 수 있다.

미 국방부 전략팀은 남녀군인을 합해 140만에 달하는 미군 병력을 장래 더 증강해야 한다고 시사, 국방부가 재검토작업에  들어갔다고 미 언론들이 18일 보도한다.

미 언론의 이런 보도는 미국이 이미 `윈-플러스 전략`을 완성했지만 군 병력 감축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는 대신 군 병력 증강을 위한 모종의 계획에 착수했음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방부가 최근 마련한 새 전략안에 따르면, 미군은 기존의 윈-윈 전략을 폐기하는 대신 ▲1개의 대규모 전쟁에서 결정적 승리 ▲미국 본토 방어 ▲제한된 기간의 국지전 참가 ▲주요 지역에서 적대국 침략 저지 등 4개 임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된다. 윈윈 전략을 폐기할 경우 미군 병력을 축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국방부의 계산이었다. 그러나 당초 예상과 달리 군병력 증강이라는 결론이  나오자  부랴부랴 재검토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럼즈펠드는 전략 팀이 오해를 했는지, 전략안 문서에 결함이 있는지 확실치 않다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자문했다`고 밝혔고 국방부 한 관리는 전략팀이 새 전략안의 지시사항을 오해하고, 동시에 여러  가지 작은 임무들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군병력이 더 증강돼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럼즈펠드는 그러나 이런 차질에도 불구하고 의회가 요구한대로 국방검토 보고서가 오는 9월30일까지는 의회에 전달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전략 검토의 핵심인 병력 감축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9월30일 시한까지 최종 보고서를 의회에 전달할 수 있다는 럼즈펠드의 말은 곧 병력 감축 또는 증강에 관한 `모종의 해결책`이 있음을 암시한다.

럼즈펠드와 미 합동참모 본부는 해외 주둔 미군 병력을 감축하기 위해 최근 채택했던 새 국방전략을 일부 수정했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진 것은 7월24일 워싱턴 포스트 보도를 통해서였다. : "미국 국방부는 2개의 대규모 전쟁을 동시에 수행, 모두 승리로 이끄는 기존의 `윈-윈 전략`을 폐기하면 미군 병력을 축소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새 국방전략을 채택했으나 새 전략이 수행되기 위해서는 군병력이 오히려 증강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새 국방전략에 대한 재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신문은 "새 국방전략에 대한 수정은 럼즈펠드 장관과 합동참모본부가 지난주 회동, 21세기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군을 재정비해야 하는 지를 놓고 격론을  벌인 끝에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수정된 내용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해외  주둔 미군이 최소한의 지원으로 적을 신속하게 퇴치해야 한다는 문구의 삭제이다"라고 보도했다.

"새 국방전략 수정"은 곧 럼즈펠드와 합참이 격론 끝에 병력 감축 대신 병력 증강(또는 유지)에 합의했음을 뜻하며 "해외 주둔 미군이 최소한의 지원으로 적을 신속하게 퇴치해야 한다는 문구가 삭제됐다"는 말은 미국이 곧 대규모 군사작전에 나설 것임을 의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이와 관련해 "이번 수정으로 미래의 미군 병력 규모와 형태에 대한 새로운 해답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8월 들어서도 병력 감축을 둘러싼 논란과 군비 삭감 및 재배정을 둘러싼 이해집단간의 알력과 이 알력이 심화되고 이 알력을 해소하기 위한 모종의 군사작전에 대한 언급이 잦아진다.

9월11일 사건을 약 한 달 앞둔 8월8일에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펜타곤에서 국방전략 재검토에 관한 기자회견을 가졌고 월포위츠 국방부장관은 "가장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부분 중 하나인 병력문제를 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럼즈펠드 장관과 육.해.공군 고위장성들이 8월7일 병력감축안에 대한 첫 브리핑을 받는다. 내용은 ▲육군 10개 사단중 2.8개 사단 5만6천명 ▲해군 1-2개 항공모함 전단 ▲공군 16개 전투비행중대 등의 감축방안이었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은 "럼즈펠드 장관이 오는 9월30일 이전에 4년마다 의회에 제출하는 국방검토(QDR) 보고서를 통해 최종 병력감축안을 밝힐 예정이지만 병력감축에 대한 의회 의원들과 동맹국들의 반발이 심해 현재의 안이 그대로 의회에 제출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며  럼즈펠드 장관이 병력규모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더 늘려야 한다는 내용의 또다른 보고서도 제출받았다"고 전해 병력증강에 대한 군부의 욕구를 반영한다.

"부시 행정부는 이 즈음 1조3천500억달러의 감세조치와 경기둔화로 국방예산 재원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첨단무기 개발 재원을 마련하고 미군편제를 미래의 전투상황에 적합하도록 전환하기 위해 병력 감축을 추진하고 있으나 국방부 내에서는 물론 의회에서도 찬반양론으로 갈려 논란을 빚고 있다."

부시 정부내 매파의 대표주자이자 `미국 근본주의` 또는 `미국 지상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인 국방부 부장관 월포위츠는 8월8일 기자회견에서 "두 개 전쟁 동시수행보다는 세계 곳곳의 수많은 소규모 분쟁에 대한 대처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이럴 경우 무장병력이 전면 개편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한 개의 대규모 전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면서 보스니아, 동티모르, 아이티 등과 같은 곳에 대한 속전속결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곧 `윈-윈 전략`이 지향했던 두 개 전장 가운데 하나인 한반도 전쟁을 포기하면서 다른 하나인 중동전쟁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고 또다른 소규모 국지전을 수행할 수 있는 대비태세를 갖춘다는 말로 `9.11일 사건`을 빌미로 시작된 중동전쟁과 이후 미국의 대응태세를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

럼즈펠드는 8월17일 "우리가 두 개의 대규모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윈-윈 전략 대신 한 전쟁에서 `우리 방식대로` 싸워 이기는 새 전략안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며 "하나의 대규모 전쟁에서 `우리 방식대로` 이긴다는 것은 미국이 적국 수도에 진입해 점령하는 상황을 포함해 전쟁에 철저하게 임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또 "지난 91년 걸프전 당시에는 "미군이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까지 쳐들어가지는 않았다"면서 새 전략이 과거와 어떻게 다른지를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우리 방식대로 싸워 이기는 새 전략`이나 `적국의 수도에 진입해 점령하는 상황` `전쟁에 철저하게 임해 결정적 승리를 거두는 것` 등 럼즈펠드의 말은 `9월11일 사건` 직후 부시와 럼즈펠드가 말한 `21세기의 새로운 전쟁` `선전포고도 없고 항복문서 조인식도 없는 전쟁` 등과 일맥상통한다. 특히 91년 걸프전에 대한 언급은 이라크에 대한 또 한 차례의 침공작전이 준비되고 있음을 암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 대통령 부시는 사건 발생 이틀만인 13일 사건을 `전쟁`이라고 규정, 보복 방식의 제한을 없앤 뒤 차근차근 파키스탄과 예멘, 사우디 등 탈레반 주변국들을 포섭했고 10월7일 탈레반 전복을 위한 대규모 공습에 나선데 이어 곧바로 이라크 침공 빌미를 찾으려 안달하고 있다. `정체불명의 탄저병균`은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한 `구실만들기`로 보인다.

8월말 미 국방부는 이미 한 달 전 사실상 완료한 `윈-플러스 전략`을 바탕으로 9월말까지 완료키로 돼 있는 국방전략재검토(QDR) 보고서를 마무리하는 과정에 있었으며 이때 다시 한번 병력 감축과 예산 배정 등을 둘러싼 군산복합체와 민간, 기업과 정부, 지역구 의원들간의 이전투구가 벌어진다.

럼즈펠드는 8월22일 기자회견에서 "노후된  군장비를 현대화하고 미래기술에 투자할 수 있게 할 새로운 군사전략을 오는 10월까지 제시할 것"이라고 밝힌다. 그는 또 자신과 군사령관들은 이즈음 내년 국방예산 증액을 위한 가이드라인에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다고 공언했다. 그는 "앞으로 2-3개월이면 우리가 지난 4-5개월간 작업했던 대부분의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날 것"이라며 "고요한 효과를 거둘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8월27일자에서 "국방부는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해 승리하는 윈윈(win-win) 전략에서 후퇴해 한 곳의 전쟁에서 결정적으로 승리하고 다른 한 곳에서는 도발을 뿌리치는 수준에 머무는 `1.5개 전쟁 수행` 전략에 근접하고 있다"며 "윈-윈 전략 후퇴는 결국 노-워(no-war) 전략으로 전락할 지 모른다"고 지적, 새 전략 수립에 따른 불만세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을 폭로했다.

"군 개혁과 재정지원을 위한 계획이 진행 중이지만 국방부의 준비성 부족과 느린 추진력, 의회의 방해 등으로 포괄적 국방 전략이 의구심에 둘러싸여 있다면서 특히 조지 W.부시 대통령이 감세와 교육에 정책 우선 순위를 둠으로써 미국의 군사력은 굶주림에서 벗어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부시 대통령이 최근 예산관련 발언에서 국방 예산 증액 일차분 180억 달러의 집행을 약속하긴 했지만 2차분 집행은 불투명해 럼즈펠드 장관은 결국 현재  수준에서 후퇴하느냐, 아니면 전체 재정을 늘리는 밀어붙이기에 나서느냐는 방안 가운데 한가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첫째 현행 기지의 축소는 B-1 폭격기 33대 퇴역과 조종사 재배치 문제에서 나타났듯이 해당 지역구의 이해관계를 등에 업은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으며, 두 번째 재정 지원 확대요구는 수많은 민주당 의원한테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이 걸프전과 같은 대규모의 2개 전쟁 수행 능력을 잠식해 미국의 군사력이 충분한 전쟁 억지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지경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단적인 예로 중동에서 이라크와 전쟁을 수행할 때 과연 북한의 군사력을 억제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8월말부터 9월초 사이 미국은 `윈-윈 전략` `윈-플러스 전략`으로 대체하고 이에 따른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으며 이를 통해 세계전략 재편에 따른 불만을 잠재운다.

뉴욕 타임스가 9월11일 사건 발생 닷새 전인 9월6일 미 합동참모본부가 야전사령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난  달  비밀리에 컴퓨터를 이용한 워 게임인 `포지티브 매치`를 실시한 결과, 한 개 전쟁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다른 전쟁에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음을 확인했으며 이로써 미군의 전쟁준비태세에 대한 우려가 해소됐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또한 군사전략과 예산을 둘러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국방부  내 일부 관리간의 논쟁도 해소, 국방부가 단합된 모습으로 의회와 백악관을 상대로 국방예산 증액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바로 전날인 5일 상원을 장악하고 있는 야당(민주당)은 미 국방부가 내놓은 미사일방어계획(MD) 추진비 83억 달러를 포함한 3,290억 달러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2002년 국방예산안에 반대, MD예산 중 13억 달러를 삭감했었다. 이때 칼 레빈 군사위원장은 "미사일 방어계획과 관련한 예산이 올해보다 무려 57%나 늘어난 것은 군사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의회의 이런 강경한 분위기 속에서 럼즈펠드 팀이 국방예산 증액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은 심각한 국가안보상의 위기가 조성되거나 대규모 전쟁에 나서는 길밖에 없다. 럼즈펠드는 6일 기자회견에서 재정적자가 크게 위축되고 있는 상태에서 당초 약속대로 사회보장비를 깍지 않고 국방비를 대폭 증액시킬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즉답을 회피했다는 언론 보도 역시 미 국방부가 국방비 증액을 위해 언론에 공개할 수 없는 모종의 계획을 갖고 있었음을 시사한다.(미 상원은 7일 삭감한 13억 달러를 9.11사건 열흘만인 21일 되살림으로써 부시 정부는 당초 요구했던 미사일방어계획 관련 예산 83억 달러 전액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상원은 또 같은 날 총 3,430억 달러의 국방예산 수정안을 통과시킨다. 사상 최대 규모였던 당초 국방예산안 3,290억 달러보다도 140억 달러나 더 많다.)

미 군부가 실시한 `워게임`의 구체적인 내용과 결과는 비밀에 부쳐져 있지만  ▲북한과 이라크가 동시에 도발했을 경우, ▲두개의 전쟁이 동시에 일어난 가운데 뉴욕 같은 대도시에 화학무기를 이용한 테러가 발생했을 경우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미국은 사건 발생 당일인 자칭 `본토습격 사건`을 각국에 예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 경찰은 지난 달 10일 미국 정보당국으로부터 국내 미군기지 및 주한미국대사관 등 미국관련시설물에 대한 테러위험이 있다는 통보를 받고 이들 시설에 대한 경비를 대폭 강화했다고 한다. 한 경찰간부는 "10일 미국 정보계통에서 "`헤즈볼라`등 이슬람계 테러집단이 미국을 공격하려는 첩보가 있으니 한국 내 미국 관련시설에 대한 경비에 만전을 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미국의 테러 사전 감지 설`을 확인하였다."(실천연대 정세동향자료집 14호 <미국의 `보복전쟁`, 21세기 미국 패권 몰락의 서막>)

한편 미 국방부는 9월말까지 마무리해야 할 4개년 국방전략재검토(QDR)를 위해 8월말까지 유럽배치 미 주둔군 약 10만 명의 인도 남서쪽 디에고 가르시아 섬 등 아시아 전략 거점으로 이전 배치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논의 중이었다. 토머스 화이트 미 합참 육군장관은 8월30일 기자회견을 갖고 "아시아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증대함에 따라 가용 군사력을 전략적으로 적합하게 이동시킬 계획"이라고 밝힌다. 그는 또 "미 육군으로서는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아시아지역) 분쟁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해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3)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미국은 `윈-윈 전략`의 수정을 위해 올 4월부터 일본에 `방위계획 대강` 개정을 종용했고 한국에 대해서는 6월7일 한-미 외무장관회담, 6월22일 한-미 국방장관회담이라는 형식을 빌어 새 전략 수립에 대한 동의를 요구했다. 미국은 또 한-미 외무장관회담 하루 전날인 6월6월 이북에 대해 대화 재개 의사를 전한다,

일본 교도통신 4월30일 워싱턴발로 보도 : "이르면 다음달(5월) 마무리될 미군의 포괄적 전략 재검토는 중국군 현대화 등을 고려, 아시아 중시에 비중을 둘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4년마다 개정되는 국방 검토(QDR)를 오는 9월 발표할 예정이며 부시 정권은 동맹국의 역할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럼즈펠드는 `윈-윈 전략`을 대체할 `윈-플러스 전략`을 거의 완성한 시점인 6월말 한-미 국방장관회담이라는 형식을 빌어 새로운 군사전략에 대한 한국의 동참을 요구했다. 그는 워싱턴에서 가진 김동신 국방장관은 공동기자회견에서 "디펜스 리뷰(국방정책 재검토)가 진행되고 있으나 한미동맹 관계가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북에 대한 침략전쟁 계획을 포기하면서 윈-윈 전략을 윈-플러스 전략으로 바꾸는 것은 곧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위상 변화와 후방 이동 또는 감축 등 변화가 초래됨을 뜻한다.

