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이야말로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지름길이다 (카를 융)

 

화사(花蛇)
- 서정주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芳草)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보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스며라, 배암!

 

에드워드 포스터의 소설 ‘전망 좋은 방’을 읽었다. 영국 런던의 중산층 가문에서 자라며 교양미를 갖춘 루시양은 사촌 언니 샬롯과 함께 이탈리아의 피렌체로 여행을 온다.

루시는 속옷 바람으로 ‘전망 좋은 방’에서 바깥을 내다본다. 그녀는 안전한 방에서 좋은 전망을 바라보기만 할 것인가? 좋은 전망 속으로 나갈 것인가?

그녀는 시내로 산책을 나간다. 그러다 살인 사건을 보게 되고 기절하여 쓰러진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같은 호텔에 묵고 있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조지라는 청년이 그녀를 부축해 준다.

화창하게 맑은 날 루시는 들판으로 나간다. 온갖 꽃들이 만발한 들판에서 루시는 황홀경에 젖는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조지는 그녀에게 다가가고 그녀에게 ‘기습적인 키스’를 한다.

교양미를 갖춘 루시는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샬롯과 함께 런던으로 돌아간다. 런던에서 그녀는 귀족 청년 세실을 만나 약혼을 한다. 세실은 문학,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다.

루시는 세실과 키스를 하게 되고 그 순간, 루시는 조지의 ‘기습 키스’를 떠올리며 자신의 진실한 욕망을 깨닫게 된다. 몸은 정직하다. 사랑하는 사람은 몸이 안다.

루시는 세실과 파혼을 하고 조지와 피렌체의 ‘전망 좋은 방’으로 신혼여행을 떠난다.

조지의 ‘기습 키스’는 루시에게 처음에는 치욕으로 다가왔지만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교양’이라는 억압 때문에 그녀의 머리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은 100여 전에 루시가 했던 ‘마음과 몸이 함께하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성(性)은 얼마나 ‘육체적 관능’과 ‘죄의식’으로 가득 차 있는가?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아름다운 배암……./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우리의 성은 ‘아름다운 배암’이면서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난 징그러운 몸뚱아리’다.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원초적 성’에게 돌팔매를 쏘고 또 쏜다.

하지만, ‘원초적 성’은 우리의 이성(理性)으로 어찌할 수 없는 너무나 강력한 힘이다.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고운 입술이다……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스며라, 배암!’

서정주 시인의 ‘화사(花蛇)’를 읽을 때마다 너무나 원통하고 서럽다. 왜 우리의 ‘성과 사랑’은 ‘20세기의 일제강점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프로이트의 리비도는 원초적 성이다. 이 근원적 성 에너지는 ‘사랑’을 통해 승화되어야 한다.

루시의 마음 깊숙이 숨겨져 있던 원초적 성은 조지를 만나지 못하고 위선적인 귀족 세실과 결혼하고 살았다면 어떤 에너지가 되었을까?

루시의 원초적 성 에너지는 무의식 깊숙이 꼭꼭 숨겨졌을 것이다. 무의식의 ‘음습한 성’은 그녀를 평생 괴롭혔을 것이다. 그녀를 ‘도착적인 성’에 시달리게 했을 것이다. 외적으로는 화려하게 살고 있는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릴 것이다. ‘사는 게 왜 이리 허전하지? 도무지 살맛이 안나!’

사랑으로 승화되지 못한 원초적 성 에너지는 괴물이 되어 이 세상에 마구 출몰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 추행, 몰래 카메라는 이 괴물의 행적들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루시와 조지의 사랑은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인류애로 확장해 갈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말했다. ‘사람은 추상적 인간은 사랑할 수 있어도 구체적 인간은 사랑하기 힘들다.’

남녀 간의 사랑이 인간에게 중요한 이유는 ‘구체적 한 인간에 대한 사랑의 경험’이다. 구체적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는 추상적 인간애, 인류애는 허상이다.

우리의 청춘들이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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