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 / 일본군성노예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김복동장학회 운영위원

 

9월 27~29일, 태풍 '제비'로 인해 학교 유리창이 파손되고 벽이 무너지고, 지붕이 파손되는 등 피해를 입은 일본 관서지역 재일조선학교(우리학교)를 지원하기 위해 93세 김복동 할머니와 91세 길원옥 할머니가 직접 일본 오사카를 방문한다.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는 지난 26년 동안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왔다. 유럽과 미주지역, 일본 등 세계 각 지역으로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다녔으며, 유엔에서, ILO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전해왔다.

이러한 활동은 유엔과 국제노동기구(ILO), 유럽연합의회 등에서 일본정부를 향해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권고하는 결의를 채택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콩고와 우간다, 이라크 등 세계 무력분쟁지역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는 여성들에게도 그 피해를 해결할 수 있는 국제인권기준을 세우는 데에도 큰 기여를 했다.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를 넘어서, '여성인권.평화'의 상징으로

2012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하면서 김복동 길원옥은 무력분쟁 성폭력 피해자를 향해 "우리가 함께 아파하고 있다"고 하며, "일본정부에게 배상을 받으면 그 전액을 우리와 같이 전쟁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열심히 후원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본정부의 배상이 지연되자, 한국정부의 월 생활지원금 중에서 한푼 두푼 모아두셨던 것을 나비기금에 후원하며, 시민들의 참여를 호소하기도 했다. 그렇게 모인 나비기금은 콩고의 내전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과 피해자 지원단체에게, 우간다의 반군 성폭력 피해자와 지원단체에게, 또한 이라크 야지디족 여성들과 팔레스타인 여성에게 지원되며 때로는 긴급지원비가 되고, 의료비가 되고, 생필품이 되고, 자활을 위한 물품들이 되어 전달되었다. 그렇게 두 분 할머니는 자신들이 입은 일본군'위안부' 피해를 해결하는 활동에서 넘어서서 모든 전시(戰時)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힘이 되어  피해왔다.

평택 미군기지촌 피해 여성들을 향해서는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다. 정부가 잘못된 일을 세워 그렇게 만들었으니,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과거가 부끄럽다고 가만히 있다고 그 역사가 지워지는 것이 아니니 나서서 싸우라"고 하며 연대를 약속하고, 나비기금을 지원하며 생존자들과 함께 연대해 왔다. 이후 기지촌 여성들은 수요시위에서 함께 연대하며 목소리를 모았고, 한국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기한국정부의 배상책임을 이루어 냈으며, 자신들의 삶을 담은 연극과 뮤지컬의 주인공이 되어, 한국사회에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기에 이르렀다.

베트남 미국전쟁에서 한국군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는 "나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이지만, 한국군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 한국국민으로서 사죄드린다"는 사죄 메시지를 전하며, 직접 나비기금 모금운동에 나섰다. 그리고 2013년부터 30여명의 베트남 한국군성폭력 생존자들에게 매월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에 더하여, 매년 1회 청소년을 포함한 나비기행단을 모집하여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의 사죄의 뜻을 베트남에 전하는 평화기행을 진행하고 있으며, 나비기행을 진행하면서, 민간인학살 피해지역에 장학사업과 피해자 유가족을 지원해오고 있다. 

일본사람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포항지진 피해자들을 위해서 1천만 원을 기부하신 김복동 할머니는 지난 2011년 3월, 일본동북부 지역에 일어난 쓰나미 피해가 있었을 때 기부를 하며, 모금을 제안하였다. 할머니의 제안에 따라 한국교회희망봉사단 등에서 적극 참여하여 약 3천 여 만원의 성금이 모였고, 이 성금은 쓰나미로 삶의 터전을 잃고 힘겹게 생존한 재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송신도 할머니를 위해 150만 엔을 지원했으며, 지진피해 현장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고 있는 여성들을 위해 150만 엔을 지원하였다. 