주한미군의 위상과 관련해서는 9.11사건 발생 사흘전인 9월8일 월포위츠가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 나카타니 겐(中谷元) 일본 방위청 장관과 가진 만찬회동에서 한 말이 시사적이다.
: "앞으로 15년 간 아.태지역 주둔 미군이 감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이북과의 전쟁 계획을 포기한데 이어 15년간 단계적으로 주한미군을 철수할 계획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 국방부가 국방전략재검토(QDR)에  대한  의회보고서에서 "중국의 잠재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 오키나와(沖繩) 주둔 미군을 계속 유지하는 한편, 세계 다른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우발적인 사건에 대비한 추가의 중추(hub) 기지로써 서부 유럽과 동북 아시아내의 주요 기지들을 유지해야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주목된다. 오키나와 주둔 미군만을 언급하고 주한미군 계속 주둔이란 언급이 없다.

QDR과 주한미군 감축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미 군사정책 조언자인 리처드 핼로란의 말에서도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그는 10월18일자 동아일보 <세계의 눈 - 미 국방전략 초점은 동북아>라는 기고문에서 "...서울에 위치한 사령부도 다른 곳으로 옮기는 문제가 검토되고 있다... 괌은 앞으로 미군의 주요 작전의 중추기지(hub)로 활용되며 1년 안에 이곳에 3대의 잠수함이 배치될 것이다. ....미국은 호주와 같은 우방국의 군사기지를 활용할 것이며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는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라고 썼다. 핼러란은 얼마전 같은 지면을 통해 곧 주한미군 철수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닉슨 정권때부터 미 군사정책결정에 참여해 온 것으로 알려진 핼로란이 `아시아안보정책 전문가 - 자유기고가`라는 직함으로 쓰고 있는 동아일보 기고문은 대체로 `미국의 대남 지배 변동 없음`과 한반도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강조하는 내용이지만 행간에 숨은 뜻은 조-미 대결에서 미국이 어쩔 수 없이 물러서고 있으며 주한미군 등 이남 지배를 위한 물적 기반에 변동이 초래되고 있음을 자인하는 내용이다.)


2. 미국의 대 아프간 전쟁은 전형적인 `미국식 국가전복 테러`이다

`9월11일 사건` 발생 당일 미국의 언론은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빌어 이슬람 무장단체 `알-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을 `배후`로 지목했다.

과연 이번 참사가 빈 라덴의 소행일까?

미국은 최소한 98년 8월7일 케냐와 탄자니아 미 대사관 폭파사건 이후 꾸준히 라덴을 추적해왔고 그와 관련된 인물들을 세계 도처에서 체포하고 자금줄을 차단해 왔으며 작년 10월12일 예멘 아덴 항에서의 미 해군 구축함 콜 호 폭파사건 직후에는 `라덴의 미 본토 공격설`까지 흘리며 라덴 체포를 위한 대규모 군사작전을 계획했었다.

미국은 또 98년 사건 직후 라덴 보호를 이유로 아프간과 수단에 토마호크 미사일 75기를 발사하며 무자비한 공습을 감행했고 이후 파키스탄을 통하거나 직접 탈레반과 접촉하며 라덴 인도를 종용하며 9월11일 사건 직전까지 미국은 탈레반과 접촉을 유지했고 탈레반도 사실상 라덴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었다. 일종의 감시자 역할을 했다는 말이다.

이런 상태에서 라덴이 미국 본토에서 민간 항공기를 납치해 110층짜리 건물에 처박을 경우 탈레반에 대한 미국의 보복이 어떠하리라는 점은 삼척동자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10월7일 이후 미국의 공습이 잇따르자 탈레반은 10월10일 한 대변인을 통해 "미국이 공격을 계속하고 있으므로 이제 라덴을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한다"며 "이제 라덴은 마음껏 미국을 공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소한 미국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까지 라덴은 탈레반의 보호 하에 있었고 따라서 그가 테러를 지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10월 6일 현재 미국과 영국이 잇따라 내놓은 `라덴 관련 증거`들 역시 라덴과의 연관성을 입증하지 못할 뿐 아니라 `준비된 자료`일 수 있다는 의구심을 자아내며 이런 의구심은 미국과 함께 아프간 공습에 참여하고 있는 영국 및 러시아 언론들도 제기하고 있다.

미국이 아프간 공습에 이어 아랍 지역으로 전쟁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영국의 인디펜던트지는 10월11일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 테러의 주범이라는 미국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 신문은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 테러의 주범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없으며, 미국의 전쟁이 국제적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각 국가에 유죄 증거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영국 정부가 빈 라덴이 테러를 저질렀다는 직접 증거는 전혀 없이 그가 범인이라는 것을 믿어 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하고 있다"며 자국 정부의 친미 동조 행위를 비판했다.

미국과 영국이 제시한 `빈 라덴 개입 증거`는 ▲1996년과 98년 대미(對美) 성전(지하드) 선포 전력 ▲97, 98년 인터뷰에서 93년 세계무역센터 폭파범 언급 ▲지난달 사건과 98년 케냐-탄자니아 미 대사관 폭파사건의 유사점 등으로 왕실의 한 변호사는 "증거 가치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주요언론들이 아프간 공습 다음날인 10월8일 "빈 라덴의 최측근 보좌관인 전직 이집트 경찰관 모하메드 아테프가 지난달 11일의 테러공격을 기획했음을 확인했다"고 보도한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 언론들은 또한 당초 빈 라덴이 주모자라고 주장했다가 10월7일 공습을 시작할 때는 이집트 관료 출신인 `라덴의 측근`이 주범이라고 말을 바꾸고 있는 자국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도 아무런 비판을 하지 않고 있다.

또 미 연방수사국(FBI)이 `결정적` 증거라며 제시한 것은 △라덴과 양어머니와의 전화 통화 감청기록과 △테러범들이 송금에 이용했다는 은행 계좌와 그들의 해외 여행 행적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는 여권 및 테러 교본 및 △라덴 진영에 있다 미국에 협조한다는 소위 전향자들의 증언 등이다.

러시아 일간지 코메르산트는 9월17일자에서 "미 연방수사국(FBI)이 발표한 납치범 19명은 대부분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 출신으로 이들의 신분증이 모두 위조됐을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이들 중 4명은 위조신분증을 갖고 있었다"고 지적, 미 수사당국이 제시한 증거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신문은 또 "테러범들이 공항 옆에 자신들이 타고 온 렌터카를 주차시켜 놓고 또 이 차 속에 아랍어 비행교본과 코란 및 유서를 남겨 놓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범인들이 이처럼 `아랍권-사우디계` 연루 흔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은 실제 범인이 아랍계가 아니며 사건이 미국의 맹목적 분노를 중동 지역으로 돌리기 위한 시도라는 추측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위 19명은 미 연방수사국(FBI)가 9월15일 범죄 용의자라고 밝힌 사람들로 이들의 신분이 위조됐을 것이라는 징후는 또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10월5일 `익명의 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9월11일 사건의 범인들` 19명 모두 해외에 있는 미국 영사관을 통해 관광비자와 상용(비지니스)비자를 발급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하면서 "비자신청 단계에서 비자발급 거부 대상 외국인 명단에 올려져 있는 국무부의 데이터베이스를 그대로 통과, 아무런 사전 제지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이미 수 년 전부터 빈 라덴 주변인물과 아랍권 각국의 저항운동관련자들의 움직임과 자금운용 현황을 추적.감시하며 유럽 등지에서 수시로 체포해 온 미국이 `테러리스트` 19명의 입국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은 미 영사 당국의 실수치고는 너무 `완벽하다`. 미국은 소위 `맹방`인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조차 시도 때도 없이 비자발급을 거부하는 등 외국인의 입출국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 2001년 8월7일 `MBC 뉴스데스크` 시간에 미국의 비자발급 거부 실태를 심층 보도한 윤도한 기자는 자사 사외보 `MBC저널` 10월호에 <테러범들은 어떻게 비자를 받았을까?>라는 글을 게재했다. 윤 기자는 자신의 글에서 `영화 속의 가상`이라는 전제하에 `롱 키스 굿 나잇`(The Long Kiss Good Night)의 대사 한 구절을 옮겼다. : "1993년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폭발물 테러 사건은 미 중앙정보국(CIA)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다. CIA는 국방예산을 더 많이 타내기 위해 테러범들에게 비자를 발급해 줘 입국시킨 뒤 테러를 저지르도록 했다." 이 영화에서는 또 미 첩보기관원들이 전직 첩보요원인 주인공 `사만다`를 죽이고 이를 아랍 테러리스트의 소행으로 꾸미기 위해 이미 냉동처리된 아랍인 남자의 시체를 창고에서 꺼내오는 장면이 나온다.)

테러에 연루된 내부의 적이 있을지 모른다는 미 언론의 보도는 9.11사건이 과연 `외부자`의 소행일까에 대한 의구심을 더 키워 놓는다. 뉴욕타임스의 저명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새파이어는 9월13일자에 <벙커 내부에서>라는 글을 게재, "테러범들이 세계무역센터를 폭파시킨 뒤 대통령 경호를 담당하는 비밀경찰국(SS)의 암호를 사용해 `다음은 에어포스 원`에 테러하겠다는 내용의 암호 메시지를 보내 이에 대한 많은 의혹이 있다고 밝혔다. 빈 라덴이나 `알-카에다`라는 조직이 미 대통령 전용기에 보내는 암호를 해독하고 대통령 주변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알지 못했던 대통령의 위치를 파악해 신호를 보냈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테러범들이 SS나 미 중앙정보국(CIA), 또는 연방수사국(FBI), 또는 연방항공국(FAA) 등에 비밀공작원을 두고 있을지 모른다"며 `내부 스파이 색출`의 시급함을 강조하는 새파이어의 논평은 차리리 개그였다. 라덴이 어느새 60-70년대 미국과 치열한 첩보전을 벌였던 구 소련의 위상으로 격상됐는가.
 
미국 언론들은 쌍둥이 빌딩 북쪽 건물에 돌진한 비행기를 몰았다고 미국이 주장하는 범인 모하메드 아타(33)의 일대기를 재구성해 기사화 하면서 그를 9.11사건의 실무책임자라고 밝혔지만 그 역시 `가공 인물`일 수 있다. 미 국무부는 1990년 10월26일 일단의 테러범들이 동지중해에서 여객선을 공격하거나 유럽과 중동 등지에서 항공기를 공격할지 모른다고 경고하면서 그 이유로 "미국이 3년 전인 87년 미국에서 체포된 `마흐무드 아타`를 이 이스라엘로 송환할 경우 미국의 국가이익에 중대한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는 테러단체의 경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9월11일 사건의 핵심 테러리스트라고 미국이 주장하는 `모하메드 아타`는 이미 10년전 미국에서 이스라엘로 이첩됐을 `마흐무드 아타`일 수도 있다. (아랍인들의 이름에는 `마호메드` 또는 `마흐무드`라 말이 많이 들어가며 두 개 중 하나가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때로 두 개 모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스위스 경찰은 9월16일 아타와 또다른 조종사 등 2명이 올 여름 취리히를 여행했으며 두 사람중 한 명이 신용카드로 주머니칼 2개를 구입했다고 발표했고 뒤이어 미국 경찰당국은 아타가 보스톤 공항 부근 주차장에 세워둔 렌터카에서 이 칼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사상 초유의 사건을 저지를 범인들이 나보란 듯이 자신의 행적을 남기고 돌아다닌 뒤 공항 근처에 버젓이 자신들의 소지품을 남기는 경우도 있을까? 이들이 남긴 소지품 중에는 96년 작성했다는 유서도 있다고 미 연방수사국(FBI)는 밝혔다. 5년간 준비한 범행치고는 어리숙하기가 유치원 아동 수준이다.

라덴이 미국내 법정에서 자신에 대한 궐석재판이 열리기 하루 전날 사건을 저질렀다는 것이나 사건발생 이틀 전 파리에 거주하는 양어머니와의 전화통화에서 그가 "이틀 뒤 엄청난 사건이 일어날 것. 앞으로 당분간 소식을 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감청 기록 또한 `세계 최고의 테러리스트`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너무 유치하다. 차명계좌를 만들고 돈을 송금하는 것은 전문 테러리스트들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또 미국 언론에 등장해 "라덴의 캠프에서 `테러훈련`을 받았고 무고한 시민을 살상하는데 환멸을 느껴 미국에 협조하게 됐다"고 말하는 아랍인들의 신원도 의심스럽다.

미국이 라덴의 소행이라고 주장해온 93년 세계무역센터 `폭발물 테러 사건`이나 98년 케냐와 탄자니아 `미 대사관 폭파사건`과 2000년 미 해군 구축함 콜 호 폭발사고 역시 라덴의 행위라는 증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번 2001년 세계무역센터 비행기 충돌 사건과 마찬가지로 라덴을 궁지에 몰기 위한 음모일 수 있다.

99년 6월10일 라덴은 카타르의 한 위성방송과 90분간의 인터뷰를 갖고 98년 8월 두 미국 대사관 테러사건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밝히고 "미국은 우리 땅을 침범, 점령하고 재산을 강탈하면서 이에 저항하면 테러라고 주장한다"고 비난했다.

또 98년 미국이 아프간과 수단에 대한 무자비한 미사일 공격을 감행한 직후 빈 라덴의 대변인인 세이크 오마르 바크리크는 미국 나이트리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은 `성지해방을 위한 이슬람군`이라는 단체의 소행으로 이 조직과 빈 라덴과는 관련이 없다"고 거듭 밝혔다.

2000년 10월12일 예멘의 아덴항에서 발생한 미 해군 구축함 콜 호 폭발사고 때도 미국은 빈 라덴을 배후라고 강변했고 두 번째 아프간 공습을 준비했지만 당시 예멘의 살레 대통령은 직접 TV에 출연해 라덴 배후설을 일축했다. 그는 "폭발은 구축함 내부에서 발생했고 아덴 항에 설치된 감시카메라가 모든 상황을 촬영했으나 테러행위를 의심할만한 어떤 물체도 포착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 국방장관 코언과 국무부가 10월16일과 17일 잇따라 라덴을 사건의 배후라고 주장하며 라덴에 대한 비난을 계속하자 "라덴이 콜 호 폭파를 명령한 장본인이란 확증을 갖고 있지 않다"며 "미국과 예멘 관계를 저해하려는 지역 첩보기관이나 이스라엘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2000년 12월18일자. 이스라엘의 테러 조작 가능성은 `9월11일 사건` 이전부터 제기돼 왔음을 알 수 있다.)

