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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가을걷이<칼럼>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김동엽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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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17  10: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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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봄을 열어젖힌 4.27 판문점 선언이 있은 지 5개월여 만에 평양에서 정상회담이 열린다. 봄맞이를 가을걷이로 이어가자던 남북의 약속이 현실화된 것이다. 지금까지 단 두 차례 열렸던 남북정상회담이 올해에만 세 차례나 열리게 되었으니 이제 정말 서울과 평양이 멀다고 하면 안되겠다. 새삼 《순자(筍子)》의 ‘춘경하운 추수동장(春耕夏耘 秋收冬藏), 봄에는 밭을 갈고 여름에 김을 매고 가을에 이를 거두어들이고 겨울에 이를 저장한다’란 글귀가 떠오른다.

남과 북은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봄을 맞아 그 동안 척박했던 한반도의 밭을 갈아엎고 남북관계의 씨를 뿌렸다. 예상치 못했던 5.26 통일각에서의 양 정상간 셔틀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여름내 군사회담과 적십자회담, 철도와 도로, 산림 협력을 위한 회담으로 열심히 김매기를 이어갔다. 이제 민족의 명절 추석을 앞두고 한해 농사의 결실을 거두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평양에서 가을걷이를 하려 한다. 첫 추수인 만큼 가슴 설레고 기대도 클 것이다. 어쩌면 이번 평양에서의 수확이 한반도라는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저장물일지도 모른다.

선군적 발상의 전환

4.27 판문점 선언 이후 합의사항 이행 현황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각 분야별 회담만 10여회가 넘게 개최되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재개되었고 개성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열었다. 아시안 게임에 공동 입장 및 단일팀으로 출전했고 남북 체육인들이 남북을 오가며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철도 도로 연결, 그리고 산림협력을 위한 공동 점검 및 현지조사도 있었다. 지난 10여년 간 단절되었던 한을 단숨에 풀고자하는 간절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양에서의 가을걷이가 4.27 판문점 봄맞이에서 기대했던 것만큼은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애초 가을에 기대했던 수확은 남북한 경제협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을 공식화하는 것이지 않았을까 한다. 당시 제재국면에서 남북한 경제협력을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한반도 신경제구상(안)을 설명하고 이를 담은 USB를 꾹 찔러주었다는 이야기는 오히려 가슴 아프고 절절하다. 두 정상은 가을에 만나서 꼭 남북경제협력을 평양선언문에 당당히 넣자고 했을 지도 모른다.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해 지난 5개월간 적지 않은 대화와 협력이 있었음에도 경제 분야의 협력은 고개를 숙이고 기회를 엿보고 지내왔다. 이제 평양 가을걷이를 앞두고 비핵평화의 길이 생각처럼 만만치 않고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이번에도 아쉽지만 비핵화와 북미관계의 진전이 더디어 아직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공식적으로 테이블에 올려놓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 만큼 이제 남과 북이 함께 손을 잡고 넘어야 할 산과 건너야할 강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경제협력의 기회를 엿보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나아야 할 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도 ‘평화가 곧 경제’라고 했다. 남북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이라는 두 바퀴가 함께 굴러가야 함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은 경제로 평화를 만들겠다는 것보다 평화를 통해 경제발전의 길을 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미 4,27 판문점 선언에도 2조 남북간 군사 긴장완화를 통해 1조 남북관계의 발전을 떠받치고 3조 항구적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여는 열쇠 역할을 하겠다고 되어있다.

이번 평양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을 방문한 특사단도 평양 남북정상회담 계기에 상호 신뢰 구축과 무력충돌 방지에 관한 구체적 방안에 합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 역시 지난 13일 남북정상회담 원로자문단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특히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군사적 긴장과 적대관계 해소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려고 합니다”라고 밝혔다.

이번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판문점 선언의 2조를 더 구체화 시켜 나가겠다는 것인데 이는 남북관계를 가로막아 온 근본적인 것이 군사적인 문제라는 점이다. 남북관계에 있어 군사문제를 앞세우는 선군(先軍)적 발상의 전환이기도 하다.

