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자아는 영혼을 가둘 수 있는 유일한 감옥이다 (헨리 벤다이크)


 낙하산을 편 채
 - 이수명

 비 오는 날,
 나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비 오는 날 우리는 낙하산을 편 채 걸어갔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며 나와 함께 공부하는 인문학반들이 개강을 했다. 다들 만나자 마자 이번 여름의 살인적인 폭염에 대해 얘기를 했다. 기온이 3도만 올라가도 빙하기가 다시 온대요. 지구의 물이 사라진대요. 등등.

 인류는 어쩌다 자연을 이다지도 함부로 파괴해 버렸을까? 우리가 누리는 눈부신 물질적 부(富)는 근대 산업사회 이후부터다. 중세의 신(神)의 자리에 인간이 들어섰다. 인간은 이성(理性)을 가진 존재로서 인간과 자연을 대상화하며 과학과 경제의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그 대가로 인간과 자연은 황폐화되었다. 인간세계는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어버렸고, 자연은 빈사상태에 이르렀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근대의 이성적 인간’을 극복해야 한다. 인간의 이성은 자신의 자아(Ego)를 우주의 중심에 놓는다. 인간의 자아는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해 사용해도 된다는 망상을 품게 된다.

 우리가 이성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면 삼라만상을 나를 위해 이용하고픈 유혹에 빠져 버린다. 

 이성을 버리고 무념무상(無念無想)인 상태로 세상을 바라보면 삼라만상은 자신과 하나로 어우러진다. 만물제동(萬物齊同)이다.

 현대 인문학에서는 인간의 이성, 자아의 자리에 니체의 ‘힘에의 의지’와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자리를 잡았다. 예술 분야에서는 리얼리즘을 대신하여 ‘환상(fantasy)’이 도입되었다.

 이수명 시인은 ‘비 오는 날’의 풍경을 전혀 다르게 바꿔놓는다.
 
 ‘나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었다/비 오는 날 우리는 낙하산을 편 채 걸어갔다.’

 비가 오는 날을 이성적으로 보라보면 어떨까? 성가신 비바람 앞에 찌그러져 가는 우산을 간신히 받쳐 들고 종종종 걸어가는 인간 군상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성을 버리고 무심히 비 오는 날 풍경을 바라보자! 우리는 화들짝 놀랄 것이다. ‘아,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알겠어!’ ‘우리는 바로 하늘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어!’  

 ‘낙하산을 편 채 걸어가는 인간’은 얼마나 거룩한가! 당당히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며 대지에 굳건히 발을 딛고 걸어가는 인간!

 근대의 이성적 존재가 이 세상의 중심에 들어서야 하는 건 아니다. 그렇게 해야 인간이 신으로부터 해방되는 게 아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는 다른 인간, 자연을 황폐화시키지 않는다. 낙하산을 편 채 걸어가는 것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존귀하니까!

 우리의 자아는 이제 이성의 감옥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항상 이성을 갖고 도사리며 살아가는 강박증적인 인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자신의 파멸에 그치지 않고 지구를 종말에 이르게 할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말했다. ‘불쌍한 개인성이여, 너는 네가 너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할 때, 네가 아니다.’

 자신을 강력히 주장하는 이성, 그런 이성을 가져야 우리는 자신을 비로소 ‘개인(신, 집단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런 개인성은 허상이다. 망상일 뿐이다. ‘나(자아)’라는 게 어디 있는가? ‘나’는 내가 먹은 것, 본 것, 만난 것들의 촘촘한 인연(因緣)이다. 서로 만나고 헤어지는 관계 속에 ‘나’는 존재할 뿐이다. 관계망 외의 ‘나’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는 허상 속에 ‘나’가 어떤 실체로 존재한다는 망상을 갖게 되었다. 그 망상은 점점 커진다. 삼라만상을 다 삼키고도 허기를 느낀다.    

 우리는 평소에 얼마나 이성적으로 사는가! 하나하나 자신의 이익과 따지며 다른 사람, 자연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티끌처럼 작아져 버렸다.

 티끌은 오늘도 허기가 진다. 계속 무엇인가를 먹어야 하고, 항상 무엇인가를 뒤집어 써 자신의 몸을 보호해야 한다. 그러다 바람결에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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