빈 라덴 스스로 16일 아프가니스탄 AIP통신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이 나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나는 그것을 하지 않았다"고 밝힌 것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테러`라면 배후를 자인하는 세력이 나타나 목적과 이유를 밝히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다. 배후도 나타나지 않고 어떤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면서 오로지 미국의 무자비한 보복만을 초래하는 테러를 저지르는 미련한 사람들이 있을까? 미국은 이미 98년 미 대사관 폭파사건과 2000년 콜 호 폭발사고의 배후를 라덴이라고 주장하며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을 자행했거나 자행하려 했다. 이후 라덴 인도문제를 놓고 미국과 탈레반은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상태에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과 탈레반의 `보호`를 받고 있는 라덴이 또다시 아무런 목적도 소득도 없이, `오로지 미국의 분노를 자극하고` `보복테러를 당하기 위한 테러`를 저질렀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미국의 주장이 사실이기 위해서는 라덴과 라덴의 지휘를 받는다는 `알 카에다`, 라덴을 보호하는 탈레반은 물론 라덴을 영웅시하는 이슬람 민중들은 하나같이 악마이거나 연쇄살인범 수준의 정신병자들, 혹은 초보적인 자기보호본능조차 갖추지 못한 저능아들이어야 한다. 똑같은 행위로 인해 이미 두 차례 미국의 무차별 공습을 당했거나 당할 뻔한 마당에 또 한 차례 똑같은 바보짓을 반복하는 바보 중의 바보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9월11일 사건과 라덴이 무관함을 입증하는 것은 바로 아프가니스탄 집권 탈레반이 10월10일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모든 제한조치를 해제한다"고 밝힌 것이다. 탈레반은 "앞으로 라덴은 미국에 대한 성전을 수행하는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게 됐다"고 천명함으로써 지금까지 라덴은 자신들의 보호 내지는 감시하에 있었음을 밝힌 것이다. 압둘 하이 무트마엔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영국 BBC 방송에서  "미국의 공격이 시작됨과 동시에 빈 라덴에 대한 제한 조치는 모두 해제됐다"고 말했다. 탈레반은 1996년부터 아프간에서 `손님`으로 생활하고 있는 빈 라덴에 대해 인터넷과 전화, 팩스 등 모든 통신수단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해 왔다. 무트마엔 대변인은 또 "미국이 이슬람에 대한 전쟁을 시작했고  상황이  완전히 변했기 때문에 빈 라덴에 대한 제한조치는 더 이상 필요가 없다"며 라덴에 대한 제한조치 해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하드(성전)는 모든 이슬람 세계의 의무이며 우리는 성전을 원하고 빈 라덴도 성전을 원한다"며 "미국은 자신들의 아프간 공격으로 인해 불쾌한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탈레반이 라덴의 신병에 대한 보호 또는 감시를 해제한다고 발표한 날 빈 라덴이 이끄는 테러조직으로 알려진 알-카에다가 비디오 녹화 방식 테이프를 통해 "미국에 대한 항공기 납치 공격은 계속될 것이며 이 싸움은 미국이 이슬람 땅에서 철수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한 사실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라덴이 테러를 했다는 미국의 주장에 대한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고 탈레반이 라덴의 개입 의혹을 부정하는 조치를 취한 가운데 라덴의 조직이라고 알려진 알-카에다가 라덴이 9월11일 사건의 주모자인 듯한 발언을 한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이 성명이 나오자 미국과 영국은 곧바로 "그것 보라"며 카에다의 대변인이라는 사람의 발언을 마치 미국의 주장을 입증하는 것처럼 이용하고 있다.

국내 언론들은 한 술 더 떠 이 대변인의 말에 `추가 비행기 테러 암시`라며 토를 달아 9월11일 사건이 실제로 라덴의 작품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다.  이 대변인은 결코 `추가 보복`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9월11일 사건이 `신의 뜻에 따라` `누군가가 미국을 응징하게 위해 결행한 것이라면` `그와 같은 대미 응징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 이 대변인 말의 요지이다. 이 `알 카에다 대변인`이 서방이 내세운 꼭두각시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일단 이 사람의 말은 미국이 죄없는 아프간인들을 학살하고 있는데 대한 울분과 격앙의 토로로 볼 수 있다.  자신들은 미국이 자신들을 침공하는 것과 똑같이 미국을 공격할만한 힘이 없으므로 `누군가` `신의 뜻에 따라` `그와 같은 대미 응징`을 계속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고 동시에 미국내 반전분위기가 형성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언론들이 미국의 주장에 입각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상황을 호도하며 미국이 원하는 바를 열심히 선전하는 것은 비단 알-카에다 대변인의 말뿐이 아니다. 몇몇 신문과 방송사들은 10월 들어 빈발하는 소위 `탄저병 테러`의 배후를 이라크로 몰고 가려는 미국의 의도에 철저히 복무하고 있다. 미국은 탄저병 편지 사건이 시작되면서 세계인들의 이목을 `빈 라덴` 또는 `알-카에다`에서 `이라크`로 옮기고 있다.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탄저병균 생산은 알-카에다와 같은 단체로는 역부족이며 국가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그 국가는 바로 이라크라는 것이다. 우리 주요 언론들의 논조 역시 이와 같다. 탄저병균이 항생제에 반응하는 속도로 보아 미국에서 제조됐을 것이라는 지적은 철저히 외면하고 대신 이라크가 생산한 탄저병균을 체코를 통해 알-카에다가 입수했고 이를 미국에 들여와 테러에 이용하고 있다는 미국의 주장만을 확대하고 재생산한다.

서방 언론의 호전적이고 반인륜적 보도 태도에 대해서는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도 한 차례 질타한 바 있다. 마하티르 총리는 10월21일 상하이에서 폐막된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군 주도의 대(對) 아프간 공격에 언급, "다수 언론들이 사실 확인 절차도 생략한 채 제멋대로 보도, 무고한 민간인과 말레이시아 등 관련 국가들에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성토했다.
   

3. 탄저병균 생산지는 미국일 가능성이 높다

영국 일간지 이브닝 스탠더드는 `미국 정부에서 탄저균 무기를 제조했던 과학자`의 말을 인용, "미국에서 발견되고 있는 탄저균들은 같은 균주에서 나온 것이며 항생제에 이처럼 빨리 반응하는 탄저균주를 생물학전을 위해 생산한 나라는 없기 때문에 미국내 조직이 만들었을 개연성이 더 높다"고 전했다.(YTN 장기영 기자 10월19일 보도)

실제로 미 국방부 대변인 빅토리아 클라크는 `9.11사건` 엿새 전인 9월4일 기자들에게 "미 국방정보국(DIA)는 기존의 탄저병균보다 더 강력한  새로운 형태의 탄저병균을 개발할 계획"이라며 "올 초부터 백신 실험을 위한 변형 탄저병균을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밝힌다.

이날 기자회견은 4일자 뉴욕타임스지가 "미국 정부는 지난 수 년 간 생물무기 연구를 비밀리에 진행시켜 왔다"고 보도한데 대한 설명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또 뉴욕타임스 보도에 대해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도 "생물학무기의 위협에 대처하는 것은 지난 수 년 간 미국 정부의 우선 과제였다"며 "수년 간 생물학무기에 관한 비밀연구를 실시해왔다"고 확인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생물무기 연구는 이미 클린턴 행정부 시절 시작돼, 중앙정보국(CIA)이  `클리어 버전(Clear Version)`이란 암호명의 세균폭탄 연구를 실시했으며  국방부는  네바다 사막에 공장을 세운 뒤, 국제적으로 사용이 허가된 각종 물질을 이용해 쉽게 생물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또 부시 정부도 생물무기 연구를 계속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고 이미 올해 초 국방부가 탄저병을 유발하는 세균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를 수립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미국은 또한 91년 걸프전 이후 10년간, 특히 98년초부터 집중적으로 이라크와 생화학무기와의 연관성을 집중 부각시켜왔고 실제 이라크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작전을 위해 주한 미군을 포함한 해외 주둔 미군들에게까지 탄저병 항생제 주사를 놓기도 했다.

98년 3월4일 미 상원 청문회에서 미 국방대학원 교수 시스 캐러스가 한 말이 있다. "이라크가 만일 미국으로부터 공습을 당하면 사담 후세인은 미국내에서 세균무기를 동원한 테러공격을 지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이로부터 약 열흘 전인 98년 2월24일에는 미 연방수사국(FBI)가 미생물학자이자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아리안 네이션` 회원으로 과거 독극물 소지 사건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적이 있었던 47세 남자 등 2명을 세균전 감행 혐의로 체포했다 풀어준 일도 있다.

미국은 또 9월11일 사건이 발생한 직후 아직 탄저병균 편지가 나돌기 훨씬 이전부터 `다음 테러는 화학테러`라는 말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워싱턴의 컨설팅 업체인 `새뮤얼 인터내셔널`의 크리스 넬슨 부사장은 사건 직후 `부시의 테러 전쟁 시나리오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언론에 공개, "다음 조치는 빈 라덴의 미국에 대한 생화학공격이 유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자는 "중동 각국의 경제난과 비민주주의를 제거하고 2차대전 이후 유럽 부흥을 위해 미국이 실시했던 `마샬플랜`이 마련돼야만 아프간전쟁에서 진정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며 "막대한 희생이 따를 `서구 문명과 이슬람 근본주의간의 충돌`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있지도 않은 `생화학 테러`를 예견하고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아랍판 마셜플랜`을 거론하면서 온 세계가 부정하는 `문명충돌`을 거듭 주장한 것은 그가 말한 `시나리오`야말로 미 군부가 부시 정부 출범 전부터 준비했고 부시 정부 출범 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중앙아시아 지배를 위한 중동전쟁 시나리오임을 반증한다.

급기야 미국은, 미국의 추악한 전쟁을 지휘하는 공작팀은 이라크의 한 여성 과학자를 `탄저병균 생산 총책`으로 몰고 가려 하고 있다. 10월22일자 뉴욕포스트지는 리나브 타하(45)라는 이라크 여성 과학자가 유엔 무기 사찰단원들 사이에서 `세균 박사`로 불렸다며 이 사람을 `탄저병 테러`의 배후라고 지목했다. 미 언론이 탄저병 사건과 관련해 이라크 인을 특정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그러나 `탄저균 편지 사건`은 내국인의 소행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이제 탄저균 테러는 인종 갈등을 조장하려는 미국 극우세력의 소행으로 드러나고 있다. FBI 수사 결과 그동안 발견된 탄저균은 모두 미국에서만 생성, 배양되는 변종이었다. 또 언론사를 집중 표적으로 삼은 점으로 미뤄 실제 살상보다는 선전 효과를 노린 범행으로 풀이됐다. FBI는 특히 표적에 포함된 톰 대슐 상원 민주당 원내총무가 극우세력 규제를 외쳐온 사실을 근거로 이들에 대한 혐의를 굳혔다고 한다. 물론 수사 실책도 시인했다."(한국일보 10월23일자 50판 6면<탄저균 테러 진범> 강병태 논설위원)

턴저균이 `라덴`과 관련돼 있으며 `알-카에다` 조직원 두 명이 `비행기 테러범과 접촉`했다거나 `테러단체로는 무리이고 특정 국가가 했을 것`이라며 `이라크`를 지목하며 전쟁의 빌미를 삼으려는 부시 패거리들의 가증스러운 음모가 곧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탄저균 편지`들이  9.11사건 발생 시점을 전후해 발송됐다는 미 언론의 보도가 나온 상태이다. 9.11사건은 또 어느 세력의 소행일까?

라덴과 미국

라덴과 미국의 적대관계는 `라덴의 테러 행위` 또는 `테러 혐의` 때문이라고 인식돼 있지만 실제로는 `테러` 또는 `혐의` 이전 미국이 라덴을 탄압했으며 라덴의 대미 적개심을 부추긴 측면이 강하다.

"....1957년 리야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라덴은 제다에서 수학하던 16세때부터 몇몇 회교단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학교를 마친 후 그는 상속받은 건설회사를 운영했지만 종교적 신념에 이끌려 몇 년 후 사우디를 떠났다. 79년 빈 라덴이 처음 간 곳은 구 소련의 침공을 받은 아프가니스탄. 그는 그곳에서 수천 명의 아랍 의용군을 무장시키는데 돈을 상당히 썼다고 영국의 인디펜던트지에 밝힌 바 있다. 그후 89년 소련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하자 사우디로 돌아왔으나 사업가로 정착하지 못하고 94년에는 이집트와 알제리의 과격 회교단체들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여권까지 압수당했다. 빈 라덴은 여권을 되돌려 받자마자 수단으로 옮겨 건설업을 재개했으나 이번에는 미 정보당국으로부터 테러단체에 자금 및 훈련캠프 설치를 지원한다는 의심을 받고 미국과 유엔의 압력에 굴복한 수단으로부터 추방당했다...... 그는 96년과 98년 사이 사우디와 그밖의 `성지`에 들어앉아 있는 미국의 잔재들에 대해 지하드(聖戰)를 다짐하는 3차례의 회교 교령을 발표했다......"(98년 8월7일 케냐와 탄자니아 미 대사관 폭발사고 사흘 뒤인 8월10일자 프랑스 AFP통신)


4. `9.11사건 전 미국은 중동전쟁을 계획했다`

미국은 사건 직후 라덴을 배후로 지목하면서 `테러 응징을 위한 전쟁`을 쉼없이 주장하며 공습을 시작했지만 `테러`는 구실일 뿐이고 미국은 테러 이전부터 아프간 전쟁을 획책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공습개시 직전까지는 사건의 배후를 빈 라덴이라고 주장했던 미국은 공습을 시작하면서 그 배후를 라덴이 아닌 이집트 출신의 `라덴 측근`이라고 슬그머니 말을 바꾼다. 부시 정부는 또 공습 사흘만인 10월10을 느닷없이 `부시 독트린`이란 말을 앞세우며 `테러세력을 지원하는 모든 나라와 단체`들까지도 공격의 목표라고 공언했다. 이미 공습이 개시되면서 `빈 라덴의 테러`가 기정사실화됐고 다음 수순인 이라크 공격을 위해 `중동 테러 지원국들`을 `반미국가들과의 전쟁`이라는 숨겨진 저의를 드러낸 것이다.

조선일보 9월15일자 45판 8면에 실린 `미 중동전문가` 리처드 하먼(Richard Hermann, 50)의 인터뷰는 9월11일 사건을 빌미로 한 미국의 아프간 침공은 이라크 침공을 위한 전초전이며 미국은 오래 전에 이라크를 공격을 준비해 왔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이 자가 한 말을 곱씹어보면 미 대중동 침략전쟁의 시나리오를 대략 파악할 수 있다.

(허먼이라는 한 개인의 한 차례 발언에서 미국의 대외정책의 깊이와 폭, 지배집단의 생각과 이들의 저의까지 추론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고 견강부회일 수도 있으나 이 자의 발언은 부시 행정부의 정책과 전략, 행위, 발언들을 총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 아래와 같은 분석을 시도했다.)

