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


전쟁은 끝났다. 남과 북은 전쟁이 아닌 협력의 시대로 진입했다. 불가역적인 평화를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남북 평화선언의 동의를 구했다. 평양시민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으로 동의를 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은 남북이 주도하는 한반도 평화와 협력의 시대를 선포하는 역사적 대회합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제 서울에서의 동의가 남았다.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는 날, 서울 시민 역시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으로 남북 평화 시대의 도래를 환영할 것이다. 70년 간의 남북 적대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남과 북이 주도하는 항구적 비핵평화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판문점에서 평양까지: 남북이 주도했던 최초의 평화 여정

4월 27일 판문점에서 시작된 평화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5월 남북 고위급회담이 합의되었으나 맥스 썬더 한미군사연습에 F-22 스텔스 전투기가 참가함으로써 고위급회담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북미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땡깡’도 있었다.

가까스로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고, 싱가포르공동성명이 채택되었으나 북미 관계는 진척이 없었다. 미국 내에서는 비핵화 회의론이 등장했고, 미국 내의 복잡한 정치 상황은 트럼프와 폼페이오의 발목을 잡았다. 대북 제재 여론이 강화되었고, 폼페이오의 방북이 무산되기도 했다.
 
북미 대화가 진척이 없자 남북 관계 역시 속도를 내지 못했다. 대북 제재가 남북 관계의 발목을 잡았다. 공동연락사무소 설치에 제동이 걸렸고, 철도와 도로 연결을 위한 조사 사업도 유엔사의 반대로 막혔다.
 
이 모든 험난했던 여정을 남과 북이 돌파했다. 북미 정상회담의 불씨가 사그러들자 판문점 통일각에서 번개 같은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폼페이오의 방북이 무산되고, 비핵화 회의론이 국제사회를 지배하고, 미국의 대북 제재가 남북 관계의 발목을 잡을 때 남과 북은 평양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함으로써 위기를 돌파했다.
 
예전엔 없던 장면들이다. 남북 대화는 북미 관계에 영향을 받는 초라한 신세였다. 그러나 2018년은 달랐다. 판문점에서 평양까지 모든 과정을 남과 북이 주도하고 있다. 바야흐로 남북이 주도하는 한반도 평화가 진행되고 있다.

종전을 선언하고 냉전을 끝내다
 
“쌍방은 군사적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평화적 방법으로 협의•해결하며, 어떤 경우에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쌍방은 어떠한 수단과 방법으로도 상대방의 관할구역을 침입또는 공격하거나 점령하는 행위를 하지 않기로 하였다.”
 
이번에 평양에서 남측 국방부장관과 북측 인민무력상이 서명한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이하 ‘군사분야 이행합의서’)의 내용이다. 남과 북의 국방당국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무력 불사용’과 침략하지 않겠다는 ‘불가침’을 합의했다.

물론 이 같은 합의는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남과 북의 국방을 책임지는 당사자들이 남북 정상이 보는 앞에서 서명했다. 아니 남북 정상은 자신들 앞에서 남북 국방당국자들로 하여금 서명토록 했다. 또한 남북 정상은 ‘군사분야 합의서’를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채택했다. 양 정상이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을 통제하고, 감시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이다. 이만큼 강력한 무력 불사용, 불가침 합의는 지금까지 없었다.
 
남과 북은 사실상 종전을 선언했다. 이로써 한반도 냉전을 끝낼 수 있는 확실한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제 한반도는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평양공동선언 1조)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남북 정상, 비핵화로 통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는 남북 합의 사항을 전했다. 남북 정상이 비핵화를 합의한 사실을 공개한 것이다. 평양 시민은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비핵화는 남북 대화의 금기어였다. 아니 남측은 계속 주장했으나 북측은 한사코 비핵화 논의를 거부해왔다. 비핵화는 북미 사이의 의제라는 이유였다. 그런데 4월 판문점선언에서 남북 합의서 사상 최초로 비핵화가 명시되었다.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남북 회담 사상 처음으로 비핵화가 회담 의제가 되었고, 비핵화 방안이 합의되었다.
 