남북한만의 종전선언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지난 9월 13일 남북 군사실무회담이 북측 통일각에서 있었다. 하루를 넘겨 새벽까지 17시간의 회담이었다. 평양 정상회담을 앞두고 4.27 판문점선언에서 합의한 군사문제 이행에 대한 ‘포괄적 군사분야 합의서’ 문안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방부에서도 “평양정상회담 계기에 남북군사 당군간 군사분야 합의서가 체결될 경우 양 정상이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군사적 긴장 해소 및 신뢰구축을 위한 실질적 조치가 구체적으로 이행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실무회담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에 체결될 군사합의서에는 DMZ(비무장지대)내 GP(감시초소) 시범철수와 DMZ내 유해공동발굴과 해당 지역 지뢰 제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 쉬운 부분은 사실상 합의에 이르러 곧 행동으로 옮기는 이행계획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반면에 수도권 포병전력 위협 감소나 NLL(서해북방한계선), 비행금지구역 등과 같이 조금 더 협의가 필요한 분야에 대해서는 상호 필요성을 인식하고 공감대를 형성하였다는 수준에서 마무리하고, 무리하게 한 바구니에 담아서는 안 된다. 그 보다는 이 바구니를 책임질 과거 남북기본합의서에 언급된 군사공동위원회와 같은 남북 간의 실질적인 군사대화체를 만드는 내용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는 평양에 가기 전에 별도의 남북국방부장관회담을 통해 서명되었다면 더 모양새가 좋았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5개월여의 짧은 시간에 이루어 낸 성과로 본다면 평양에서의 서명도 긍정적인 시나리오다. 더욱이 이를 바탕으로 남북 정상이 평양에서 남북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사라지고 한반도에서 전쟁위협이 완전히 종식된 ‘사실상 종전선언’에 준하는 내용을 ‘평양선언’에 담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큰 가을걷이는 없을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트럼프가 싱가포르에서 약속한 종전선언을 받아내지 못했지만 남북 간에 현실적으로 종전선언과 다를 바 없는 약속을 한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이제 병진노선을 내려놓고 경제로 매진하기 위해 500만대의 핸드폰을 손에 들고 500여개의 장마당을 뛰어 다니며 생활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더 이상 전쟁 위협이 없는 안보환경을 선물할 수 있다는 내부적인 메시지로서 의미가 크다. 또 남북이 군사적으로 문제가 사라지고 평화롭다면 미국이 종전선언을 못해주겠다고 버틸 이유가 마땅치 않게 된다. 어느 순간 종전선언을 하나의 허들로 만들어 버린 미국의 긍정적 결단을 자극하는 촉진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 간 군사적 문제 해소를 통해 종전선언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분명 논란이 있다. 그러나 이미 판문점 3조 3항에 남과 북은 해당 주체가 불분명하지만 연내 종전선언을 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남북 간의 종전선언은 무의미하다고 하면서 종전선언은 법적 제도적으로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일 뿐이라고 한다. 종전선언이 법적 제도적으로 구속력이 없는 단순히 한반도가 평화의 길을 여는 총성이라면 이 땅 한반도의 주인이자 분단의 당사자인 남북이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지난 해 8.15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은 안 되며 한국의 허락이 없이 무력행동은 안 된다고 밝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온다. 남북관계도 늘 좋을 수만은 없다. 비핵화와 주변국과의 관계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걷고 이를 잘 저장한다면 겨울은 쉬 보낼 수 있다. 그러면 곧 봄이 온다. 그렇게 찾아온 봄엔 평화로운 한반도 이 땅에 남북이 함께 경제의 씨앗을 뿌려 공동번영의 가을걷이를 할 수 있게 되길 손꼽아 기다려 본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해군사관학교 경영과학 학사(OR)

국방대학교 국제관계 석사(안전보장학)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학박사(군사안보전공)

현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및 정외과 조교수(박사주임교수), 북한연구학회 이사,

한반도평화포럼 안보센터장, 국방부/통일부/연합사 자문위원,

예) 해군중령 (2011년 8월 19일 전역 / 군 근무20년)
- 국방부 북핵WMD담당, 대북정책기획담당, 대북협력정책담당
- 남북군사회담 10여회 참가(2007~2010년)

 

(수정,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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