조선일보는 <최종 목표는 사담 후세인 제거>라는 제목의 이 인터뷰기사에서 이 자를 소개하기를 "81년부터 걸프전쟁 때인 91년까지 미 국무부 정책기획실에서 근무하기도 한 그는 미국의 이란 이라크 정책과 미국의 중동에 대한 군사보복 관련 저서가 있으며 러시아의 아프가니스탄 정책,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및 파키스탄 정책에 대한 다수 논문을 쓴 중동 전문가"라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이 자가 한국에 언제, 무엇 때문에 왔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테러 사건 이후 미국으로의 항공기 운항이 중단돼 서울에 머물고 있는 그를 14일 만났다"라고만 썼고 기사의 ABC에 해당하는 (인터뷰) 장소조차 명시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볼 때 다분히 이 자의 의도에 따라 계획적으로 이뤄진 인터뷰라고 볼 수 있다. 미 국무부에서 10년간 중동정책을 담당해왔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등 중동 지역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전문가로서 9월11일 사건을 빌미로 한 미국의 중동전쟁을 합리화하려는 것이지만 인터뷰 곳곳에서 자승자박하고 있다.

우선 `미국의 군사 보복이 언제쯤 시작되나?`라는 물음에 "테러를 누가 저질렀는지가 분명해지면 곧바로 보복을 시작할 것"이라고 해 놓고 곧 이어지는 `보복 대상은?`이라는 물음에는 "라덴 등 아프가니스탄 내 테러단체들은 물론 탈레반 정권과 이라크, 시리아 등도 보복대상으로 고려될 것"이라고 대답한다. 침공작전 대상을 먼저 정해 놓고 그 대상을 테러의 배후로 만든다는 말과 다름없다.

이 자는 또 "이라크에 대해서는 미국이 어디를 폭격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으며 항상 군사행동의 준비가 돼 있다" "단기적인 목표는 라덴을 잡는 것이고... 장기적인 목표는 이라크의 후세인을 몰락시키는 것" "이 전쟁의 최종 목표는 사담 후세인"이라고 말한다. 애초부터 빈 라덴을 빌미로 한 아프간 침공은 이라크를 치기 위한 구상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실토한 것이다.

이 자는 `탈레반`과 `이라크` `시리아` 등이 공격 대상이 되는 이유에 대해 `테러와 관계가 있다`고 말했고 "군사적으로 미국의 주적은 중국도 러시아도 북한도 아닌 테러임이 분명해졌다"고 강조한다. 이 자의 이 말은 `테러와의 전쟁` `21세기 새로운 전쟁` 등 이후 부시와 럼즈펠드 등 미국 정부 주요 인사들의 말을 통해서도 거듭 확인된다. 미국은 새로운 적을 창출해야 했던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 북한은 2차대전 이후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위협했거나 방해하는 나라들이면서 이념의 적들로서 봉쇄.고립.압살의 대상이었다. 미국은 70년 이후 중국을 꾀어들여 러시아를 봉쇄했고 80년대 후반부터는 다시 중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이북에 대한 고립-압살을 시도했다. 러시아는 붕괴됐고 중국 또한 시장경제를 도입했으며 신흥 군사강국인 이북과는 부득이 평화공존의 상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미국은 `새로운 적`이 필요했고 그 적을 `테러리즘`으로 정의한 것이다.

이 자는 또 `라덴을 잡으면 테러위협은 사라지나?`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 이번 보복은 또 다른 보복테러를 예상하고 하는 것"이라고 실토한다. 그는 "사태의 결말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라덴이 없어지더라도 중동에는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가 아주 많다"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전 인류가 우려하고 있고 미국 국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보복의 악순환`을 예상한 채 언제 끝날지 모를 대 중동전쟁을 벌인 것이다.

미국이 뚜렷한 목적(달성)도 없는 `테러와의 전쟁`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9월11일 사건` 자체에 대한 이 자의 의미심장한 발언을 주목한다. `이번 테러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는 질문에 "2차 대전 때 교전국들은 민간인에게 무차별 폭격을 가했다. 민간에 피해를 입혀 정치지도자들과 군의 항복을 받아내려는 `전략 폭격`이었다. 이번 미국에 대한 테러는 `빈자`들에 의한 전략폭격인 셈이다...... 과거에도 일본이 진주만에 선제공격을 가한 적이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미국인들은 더 단결한다. 부시의 외교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하나로 뭉친다"고 대답했다.

`진주만 공격을 당했을 때 미국은 단결했다`는 `역사적 교훈`이 있고 부시의 신 패권주의가 세계 각국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 부시 정부가 안팎의 비판에 직면해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또 한번의 `거국적 단합`을 위해서는 또 한 번의 진주만 공격이 필요할 수도 있다.

사건 발생 다음날인 9월12일 부시가 사건을 가리켜 `전쟁`이라고 정의한 것은 `보복 수단의 제한을 없애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리처드 허먼이 9.11사건을 `전략 폭격`이라고 정의한 것에 비춰보면 부시가 `9.11사건`을 `전쟁`과 동일시한 것은 민간비행기를 110층 짜리 빌딩에 처박은 사상 초유의 사건을 미국이 수없이 치른 `국가적 행사`인 `전쟁`의 서막으로 치환한 것이었다. 이 치환을 통해 사건의 참상과 충격 및 사태의 심각성은 빠른 속도로 희석돼버리고 `새로운 적,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복수심과 적개심이 들어찬다. 최고 최악의 `국가 행위`인 `전쟁`은 모든 것을 합리화시키고 모든 죄를 사해주는 면죄부가 되기도 한다. 

허먼이나 부시 등이 `진주만 사건` 운운한 것은 20세기를 미국의 세기로 만들어준 2차세계 대전에 대한 애절한 향수를 드러낸다. 2차대전의 `빛나는 성과`에 대한 향수는 곧 부시 등의 `3차 대전` 운운으로 이어진다. `또 하나의 멋진 전쟁`을 벌임으로써 20세기말 이북과의 핵-미사일 협상을 고비로 추락하는 패권국가로서의 위상을 되찾고 21세기를 다시 `미국의 세기`로 만들려는 원대한 구상이 엿보인다. `9.11사건`은 이와 같은 찬란한 미래를 위해 기꺼이 바쳐야할 작은 제물일 수 있다.

미국이 9월11일 사건 훨씬 전에 아프간 침공을 계획했다는 사실은 곧 밝혀진다. 파키스탄 전 외무장관 니아즈 나이크는 9월19일 영국 BBC와의 회견에서 "미국은 테러 참사가 발생하기 전부터 10월 중순 타지키스탄공화국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할 계획이었다"고 밝혀 미국의 대 아프간 침공작전이 9월11일 참사 이전에 계획됐음을 처음 공개했다. 그는 "7월 중순 베를린에서 열린 한 회담에서 미국측으로부터 이런 계획을 통보 받았다"며 "미국은 타지키스탄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해 놓은 상태이며 탈레반이 빈 라덴을 인도해도 군사공격을 감행할 것"이라고 증언했다. (한국일보 9월19일자 42판.)

영국 일간 가디언지도 9월22일자에서 나이크 전 파키스탄 외무장관의 말을 인용해 파키스탄 정부가 나이크 전 장관의 전언에 따라 미국의 대 아프가니스탄 공격 계획을 탈레반 정부에게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미국의 탈레반 침공 계획은 올 7월 중순 베를린의 한 호텔에서 미국과 러시아, 이란, 파키스탄의 전직 고위관리들이 참석한 가운데 4일간 열린 회의에서 논의된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또 작년에도 한 차례 아프가니스탄 인접국가인 타지키스탄을 발진기지로 하는 `텔타포스 특수부대 작전`을 전개하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대 테러 특수부대 SAS 대원이었던 켄 코너는 이에 대해 안전한 헬기 발진기지를 확보하지 못해 "지난해 계획했던 작전이 마지막 순간에 취소됐다"고 밝힌 것으로 영국의 BBC 방송은 보도했다.

이 SAS 전 대원은 미국의 작년 아프간 침공 작전이 언제 시도됐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2000년 10월12일 예멘 아덴 항에 정박중이던 미 해군 구축함 콜 호에서 폭발사건이 일어난 직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예멘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테러가 아님을 거듭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사코 `테러`이며 그 배후는 라덴이라고 강변했고 제2의 아프간 공습작전을 준비했었다. 라덴 또한 이 사건 발생 닷새 만인 2000년10월17일 "미국은 아프간을 공습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던 것으로 미국의 AP통신은 보도한 바 있다.

이처럼 라덴의 배후설이 낭설이거나 치밀하게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아프간 침공계획을 서둘러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것은 이미 오래 전미국의 아프간 공격 계획이 수립됐으며 9월11일 사건이나 이 사건에 대한 라덴의 배후설은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의도는 ▲아프간 탈레반 전복 ▲73년 축출된 자히르 샤 전 아프간 국왕을 내세운 꼭두각시 친미 정권 수립 및 ▲아프간을 위시한 중앙아시아 전후 복구 계획으로 요약될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와 CNN 방송 등 미 언론들은 10월4일 아프가니스탄 공격 이후 미국은 아프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지역의 경제 재건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중이라고 보도했다.

미 국방장관 도널드 럼즈펠드는 9월18일 미 CBS와의 대담에서 "빈 라덴을 인도하더라도 미국의 공격작전은 계속될 것"이라며 "라덴이 이끄는 알 카에다라는 조직은 복수의 지도부를 가진 광범위한 테러 조직이므로 라덴이 없어도 활동을 계속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어차피 라덴은 중앙아시아 지배를 위한 장기전의 구실에 불과했음을 미국 스스로 실토한 것이다.

영국의 가디언지도 9월21일자에서 "이번 아프간 공격에 나서는 미국의 중기 전략 목표는 탈레반 정권 축출 및 친미정권 수립이다"라고 보도하고 그 근거로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주재 자국 대사관에 보낸 전문을 인용했다. 이 신문은 또 미국이 현재 나토 회원국들에게 탈레반 정권 전복과 과도정부 수립에 대한 지지를 종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유에스에이(USA)투데이지 10월11일자 보도가 또한 주목을 끈다. 미국이 아프간 침공에 나선지 나흘 만이다. 미 국방부는 테러 퇴치 캠페인이 아프가니스탄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데 실망해 제임스 울시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에게 `9.11테러`에 이라크가 관련돼 있는지를 은밀히 조사하도록 요청했다는 것이다.

"93-94년 CIA를 지휘했던 울시 국장은 국방부 내 일부 임명직 관리들이 관철시키지 못하고 있는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할 증거를 찾고 있다...... 국방부 부장관 월포위츠 등이 이라크 정권을 겨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국방부 관리들은 9.11사건의 주모자인 모하메드 아타가 미국에 입국하기 직전인 작년 6월 이라크 정보원과 접촉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직후 이를 언론에 흘렸다." 억지로 이라크를 적으로 만들기 위한 공작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일의 공영방송 ZDF는 10월15일 미국내 탄저병 테러에 라덴의 조직이 연루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모하메드 아타가 체코 프라하에서 이라크 비밀정보원과 2차례 만난 사실이 있다고 밝힌 것은 이런 미 국방부의 공작에 의한 `언론플레이`라고 볼 수 있다.
 
미 대통령 부시는 9월25일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의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탈레반 정권의 전복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지만 금방 드러날 거짓말이었다.

백악관 대변인 애리 플라이셔는 10월1일 "누가 아프간을 통치할 것인지에 관해 미국이 개입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테러가 아닌 평화를 추구하고 아프간 경제를 발전시킬 정치세력을 지지한다는 것이 미국의 방침"이라고 말했고 국무부 대변인 리처드 바우처도 "테러리스트를 비호하는 등 아프간 국민의 이익에 반하게 행동한 탈레반은 아프간을 대표하는 정부가 아니다"라며 친미정권 수립 의도를 드러냈다.

결국, 미국의 대 아프간 전쟁은 친미정권 수립을 위한 테러이며 미국이 지난 반세기 동안 저지른 수많은 `국가전복테러`의 또 한의 예로 기록될 것이다. (미국이 약소 적대국의 정권을 전복한 첫 사례는 51년 이란 민족주의자 모하마드 모사데그 정권을 전복시킨 뒤 꼭두각시 친미정권인 팔레비 왕정을 세운 것으로 이번 아프간 침략전은 부패와 폭압으로 얼룩진 제2 팔레비 왕정을 세우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또 60년대 쿠바 카스트로 정권 전복을 여러 차례 기도했고 73년 칠레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 전복(아옌데 사살), 앙골라 내전 개입(75-80년), 니카라과 콘트라 반군 지원(81-90년, 다니엘 오르테가 정부 전복), 그라나다 혁명정부 전복(83-84년, 비쇼프 총리사살), 엘살바도르 군사정권 지원(80-94년), 파나마 민족주의 정부 전복(89년) 등 수많은 국가 전복 테러를 자행했다.)

"미국의 비판적 지식인인 마이클 패런티(Michael Parenti)는 미국의 98년 아프간 공습을 가리켜 `국가살해(To Kill A Nation)`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미국의 행동은 명백한 침략행위(aggression)라고 질타했다. 미국의 양심적인 역사학자 하워드 진(Howard Zinn) 역시 마이클 패런티와 다를 바 없는 견해를 표명하는 가운데, 부시정권의 전쟁선포는 21세기를 폭력의 시대로 만들 것이라면서, 진정한 테러근절의 방법은 열악한 처지에 놓인 민족들의 현실을 개선하는데 미국의 부(富)를 사용하는 것에 있다고 역설했다"(김민웅 재미언론인.목사-오마이뉴스 기사 <전쟁은 미국 패권의 몰락을 재촉한다>)

<참고> 미국의 깡패국가적 본성을 논파한 책이 출간됐다. 미국 MIT 교수이자 언어학자, 철학자, 정치비평가로 유명한 노암 촘스키가 펴낸 「불량국가(Rogue States)」로 두레에서 출간됐다. 다음은 이 책에 관한 한 언론사 기자의 `서평` 기사이다.

