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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의 기적<칼럼> 이태옥 원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
이태옥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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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03  17:5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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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이후 교토로 이사한 타히라는 후쿠시마 사람의 정체성을 갑자기 잃어버려야 했고, 그렇다고 교토 사람의 자아가 생겨나지도 않은 채 나침반을 잃은 표류자가 되어 방문을 꼭 걸어잠근 히키코모리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9살이던 2012년 3월 11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후쿠시마 1주기 기념행사에서 “여러분 저는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 5,000여 어른들의 고개를 차마 들지 못하게 했던 후쿠시마 난민소녀 유리카는 여고생이 된 지금도 후쿠시마에서 직장생활을 해야하는 아빠와 500km를 사이에 두고 그리운 생활을 이어갑니다.

후쿠시마에서 목장을 하던 할아버지가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며 아직도 후쿠시마현에 살고 있는 고1 남학생의 짙은 눈썹은 무겁게 내려앉았고 말 수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를 겪은 아이들이 7년을 살아내고 청소년, 대학생이 되어 ‘후쿠시마-한국 청소년 보양교류’를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중학생 3명, 고등학생 3명, 대학생 2명 그리고 어른 스텝 4명의 일행이 8월 16일 김포공항에 긴장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삼척바다를 배경으로 8명의 방한단을 그려 넣은 ‘야 놀자’ 현수막에 미토 단장의 눈이 휘둥그레집니다.(이 현수막은 일본 후쿠시마현과 오사카에서 열린 보고대회의 훌륭한 무대장식이 되었습니다.)

일본 탈핵운동의 시초이자 대부였던 물리학자 남편과 쌍둥이 아들을 의문의 조난사로 잃고, 16년동안 죽을자리를 찾아 세계를 떠돌던 미토기요코씨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접하며, 며칠동안 통곡했다고 합니다.

물리학자로 핵마피아들의 숱한 협박을 극복하며, 학자의 양심에 따라 핵발전소의 재앙을 알리고자 했던 남편과 사고당시 물리학도였던 두 아들의 유지를 받아 안는 미토씨는 후쿠시마 아이들로 원고단을 꾸려 재판을 진행하는 등 팔십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맹렬히 탈핵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미토상을 단장으로 한 후쿠시마 보양교류단은 8월 16일부터 22일까지 삼척바닷가 어촌마을에서, 서울에서 크리킨디센터 학생 등 한국 청소년들과 다양한 장소에서 보양과 교류를 이어갔습니다.

3년전 미토상과 부안 바닷가에서 회를 먹을 때였습니다. “아 이제 우리 일본 아이들은 이런 싱싱한 생선을 먹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건강한 공기를 마실 수도 없습니다”라고 나지막히 탄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매일 먹고, 마시며 쑥쑥 커야할 아이들이 야외활동이 통제되고, 먹거리는 더더욱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방학이면 후쿠시마 반대편인 서일본 등 비교적 피해가 덜 한 지역으로 일주일정도 보양을 떠난다는 이야기 끝에 ‘한-일 청소년 보양교류’에 뜻을 모았습니다.

핵폐기장과 신규 핵발전소를 세 번이나 막아내고 청정한 바다와 강, 산을 지키고 있는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와 대안교육 장을 펼치는 크리킨디센터가 힘을 보태서 한국 보양교류단이 꾸려졌습니다.

동화 같은 바닷가를 끼고 있는 삼척 갈남마을에 민박숙소 2군데를 정하고 눈만 뜨면 바다인 삼척에서 레일바이크, 투명보트를 타고 싱싱한 생선과 맛있는 음식들을 해 먹었습니다. 첫날 삼척시장의 만찬으로 시작된 일정은 삼척 청년들과 저녁이면 콘서트와 파티를 열고, 3박 4일동안 평생친구가 될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서울로 올라온 아이들은 탈핵에 대해 고민해온 한국 청소년들과 만나 일상을 함께 했습니다. 새벽까지 아이들의 웃음은 이어졌고, 한복을 차려입고 창덕궁을 함께 거닐었던 아이들에게 국적은 이미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면담에서 일본 출발 전 써왔다는 대학생 참가자 미쿠니의 편지글이 낭독되자 우리 모두는 두손을 모으고 엄중하고도 경건해졌습니다. 핵발전소 사고 이후 그 어디에서도 후쿠시마를 솔직히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사춘기를 겪어냈을 대학생 미쿠니의 고민에 묵직한 미안함이 밀려왔습니다.

남산을 오르고, 창덕궁을 걷고, 홍대와 이태원에서 자유시간을 만들어간 아이들의 우정은 깊어졌고, 이별의 시간은 빠르게 다가왔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에게 왜 이렇게 친절한 건가요? 인생에서 보물 같은 7일이었어요. 까맣던 나의 인생이 갑자기 하얗게 변했어요. 어디를 가든 희망으로 넘치는 하얀색 말이예요. 후쿠시마를 마음껏 이야기 할 수 있었고 우리에게 관심 갖는 사람들의 많아서 고마웠어요. 살아갈 힘을 얻었어요.”

하루하루가 더해질수록 놀랍게 변해가는 아이들 표정과 몸짓을 보는 내내 감동이었습니다. 깊은 밤 홀로 바닷가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긴 울음을 토해내었던 무뚝뚝한 소년이 한국 아줌마들과 긴 수다를 떨며 미소 짓고, 수줍음에 어쩔 줄 몰라하던 소녀가 이태원에 있는 K팝스타 워너원 기념매장을 다녀와선 적극적인 수다쟁이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대체 7일 동안 무슨일이 있었던 거야?”라고 우리 스스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후쿠시마의 기준이 아닌 세계의 기준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는 미토 단장은 일본에서 두 번의 보고대회를 진행한 뒤 ‘후쿠시마 청소년국제교류’는 아이들에게 마음의 보물이 되었고, 대성공 이었다고 전해왔습니다.

후쿠시마현과 오사카에서 성황리에 열린 보고대회는 감동의 연속이었습니다. 후쿠시마에 살았다는 것만으로 아이들에게 죄를 지은 것 같아 가슴 졸이며 살던 아빠는 훌쩍 커버린 아이들의 발표에 왈칵 눈물을 쏟아 내기도 했습니다.

후쿠시마-한국 청소년들은 SNS를 통해 커뮤니티를 만들고 맹렬히 친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참가자 중 한명이었던 한나는 내년에 한국 고등학교로 진학합니다. 대학생인 미쿠니도 한국유학을 희망합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알려주지 않았던 한국역사와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합니다.

이제 2019년 2기 보양교류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보양교류에 참여했던 한국-후쿠시마 청소년들이 2기 스텝을 자처했습니다. 한-일 어른들이 준비했던 1기보다 2기 프로그램은 더 깊고 넓은 ‘보양’과 ‘교류’가 일어날 것입니다.

국경없는 핵사고가 아이러니 하게도 청소년들의 국경을 허물어 냈습니다. 7일의 기적을 만들어 낸 후쿠시마-한국 청소년 보양교류는 현재진행형이고 미래지향적입니다. 더 많은 후쿠시마 아이들이 삼척의 공기와 바다에 몸 담그고, 한국 청소년들과 핵없는 세상을 꿈꾸었으면 좋겠습니다.

7일의 기적은 우리 모두에게 ‘보양’이 되었습니다.
그리움 가득 담아, 다시 후쿠시마 아이들을 기다립니다.
 

이태옥 (원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자연도 인간도, 우주도...

한낱 인간의 욕망이 지구를 망가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태양과 바람의 나라를 꿈꾼다.
에코아나키스트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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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1)
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18-10-06 12:17:04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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