남과 북이 합의한 비핵화 방안은 세 가지이다. 첫째, 북미 동시행동의 원칙이다. 평양공동선언은 ‘미국의 상응조치’를 강조하고 있다. 평양공동선언에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핵무기가 없는 평화’는 북한의 핵폐기를 의미한다. 동시에 ‘핵위협이 없는 평화’는 미국의 상응조치를 의미한다. 북한과 미국이 동시행동에 나섰을 때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은 완성된다.

둘째,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 α’이다.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는 30년 가까이 진행된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도 등장하지 않았던 용어이다. α는 미국의 상응조치의 속도와 폭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미국의 상응하는 조치가 빠르면 빠를수록 α 역시 빠르게 실현될 것이다. 미국의 상응 조치의 폭이 커지면 커질수록 α의 폭도 커질 것이다.
 
셋째, 남과 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비핵화 합의에서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 총회 연설에서 미국과 국제사회의 상응조치를 요구했다. 트럼프에게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금까지 비핵화는 남북 불신과 갈등의 촉발제였다. 그러나 이제 비핵화는 남북 협력과 공조의 촉매제가 되었다.
 
또 하나의 분기점,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가까운 시일 안에’ 서울을 방문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올해 안에’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특별한 사정이란 남북 사이에 결정적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혹은 북미 관계가 결정적으로 악화되는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방문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2000년 6.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북측 최고 지도자의 서울 방문은 초미의 관심사였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지난 4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측 지역인 판문점 평화의집을 방문했지만 서울 방문에 비할 것은 아니었다. 비록 남북 관계가 좋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커다란 용단임에 분명하다. 주변에서도 만류했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밀어붙였다는 후문이다.
 
4월 판문점정상회담과 9월 평양정상회담이 생중계되면서 한국사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북측의 어려운 사정을 털어놓는 솔직함,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예우, 모양 안 나오는 손가락 하트를 애써 그리는 소탈함 등이 여과 없이 방송되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인간적인 면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 정치평론가는 “악마도 천사도 아닌 한 국가를 책임진 합리적인 지도자”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서 그랬던 것처럼,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 시민들과 악수를 나누고, 서울 시민 앞에서 연설을 한다면 70년 넘게 유지되어 왔던 분단 의식이 허물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민족 단합의 기운은 더욱 고조될 것이고 남북의 관계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종전선언과도 연동되어 있다. 남북 정상은 지난 4.27 판문점선언에서 올해 안에 종전을 선언하기로 합의했다. 9월 평양정상회담 이후 미국 역시 북한과의 협상에서 종전 선언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종전 선언을 촉발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종전 선언의 결과일 수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함께 방문하여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 종전선언을 하는 세계사적 빅 이벤트가 연출될 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종전 선언과 한반도 평화 정착에서도 큰 획을 긋는 상징적 사건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가 민족 자주와 대단합의 새로운 시대로 진입했음을 보여주고, 그것을 선포하는 역사적 분기점이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의 자주시대가 열렸다

9월 평양공동선언을 채택하는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오랫동안 짓눌리고 갈라져 고통과 불행을 겪어온 우리 민족이 어떻게 자기의 힘으로 자기 앞날을 당겨오는가를 똑똑히 보게 될 것입니다.”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민족은 우수합니다. 우리 민족은 강인합니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 우리는 오랫동안 짓눌리고 갈라져 살아왔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시작하여 일제 식민지, 분단과 한국 전쟁 그리고 70년의 적대의 시간동안 우리는 고통과 불행을 겪어 왔다. 한반도를 둘러싼 현재의 상황은 또 다시 우리에게 고통과 불행을 강요하고 있다. 미중 갈등이, 중일 갈등이 한반도의 숨통을 조이고,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강인했다. 전쟁이 강요받는 상황 속에서 남과 북은 전쟁이 아닌 평화를, 적대가 아닌 화해를, 분열이 아닌 화합과 통일을 선택했다. 오롯이 우리의 뜻과 의지로  갈라져 살기를 거부하고 함께 살기를 선택했다. 

2018년 평창과 판문점 그리고 평양을 거쳐 오면서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자주시대를 선포한 것이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선택한다는 위대한 정신을 합의하고 현실화시키고 있다.  

좌고우면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일만 남았다. 흔들림 없이 남북 공조를 지속시켜 나가야 한다. 서울을 방문하게 될 김정은 위원장을 환영하는 압도적인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힘으로 냉전을 확실히 끝내야 한다. 새로운 역사를 우리 민족의 힘으로 써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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