"<미국은 과연 선한 나라인가〉 9.11 테러사건이 터지자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즉각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것은 선과 악의 대결"이라고 규정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들은 `선`이며 오사마 빈 라덴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등 일부 아랍권 세력은 `악`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미국 MIT 교수이자 언어학자, 철학자, 정치비평가로 유명한 노암 촘스키는 그의 최신작 「불량국가(Rogue States)」(두레)에서 부시 대통령의 이같은  표현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조목조목 입증하고 있다. 촘스키가 말하는 `불량국가`는 다름아닌 미국이다. 그는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예로 들며 초강대국 미국이 얼마나 안하무인으로 국제법과 유엔사법재판소의 판결 등 국제사회의 각종 규범을 무시하고 위반해 왔는지를 밝히고 있다. 미국이 국제법을 대하는 행동강령은 일찍이 1963년 미 국무장관 애치슨이  미국 국제법학회에서 행한 다음 연설에도 잘 드러난다. "미국의 힘, 지위,  특권에  대한 도전에 미국이 대응할 때 그것이 적절한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국제법적인 쟁점이 아니다." 미국은 모든 나라가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유엔 안보리의 결의를  거부했고 유엔 총회의 비슷한 결의안에 대해서도 거의 유일하게 반대했다. 유엔을 무력화시키는 주요 사례중 하나가 국제문제를 다루는 유엔 안보리에서의 거부권 행사이다. 거부권을 남용하는 것에 관한 한 미국은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 국제기구가 미국의 이익에 봉사하지 못할 때 그러한 국제기구가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둘 이유가 없다는 것이 미국의 일반화된 원칙이었던 것이다. 촘스키는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법의 지배`의 원칙을 무시하고 어떻게 `힘의 지배`를 실행하고 있는가를 과테말라, 콜롬비아, 쿠바 등 라틴 아메리카와  동티모르, 베트남, 이라크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 여러 나라에서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게 해 선거를 통해 이뤄진 독자적인 민주정부를 전복시키고 군사 독재자들을 등장시켜  그들이 인권을 유린하고 민중에 대한 잔학 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지원했다. 1954년 아이젠하워 정부가 후원한 쿠데타로 10년간의 짧은 민주주의 실험에  종지부를 찍게 된 과테말라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아이젠하워 정부는 이후 과테말라에서 야만적인 억압과 고문의 시대를 열어놓았으며 이는 케네디 행정부에 의해 더욱 강력한 지원을 받았다. 케네디 행정부는 과테말라만이 아니라 중남미 전체를 대상으로 국가안보 독트린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라틴 아메리카 전역으로 억압의 전염병을 번지게 했다. 과테말라에서의 잔학행위는 1980년대 초 레이건 행정부 시절 절정에 올랐다. 레이건 행정부는 유엔위원회가 살인자로 낙인찍은 범죄자들을 공개적이고  정열적으로 지원했다. 수하르토가 지휘하는 인도네시아군에 의해 주민의 4분의 1이 학살당한 동티모르의 경우도 비슷하다. 인도네시아는 1965년 수하르토가 권력을 장악한 후 미국의 적국에서 우호국으로 바뀌었으며 그는 줄곧 `르완다식` 학살을 자행했는데 그 후 수하르토는 클린턴 행정부가 지칭했다시피 줄곧 `우리 사람`이 되었다. 수하르토가 1975년 인도네시아로부터 자결권을 얻으려는 동티모르를 침공, 온갖 만행을 저지르자 같은 해 12월 유엔 안보리는 인도네시아가 침략군을 지체없이 철수할 것을 결의했으나 미국은 비밀리에 인도네시아 침략군에 대한 무기공수를  증가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1978년 동티모르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공격이 거의 인종청소 수준에 달했을 때 미국은 다시 한 번 무기 공급을 가속화시켰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한동안 미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바그다드의 야수`라는 칭호를 얻게 된 과정도 흥미롭다. 미국은 미국에 적대적인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란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라크의 후세인을 지원했다. 1988년 3월 이라크가 할라바 지역에서 쿠르드족에 대해 가스학살을 자행한 직후만 하더라도 미국 행정부 내에서 이라크에 대해 군사공격을 해야 한다는 열렬한 외침은 없었다. 오히려 미국과 영국은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 사람`이었던 이 학살 주범에 대한 지원을 더욱 확대했다. 미국 ABC 방송은 할라바 사건 10개월 후에 후세인의 또 다른 생화학무기 공장을 폭로했는데 미 국무부는 이를 부인했다. 이렇듯 `우리 사람`이던 후세인이 어느 날 갑자기 `악의 화신`으로 변모하게 된 원인은 이라크가 저지른 흉악한 범죄 때문이라기 보다는 이 나라가 미국이 설정해  놓은 궤도를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촘스키는 지적한다. 이 책에서 촘스키가 나열하고 있는 사례들은 `선`을 가장하고 있는 초강대국 미국이 사실은 얼마나 `악`한 나라이며 가난하고 힘없는 제3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얼마나 가증스러운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불량국가`인가를 여실히 입증한다. `위선적인 불량국가` 미국을 향한 촘스키의 준열한 비판은 진정한 지식인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5. `테러`의 최대 수혜자는 미 군산복합체와 자본가들이다

9월11일 사건과 미국의 사전 전쟁 모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증거 등 여러 가지 의혹으로 미뤄 볼 때 이번 사건의 배후는 미국의 무자비한 살륙전의 표적이 되고 있을 뿐 그 어떤 정치적 목적도 경제적 실리도 취하지 못하는 빈 라덴은 아니다. 오히려 대 아프간 전쟁을 준비했고 전쟁 이후 아프간 친미정권 수립과 전후 복구 과정 및 국내 정치.경제적 이득을 보게 될 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의 군산복합체이며 미국의 자본가들이며 이들 미국 파워엘리트에 기대고 있는 부시 행정부이다.(라덴이 미국 군산복합체 주식을 많이 갖고 있어 미국이 전쟁을 크게 벌이면 벌일수록 라덴이 큰 돈을 번다는 주장은 한 마디로 넌센스다. 미 군산복합체를 마치 라덴 혼자 거머쥐고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또한 이미 몇 년 전부터 라덴의 자금줄을 차단해 온 미국에서 라덴의 자금이 미 정보당국의 감시망을 뚫고 주식시장에 흘러든다는 것도 믿을 수 없다. 설사 라덴이 미 군산복합체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있다 하더라도 이번 전쟁으로 인해 미 군산복합체와 미 자본가들이 얻는 수익은 라덴이 얻는 수익의 수 천억 배이다.)

이번 부시 정부의 대 아프간 침공 작전은 91년 아버지 부시 정부가 걸프전을 계기로 군산복합체를 기사회생시키면서 누렸던 인기를 똑같이 누리고 있다. 걸프전 당시 아버지 부시는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인기를 누렸고 아들 부시 역시 86%에 달하는 지지율을 자랑한다.

지금의 부시 정부에는 아버지 부시 정권 때 걸프전을 진두 지휘했던 `호전주의자`들이 포진해 있다. 미국에서 걸프전 당시 국방장관으로 `전쟁 장관`으로 불렸던 딕 체니는 지금 부통령이고 지금 국무장관인 콜린 파월은 당시 합참의장이었으며 현재 백악관 안보보좌관 곤돌리자 라이스는 당시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일했다. 이들 3거두는 모두 작년 미 대선 때부터 현 부시 대통령을 보좌했던 인물들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라크 폭격` `북한 무력 응징` 따위를 입에 올리던 자들이다. 이들 외에도 국방부와 국무부 부장관와 차관보 등 다수 인물들이 과거 부시 정부의 호전세력이다.)

이번 `테러-전쟁 시나리오`는 단지 정부의 인기를 높여줄 뿐 아니라 불황의 늪에 빠진 미국 경제를 기사회생시킬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다. 또한 이로 인한 막대한 양의 전비 지출은 미국이 올들어 본격 추진하는 소위 `윈-윈 전략` 수정을 위한 조건을 충족시켜주고 있음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다.

"미국의 지배층과 군수산업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파헤쳐 온 리차드 바넷(Richard Barnet)도 전쟁선포라는 것이 대통령의 의지 하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전쟁경제의 강력하고도 현실적인 요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갈파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테러 사건 이후 미국의 행동방식은 보복과 응징을 논리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 속에는 전쟁경제의 적극적인 가동을 통한 패권체제의 강화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김민웅 재미언론인.목사-오마이뉴스 기사 <전쟁은 미국 패권의 몰락을 재촉한다>)

우선 군산복합체들은 이번 9.11사건 직후 주가 급등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미국 다우존스 주가는 테러 발생 이후 일주일간 14.3% 폭락한 반면, 아머 홀딩스(Armor Holdings)와 노드롭 그럼만(Northrop Grumman), 레이시온 등 미국의 주요 군수산업체들은 주가 폭등과 무기 및 무기 관련 장비 판매가 급증해 다참사 속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방탄조끼와 군용자켓, 장갑차 전문 업체인 `아머 홀딩스`사 주가는 40% 올랐고 B-2 스텔스폭격기와 전함, 정찰 장비 전문업체로 8만명을 고용하면서 150억달러의 자산규모를 자랑하는 노스럽 그럼만 사 주가는 21.2% 올랐다. 레이시온사는 37%의 주가 상승 효과 외에 항공기 부품 판매고가 급등해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위성과 항공, 잠수함 통신 전문업체인 L-3 커뮤니케이션스 주가는 38.5% 올랐고 수입의 70%를 국방부 납품으로 벌어들이는 EDO사 주가는 24.8%, 화약 및 스마트폭탄 제조업체인 ATK사 주가는 23.5% 상승했다. 또 미국 정부의 의도적 호들갑과 언론들의 장단맞추기로 미 전역에 테러 공포가 확산되면서 나스닥에 등록된 보안업체들의 주가도 폭등하고 있다."(평화시민네트워크 정세브리핑 자료. peacekorea.org)

이번 `테러`는 또한 추락하는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경기부양효과를 톡톡히 발휘하고 있다.

"테러 충격이 마무리되고 테러리즘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4%에 달하고 기업들의 영업순익이 올해보다 11-22% 증가할 것이다. 또 공습이 테러리즘에 대한 확연한 승리로 끝나지 못하더라도 추가 테러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미국 경제는 내년 2.4분기부터 회복되고 내년 기업들의 실적도 올해보다 3-10% 증가할 것이다"(미 경제분석가 에드워드 커쉬너. 10월8일)

한국의 LG투자증권 리서치센터가 미국의 아프간 공습 하루 전날인 10월7일(한국시간) 내놓은 `미 테러사태가 철강경기에 미칠 영향`이라는 보고서도 같은 맥락에서 미국의 전쟁과 경기회복의 연관성을 점치고 있다. : "테러사태에 대한 미국의 보복전이 장기전으로 전개될 경우 미국의 철강 수요를 진작시켜 사상 최악의 불황에 빠진 세계 철강경기 회복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

테러를 계기로 IT산업의 수요가 생겨나고 인터넷회의와 보안산업 등이 새롭게 각광받으면서 IT산업 몰락으로 위기에 빠진 미국 경제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전망도 대두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CEO`라는 평가를 듣는 칼라 피오리나 휴렛패커드 회장은 최근 한국을 방문해 조선일보 19일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테러는 불황에 빠진 IT 산업에 더 큰 어려움을 줄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번 테러는 기업의 업무수단으로 인터넷과 무선통신이 신뢰를 얻게되는 계기가 됐다"며 IT산업 부흥을 예고했다.

부시 행정부는 2001년 출범과 동시에 미국 경제의 불황을 경고했고 최근에는 장기 `불황`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미국 정부는 이번 `9월11일 사건 때문에` 미국 경제가 침체되고 있다는 식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지만 미국 경제는 이미 회복 불능의 상태로 치닫고 있었고 이번 `테러와 침공`을 계기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먼저 9월11일 사건 직전 미국의 경제 현황을 살펴본다. UCLA앤더슨 스쿨이 `테러` 직전 준비해 테러 다음날인 9월12일 발표한 `분기별 경제보고서`는 "미국 경제가 이미 불황에 빠져 있으며 기업의 투자지출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초까지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이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에드 리머 교수는 "기업들의 영업실적 악화와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구매 감소로 장기적인 불황이 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또 "테러 사태로 인해 상황이 더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역시 9월19일 발표한 경기동향보고서인 `베이지북`에서 "테러 사건 이전인 8월과 9월초에도 미국 경제는 이미 부진했다"고 시인, `테러로 인한 경제 악영향`에 대한 행정부 인사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실제로 미국 경제는 과거 10년간 최장기 호황을 이끌어 온 반도체와 컴퓨터, 통신 등 3대 첨단기술 산업의 성장이 침체되면서 회복 불능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팽배했다. 반도체 등 3대 첨단 산업은 작년 25%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올해는 급전직하로 떨어져 마이너스 35%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 등 첨단 주력업체가 과잉투자로 몸살을 앓으면서 대거 감원 조치에 나서는 등 주요 기업들의 연말 고용자 수가 연초의 절반에도 못미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그러나 미국이 테러라고 주장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미 정부 관리들 특히 전쟁을 주도하는 행정부 매파들이 앞다퉈 경기부양책을 강조하며 회복에 대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작년 12월부터 누구보다 먼저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던 `전쟁 장관` 딕 체니 부통령은 10월6일 NBC 방송에 출연해 "테러 사태가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도록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연말로 다가가면서 경제가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테러`전 의회의 반대에 부딪쳐 시행할 수 없었던 기업들을 위한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것임을 예고한 것이었다.

9월24일 미 재무장관 폴 오닐은 일주일에서 열흘 사이에 "테러사태로 인해 불황기 진입 위험에 빠진 미국 경제를 부양하기 위한 재정정책 프로그램의 개요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고 며칠 뒤 대통령 부시는 추가 감세와 실업수당 지급기한 13개월 연장 등을 골자로 하는 경제회생책을 경제팀에 지시했다.

10월7일 미 재무장관 오닐의 말은 미국 경기 부진이 테러 때문이라고 선전하는 미국의 추악한 행태와 `전쟁을 발판으로 경제를 살린다`는 흑심을 드러낸다. :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는 얼마나 빨리 경제의 발판을 회복하고 9.11사태가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기하강 기간을 얼마나 단축시키느냐 하는 것."

미국 정부는 이런 식으로 테러가 미국 경제를 망가뜨릴 우려가 있으니 거액의 예산을 쏟아부어 기업들을 살려야 한다고 선전하며 `테러 복구 및 전쟁비용`으로 승인된 550억 달러와 750억 달러 규모의 별도 경기부양조치를 추진, 총 1천300억 달러의 예산을 지출할 예정이다.(10월8일 현재 기준)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1.5%에 해당하는 규모로 레이건 행정부 때의 감세 및 국방비 증액 규모보다 많은 것으로 미국 경기 회복 속도를 앞당길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부시 정부의 이런 행위에 대해 미국 의회의 비판도 만많치 않지만 `전쟁을 통한 국가이익 실현`이라는 명제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야당인 민주당 소속으로 미 하원 세입위원회 위원인 찰스 레인절 의원은 "공화당은 숨겨진 안건을 지니고 있다"며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털어낼 수 있고 미국 깃발로 감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비꼬았다.(연합뉴스 10월6일자.) 이 말은 단지 마구잡이식 예산 집행만을 지적한 말일 수도 있지만 9월11일 사건에서 아프간 전쟁에 이르기까지의 시나리오에 담긴 모종의 음모를 경계하는 말일 수도 있다.


