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일 / 전 한신대 교수
                                        
지금 남과 북은 UN이라는 엄청난 절벽 앞에 함께 서 있다. 즉, UN 안보리, 그리고 초강대국 미국, 그리고 나라 안에서는 거대 야당들. 그 어느 하나 바위에 계란던지기 같다. 이런 경우 우리는 구약 성서 다윗과 골리앗에 비유하며 자위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번 홍만종이 쓴 <순오지旬五志>에 나오는 ‘두저지 혼인’이란 구절을 보면 막힌 남북 관계의 출구와 실마리를 찾는 데 일루의 희망이 된다. 

‘두더지의 혼인’ 이야기 <순오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딸을 가진 두더지가 가장 훌륭한 사위를 찾고 싶어서 해를 찾아 갔다. 해가 두더지에게 말했다. “나도 구름을 당해 낼 수 없다. 내가 빛을 내려 해도 구름이 막으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했다.

두더지가 이제는 구름을 찾아가니 구름은 “나도 바람에게는 당하지 못한다. 바람이 불면 나도 밀려나고 만다”고 했다.

다시 바람을 찾아가니 바람이 “나도 은진미륵은 당해 낼 수 없다”라고 말해, 이번에는 은진미륵을 찾아 갔더니 은진미륵은 “나도 두더지는 당해 내지 못한다. 두더지가 내 밑을 파헤치면 쓰러지고 만다”고 했다. 

그제야 두더지는 천하에 우리를 당해낼 자가 없다 생각하고 두더지 총각에게 딸을 시집보냈다고 한다.

홍만종은 왜 이 두더지 혼인을 말하고 있는가?

홍만종(1643-1725)은 조선조 인조 때 사람으로 김만중과 함께 사대주의에 물들어 있던 당대 학자들의 잘못을 꾸짖고, 국학을 불러내온 인물이다. 위의 ‘두더지 혼인’ 비유도 사대주의에 염색돼 제 것의 주요성을 모르던 부류의 인간들에게 던진 야유인 동시에 질타이다.

두더지가 자기 자신의 위대함과 가치를 모르고 하늘의 해와 달, 구름, 바람, 그리고 은진미륵 까지 다 찾아 다녔지만 자기가 가장 힘 있고 가장 영향력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내용이다.

지금 남북이 처한 처지에서 이 홍만종의 ‘두더지 혼인’만큼 힘이 되는 비유도 드물 것이다. 개미구멍이 담을 허물고 댐을 무너뜨린다. 

지난 9월 28-29일 양일간 미국 뉴욕 콜로비아 대학에서 열린 ‘코리아 평화 포럼’에는 5개국에서 120여 명의 학자들이 모여서 “역사를 바꾼 것은 작은 것들이었다” 한국 촛불 혁명이 역사를 바꾼 것을 보라고 하면서 결코 유엔과 미국과 같은 해와 달 같은 존재도 궁극적으로는 두더지 힘을 당할 수 없다는 것을 한결같이 주장하였다. 그래서 미국의 제재 (Sanction)를 무력화 시키는 것도 개미구멍 하나로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 모두가 우리 자신에 대한 자의식과 뇌리 속에 깊이 박혀 있는 사대주의를 청소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홍만종이 <순오지>를 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했다. 

而世之言唐者, 斥宋曰卑陋不足學也 學宋者, 斥唐曰萎弱不必學也, 玆皆偏僻之論也. 
세상에서 唐風을 말하는 사람은 宋風을 배척하여 날마다 비루하기에 배울만하지 않다고 한다. 宋風을 배운 사람은 唐風을 배척하여 날마다 위약해지기에 배울 필요가 없다고 한다.

今世啁啾之輩, 自謂“"超宋越唐, 詩尙『毛詩』ㆍ『選詩』, 文尙『虞書』ㆍ秦ㆍ漢.”" 
지금 세상의 비웃으며 떠들썩한 무리들은 스스로 “宋風도 넘고 唐風도 넘어서서 시는『모시』와『선시』를 숭상하고, 문장은『우서』와 진한의 고문을 숭상해야 한다”고 말한다. 

而究其所詣, 則無音響無意味, 可笑不自量也. 
그러나 나아간 바를 연구해 보면 소리도 없고 의미도 없으니, 가소롭구나! 스스로  헤아리지 못함이.

‘순오지旬五志’라는 말은 홍만종이 병들어 누워 있으면서 ‘15일’ 만에 다 쓴 글이라고 하여 부쳐진 이름이다. 그는 속미인곡, 사미인곡, 강촌별곡, 목동가 등 순 우리말로 쓰인 가사 문학을 들어 국학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 

“방언의 사용은 그 나라의 습관과 풍습이 그대로 베어 들어가 있다. 시가란 글 쓰는 것 자체가 목적인지 아니면 시가를 통해 사람의 흥을 돋우는 것이 목적인지 물으면서 순수한 우리 언문으로도 충분히 흥을 돋우고 어깨를 들썩거리게 하는 데 왜 하필 한문으로만 글을 써야 하는가” 묻는다.

그래서 위 ‘두더지 혼인’ 비유는 항상 큰 것만을 숭상하면 중국 것만을 섬기던 사대주의에 대한 야유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민족의 일을 우리 스스로가 해결해야지 왜 보따리 싸 짊어지고 유엔을 가고 미국을 찾아 가야 하는 지? 이것은 마치 두더지가 남만 부러워하면서 해와 달과 구름과 바람을 찾아다니는 것과 하나 다를 것 없다. 찾아 간다면 꾸짖으려 찾아 가야지. 이번 뉴욕 모임에서도 미국 제재를 찬성하는 학자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존재의 연쇄고리를 만들면 결코 큰 것과 전체가 작은 것과 부분을 좌지우지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없다. 현대 과학은 오히려 작은 유전자 속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고, 작은 핵 하나가 우주를 파멸 시킬 수도 있다고 한다. 일찍이 불교는 이를 두고 “한 톨 먼지 속에 우주가 다 들어 있고, 서까래 하나가 집 전체이다”라고 했다.

정치를 하는 분들은 머릿속에 이러한 철학과 논리를 가지고 임해야 한다. 수많은 논객들이 지금 통일에 대해 글을 쓰지만 모두가 유엔과 미국에 우리의 운명이 달려 있는 것처럼 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홍만종의 순오지를 읽고 외교와 국정에 임하기 바란다. 은진미륵도 자기 앞에 머리 숙이고 구걸 하는 것을 본 두더지는 드디어 같은 두더지를 사위 삼기로 했단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19일 능라도 강연에서 “우리 민족은 강합니다. 우수합니다. 그리고 평화를 사랑합니다”라고 했다. 여기에 더하여 “슬기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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