2016년 4월, 일본 구마모또 지진피해에 대해서도 두 분 할머니는 직접 지원하자며 모금을 펼쳤고, 2015한일합의 이후에 일어난 피해였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여론에 대해서도 "우리가 싸우는 것은 일본사람이 아니다. 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반성하지 않는 일본정부를 향해 해결을 하라고 싸우는 것이다"라고 하며, "누가 뭐래도 우리가 할 일을 하면 된다"며 사람을 향한 사랑을 드러냈다. 그렇게 하여 모인 성금 6,618,007원은 구마모또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를 통해 전달되었다. 

▲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인 길원옥, 김복동 할머니가 2013년 5월 24일 일본 오사카조선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을 격려하는 모습. 두 할머니는 재일 조선학교 태풍피해 지원에 나섰다. [사진제공-윤미향]

차별에 기죽지 말라, 너희들에게 고국이 있다 

아베 정권 들어서서 재일동포들에 대한 차별이 노골화되고, 교육정책 분야에서도 재일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이 본격화되었다. 재일조선학교는 고교무상화 정책에서 배제하고, 초급학교에 대한 운영비 지원도 중단되는 등 탄압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직면하면서 두 분 할머니는 일본 국회를 방문하여 국회의원들에게 차별을 없애달라고 요구하기도 하고, 정부와 지자체를 방문하여 차별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전달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직접 조선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방문,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며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해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싸우며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전하며, “차별에 기죽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 너희들에게도 고국이 있다. 이 할머니가 열심히 후원할테니 힘내라" 전하고, 2012년 새해에는 전교생에게 양말과 함께 새해 평화인사를, 또 그 다음 해에는 전교생에게 학용품을 보내시고, 후원금을 전하기도 하였다.

2014년에 김복동 할머니는 전재산 5천만 원을 기부하며 ‘김복동장학기금’을 만들고, 1년에 재일조선고급학교 학생 2명 씩을 장학생으로 선정하여 졸업 때까지 매년 25만엔(한화 250만원)씩을 지원해오고 있다. 

태풍 ‘제비’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해 직접 나서다!

지난 9월 초, 일본 관서지역을 관통하여 큰 피해를 만든 태풍 '제비'는 재일조선학교에 심각한 피해를 남겼다. 대부분의 재일조선학교가 유리창이 파손되고, 벽이 무너지고, 학교 지붕이 파괴되는 등 피해가 발생하여 학교 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한 상황을 들으시고,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정부가 재일조선학교는 전혀 지원을 하지 않을 것이니, 우리가 해야 하지 않겠나” 하시며, “학교가 있어야 아이들이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통장을 탈탈 털어 포항지진 피해를 위한 성금 1천만 원을 낸 후, 다시 모은 1천만 원을 전액 후원하셨다.

이 소식을 들은 길원옥 할머니는 “언니가 나서니 나도 하겠다”며 3백만 원을 후원하셨다. 그 소식이 sns와 한 일간지를 통해서 알려진 후 전국건설노동조합을 포함하여 시민들이 십시일반 보내주었고, 2천6백8십8만원이 모였다. 이 성금을 두 분 할머니께서 직접 9월 27일 오사카를 방문, 피해를 입은 재일조선학교를 찾아 전달하게 된다. 

내가 병에 걸렸다고 해서, 할 일을 안 할 수는 없다

생애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를 이번 여행을 위해 암투병중인 김복동 할머니는 "내가 병이 걸렸다고 해서, 할 일을 안 할 수는 없다" 면서, “아프다고 방에서 죽은 듯이 살 수는 없지 않는가” 하시며, 끝까지 인권운동가로서의 모습을 굳건히 보여주고 있다.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의 절절한 발걸음이 그동안 세계 많은 무력분쟁지역의 여성들에게 희망이 되어 왔듯이, 아베정권에서 탄압받고, 차별받는 재일 조선인들에게도 희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모금계좌 : 국민은행 069101-04-224446 김복동장학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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