6. 파키스탄 쿠데타 - 아프간 전쟁 - 이라크로의 확전 : `윈-윈`에서 `윈-플러스`로의 이행을 위한 전쟁이다

9.11사건 뒤 약 20일 만인 10월1일 발표된 4개년 국방전략검토보고서(QDR)는 2개 전쟁 동시 승리 전략인 `윈-윈 전략` 포기 및 한 개 전장에서의 압도적 승리와 기타 군소 분쟁 지역에서의 국지전 수행 능력을 높이는 `윈-플러스 전략`을 천명했다.

그러면서 이 보고서는 국지전 대상지역과 관련, "아시아 지역 내 미군 기지 및 기반 시설에 대한 접근도가 다른 주요 지역들에 비해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이 지역에 대한 접근성을  제고하고  기반시설을 확보하며 최소한의 전역(戰域) 지원을 통해 원거리 작전을 지속할 수 있는 역내  시스템을 우선적으로 개발해야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는 미국이 아프간 탈레반 전복 및 중앙아시아 지역 개발을 위한 `제2 마샬계획`을 예고한 것이었다.

1) 아프간 친미정권은 중앙아시아 지배의 교두보

아프간 침공작전으로 침체된 미국 경기를 회복시킨다는 시나리오에는 중앙아시아에 대한 대규모 전후 복구 및 재건 계획이 포함돼 있으며 빈 라덴을 구실로 아프간 탈레반 정권을 제거하고 친미정권을 세우려는 것은 바로 아프간에 중앙아시아 지배를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10월4일 CNN 방송의 보도 내용은 이를 뒷받침한다. : "10월4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의 조지프 바이든 위원장이 아프간 공격후 아프간은 물론 중앙아시아지역의 재건 및 개발계획을 담은 법안을 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바이든 위원장의 한 측근은 중앙아시아 재건 및 개발계획은 2차대전으로  피폐해진 서유럽을 재건하기 위해 실행됐던 `마셜플랜`과 성격이 유사하다고  지적하고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파키스탄 등이 대상지역으로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간은 90년대초 시작된 다국적기업들의 투르크메니스탄 가스전개발 사업과 관련해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주변 국가들간의 치열한 이해다툼의 장이었다. 96년 탈레반이 집권하면서 서방세계와 갈등을 빚고 빈 라덴 문제로 미국의 공습을 당한 것도 열강들의 이런 자원쟁탈전과 무관하지 않다.

98년 미 대사관 폭파사건 직후 프랑스의 르 몽드지가 아프가니스탄 내전의 본질에 대해 보도한 내용은 미국의 대 아프간 전쟁 음모와 이후 계획이 `돌발 사건`에 대한 대응 차원이 아님을 강력히 시사한다.

"아프가니스탄 내전의 본질은 인접 투르크메니스탄의 엄청난 천연가스 개발과 관련이 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회사들이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스를 아프가니스탄을 통해 수출하려 하고 있다. 러시아의 국영 가스회사인 가스프롬은 그동안 국제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자가 될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스 수출을 저지하기 위해 자국내 송수관을 이용하는 것을 방해해 왔고 이에 따라 투르크메니스탄은 탈레반의 지원을 받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경유한 수출을 모색해 왔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이란을 견제하고 가스 송수관 개설을 위한 경제적 이유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과 함께 탈레반을 지원해 왔다."(98년 8월13일자 연합뉴스 유영준 파리 특파원 기사 `반미테러 대이슬람 술책과 연관`)

"미국의 유노칼(UNOCAL)사는 27일 투르크메니스탄과 파키스탄을 잇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개설을 위한 사우디아라비아 델타 석유사와 러시아 가스프롬 등이 참여하는 20억 달러 규모의 다국적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이에 대해 미 AP통신은 97년 10월27일 "그러나 이 컨소시엄이 추진하는 1천km 이상의 파이프라인은 전쟁이 한창인 아프가니스탄을 경유토록 돼 있어 향후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논평했다.

미국과 탈레반은 또 빈 라덴 인도를 둘러싼 줄다리기가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투르크메니스탄 천연가스 송수관의 아프간 통과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98년 1월4일 탈레반 공보문화장관 아미르 칸 마타키는 미국을 방문 투르크메니스탄 천연가스 송수관 컨소시엄 주체인 유노칼사와 협상을 가진 뒤 "천연가스를 파키스탄으로 보내는데 필요한 도관 건설 계약이 곧 체결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98년 4월과 5월 파키스탄과 인도의 탄도미사일발사시험을 둘러싼 긴장에 이어 미국이 98년 8월7일 케냐와 탄자니아 미 대사관 폭파테러가 빈 라덴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며 대대적인 대 아프간 군사작전을 감행하면서 중앙아시아는 군사적. 정치외교적 대결장이 된다.

98년 미국의 아프간 공습 한 달 뒤인 98년 9월에는 이란 외교관 피살 사건이 발생, 이란이 아프가니스탄을 배후로 지목하면서 양국간 군사적 충돌 직전 상황이 연출됐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79년 호메이니 회교 혁명 이후 단절했던 이란과 각료급 회담을 개최, 아프간 고립이 심화된다.

미국은 또 이즈음 유엔을 시켜 중국과 이란, 파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아프간 주변 6개국과 미국 및 러시아가 참여하는 소위 `6+2`회담을 주선, 아프간에 대한 주변국들의 공동대응체제를 구축, 2001년 아프간 침공계획과 관련, 파키스탄이 아프간 탈레반 전복을 위한 쿠데타를 준비로 이어진다.("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한 측근은 최근 미국이 `6+2`회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파키스탄이 탈레반의 지지를 철회하고 쿠데타를 계획중이라고 말했다"-영국 일간신문 가디언지. 2001년 10월1일)

미국을 대표하는 벡텔과 제너럴일렉트릭 파이낸스 등 다국적기업들은 1999년 2월 투르크메니스탄 정부와 천연가스 수출을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했고 99년 11월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회의(OSCE) 정상회담을 통해 카스피해 연안국들인 아제르바이잔과 그루지아,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터키 정상들로 하여금 가스 및 석유 수송을 위한 송수관 건설 협정을 맺도록 중재했다. 이때 각국 정상들은 클린턴 대통령의 지켜보는 가운데 협정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2000년 이후에도 미국(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은 러시아 및 아프간 주변 회교국가들과 카스피해 유전 및 가스전 개발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결국 미국이 탈레반 전복을 꾀하게 된 것은 아프가니스탄의 지정학적 위치와 탈레반 주변에 산재한 천연가스 및 석유자원 개발과 수출에 관한 미국 재계의 이해관계와도 관련이 있으며 아프간 침공 이후 실행에 옮길 중앙아시아 재건 및 개발에 관한 제2 마샬플랜의 목적은 미국이 `주장하듯 테러 없는 평화로운 중앙아시아 건설`이 아니라 카스피해 인근 유전 및 가스전 개발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99년 10월 이후 계속된 탈레반과의 협상에서 라덴을 넘겨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고 탈레반과 대치 상태가 계속될 경우 중앙아시아 자원개발과 관련한 미국의 이익 실현이 지장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 이르자 2000년 10월 예멘 항구에서의 미 구축함 폭파사건을 빌미로 타지키스탄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으며 2001년 9월11일 사건을 구실로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2) 파키스탄 쿠데타를 다시 본다

파키스탄은 사우디아라비아 및 예멘과 함께 96년 집권에 성공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인정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9월11일 사건 이후 미국의 아프간 침공계획을 다른 어느 나라보다 앞서 적극적으로 동참의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국민 다수의 의사와 정반대로 파키스탄 정부는 아프간 침공작전의 발판 구실을 하고 있다. 9.11사건 직후 아프가니스탄에 여러 차례 특사 또는 협상팀을 파견해 미국의 전쟁 의지를 전달하고 빈 라덴을 넘길 것을 요청하는 등 미국의 대변자 노릇도 한다. 심지어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10월1일 "아프간 탈레반과의 협상이 결렬됐으며 탈레반 시대가 조만간 끝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0월7일 공습이 시작되고 탈레반 전복 이후 친미정권 수립 문제로 미국과 다소 이견을 보이고는 있지만 탈레반에 대한 전통적 유대는 이미 포기했고 탈레반의 반발에 군사적 공격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파키스탄이 미국의 아프간 침공 계획을 지지하는 이유는 무샤라프 대통령이 바로 99년 10월12일 쿠데타로 집권했으며 미국이 당시 쿠데타를 사주 또는 배후 조종했거나 지원한 징후가 농후하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미국이 파키스탄 쿠데타를 지원하는 것 또한 소위 `윈-윈 전략` 수정에 필요한 작업이었다고 볼 수 있다. 파키스탄에 친미 군사정부가 들어서는 것은 두 개 전장의 하나인 중동 전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99년 6월말 인도와 파키스탄간의 카슈미르 영토분쟁을 조정하면서 무샤라프 세력을 포섭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나와즈 샤리프 총리가 실권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앤서니 지니 중앙사령부 최고사령관을 앞세워 무샤라프 당시 군 총사령관과 자주 접촉했다.

무샤라프가 심지어 99년 6월26일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연설을 통해 클린턴 미 대통령과 샤리프 총리와의 정상회담 추진 사실을 공표하기도 했다. 이는 무샤라프를 파키스탄의 실세로 내세우기 위한 미국의 사전 각본에 따른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99년 10월3일 파시 보하리 파키스탄 해군참모총장이 돌연 사임하면서 파키스탄 군부내 알력이 표면화되고 샤리프 총리가 무샤라프를 육군참모총장직에서 해임하는 사태에 이른다. 무샤라프는 샤리프의 해임 조치에 반발해 쿠데타를 일으킨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무샤라프는 쿠데타 이후 13일만인 25일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을 순방, 두 나라 지도자들로부터 지지 의사를 받아내고 26일 `7인 국가안보위원회`를 구성, 군사정부를 공식 출범시키는 등 별 어려움 없이 지도체제를 정비한다.(무샤라프 집권 과정은 80년 한국의 신군부 집권 시나리오와 너무도 흡사하다. 무샤라프는 쿠데타 11일 만인 10월23일 소위 부정축재자 색출 및 불법재산 환수를 위한 특별기구를 구성하고 "약탈당한 국부를 회수한다"고 발표했고 그 해 11월11일 샤리프 전 총리 등 8명을 반역 및 살인공모, 납치 혐의로 고소했으며 이듬해인 2000년 3월20일 샤리프에게 사형을 구형하지만 그 해 12월10일 사면한 뒤 사우디아라비아로 출국시킨다.)

이 와중에 2000년 3월25일 클린턴 미 대통령이 파키스탄을 방문한다. 미국 대통령이 파키스탄을 방문하기는 69년 닉슨 이후 처음이었다.

무샤라프는 지도체제를 정비한 뒤 미국의 요구에 따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빈 라덴 인도를 종용하기 시작했고 2001년 들어서부터 미국과 탈레반 사이의 중개인 역할에 충실하며 탈레반과 파키스탄 사이의 유대관계를 전면 재조정한다. 2001년 6월20일 그는 대통령에 취임했다.

9월11일 사건이 터지자 무샤라프는 사건 발생 나흘만인 15일 아프간 침공 계획과 관련한 미국의 요구를 "전폭 수용"했고 여러 차례 탈레반에 라덴 인도를 촉구한 뒤 10월1일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탈레반 시대가 조만간 끝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다.

결과적으로 99년 10월 쿠데타로 들어선 파키스탄 무샤라프 정권은 2001년 10월 미국이 벌이는 아프간 전복 및 친미정권 수립을 위한 발판 구실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키스탄 쿠데타는 아프간 전복과 중앙아시아 지배로 미 세계전략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또한 파키스탄을 아프간 침공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유무형의 압력을 행사했으며 무샤라프 또한 미국의 전쟁에 동참하는 대가로 많은 이익을 얻고 있다. 미국 하원은 10월17일 아프가니스탄 전쟁 수행을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강화를 위해 파키스탄에 대한 제재해제를 공식 승인했다. 앞서 5일에는 미 상원이 만장일치로 관계법안을 통과시켰고 부시는 지난달 아프간 공격에 대한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98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실험 강행 이후 내려진 제재조치를 해제한 바 있다.

파키스탄의 샤우카트 아지즈 재무장관은 또 미국의 제재조치가 풀린 다음날인 18일 125억 달러에 이르는 대외 부채를  감면 받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힌다. 파키스탄은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국제기관에 지고 있는 빚 155억 달러를 포함해 모두 370억 달러 규모의 대외 채무에 시달리고 있다. 파키스탄은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등의 아프간 공격전에 발판 구실을 함으로써 대규모 경제원조 제공을 약속 받았다. (영국이 이날 영연방개발공사(CDC)의 계획에 따라 2천만 파운드(약 3천만 달러)의 대 파키스탄 채권을 포기하고 앞으로 3년 동안 파키스탄에 대해  1억500만 파운드(약 1억5천600만 달러)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 미국의 중동전쟁 시나리오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 그치는가. 그렇지 않다. 중동과 한반도를 두 개의 가상 전장(戰場)으로 하는 미국의 소위 `윈-윈 전략` 구도상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및 구 소련에 속해 있었던 힘없는 중앙아시아 회교국들만 장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아버지 부시의 적이었던 이라크를 완전히 제압해야만 비로소 윈-윈 전략의 수정이 가능해진다.

부시 정부가 이라크를 집적이며 개전(開戰)의 이유를 찾기 위해 안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위 `부시 독트린`이 그것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공습에 들어간 10월7일 존 네그로폰테 유엔 주재 대사 명의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보낸 서한에서 "자위를 위해 다른 조직이나 국가에  대한 추가 행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지도 모른다"며 확전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부시 정부가 그럴듯하게 붙인 전쟁 확대 정책의 이름이다. 

부시 독트린의 내용은 `국제 테러리스트들은 물론 그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국가들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으로 빈 라덴과 그를 비호하는 아프간 외에 이라크 등에 대한 공격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라크는 크게 반발하고 있지만 자칫 미국의 마수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는 사소한 빌미도 주지 말아야 한다.(이라크 공보부가 10월 20일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전세계의 테러리즘과 기아, 분쟁을 없애는데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한 미국인의 e-메일에 대한 답장에서 9.11.테러참사 희생자에 대한 조의를 표시했다고 공개하면서 밝힌 것은 참 잘한 일이다.)

3) 탈레반 이후... 친미정권 수립

반 탈레반 조직 및 인사들은 미국의 은밀한 조정에 따라 잦은 회합을 갖으면서 탈레반 전복 및 과도정부 수립 계획을 서두르고 있다.

자히르 전 국왕은 9월23일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와의 회견에서 "아프간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면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고 이로부터 며칠 전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조국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과도정부 구성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23일은 그가 유엔 특사를 만난 날이었다. 북부동맹 역시 CIA와 접촉하면서 미국의 탈레반 전복작전에 적극 나설 계획임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북부동맹은 24일 대표단을 자히르 전 국왕에게 보냈다. 21일 영국 외무부 관계자들은 로마 근교에서 자히르 전 국왕을 만나 "서방이 후원하는 과도정부를 이끌어 달라"고 요청했다.

유누스 코누니 반탈레반 연합전선 대표는 자히르와 만나 탈레반 전복 이후에 대해서 논의한 뒤 10월3일 타슈켄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앞으로 2주내 120명으로 구성된 `국민통일 최고회의` 의원 명단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반 탈레반 세력의 긴밀한 움직임 뒤에는 미국과 미국을 추종하며 미국과 함께 이미 2000년부터 아프간 침공 작전을 준비했던 영국이 있다.

"북부동맹은 최근 미국의 비공식적인 지원 약속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공세를 펼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히르 전 국왕과 북부동맹 연합세력의 재집권이 미국에 좌우될 것으로 전망했다."(중앙일보 9월30일자 7면)

미국의 뉴욕타임스지는 3일 "부시 대통령이 반탈레반 세력을 강화하기 위한 재정 등 비밀지원을 승인했다"고 보도, 자히르 전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친미정권 수립을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미국은 아프간 반군 세력뿐 아니라 파키스탄 군사정권에 대해서도 탈레반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미국을 지원해주는 대가를 톡톡히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샤라프 파키스탄 군부출신 대통령은 9월30일 "재정.금융 지원과 미국의 파키스탄에 대한 제재해제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말해 미국을 추종하는 대가가 적지 않음을 내비쳤다.

미국의 탈레반 전복 및 아프간 과도정부 구성 음모와 관련해 북부동맹을 조직하고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아마드 샤 마수드 전 아프간 국방장관이 `9월11일 사건` 발생 이틀전 정체불명의 `자살특공대`에 의해 살해된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수드는 소련 침공 당시 가장 뛰어난 전선사령관이었고 군사전략이나 정치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던 인물로 탈레반 정권이 전복되는 경우 가장 유력한 차기 지도자감이었다. 뛰어난 전략가로 파벌간 알력을 조정해 온 그가 피살된 뒤 북부동맹의 결속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동아일보 9월26일자 외신 인용. 마수드 암살과 `9월11일 사건`을 탈레반과 빈 라덴이 계획한 거사라는 시각도 있다. - 조선일보 9월26일자 - "북부동맹군을 실질적으로 조직하고 지도해 온 마수드가 탈레반이 보낸 자살특공대에 의해 숨졌다. 그가 숨진 뒤 탈레반은 북부동맹에 대대적 공세를 개시했다. 그날이 바로 미국에 테러 공격을 가했던 11일. 같은 날이다.")

아프간 차기 지도부를 구성하려는 미국에게는 올해 나이 49세의 마수드보다는 73년 쿠데타로 쫓겨난 뒤 이탈리아에서 호의호식한 86세의 자히르 전 국왕이나 96년 탈레반에 의해 축출된 60세의 랍바니 전 대통령이 훨씬 손쉬운 상대일 것이다.(한겨레 21 제378호 `누가 마수드를 죽였는가`를 쓴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는 자신이 직접 마수드를 인터뷰한 경험을 바탕으로 오사마 빈 라덴 조직이 마수드를 살해했다는 미국 및 러시아의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마수드가 지닌 절대적인 카리스마는 탈레반 이후를 생각하는 외세에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빈 라덴 사이의 적대관계와 빈 라덴을 빌미로 한 미국의 대 탈레반 전복 음모 및 탈레반 전복 이후의 친미 정권 수립이라는 연장선에서 보면 `9월11일 사건`과 `마수드 암살`이 빈 라덴의 소행일 개연성은 크게 줄어든다.


<보론> 미국의 중동전쟁은 성공할 것인가

그러면 미국이 `윈-윈 전략`을 포기하고 `윈-플러스 전략`으로 이행하면서 중앙아시아에 대한 패권적 지배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벌이는 추악한 전쟁은 성공할 것인가? 한반도 정세 변화가 추동한 미국의 `윈-윈 전략` 포기 과정에서 미국은 중동전쟁을 계획했다면 앞으로 세계질서는 어떻게 되는가?  한반도 침략전쟁을 포기했다지만 중동에서의 압도적 승리를 거둔 뒤 다시 한반도로 화력을 집중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모든 나라들이 평등한 권리를 누리고 강대국의 지배를 받지 않는 신 세계질서를 향한 인류의 노력은 또 한 차례 위기를 맞고 있다.

미 제국주의는 세계 약소국 민중들을 군사적 경제적으로 억압.침탈하며 살아왔다. 비록 반세기에 걸친 한반도 전쟁에서 패배했지만 약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향한 미국의 본성은 하루아침에 없어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세계 지배의 두 축 가운데 하나를 잃었지만, 지구 최대최악의 깡패국가답게 가쁜 숨을 몰아쉬며 권토중래를 꿈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헐벗고 굶주린 채 토굴과 움막 속에 살아온 가난한 이슬람 민중들을 제2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미국의 음모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한반도에서 패배한 분풀이로 중동을 치려는 미국의 음모는 미 제국주의 생존의 결정적 패착이다.

아프간 탈레반을 전복시키고 꼭두각시 친미 정권을 세우는 1단계 계획은 바로 아프간 민중들의 저항에 밀려 성공을 거두기 힘든 상황이고 중동침략 2단계 시나리오인 이라크로의 확전 역시 `유럽의 미국 꼬붕` 영국조차 참여를 꺼리고 있다. 미국은 2차대전의 파트너였던 독일을 꼬드겨 대이라크 공격을 위한 공작을 펼치고 있지만 이라크를 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세 번째 미국의 위기관리 능력과 이미 오래 전 불황기에 들어선 미국 경제 상황으로 볼 때 더 이상의 확전은 자칫 미국의 자멸일 수 있다.

우선 아프간 침공전을 보자. 아프가니스탄 게릴라들과 10년 동안이나 전쟁을 벌였던 구 소련의 퇴역 장성 등 전문가들은 앞으로 벌어질 미국의 아프간 공격에 불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 결론은 "미국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1979~1989년의 10년 전쟁에 참가해 무공훈장을 받은 예비역 중장인 비루슬란 아우셰프 잉구셰티아 자치공화국 대통령은 "미국이 아프간을 점령하고, 군대를 보내고, 계속 폭격을 할 수는 있겠지만 승리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구 소련은 이슬람 반군들과 싸우던 아프간 좌파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이 나라에 군대를 보내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소련의 붕괴를 재촉했을 뿐이다. 당시 소련은 아프간 전투에서 1만5천명의 장병이 사망했다고 밝혔으나 비공식 통계에 의한 사망자는 이보다 훨씬 많다.

아우셰프 잉구셰티아 대통령은 9월11일 사건 발생 직후 AP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간에 있다는 점을 확신한다 하더라도 그를 아프간에서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아프간의 독특한 지형을 이루고 있는 바위의 정글의 산악에서 그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길을 잃기가 십상이고,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50만㎢나 되는  면적에서 모든 바위를 하나 하나 뒤질 태세가 돼있지 않는 한 그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군복은 물론 철모조차 없는 아프간 민중들이지만 이들은 이미 19세기 때부터 자국을 점령하려는 영국과 구 소련 등 많은 외국의 적들을 물리쳤고 미국의 가공할 폭력 앞에서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구 소련 참전자인 에브게니 젤레노프 의원은 "미국이 어떠한 지상전 준비를 한다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승산이 없다. 미국은 무기와 함께 잠을 자고 생활해온 아프간인들의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 의회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알렉세이 아르바토프 의원은 "아프간 내에는 수많은 은신처가 있기 때문에 미국이 지상 작전 없이 미사일 공격을 가한다면 그것은 국민에게 정부가 무언가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목적을 가진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의 국내정보국 MI5의 국장을 지낸 스텔라 리밍턴도 9월15일 "부시 미 대통령이 선포한 세계적인 대테러 전쟁은 실패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영국 PA통신이 보도했다.

또 서방 언론과 서방 언론을 추종하는 우리 언론들이 전하는 소식과 달리 현지에 파견된 우리 몇몇 기자들이 보내온 소식에 의하면 아프간 탈레반은 민중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아일보 이종환 기자는 10월15일자 12면에 실린 <美, 테러 응징戰 / 카불 기업인 `아프간상황` 인터뷰> 제하의 이슬라마바드발 기사에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기업인 라티브 포팔(38)씨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 "매일 계속되는 미군기의 폭격으로 카불 주민은 불안에 떨고 있으나 반미 감정이 커져 탈레반의 지지도는 더욱 높아졌다" 

다음은 이 신문기사 중 일부로 아프간 민중들의 저항의지를 읽을 수 있다.

● 시내 상황은… "매일 밤 엄청난 폭음과 대공포, 총소리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학교는 모두 문을 닫았다. 폭격 때는 정전이 되지만 평상시에는 전기가 들어온다. 식품이 모자라지만 아직은 견딜 만하다.”
● 지상군이 투입된다는데….
“연일 폭격으로 군사시설과 민간시설이 많이 파괴됐다. 지상군 투입에 대비해 시내에 보루가 만들어지고 있다. 탈레반 병사의 사기는 어느 때보다도 높아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해도 곤란을 겪을 것이다.”
● 주민들은 카불을 떠나고 있나.
“일부는 떠났지만 대부분 남아 있다. 한때 탈레반은 독재집단이란 비난을 받았는데 미국의 공습 개시 이후 자세를 낮추고 주민의 협력을 구해 예전보다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미국의 공격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탈레반을 중심으로 뭉치게 만들었다.”
● 새 정부가 들어서야 전쟁이 끝나지 않겠나.
“전쟁이 빨리 끝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누가 새 정부를 맡는단 말인가. 다수의 아프가니스탄인은 탈레반을 지지한다. 카불에 질서가 잡힌 것은 탈레반 집권 이후다. 그전에는 누구도 공장을 짓거나 기업을 경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북부동맹은 과거 잘못이 많아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미국의 이번 공격은 큰 실수이며 미국은 결코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신문은 또 나세르 바흐 난민촌 내 나세르 티칭 병원에 입원중인 트럭운전사 파줄 라흐만(45)씨의 말도 전했다 : "11일 밤 11시쯤 폭격으로 집이 무너져 가족 4명이 죽고 혼자만 살아 남았다. 군인은 모두 산악지대로 가고 민간인만 남은 마을에 미국이 미사일 공격을 했다. 탈레반도 싫지만 미국은 정말 몸서리쳐진다"고 말했다.
 
미국의 침공을 받고 있는 아프간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반미감정이 급속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무샤라프 대통령의 친미주의에 반대하는 파키스탄 민중들의 저항이 유혈시위로 확대되고 있고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 아시아 회교권 국가들에서도 반미 시위가 거세다. 인도에서는 극단주의 반미단체인 `인민전쟁그룹` (PWG)이 벵골만(灣)에 인접한 남부 안드라 프라데시주(州) 소재 코카콜라 제조 공장을 폭파했다. 다행히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PWG의 한 지부 책임자는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위에 저항하고 진짜 테러리스트를 규탄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표시를 남겼다.

인도 솔로시에서도 10월21일 3천 여명의 이슬람교도가 "빈 라덴은 영웅" 등의 구호를 외치며 반미 시위를 벌였고 펀잡주 라발핀디에서도 이슬람 근본주의 정당인 자마트이 이슬라미당의 지지자 2천 여명이 반미.반정부 시위를 벌였고 스페인 마드리드 도심에서도 같은 날 1만5천 여 명이 모여 미국의 아프간 공격에  대한 반대집회를 열었다. 시위대는 "독재정권을 수없이 지원해온 미국이 정의와 평화의 이름 아래 아프간을 공격하는 것은 야비한 처사"라고 비난하고 즉각 아프간 공격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같은 날 영국 총리실이 있는 런던의 다우닝가 주변에서도 반전주의자 500여명이 비를 맞으며 아프간에 대한 미국의 공격을 규탄했고 아프간에 대한 공격에 참여하고 있는 미군에 대한 지원업무를 맡고 있는 수다만 해군기지가 위치한 그리스의 크레타섬에서도 600여명이 기지로 이어지는 도로를 차단한 채 시위를 벌였다.

이밖에 지난 7월 서방선진7개국과 러시아(G-8) 정상회담이 열린 제네바에서 시위를 주도한 반세계화단체 ATTAC도 이날 미국의 아프간 공격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반전 운동을 전개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태국의 이슬람계는 이날 방콕과 나콘시 탐마라트주, 파타니주에서 미국의 공격을 받고 있는 아프간 국민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했다. 이번 기도회에는 나콘 시 탐마라트주에서 1만5천명, 파타니주에서 1만명, 방콕 300명 등 모두 2만5천여명이 참석했다.

나콘 시 탐마라트주 `무슬림조직`의 니무 마카제는 "아프간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면서 미국 연쇄 테러로 촉발된 이번 사태를 미국이 무력을 통해 해결하는 데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기도회를 준비한 조직위원회는 기도회를 마친 뒤 미국과 영국, 독일, 이스라엘 제품과 서방 소유 슈퍼마켓에 대한 불매운동을 이슬람 교도에게 촉구하는 결의문을 발표했으며 방콕에서는 오사마 빈 라덴의 얼굴을 인쇄한 의류를 판매하기도 했다.

태국은 국민의 대부분이 불교 신자이며 이슬람 신자는 전체 인구의 5% 정도에 불과하고 미국과 해마다 공동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나라라는 점에서 이처럼 공공연한 반미 시위가 벌어졌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의 뒤뜰이나 다름없던 한반도 이남 땅에 반미-반전.평화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 10월 8일을 기점으로 아프간에 대한 미국의 보복공격이 시작된 이후 시민사회단체들의 반전 평화 목소리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10월 20일에는 3시 서울역 광장에서는 `보복전쟁 중단·평화실현,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범국민대회`가 민주노총을 비롯한 한총련 소속 학생, 시민사회단체 등 1천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보복전쟁 반대·평화실현 신자유주의 세계화반대 연석회의 주최로 열린 이번 범국민대회는 서울을 비롯해 전국 9개 도시에서 진행됐다.(유-뉴스)

이북과의 대결에서 지고 `윈-윈 전략`을 포기한 미국이 다시 중동전쟁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새로 작성한 `윈-플러스전략`도 무용지물이 된다. 장고 끝에 마련한 신 세계전략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미국 중심의 세계 패권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뜻한다. 전쟁을 시작하며 국내 예산과 각국 지원금으로 마련한 수 천 억 달러의 자금이 미국을 언제까지 지탱시켜 줄 지는 미지수이다.

"미국의 노골적 패권체제로의 전환, 또는 전쟁국가로의 체제정비는 미국의 패권체제 위기를 가속화할 것이다. 이미 내부적으로 투기성 금융자본의 동요를 경험하면서 미국의 세계자본주의 체제 주도력은 약화되어가고 있다. 이것은 지오바니 아리기가 그의 "긴 20세기(The Long Twentieth Century)"에서 날카롭게 갈파했듯이 패권체제 전환의 고비를 의미한다. 거기에 전쟁시스템의 강화가 추진되어나갈 때 그것은 잠시의 위력은 발휘할지 모르나 미국의 힘을 적지 않게 손상시켜 갈 것이다. 파괴를 통한 지배는 로마제국의 평화처럼 오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진정 세계적 지도력을 회복하려면, 그것은 전쟁의 방식이 아니라 세계적 설득력을 갖춘 새로운 경제질서와 군축의 토대 위에서 평화와 생명, 그리고 공동의 번영을 함께 추구하는 자세로부터 비롯될 것이다. 전쟁국가는 내부의 민주주의를 파손하고 국제적 반감의 대상이 됨으로써 그 생존의 역량을 스스로 자해하는 결과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김민웅 재미언론인.목사-오마이뉴스 기사 <전쟁은 미국 패권의 몰락을 재촉한다>)

미국이 패망하지 않는 길은 패권주의적 행태를 뉘우치고 세계 평화와 자주 평등의 세계질서 구축에 동참하는 길뿐이다. 이 미국에서 9.95 달러 짜리 영역본 『코란』을 출간한 펭귄출판사는 테러 이후 판매가 부쩍 늘어 평소의 다섯 배에 이르렀으며 최근 2만 부를 더 찍었다는 소식도 있다. `미국 근본주의` `미국 지상주의`의 오류에 빠진 `가장 우매한 인류`인 미국민들이 잘못된 세계관을 수정하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깨닫는 단초가 될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

<한반도에 미칠 여파 ?>

국내 절대다수의 친서방.친미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이번 사태가 한반도정세에 악영향을 끼치고 북-미 대화를 지연시킬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이번 9.11사건과 이후의 미국의 아프간 침공 작전을 `예기치 못한 돌발사건`으로 보기 때문이다. 갑자기 일이 생겼다면 한반도는 물론 지구촌 모든 지역에서 진행되던 미국의 업무가 마비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서술했듯이 미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중동전쟁을 준비해왔고 `9.11사건`은 이 전쟁 준비를 실행으로 촉매한데 지나지 않으며 미국이 중동전쟁을 준비한 것은 바로 한반도의 신흥 강국 이북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때문이다. 남북통일과 조-미 평화를 향한 한반도 정세의 혁변은 미국으로 하여금 소위 `윈-윈`이라는 이름의 세계전략을 포기하게 만든 일대 사변이었다.

1994년 조-미 제네바 핵 합의 시간이 2003년으로 불과 2년밖에 남지 않았다. 이북은 미국이 이 합의를 이행하든 않든 국가적 합의를 2003년까지 지킬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미국과의 대화가 지속되는 한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올해 들어서만 세 차례 강조했다. 5월1일 평양을 방문한 요란 페르손 스웨덴 총리와 8월4일 김정일 위원장과 세기적인 `모스크바 선언`을 발표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9월3일 평양을 방문한 강택민 중국 국가 주석 및 그 일행들은 그 메신저였다. 약속 시한을 거듭 밝힌 것은 바로 미국의 약속불이행을 거듭 확인한 것이었고 미국은 이 약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이 약속을 파기하는 것은 최소 10여 년간의 대북 대결정책 포기 과정을 되돌리는 것으로 매 분기점에서 미국이 취했던 항자(降者)로서의 태도로 미뤄볼 때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니다. 미국은 핵전쟁 전야의 끔찍한 긴장으로 점철된 조-미 대결사의 매 분기점에서 이북과의 평화공존을 약속해야 했고 한반도 통일 지지를 약속했다. 수없이 많은 공언(空言)이 있었지만 2000년 10월12일 조-미 공동코뮈니케를 또다시 공염불로 만들려는 미국의 수작은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대화를 간청하기에 이르렀다.

5차 남북장관급회담은 미국의 대북 대화 `간청`이 잇따르고 조-러/조-중 정상회담이 계속되는 가운데 9월2일 이북이 전격 제의하고 이남이 이를 즉각 수락함으로써 성사됐다. `9월11일 사건`이 발생하자 남북대화가 차질을 빚을 것이라며 언론과 보수세력이 재 뿌리기에 나섰지만 남북은 무려 14개항에 걸친 합의를 이뤄냈다. 작년 12월 4차 장관급회담 이후 2차 경제실무회담 등 남북대화가 부시 정부의 간섭으로 중지된 이후 9개월만에 이뤄진 5차 회담은 미국의 대남 간섭이 사실상 중지됐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곧이어 금강산관광 활성화를 위한 1차 남북 당국간 회담이 열려 육로 개설에 합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작년 9월 1차 남북 국방장관회담 때 경의선 복원에 합의한데 이은 두 번째 `분단선 돌파`에 대한 남북합의이다.

금강산회담 합의문이 원론적 내용에 그친데 대해 일각에서는 `합의도출 실패` 운운했지만 이는 `분단선` 관리권에 관한 조-미 회담이 선행돼야 함을 모르는 소치이다. 조-미는 남북합의를 근거로  금강산 육로 개설을 위한 회담에 나서야 하고 이 육로가 지나는 분단선 남측 관리권을 이남이 되찾은 이후에야 비로소 구체적인 남북합의가 가능하다. 작년 9.25 남북국방장관회담 합의 이후 무려 6차례 조-미 회담이 열려 경의선 복원 구간 DMZ 남측 지역 관할권을 미국이 이남에 이양하기로 합의한 것과 같은 절차가 필요한 것이다.  5차회담과 금강산관광회담이 성황리에 끝났고 조-미 관계가 경색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 한 남북대화가 경색될 이유는 없다. `한-미 공조` 원칙에 따라 이남이 미국의 대북정책을 거스르지 않고 미국이 이북과 대화를 원하는 한 남측은 북측과 대화에 나서야 하는 것이 현재 한반도 역학관계이기 때문이다. 반통일세력의 저항은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 남과 북이 5차 장관급회담에서 금강산 육로관광에 합의할 수 있었던 것도 분단선 관리권 문제에 관한 북-미 협의가 진행되고 있거나 진행될 것임을 의미한다. 금강산 관광도로와 철로는 판문점 경의선 통과지역에 이어 분단선에 또 하나의 파열구를 내는 작업이다. 남북통일과 한반도 평화의 길에 더 이상 장애는 없다. 부시가 10월16일 이남의 유일 통신사인 연합뉴스와의 특별회견에서 ▲대북식량지원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이남의 대북 쌀 지원을 종용한 것이나 ▲`이질적인 두 체제간의 통일`을 위한 남북정상회담을 언급한 것이 주목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10월22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때 부시와 만나고 귀국, "양측이 모두 만족한 회담이었다"면서 "부시 대통령은 남북문제에 큰 관심과 자세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지난 3월초 방미 때와 달리 적극적 태도였다"고 평가하고 "부시 대통령과 남북관계에 대해 이해를 같이 하고 접점을 찾은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부시 정부가 대북 대화를 구걸한다는 말을 간접 확인하는 말이다.
   
이산가족이 오가고 당국간 회담이 열리는 상황에서 이남이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발동하면서 대북경계태세를 강화한 것은 아직 이남이 이북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반증한 것이었고 이북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했다. 부시는 또 18일 상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때 김대중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이남의 대북경계태세를 이유로 이북이 이산가족 교환방문 등을 연기했다"는 김 대통령의 말에 대해 "북한이 미국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이북과의 적대관계를 지속시킬 의지를 이미 상실했으며
더 이상 한반도 정세 변화를 막을 방법은 없다.

다만 미국은 이런 변화를 지연시키면서 한반도에서 잃어버린 패권적 지위를 되찾아 다시 한 번 동북아에서의 대결 태세를 취해볼 속셈을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핵과 탄도미사일 협상을 통해 그런대로 이북의 비위를 맞춘 미국이 마지막 대량살상무기 통제수단인 화학무기협정(BWC)를 들고 나와 다시 한 번 이북을 압박하는 것 등이 미국이 생각해 냄직한 `꽁수`이다.

미국의 세계지배체제를 보장하는 국제적인 무기확산 방지협정들에는 비핵국가의 핵능력을 방지하고 핵국가들의 핵무기 수출을 방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68년의 핵확산금지조약(NPT)과 대량살상무기를 운반할 수 있는 사정거리 300 KM이상의 미사일 개발 기술 및 재료의 이전을 통제하는 87년 미사일기술통제협약(MTCR) 및 공격용 세균무기를 개발, 생산, 저장하는 것을 막기 위한 72년 화학무기협정 (BWC) 등이 있다.

미국은 생화학무기 개발 및 비축을 금지하는 BWC조약에 계속 반대하고 있으나 9.11일 사건 이후 이 문제와 관련한 모종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워싱턴 포스트지 10월17일) 미국은 이제 이 조약을 강화하고 세균전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다른 방안을 찾는다는 구실하에  11월19일 스위스에서 열리는 생물학무기회의에서 새 구상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BWC 가입을 반대하며 은밀히 탄저병균을 무기화한 뒤 이 무기를 독점하고 확산을 막기 위해 나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 군부가 이라크 침공을 위한 구실로 활용하려는 `탄저병균 무기`는 본래 이북에 대한 압박수단이기도 했고 실제로 미국은 98년 주한미군에 항생제 주사를 놓으며 이북의 생화학무기공격 가능성을 선전했었다.

그러나 미국이 생화학무기를 갖고 이북을 압박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미 적대국 명부에서 제외시켰고 더 이상 싸울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해 이미 이북 침공을 한 개 축으로 하는 `윈-윈 전략`을 포기한 상황에서 다시 생물학무기를 들고나올 수 있을까?

앞으로 미국의 행태와 관련해 우려되는 것은 오히려 이북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아니라 이남에 대한 은밀한 공작일 것이다. 이북과의 대결을 포기하고 평화공존의 길에 나서기로 한 것은 곧 한-미간 대북 적대 공조체제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는 곧 이남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군사적 지배체제가 허물어지는 것을 말한다.

부시가 우리 언론을 부추겨 `한-미 상호방위조약 불변` `주한미군 철수 없음`을 계속 강조하는 것은 바로 50년 미 지배체제가 무너지는 엄연한 사실을 호도하면서 이북에 공포심을 자극해 한-미 동맹을 유지하려는 수작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놓아야 할 먹이를 놓기 전에 크게 한 입 베어 물어야 하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우리 민중생존권을 짓밟고 미 자본가들의 배를 불릴 각종 무기판매와 시장개방 압력 등 군사적 경제적 침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의 차세대전투기사업(FX사업)이다. 이 사업은 김대중 정부가 남북통일 이후까지를 상정해 추진하는 21세기형 전력 증강사업으로 첨단 전투기와 전폭기를 사들이기 위해 자그마치 4조295억원의 예산을 책정해 놓고 있다.

"군수 메이저에 기반을 둔 부시 정권이 이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으며 IMF로 우리 민간 부문이 미국으로 넘어간 것에 더해 이제 군수부문까지 미국에게 이양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모든 중요 산업이 미국에 예속된다는 의미가 된다."(정낙근 안민포럼 통일안보위원. <남-북-미 삼각관계 이변은 없다> - 신동아 10월호)

미국의 대남 경제침탈과 관련해서는 10월21일 폐막된 상하이(上海)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결과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 회의는 한국,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 등 21개국 정상과 정부대표들이 참석해 대체로 부시의 `반 테러 개스`에 박수를 친 회의였지만  미국의 세계 경제전략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 준 행사였다.

정상들은 `APEC 정상선언문`을 별도로 발표, 보호주의에 대응하고 다가올 WTO 각료회의에서의 뉴라운드 출범을 약속하고 현재의 경제성장 둔화의 흐름을 반전시킬 것을 결의했다.
이들은 또 세계 경제성장 촉진을 위한 정책과 조치들을 취하기로 약속하고 거시경제 부문의 정책대화와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을 결의했다.

"21세기에 더 역동적이고 번영된 아시아태평양을 건설"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94년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농산물시장과 금융. 보험 등 자본시장 개방이 촉진되면서 이남에 대한 미국 경제력의 집중 포격이 어떤 것인지를 익히 경험했고 97년부터는 IMF체제하에서 막대한 부를 빼앗긴 우리에게 `정상선언문`이란 곧 `선전포고문`이나 다름없다.  11월9일부터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세계무역기구(WTO) 회의를 경계한다. 94년 끝난 우루과이라운드를 계승하는 무역협상의 장이 될 것이 분명한 이 회의를 기점으로 농업과 서비스, 환경, 노동, 반덤핑 분야를 포괄한 미국의 신 자유무역규범이 생성될 전망이다.

또 우려되는 것은 미국의 `대테러전쟁`이라는 도그마와 강압에 밀려 미국을 추종하는 행위이다. 정부는 테러대책반을 운영한다하고 언론들은 우리의 화생방훈련 상태가 어쩧다저쩧다 하지만 우 한반도 남북의 주민은 누구에게도 테러를 당할 까닭이 없다. 두려운 것이 있다면 그동안 미국의 패권주의정책에 편승해 미국의 잘못된 세계정책에 동참함으로써 미국과 한 통속이라고 치부되는 것이다. 악덕자본가의 우월적 지위를 흉내내며 돈벌러 온 해외 동포와 제3세계 주민들을 불평등하게 대우한 것이 죄라면 죄일 것이다. 무너지는 패권주의적 세계질서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거짓 선전전에 속아 아랍권을 테러집단시 하거나 미국과의 공조만이 살길이라는 시대착오적 세계관에 편승하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공포는 무지에서 나온다. 우리의 무지는 바로 미국이 오도하는 세계관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는데서 온다.

미국은 또한 이미 그네들 국내법조차 금지하고 있는 `더러운 전쟁`(dirty war)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면서 세계 60개국에 산재한 테러리스트 조직을 해체하겠다고 공언했고 부시는 지난달 미 중앙정보국(CIA)에 `테러와의 전쟁`에서 암살 공작과 도청, 감청 등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10월21일자에서 이 소식을 전하며 "이번 `살인면허`는 80년대까지 CIA가 벌여온 비밀공작과 다른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이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사람은 바로 미국의 지배에 저항하는 세계 각국의 민중이고 우리 이남의 민족민주-자주통일세력일 수도 있다. 미국이 중동 각국을 적으로 삼은 것은 바로 이들 나라 민중들의 자주노선 때문이라면 `민족자주`의 기치를 드높이면서 미국의 한반도 분단관리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민족자주통일세력 또한 예외가 아닐 것이다. 세심하고 각별한 주의와 함께 총력 저항 태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통일의 여명은 어쩌면 미 지배체제 청산을 위한 이남 민중들의 결사전을 예고하는지도 모른다. 한반도의 성전(聖戰)이 시작된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